설교

불가피한 심판

요한에 依(의)하면 이것은 大衆(대중)에게 주신 마지막 敎訓(교훈)입니다.

이 後(후)에도 弟子(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빌라도 앞에 서실 것이지만, 民衆(민중)에게는 이것이 끝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自己(자기) 全(전) 生涯(생애)의 基盤(기반)이요, 要素(요소)가 되는 店(점)을 說明(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은 자기(自己) 안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것과, 자기(自己)의 말을 듣고, 자기(自己)의 얼굴을 보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점(点)이 바로 예수님의 절대(絶對) 중요성(重要性)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만나시고, 사람도 하나님을 만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만나는 대면(對面)은, 적어도 두 가지 결과(結果)를 가져오는데 거기는 심판(審判)의 씨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다시 요한복음의 중심(中心)사상(思想)으로 돌아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정죄(定罪)하려 함이 아니라, 구원(救援)하려 하심이요,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진노(震怒)가 아니라 사랑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은, 피(避)할 수 없는 심판(審判)도 포용(包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理由)는 예수님에 대(對)한 사람들의 태도(態度)가 문제입니다. 만일(萬一) 사람들이 예수에게서 사랑을 발견(發見)하고, 그를 믿으면 그는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기 때문에, 절대(絶對) 안전(安全)하지만, 만일 예수께 대하여 무관심(無關心)한 사람은, 하나님과도 멀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심판(審判)을 자초(自招)한 결과(結果)가 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역설(逆說) 같은 진리(眞理)는, 곧 “예수님은 사랑으로 오셨지마는 그의 오심은 심판(審判)이라”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곧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시금석(試金石)입니다.

사람이 예수께 대하는 태도(態度)가 그 사람됨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 대한 그의 반응(反應)이 곧 그에게 심판(審判)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자기(自己)의 말씀을 들었으면, 들은 그 말씀이 끝 날에 그들을 심판(審判)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삶의 큰 진리(眞理)의 하나입니다.

모르고 행(行)하지 못한 진리(眞理)에 대해서는 책임(責任)을 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의(正義)가 무엇임을 알면서도 불의(不義)를 행(行)하고, 선(善)이 무엇임을 알면서도 악(惡)을 행(行)했다면 그 죄(罪)는 더욱 큰 죄(罪)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들은 모든 사랑의 말씀과, 의(義)로운 말씀은, 우리를 심판(審判)할 수 있는 증거(證據)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도 행(行)치 아니한 사랑과 정의(正義)가 우리를 고발(告發)하고 심판(審判)할 것 이란 말씀은, 정신(精神)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될 귀(貴)한 경고(警告)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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