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섬김의 자리
- 등록일
- 2026년 9월 27일
- 설교일
- 2026년 9월 27일
찬송가 455장
1.
오늘 제목은 ‘섬김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본 보이신 삶, 제자들에게 본 보이신 삶은 어떤 것이었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씀은, 오늘 봉독한 최후의 만찬 때입니다.
요한복음 13:1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이른 줄 아시고”, 13:4에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으셨다.” 그리고 12절에서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한 세족식(洗足式)을 아주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기록했습니다.
발을 씻은 후에 ‘옷을 입으시고’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그 당시 종들이 주인 또는 집에 손님으로 오신 분의 발을 씻을 때, 상의를 벗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의 상의를 벗고 물을 기르다가 발을 씻어주고 수건으로 닦아주시는 이 예수님의 세족의식은, 예수님께서 ‘섬김의 삶을 본 보여주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발 씻어주신 섬김의 사건을 공관복음서를 통해 살펴보면, 요한복음과는 조금 차이가 있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이 쓰인 때가 공관복음서보다 후였기 때문에, 어쩌면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최후의 만찬 직후에 발 씻어주신 사건을 보완하면서, 신앙적인 해석을 덧붙인 것이 요한복음서였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마가복음 14:22은 단순하게 최후의 만찬만 기록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6:17 이하를 보면 마가복음과 같은 내용이지만, 가룟 유다와의 대화 내용을 마태복음은 첨가하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내가 아니지요?” “네가 말하였다.” 이것이 마태의 첨가 부분입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떡과 잔을 나누셨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2:24 이하의 본문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떡과 잔을 나누신 직후에, 제자들 사이에 작은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 내용이 그들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문제로 다툼이 난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아주 재미있는 말씀이잖아요.
누가 크냐? 다툼이 일어났는데, 흔히 알기로는, ‘섬김받는 사람’이 ‘큰 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리에 앉아서 음식 대접을 받는 사람이 ‘큰 자’라고, 그렇게 일반적으로 아는데, 예수님이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다.”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이 말씀한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다.” 하신 이 말씀의 본을, 요한복음서에서 ‘발 씻는 종의 모습’으로 보여주신 것이 아닌가, 이렇게 저는 생각해 봅니다.
2.
사실 제자들 사이에 서열 싸움, 서열 다툼은 종종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8:1에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물었을 때, 예수님의 대답은 18:4에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다.”라고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0:20에는 세베대의 아들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부탁하죠.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좌편에 하나는 우편에 앉게 명하옵소서” 했을 때.
마태복음 20:24을 보면, ‘열 제자가 듣고 두 형제에게 분하게 여겼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것은 제자들 사이에 늘 지위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는 증거인데, 이러한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이랬습니다.
“얘들아, 집권자들이 권세 부리듯이 너희가 그러면 되느냐? 안 된다.” 하시고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고,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다.” 마태복음 20장 28절의 말씀입니다.
너무나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늘 기회 있을 때마다 제자의 길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의 삶의 지향점(指向點)이 어디인지, 확실하게 점을 찍어 주셨다고 믿습니다.
마태복음 16:24~27에서도,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받고, “네 믿음 위에 내 교회(에클레시아)를 세우겠다”라고 말씀하시고, 내 교회를 세우는 길은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가 제3일에 부활하는 고난을 통하여, 십자가의 사랑으로 세워진다고 가르치신 다음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며, 이러한 삶이 ‘자기 목숨을 구원하는 걸음’이라 하시면서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실 그때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역시 예수님께서 일관성 있게 가르치신 ‘제자의 도(道)’요,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삶’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은 이와 같은 자신의 가르침을, 예를 들어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4:10~11을 보면, “네가 혼인 잔치에 (이 혼인 잔치는 사실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는 자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청함을 받았을 때 높은 자리에 앉지 말아라.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 누구겠습니까? 혼주(婚主)죠. 심판주(審判主)이신 하나님이시죠.
이 하나님께서 끝자리에 앉는 그 사람을 “벗이요, 올라 앉으라” 하여,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민족마다 문화의 차이가 조금씩 있는데, 헬라와 로마의 풍습은 상좌(上座)는 주인에게 가까운 자리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앞자리에 서게 되면 앞자리가 상좌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유대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습니다.
어떤 잔치가 열리면 여러 의자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한 의자에 세 사람씩 앉게 합니다.
중앙이 상좌(上座)이고, 상좌 중앙에 앉은 좌편이 차석(次席)이고, 우편이 말석(末席)입니다.
그러니까 말석에 앉으라는 얘기는, 그 상좌(上座) 자리를 비워두고, 상좌 중앙 우편에 앉으라는 얘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석에 앉으라 하는 이 복음서의 말씀을 통해서 섬김의 자리를 예수님 스스로 본보여 주시고, 제자들이 살아야 할 삶은 스스로 낮은 자리에 처하는 것, 이것이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자가 스스로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겸손치 못한 사람은 최후의 심판 때 부끄러운 수치를 당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 선친께서 가르쳐 주신 내용입니다.
한문에 ‘점 복(卜)’ 자(字)는 ‘사람인(人)’ 자(字)를 의미하는데, 이 ‘위상(上)’, 위상(上)이라고 하는 글자는, 땅(一), 지평선 위에 사람(卜)이 서 있는 글자이고, 지평선, 땅(一) 아래에 사람이 서 있으면 ‘아래 하(下)’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신을 낮추면(下) 높아짐(上)이 되고, 자신을 높여서(上) 윗자리에서 남의 대접을 받으려고 하면 낮아지는(下)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도 바울의 고백에 따라서 이해해 보면, 하나님과 본체 같으신 분이셨지만, 자기를 비워 종이 되고, 낮추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시어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어 하늘과 땅 모든 사람으로 무릎을 꿇게 하시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셨다.
빌립보서 2:6~11 신앙 고백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 했습니다.
어떤 마음입니까?
자기를 비워 낮추고, 지극히 낮은 자리까지,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세를 낮추는 낮아지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죠.
이 말씀으로 오늘의 한국교회를 생각해 보면, 성직자나 교회 직분 맡은 자들이나 교인들이나 모두 저마다 발을 내밀고, “누가 내 발 씻어 주지를 않나?” 이런 사람은 많고, 신자는 많지만, 수건을 허리에 동이고 발 씻어주는, 이런 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섬김의 자리를, 섬김의 도를 행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심판의 때가 이르기 전에 말석(末席)에 앉고, ‘섬김의 자리’를 넓혀가는, 그래서 진정한 복 있는 자로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하나님과 동등하셨으나 자신을 낮추어 섬기는 사람, 낮아진 자가 되신 우리 주님께서 또한 제자들에게 “내가 본을 보였으니, 너희도 섬김의 본을 보여라.” 가르쳐 주신 것을 기억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이 삶을 통하여 병들고, 허물어져 가는 한국교회를 살리는 자그마한 버팀목이 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축복기도
지금은,
십자가로 우리를 섬겨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아들 예수님을 사람을 섬기라고,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 섬기는 자의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감동, 감화, 위로하시는 은총이
머리 숙인 우리들과,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