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때를 안 사람들
- 등록일
- 2026년 9월 21일
- 설교일
- 2026년 9월 20일
1.
120년 전, 성내 교회가 1907년에 세워진 것으로 성내 교회 백년사에서 읽었습니다.
이곳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셔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하신 주님의 평화가 오늘 헌신 예배를 드리는 제3여신도회 위에, 모인 모든 성도, 그리고 성내 교회 위에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20년 전 이야기를 드립니다. 1906년이죠. 그 당시 15살에 부모님에 의해서 혼인을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23살이 되도록 자녀를 얻지 못하니까 방황하는 마음이 생겨, 중이 되어야겠다고 해인사를 향해서 24살 된 가장이 집을 떠났습니다.
그는 길 위에서 의병을 만났어요.
의병(義兵), 그러면 좋은 것 같지만 120년 전 의병은 좋지 않았어요.
백성들의 것을 훔치고 강도질하고 때로는 목숨도 빼앗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24살 된 가장이 의병을 만나니까 두려움이 생겼어요.
“아이고, 내가 죽겠구나. 중도 되기 전에 죽겠구나.” 그런데 마침 이분이 살던 마을에 예수님을 믿는 분이 계셨어요.
강재원 씨라고, 대구 약령시장에서 배위량 선교사에게서 쪽 복음을 받고, 그것을 읽은 다음에, “내가 예수를 믿어야 하겠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겠다.” 하여 예수를 믿고, 자기 마을에 있는 친척들에게 “예수를 믿자. 하나님을 믿자.” 이렇게 전도할 때 그것을 들었어요.
이 24살 된, 중이 되려고 출가한 가장이 생명의 위협 앞에서 “아이고 하나님, 나 이번에 살려만 주신다면 예수님 믿겠습니다.” 이렇게 서원을 했어요.
어떻게 됐을까요?
목숨을 건졌습니다.
해인사로 향하던 길을 돌이켜 집에 오자마자, 종손(宗孫)이었는데, 상투를 자르고, 제사 지내야 할 모든 책임을 아우인 강병창 동생에게 넘기고, 신주(信主) 했습니다. 1906년부터 동생 강병창과 함께 내매교회의 초대 교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강병창 작은 할아버지의 증손자 강현구가 장로 피택되어 11월 1일에 임직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분이 강병주(姜炳周) 목사님이십니다.
강병주 목사님은 1922년 1월에 영주제일교회의 마지막 조사(助事)가 되십니다.
“영주읍교회는 월급 30원을 작명하여 평양신학교 제16회로 졸업한 강병주를 조사(助事)로 시무케 하다.” 요즘으로 얘기하면 전임 전도사가 되신 거예요.
그리고 1923년 1월 10일에 목사 안수를 받고, 풍기교회의 담임 목사로 청빙을 받습니다.
그것이 1923년이었고, 1932년까지 풍기교회의 담임 목회를 하신 저의 조부(祖父)가 되시는 강병주 목사님이십니다.
제 나이가 한국 나이로는 79이에요. 내년이면 80이 되는데, 강병주 목사님의 손자인 제가 103년 만에, 103년 전에는 이 강단이 아니었겠지만, 여기에서 설교하신 할아버지의 그 자리에서 손자인 제가 설교하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오늘 이 순간을 뜨거운 감격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
지난 9월 6일에 멀지 않은 이웃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내매(乃梅)교회가, 120주년 기념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 할아버지께서는 내매교회 교인이 되어, 내매교회 안에 사립기독내명학교(私立基督內明學校)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치고 교장이 되셨습니다.
이런 연유(緣由)로 제가 내매교회에서 그날 설교를 하였습니다. 설교가 끝난 다음, 제 아버지께서 남겨놓으신 자료 속에서 발견한, 기독내명학교 교장으로서 선친(先親) 강신정 목사님에게 준 수업증서 또는 정근상장(精勤賞狀), 103년이 된 문서였는데 내매교회 윤재현 목사님에게 기증했습니다. “정말 귀한 자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했는데, 예배가 끝난 후에 김종길 장로님. “여러분, 누구신지 아시죠?” 성내 교회 역사위원회 위원장인 김 장로님이 오시더니, “저, 성내 교회 장로 김종길입니다.” 하시더니 얼굴을 굳게 하시며, “아니, 그 내매교회에 기증한 것, 성내 교회에 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성내 교회에서 강병주 목사님이 목회하셨는데, 당연히 저희에게 주셔야죠.” 하시고는 “뭐, 다른 거 없습니까?” 하셨어요.
제가 마침 선친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데, 자료 중에 “사립영신학원장(私立永信學院長) 김창립(金昌岦) 성함으로 선친 강신정에게 발급한 수업증서(修業證書)”가 하나 있었어요. 굉장히 귀한 자료인데, 이것을 찾아서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대정(大正) 13년이면, 1924년, 102년 전 자료입니다.
영신학원장(永新學院長) 김창립(金昌岦)은 성내 교회가 당회를 결성할 때 성내 교회 최초로 두 명의 장로를 임직하였는데, 그중 한 분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더니 담임목사님께 말씀드리고, “설교해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제가 설교를 하게 된 겁니다.
영신학교(永新學校)는 성내 교회가 운영하던 초등학교였습니다.
그런데 수업증서 하나만 달랑 기증하면 너무나 정 없다 그럴까 봐, 할아버지 친필 사인이 적혀있고, 또 풍기교회 담임 목사로서 사용하셨던 책자, 그리고 선친께서 풍기보통학교를 졸업하신 여러 증명서, 이런 책자와 증명서들을 오늘 전달하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셨고, 아들 되시는 목사님이 잘 간직해주셨고, 그 아들의 아들인 제가 또 수십 년 잘 간직하고 있다가, 이번에 세상의 햇빛을 보게 되었는데, 마침 성내 교회가 역사기념관을 넓게 증축하였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귀하게 보존해 주신다니까, 저희 가문으로 서는 영광으로 생각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최 목사님께서 제게 오늘 설교를 부탁하시면서, “옛날얘기, 해 주세요” 하셨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옛날얘기만 할 수 없어서 오늘 주제를 정해놓고, 제 할아버지의 목회를 저 나름대로 평을 해보니, “때의 목회”를 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억압하고 수탈하고, 민족이 수렁에 빠져서 살길을 찾으려고 몸부림칠 때였습니다. 1920년대, 30년대, 40년대 초까지 목회하시다가, 해방과 함께 목회를 접으셨습니다. 그리고 1955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목회를 생각하면서 오늘 우리도 이때의 신앙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고, 이 시대에 귀한 교회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야 하겠다 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3.
마가복음 1장 15절에, 예수님께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잡힌 다음 갈릴리에 일부러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신 내용이 ‘때가 찼다’이 말씀이었어요.
도대체 예수님이 ‘때가 찼다’ 한, 이 ‘때’는 어떤 것을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그때는, 로마가 온 세계를 지배하였던 시대입니다.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하게 하였죠.
군사력으로, 폭력으로, 로마인이 다른 민족과 나라를 침략하여 힘으로 눌러 만든 평화, ‘로마의 평화’ 시대가, 예수님이 ‘때가 찼다’라고 했던 그 시대입니다.
Pax Roman이라고 말하죠.
로마의 평화는 로마인만의 평화였습니다.
게다가 이 로마는 사람인 황제를 신이라고 신격화해서 섬기는 민족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길 위에다가 황제의 흉상 조각을 만들고, 신에게 제물을 드리는 제단을 만들어, 모든 로마가 지배하는 민족들에게 로마 황제의 흉상에 절하게 했던 때가, 예수님이 ‘때가 찼다’라고 말씀하신 그 ‘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때가 찼다’라고, 이 말씀을 하신 배경에는, 신으로 떠받들어지는 로마 황제, 이 로마 황제가 주는 평화는 ‘거짓 평화다’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고, 또 모든 민족에게 황제를 신으로 섬기라는 것은, 로마 황제가 그리스도,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군림하는 그리스도로 로마 황제를 섬기라 할 때였어요. 이러한 때에 예수님은 이러한 ‘로마의 평화 때’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운 때’라고 평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마가복음 1장 15절의 내용입니다.
로마가 ‘Pax Roman’ 이것을 선전할 때, 예수님은 “복음을 믿어라.” 이 말씀을 하신 겁니다.
제자들을 부르시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가이사라 빌립보를 향하여 가시는 길 위에서(막 8:27)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대답을 들은 다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러분 다 아시죠? 누가 대답했어요?
베드로가 대답했죠.
베드로가 뭐라고 했어요? 다 우리 같이 한번 고백해 봅시다. 시작!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참 공부 잘했습니다. 오늘 만점입니다.
그런데 The Chosen ‘부름 받은 자’라고 하는 시리즈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베드로가 이 고백을 한 장소가 어디냐? 이걸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갈릴리에서 가이사라 빌립보로 들어가는 그 길, 거기에는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제단이 있었습니다.
황제를 흉상으로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제물을 바치면서, 로마 황제가 신이라고 경배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누구냐?” 물어보신 거예요.
성령께서 베드로를 압도하시어, 베드로로 하신 말씀이 뭐였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걸 그냥 한 얘기가 아니죠.
황제를 신이라고 섬기고, 황제를 그리스도라고,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그 장소에서,“아니야!” 그러면 누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야!” 이러한 로마 황제가 만드는 세상은 유물사관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습니다.
향락과 물질의 풍요를 제공하면서 가짜 평화를 추구하였습니다.
“이제 가짜 평화의 시대는 끝이고, Pax Christos, 그리스도의 평화가 넘치는 때가 옵니다.
이때는 모든 사람이 평등해질 겁니다.” 이 희망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었고, 누가복음 4장 18~19절에 나온 대로, ‘은혜의 해’가 선포된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성령의 지도를 받아 신앙 고백을 했는데, 이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베드로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에클레시아)를 세울 텐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아멘.
음부의 권세는 적 그리스도의 모든 세력을 의미하고, 로마도 포함됩니다.
여기에서 ‘내 교회’란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 시대는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 한 곳 있었습니다.
어디일까요?
유대인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이 모든 종교 생활에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여러분 들어보십시오.
공관복음과는 다르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성전 숙청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앞둔 마지막 때의 성전을 숙청하는 것이 아니고,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표적을 보이신 다음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청소하시면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인데 마가복음에 의하면 “내 집은 만인이 기도하는 집”(막 11:17)인데 “너희가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구나”(마 21:13)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허물어라! 이 성전을 허물어버리면 내가 3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요 2:19) 였습니다.
다시 세우는 것이 ‘성전’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에클레시아’, ‘내 교회’, ‘주님의 교회를 세운다’라고 했어요.
성내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아세요?
바로 이 교회도,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아, 허물어져라!” 하여, 허물고 그리고 ‘내 교회’를 세운, 셀 수 없이 많은 ‘주님의 교회’ 중 하나가, 이 성내 교회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에클레시아를 세우는 길을 가르쳐 주셨는데, 이 길이 기가 막혀요.
“내가 이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고난받고, 죽임을 당하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 베드로가 눈이 뎅그렇게 되었어요.
아니, 금방 “주님은 그리스도십니다”라고, 로마 황제보다도 더 높였는데, “나는 죽어야 한다”라고 하시니, “아.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됩니다” 가로막아 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내용을 잘 아십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내 교회, 에클레시아는 어떻게 세워져야 하느냐?” ‘십자가(十字架)’로!
‘십자가’는 다른 말로 ‘사랑’이죠.
그러니까 “내 교회는 십자가로 세워지는 거야.” “내 교회는 사랑이 가득 차 있어야 하는 거야.” 이 말씀을 하셨는데, 베드로는 “안 됩니다. 죽으면 안 됩니다.” 하니까, 뭐라 그래요?
“에이, 이놈아!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구나.” 큰 꾸중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이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고, 어떤 사람들로 세워져야 하는지, 어떤 곳에 교회가 있어야 하는지, 예수님은 알려주신 겁니다.
바로 ‘때를 아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 사랑으로 세우고, 사랑을 채워 세워가는 곳이 바로 성내 교회여야 하고, 주님의 교회, 에클레시아라는 말씀입니다.
5.
저는 이런 시각으로 성경을 다시 살펴봤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다 들을 순 없는데, 몇 개 중요한 사건들을 설명하려 합니다.
(1)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후에 땅 위에 사람이 번성했습니다. (창 6:1) 창세기 6장 5~6절을 보면, 이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했던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인 것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었음을 한탄하시고 근심하셨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라.” 여러분 이때는 어떤 때입니까?
하나님이 한탄하고 근심한 이때는 어떤 때일까요?
하나님 심판의 때가 꽉 차갑니다.
컵에 물을 가득 채워서 두면 표면 장력(表面張力)이 생깁니다.
표면 장력이 될 때까지는 둥그스름하게 있는데 담겨있는데, 임계치를 넘겨 완전히 찼을 때 톡 한 방울 더 넣으려고 건들면 어떻게 되나요?
쭈룩 하고 위에 있는 것이 다 흘러버려요.
바로 ‘때가 찼다’라는 것이 이런 현상이에요.
꽉 찼어요.
이제는 건들기만 하면 무너지는 거예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때 노아 한 사람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때를 알았어요.
그래서 구원의 방주를 높은 산 위에 만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때를 알았습니다.
여러분도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홍수 이후에 어떻게 됐는가?
새로운 인류는 어떻게 됐습니까?
창세기 11장을 보면 사람들이 바벨탑을 건설하면서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지면에서 흩어지지 않게 하자.”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흩어지지 않았나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지면에서 모두 흩어지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때를 잘못 읽은 거죠.
그런데 이때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참 성경이 묘해요.
창세기 11장이 끝나고 창세기 12장에서 우리가 잘 아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사람들이 자기를 높여 바벨탑을 쌓고 흩어질 수밖에 없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자신의 삶 한가운데 둔 거예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헤아려 순종하는, 하나님을 하나님 자리에 계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이삭을 달라고 할 때에도 “예, 여기 있습니다.” 번제물로 바친 것입니다.
조카하고 땅 싸움할 때도 그냥 선택권을 양보하였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벨탑 이후에, 그분의 구원 역사에 사용하신 거예요.
우리가 믿음으로 누구의 후손인지 아시나요?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우리는 다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하나님 자리에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건, 바벨탑을 쌓는 겁니다.
교회에 있는 이런 분들을 종종 보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에요.
(3) 유명한 사람 한 사람 더 들어보죠.
모세가 있어요.
모세가 등장했을 때가 어떤 때일까요?
우리는 모세가 출애굽을 인도한 아주 위대한 인물로 얘기합니다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출애굽을 이끈 인물이라고 하는 게 틀렸다는 얘기 아니에요.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뭐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 내려가서 애굽 바로 왕이 허락해 준 땅에서 살면서, 애굽이 주는 안식과, 애굽이 주는 배부름과, 애굽이 주는 평안과, 그리고 애굽의 종교로 조상부터 지켜왔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잊고 아웃시키게 했어요.
컴퓨터 지우개 콕콕 누르듯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거예요.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 왕만 나온 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속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조상의 하나님이 자꾸 소멸해 가고 있는 그때, 모세가 나타난 것입니다.
조상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될 때, 다시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을 되찾게 한 그 일이 출애굽의 사건이었고, 이 일을 이끌게 된 사람이 모세였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교회가 120년의 역사를 가졌는데, 이 역사가, 이 예배당이 그냥 어느 날 아침 ‘뻥’해서 생긴 겁니까?
목사님 계시고, 장로님들 계시고, 여러분들 성도들이 계시고, 또 그 위에 한 단계 넘은 조상들이 계시고, 그 위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하신 분들이 계시고, 이렇게 여러분들의 신앙이 쌓이고 쌓여서, 오늘의 성내 교회를 이루는 걸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과제를 여러분에게 주는 것입니다.
내가 이 교회 신앙의 역사를 이어가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4)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때를 안 사람들이었습니다.
호세아의 예언을 들어보세요.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노니라.”(호 11:1-2) 호세아의 한탄입니다.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그들이 먹여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마음이 교만하여 나를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사자 같고, 표범같이 그들을 찢으리라.”(호 13:5~8) 여러분, 호세아가 본 때는 어떤 겁니까?
풍족해지니까 하나님 잊어버리고, 자꾸 바알과 다른 신들을 섬기더라, 물질을 숭배하더라.
그래서 하나님이 섭섭하셔서 화를 낼만 해요.
화를 내시고 노하시면서 심판의 채찍을 들어서 그들을 휘몰아치면서 하시는 말씀이 다른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호 13:1) 호세아는 소리쳤습니다.
호세아만 그런 게 아닙니다. 아모스도 보세요.
아모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이 되었구나.”(암 5:7) “너희가 다듬은 돌로 좋은 집을 건축했으나, 거기에 거주하지 못하리라.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야.”(암 5:11) 이런 때는 어떤 때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목전에 도착했다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6) 사는 길, 심판을 피하는 길이 어떻게 됩니까?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여라.”(암 5:24)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공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심판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6.
오늘 본문, 사도바울의 말씀을 들어보세요.
사도바울은 이때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12) 이게 바울이 본 때예요.
바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했다고, 때를 알았습니다.
더 이상 주저주저하거나, 아직은 여유가 있겠지 가 아니라, 꽉 찼다고 믿었습니다.
건들면 터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1분 1초가 아깝고 귀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에서는 “세월을 아껴라. 때가 악하다.” 했고, 로마서 12장 1절에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라.” 그러면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라.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라 했습니다.
이 길을 갈라디아서 2:20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하며, 십자가의 도, 사랑을 품고 사는 신앙인이, Pax Christos,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 땅 위에 세워가는 ‘때’의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7.
제가 ‘때의 신앙인’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성내 교회에 1923년부터 1932년까지 담임 목회를 하신 저의 조부 강병주 목사님께서 ‘때를 알고, 때에 맞춘 목양자로 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일제’란 ‘때’가 어떤 시대입니까?
일왕(日王)을 ‘신’(神)이라고, 동방요배(東方遙拜), 동쪽을 향해 허리를 90도 굽혀 절하게 강요했습니다. 무력으로 나라를 늑탈(勒奪)하여 온갖 자원을 강탈(强奪)했습니다. 학도병으로, 정신대로, 노동자로 징벌(懲罰)했고, 말과 이름까지도 못쓰게 하면서, 창씨개명(創氏改名)하게 했습니다. 조선(朝鮮) 민족(民族)을 말살(抹殺)하려 했습니다. Pax Roman처럼 Pax Japen을 획책(劃策)했습니다.
이런 때, 강압된 분위기 속에서 “이 민족이 살길이 무엇이냐?” 살길을 찾아 목회하신 분이, 제 조부이십니다.
한글을 가르치고, 농사법을 개량하며 상록수 운동을 했습니다. 교회학교를 활성화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젊은이들을 위한 면려회(勉勵會)를 조직하여 교육했습니다.
풍기교회 출신인 저의 선배 여규식 목사님은 ‘영남 목사 문화재 제1호’가 강병주 목사님이라 하면서, 어머니 김순득(金順得, 1910년 12월~1991년 11월) 권사에게 한글을 가르쳐 문맹(文盲)을 깨우친 분이라 했습니다. 강병주 목사님은 붓과 먹을 늘 가지고 다니면서, 문맹률이 높아 서류를 작성하지 못하는 군민들을 도와 서류 작성을 해서 불이익당하지 않게 했습니다. 신분의 격차가 심했던 시절입니다. 영주군에는 천대받던 백정(白丁) 마을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들을 “형님, 누님”이라 부르며, 평등(平等)을 몸으로 본보였습니다. 1952년에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이 출간되고, 1956년과 1961년에는 한글통일맞춤법에 따라 수정되었는데, 1956년 첫 번 수정판의 감수 책임을 맡았지만, 출간을 보지 못하고 1955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은 1998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저는 개역성경을 사용할 때마다 늘 할아버지의 노고를 떠올립니다. 성내 교회의 한국인 첫 담임목사였던 강병주 목사님의 노고가 개역성경 안에 담긴 것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도 좋겠습니다.
여러분,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때를 알고, 그때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때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신앙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8.
오늘, 우리 시대의 ‘때를 안다’는 것은, ‘더’의 유혹을 뿌리치고 이기는 것이라 여깁니다.
‘더’ 가지고, ‘더’ 누리려, ‘더’ 커지고, ‘더’ 부흥하고, ‘더’ 성장하고, ‘더, 더, 더’에 빠지면,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더’ 가지려면 생산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CO₂가 많아집니다. CO₂가 많아지면, 지구 온난화를 가속 시킵니다. 네팔 히말라야 빙산을 녹게 하고, 남극, 북극의 빙하를 녹입니다. 거대한 대륙(大陸)만 한 얼음이 녹고 있습니다. 녹은 물이 해수면을 높이는데, 바닷가 도시들이 수십 년 내에 물에 잠긴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종말을 앞당기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더’입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감사하는 신앙. 우리가 이것을 가질 줄 알아야 해요.
유물론 사고가 교회를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유물론적 사고가 교회를 침투하여, 그것이 자리를 잡고 나면.
주님이 서야 할 자리가 없어집니다.
목양(牧羊)을 할 수 없어집니다.
왜?
목사님에게 우리 교회 성공해야죠, 부흥해야죠, 이것을 압력으로 넣으면, 100마리 양도 모자라, 200마리 양, 1,000마리 양도 부족하다고 여기게 되고, 여기 신경 쓰다 보면,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은 누가 찾고 돌봅니까?
이게 바로 유물론에 빠진 사고가, 우리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는,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한국교회를 만들었다는 걸 인식해야 합니다.
이렇게 숫자에 목을 매다 보면, 십자가 사랑은 소멸합니다.
이 교회 안에 십자가 사랑이 소멸해 없다면, 이것이 교회입니까?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수님은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셨고, 지금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입니다.
지금은, 바울의 말씀대로 잠에서 깰 때입니다.
이때를 아는 신앙이 오늘 헌신 예배를 지르는 제3 젊은 여신도들로부터 시작이 되고 120년의 역사를 가진 성내 교회가 이곳에서 깨어나면서, 100년 전에 단심(丹心)으로 목회하셨던 어른의 뜻들을 이어가는, 때를 알려주신 주님의 이름으로 이런 교회를 이루어 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기도하시죠.
먼저 믿음의 길을 걸으며 때를 알아.
십자가 사랑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또 우리에게 복음을 허락하셔서 그 길 얻는 길을 가르쳐 주신 주님을 감사하면서 이 신앙을 이어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목사 강석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