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시구(詩句)로 드리는 예배

검은 산 위로 펼쳐진 밤하늘과 은하수

1.

여행 중인 모녀와 함께 드리는 예배, 제목을 “시구(詩句)로 드리는 예배”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가을, 가을은 시심(詩心)이 유혹하는 계절입니다.

이 계절에 어울리는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의 편지 고린도 후서 2장 14절과 15절을 공동 번역으로 새겨 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언제나 끼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우리로 하여금 어디에서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나는 개역 성경과 비교해 보면서, 공동 번역은 훨씬 시적(詩的)이라 봅니다.

나는 사도 바울의 이 말씀에서 ‘시인(詩人)의 향기(香氣)’를 맡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로 하나님께 바쳐지는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번역에 따라 뜻 말의 맛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을, 말씀을 준비하면서 다시 새롭게 깨닫게 되었고, 더 정성을 다해서 말씀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개역 성경과 비교해 보면,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한 후에,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는데, 공동 번역은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언제나 끼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풍기는”으로 번역했습니다.

그 향기를 ‘지식의 향기’라 표현해서, ‘냄새를 풍긴다’라는 표현이 좀 어떻게 보면, 약간 부정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지식의 향기를 풍기는’으로 번역함으로 훨씬 더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라고 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이라 하여, 우리의 믿음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훨씬 더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한 문장 한 단어에 생명을 담습니다.

내가 아는 한양대학교 문과대학 일본어과 교수였던 고(故) 유정 교수는, ‘시(詩)는 치열(熾烈)’이라고 한 단어로 설명하면서, “자신의 시를 외우지 못하는 시인을 시인이라 할 수 있느냐?” 라고 되물었습니다.

아름다운 글 한 문장은 나비 효과를 일으키는 날갯짓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에서 이와 같은 시인의 향기를 느끼면서 이 가을에, 여러 시인(詩人)의 시구(詩句)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2.

고진하 시인(詩人)은 “반딧불이는 폭풍에도 빛을 잃지 않는다.

빛의 근원이 자기 안에 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시인의 깨달음으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폭풍이 휘몰아치는 어둡고 험한 세상이라도 참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살아 세상에 꺼지지 않는 빛의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말과 생각 속에 얼마나 많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들이 채워져 있는지, 우리의 마음과 머릿속에 채워져서 몸 밖으로 내어 뿜은 말들이 소리 되어 사라지지 않고 모두 남아 있다고 한다면, 이 세상이 어떨 것 같습니까?

한번, 스웨덴의 사미족 어린 손녀와 할머니가 대화한 내용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스톨렌’(Stolen, 도둑맞은)이라고 하는 제목인데.

알래스카 에스키모

미국의 인디언과 같은

스웨덴 사미족,

소냐와 할머니 대화. 어린 순록이

살해되었다.

어린 순록을 선물로 받았던, 소녀는

북극광, 오로라에게 빈다.

“오로라야, 이마에 도끼 박아.”

할머니가

“북극광을 속상하게 하면 안 돼.

저 위에서 깜박이는 건

죽은 이들의 영혼이야.”

“나의 어린 순록도, 그 속에 있을까요?”

“지구에 살았던 모든 것들은

북극광과 함께 걷는단다.

가 버렸나 슬퍼하지 말고, 여기서

너와 함께 했던 것을, 기뻐하렴.” 소냐와 할머니의 대화 속에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 할지, 그 길이 나타나 있다고 봅니다.

3.

박소란이라는 시인(詩人)은 “심야극장”이라고 하는 시집(詩集)을 냈는데 여기에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시구(詩句) 한 구절을 남겼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누군가의 안부를 조심스럽게 떠올리는 작은 마음 하나가, 그 사람 주위에 엉켜있던 외로움의 고리를 끊는 첫걸음이 될지 모릅니다.

당신이 건네는 따사한 짧은 한마디가 외로워하는 그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박소란 시인(詩人)의 이 시구(詩句)에서 목양(牧羊)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안도현 시인(詩人)이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를 썼습니다.

이 시는 우리가 세상의 불의와 악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는데, 이러한 마음에 몽둥이가 되는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것이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구(詩句)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이어서 “연탄 한 장”이라고 하는 시에서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고, 이렇게 썼습니다.

연탄은 지금 MZ세대는 전혀 알 수 없는 불로 사용했던 것인데, 옛날 어른들은 연탄, 다 알고 있습니다. 19공탄이죠.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집니다.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을 퍼먹으면서도, 연탄불이 자기 몸을 붉게 타오르면서 주는 그것으로, 밥과 따스한 국물이 나온다는 걸 잊고 삽니다.

결국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가 되는데, 이 재가 어떻게 사용되는가?

겨울 언덕길을 오르는 길 위에, 조선 팔도 거리에, 자기 자신을 산산이 으깨어, 눈 내려 미끄러워진 그 길, 마음 놓고 걸을 수 있게 한, 이 연탄을 ‘함부로 차지 말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도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안도현은 이렇게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연탄 한 장만큼이라도, 나 아닌 그 누구에게 내 몸을 불태워 본 적이 있었는가?

참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4.

이 가을에, 우리 자신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장석주 시인(詩人)은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썼어요.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대추나무에 열린 한 알의 대추를 보면서 온 세월의 수고가 다 담겨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홍순관 시인(詩人)은 “쌀 한 톨의 무게”라는 시를 썼는데, 이 역시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쌀 한 톨의 무게가 얼마나 될까?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

버려진 쌀 한 톨, 우주의 무게를 쌀 한 톨의 무게로 재어본다.

세상의 노래가 그 안에 울리네.

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

이 쌀 한 톨의 무게는 0.029g이라고 합니다.

이 쌀 한 톨에 우주가 담기고, 대추나무에 열린 대추 한 알도 이런 정도인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받은 우리, 매년 맞이한 생일의 연수만큼 채워진 사랑 덩어리인 우리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의 삶이 어떤 삶이 되어야 할까?

이 가을에 우리 자신에게 묻습니다.

5.

“당신은 어떤 ‘나’이고 싶습니까?” 서주관이란 시인(詩人)은 “너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샘물처럼 맑아진다.” 시집(詩集)을 내었어요.

이 시집에 담긴 “고통의 밤하늘에 뜨는 별”이라고 하는 시입니다.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다 황폐한 가슴을 드러내는 게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받은 위로의 큰 빛을

한 가슴 가득 채워

고통의 밤하늘에

별로 떠오른다.” 나는 이분의 시를 읽으면서 “너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샘물처럼 맑아진다.” 시집 제목에 참 “부럽다”라는 생각이고, 이런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했습니다.

정신이 맑아집니다.

마태복음 5장 7절을 보면, “예수님의 심장(心腸)”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말씀이 있어요.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는 마음.

괴로워하는 이의 괴로움을

나의 것 삼는 마음.” 이것이 예수의 심장(心腸, 마음의 속내)이요 “긍휼(矜恤)히 여기는 사람이 복이 있다.” 팔복 중 하나입니다.

얼굴과 붉은 꽃을 그린 김병종 화백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 붉은 꽃을 그린 김병종 화백의 작품 세 점이 전시된 미술관

서울대에서 정년 퇴임하는 화가 김병종 씨가 2024년 3월 16일에 ‘희망 편지’를 신문에 기고했는데, 제목이 “꽃피니 상처가 아물었다.” 였습니다. 화가는 1989년에 학교 앞에 고시촌 방 하나를 빌려 지내면서, 서울대 대학사를 집필하다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무채색 병원에 갇혀 치료받게 됩니다.

몇 번 수술하고, 회복실 왔다 갔다 했는데, 이 무채색(無彩色) 병원에 갇혀 있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서, 유채색(有彩色)의 세계인, 생명의 환희가 가득한 어머니의 뜰로 가자고, 고향집을 찾게 됩니다.

고향집 대문을 들어서니 어머니는 변함없이 낡은 앉은뱅이 탁자 위, 낡은 성경책을 펴 들고 앉아 계셨습니다.

김병종 교수는 어머니의 생명 정원에서 ‘색(色)이 사람을 치유(治癒)할 수 있음’을 체험합니다.

연탄가스 치료로 수술실 회복실을 오가며 얻은 상처(傷處)가 어머니의 정원에서 아물어 갔고, 그에게 새봄이 열렸습니다.

그는 은퇴하면서 “꽃피니 상처가 아물었다”라는 ‘희망 편지’를 썼는데,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화가가 시를 썼다.

화가가 시를 그렸다.

화가가 신학을 논했다.

화가가 피꽃을 그렸다.

십자가 피의 신앙을 말했다.

꽃피우며 상처를 치유했다.

꽃피니 상처가 아물었다.

시구(詩句)를

난 이렇게 들었다.” 라고 썼습니다.

6.

이 가을에, 미술관을 찾아보고 음악회를 관람하고 고궁(古宮)을 거닐며 옛 향기에 취해보고, 일본 삿포로를 여행하며 이 길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걸음 곁에 끼어 걸으며 누군가의 자그마한 마음 한 조각에 사랑을 담는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기도하시죠.

이 가을에, 저희의 생명이 되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가슴에 담고 가득 담긴 사랑을 나누는 저희 되게 하옵소서.

지금은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아낌없이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늘 우리와 함께하시며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감동, 감화, 위로하시는 은총이,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인류 머리 위에 와, 우리의 가족들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목사 강석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