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
- 등록일
- 2026년 9월 7일
- 설교일
- 2026년 9월 6일
1.
⟪우리 내매교회의 초대 성도이고, 이 사립기독내명학교의 교장이기도 하고, 풍기성내교회 담임을 하셨던 목사님이기도 하고, 독립운동가, 한글 운동가, 농촌 운동가이신 강병주 목사님의 손자 되시는 강석찬 목사님께서, 이제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언해 주시겠습니다.⟫
120년 전에 주님의 교회를 이곳에 세우셔서 하나님께 영광되게 하신 주님의 평화가, 오늘 임직받으시는 분, 은퇴하시는 분,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 위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세 곳, 세 때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들러보려고 하는 때는, 1906년, 120년 전 봄입니다. 나장골 내매 마을에 내매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모두 아시겠습니다만, 120년 전으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미국 선교사 배위량 목사님이 대구 약령시에서 작은 책을 나누면서, “예수 믿으십시오, 구원받으십시오” 하고 소리쳤습니다. 때마침 대구에 갔던 강재원 장로께서, 물론 그때는 청년이었죠. 나중에 장로가 되었죠, 서양 사람 배위량 목사님께서 나누시는 작은 책을 받아 들고, 집에 돌아와서 탐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 믿음을 가지기로 결단합니다.
혼자만 믿으려고 한 게 아니고, 50여 가구의 강 씨들이 모여 집성촌을 이뤘는데, 친척들에게 “예수 믿자. 하나님 믿자. 구원받자. 성경 말씀 읽어보니 정말 기쁜 소식이더라.” 이렇게 주변에 있는 친척들에게 예수를 전했는데, 그 전하는 얘기를 들은 분 중에 한 분이 강병주였습니다.
이때는 전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할아버지께서 출가(出家)하겠다고 해인사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길 위에서 강도질을 많이 하는 의병들을 만났습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참에 “살려만 주신다면 하나님 믿겠습니다.” 이렇게 서원(誓願)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살아났어요.
집에 돌아와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상투를 자르고, 종손(宗孫)이었는데 제사에 대한 모든 권리를 동생에게 다 넘겨주고, 강재원이 장로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1906년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내매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이죠.
120년이 지나, 2026년, 강병주 목사님의 손자인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을 증언하게 된 것이야말로, “여호와 이래에 은혜였구나”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2.
오늘 여러분과 함께 두 번째 시간여행을 하려고 하는 곳은, 주후 30년경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2,000년 전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어디에서 우리가 누구를 만나야 할까?
빌립보 가이사라 라 하는 도시 입구에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를 만나보는 겁니다. 그 내용이 오늘 마태복음 16장의 내용입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내용이죠.
바로 빌립보 가이사라 이곳을 향하는 길, 마가복음에서는 길에서(막 8:27)라고 했고,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눅 9:18)라고 전혀 다른 얘기로 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이 장면 어디라고 얘기를 하진 않았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리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질문하십니다.
누가 대답했죠? 베드로죠.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아, 네가 복되구나” 하시더니, “너는 베드로”라 하시면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 에클레시아를 세울 텐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마 16:18)이라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모두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우리들의 신앙 고백으로 고백하는 줄 믿습니다. 내매교회도 120년 전에 이 고백, 이 믿음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아마 2000년 동안 이 땅 위에 세워지는 온 세상의 모든 교회도, 베드로의 신앙 고백으로 교회를 세웠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라 지방에 이르러’(마 16:13)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길 위에서’(낙 8:27)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가이사라 어디에서 이 질문을 하신 것일까요?
궁금해요. 주석서를 봐도 그곳이 어딘지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넷플릭스라고 하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소개하는 사이트에서, ‘더 초즌’(The Chosen, 부름받은 자)이라고 하는 시리즈물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굉장히 의미 있는 시리즈였는데, 여기에서 베드로가 “주님은 그리스도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그 장소를 알려주는데, 빌립보 가이사라로 들어가는 그 길, 그 길에 무엇이 있었느냐 하면, 가이사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흉상이 있고, 그곳에 가이사, 로마의 황제를 신(神)으로 높이는 제물을 드리는 제단이 있는 그 자리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로 아느냐?” 질문하신 겁니다.
이게 The Chosen이라고 하는, 거기에 나타나 있어요. 무릎을 쳤습니다. 그랬구나.
이 질문 속에 담겨있는 내용을 한번 생각해 보시면, “내가 누구냐?” 예수께서 물으셨는데,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주님은 그리스도십니다.” 이렇게 답하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그리스도십니다.”라는 이 말은 어디에서 하였습니까? 황제를 신이라고, 메시아라고 섬기는 로마의 제단이 있는 그 앞에서, 했습니다.
메시아(그리스도)는 황제가 아닙니다. 주님이 메시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구주십니다. 이 고백을 한 겁니다.
황제라고 하는 존재는 어떤 존재입니까? 유물사관(唯物史觀)에 붙잡혀서 힘으로, 무력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빼앗고, 수탈하고, 그래서 자기의 배를 채우면서, 이 칼에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Pax Roman, 로마의 평화를 준다, 로마의 평화 안에 있을 때, 너희는 구원받은 것이다. 이렇게 허위 평화를 얘기하는 황제였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저건 가짜야. 가짜 평화야. 진짜 평화는 Pax Christos, 그리스도의 평화가 진짜야.” 이 말씀을 하신 거예요.
저는 베드로가 이 신앙 고백을 하는 걸 듣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 내 교회”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에클레시아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했는데, 음부의 권세는 뭐였겠습니까? 모든 적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로마의 권세도 또한 포함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 교회를 세운다.” 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사용하신 단어, 에클레시아(ἐξῆλθεν), 이 ‘에클레시아’야말로 로마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혁명적인 선포였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그 길 입구에 자기의 흉상을 세워놓고 나에게 절하고 경배하라고 하는, 이러한 로마 황제의 명령을 거부한 고백이 “주님이 그리스도이십니다” 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만 경배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이사, 그리고 우리 사도신경에 나오는 본디오 빌라도가,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는지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선언은 로마에게는 굉장히 껄끄럽고 불편한 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 우리가 주후 30년을 보면, 거기에 또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문명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히브리인들이 만든 유대교의 문명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인 유대교의 중심이 어디입니까? 예루살렘 성전이었죠. 모든 유대인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살아가고 믿음 생활을 영유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뭐라고 하십니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성전을 숙청하는 일부터 시작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표적(요 2:111)을 보이신 다음의 사건이, 예루살렘 성전을 숙청하신 일(요 2:1322)입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가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구나.”(마 21:13) 썩은 부위를 깨끗이 청소하시면서 하신 말씀이에요.
여기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마 21:13)을, 마가복음 11장 17절에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만인(萬人)이 기도하니까 만 명(萬名)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뜻은 아니죠. 1만 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세상 모든 사람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열려있어야 하고, 언제나 하나님을 만나 기도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하는데,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계급이 있고, 드리는 재물에도 차이가 있어서 빈부의 차이가 조장(條章)되고, 평등(平等)하지가 않은 거예요. 제사장 계급이 있고, 바리새파 계급이 있고, 사두개파가 있고, 위계질서(位階秩序)의 구조가 예루살렘 성전을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오늘 직분을 받으면서, 직분을 계급의 하나로 생각한다면, 빨리 버리시길 바랍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백성을 섬기는 곳이었습니까? 백성을 지배하는 곳이었습니까? 예수님 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은 지탄받아야 할 만큼 지배의 계급에 속했습니다.
여러분 한자에서 ‘평등(平等)하다’ 할 때의 ‘등(等)’ 자를 잘 보시면, 위에 풀 초(艸)가 있고 아래에 절 ‘사(寺)’자가 있습니다. ‘절(寺)’ 자를 썼다고, 뭐라고 하지 마세요. 중국에서 ‘절 사(寺)’자는 ‘종교’(宗敎)를 의미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종교 위에 풀 초(艸)가 있어요. 풀 초(草)는 ‘백성(百姓)’이요. ‘민(民)’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寺)자 위에 풀 초(艸)가 있다는 얘기는, “종교의 역할은 섬김. 백성을 섬기는, 민초(民草)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종교다”라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 한자에 의해서 우리 기독교의 교회는 어때야 하겠습니까? 교회도 누구를 섬겨야 하겠어요? 하나님의 백성을 섬겨야죠.
예루살렘 성전은 강도의 소굴이 되었어요. 빼앗는 곳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평등(平等)해야지 평화(平和)로워지고, 사람들이 평안(平安)을 누리는 법입니다. 그런데 평등(平等)하지 못하니 마음이 불편하고, 평안(平安)하지 못하고, 평화(平和)롭지 못한 거예요.
종교가 사(寺)자가 위로 올라가고, 백성이 밑으로 깔리게 되면, 바로 이것이 강도의 소굴 현상이 되고 마는 것, 이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시면서, 이와 같은 예루살렘 성전은 허물어져야 한다. “허물어라! 내가 3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요 2:19)라고 했는데, “다시 세우겠다”는 그곳이 바로 ‘에클레시아’였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하시고 들은 대답은, 예루살렘 성전을 뒤집어버리는 하나의 선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내용인데, 베드로가 신앙 고백을 한 걸 듣고 예수님께서 다음에 하신 말씀이 뭔지 아십니까?
“얘들아, 내가 이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고난받고 죽임을 당하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할 거다.”
이 말씀은, 에클레시아를 어떻게 세워야 하느냐를 알려주신 말씀이에요. 주님의 교회는 십자가를 통해서 세워줘야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우리가 교회당 건물 맨 위에 두며, 십자가 아래의 교회임을 알립니다.
이것을 또 다른 말로 하면 ‘십자가와 사랑은 동의어’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으로 세워지는 공동체,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십자가 죽음을 말하니까, 베드로가 “아니요. 아니요. 죽으시면 안 됩니다.” 하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구나”라고 꾸중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대화하는 그 장면을 보신 여러분들이 판단해 보시길 바랍니다.
3.
세 번째 만날 분은, 주후 60년경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입니다. 바울이 갇힌 그 감옥을 찾아갑니다. 바울이 뭘 열심히 썼어요. 에베소서, 옥중서신입니다.
이 옥중서신 말씀의 내용은, 사도바울이 “주님의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하고 부탁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한 말씀을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다. 모퉁이 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되고 연합하여 세워야 한다.” 하면서 사도들의 전승 위에 너희들이 주님의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말씀을 한 것입니다.
이 ‘사도들의 터’, 한마디로 무엇을 의미한 것인가? ‘순교 신앙’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회의 2000년 역사, 내매 교회 안에도 순교자의 피가 담겨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 시대, ‘교회 소멸 시대’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런 때에 소멸하지 않고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있게 하는 그것이 무엇일까요?
십자가 아래 교회로서 정체성을 이어가는 것, 사도들의 전승, 사도들의 터, 사도들의 신앙, 그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여기에, 그와 같은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사도바울은 에클레시아는 주님이 모퉁잇돌 되시어 그 위에 세워졌으니, 주님과 연결되고 주님과 연합되는 교회, 이것이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지는 교회다 했습니다.
이 말은 교회가 벽돌 하나,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으로 세워진다고 할 때, 이 신앙의 벽돌 이것이 순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사랑이시니, 우리도 사랑으로,
주님이 겸손하시니, 우리도 겸손의 벽돌로,
주님께서 정의로우시니, 우리도 정의로서,
주님께서 생명 살림의 삶을 사셨으니, 생명 살림의 벽돌,
예수님과 동질의 것으로 벽돌을 쌓아 올라갈 때, 이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요,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요, 땅끝까지 증거되는 복음의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만에 하나 우리가 예수님의 것이 아닌 것을 벽돌로 삼아서 욕심을 부리거나, 불화를 만들거나, 미워하거나, 질투하거나, 시기하거나, 부정하거나, 거짓을 하거나, 이런 벽돌을 넣는다면, 그 교회는 사탄 시험의 바람이 숭숭 들어와서 소멸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임직받으시는 분들, 본인들이 벽돌 하나로서 소중한 직분을 맡았다는 것을 기억하시면서, 주님과 유기체적인 몸인 교회를 바르게 세워감으로 칭찬 듣는 직분 맡은 자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내매교회 역사를 잘 이어, 이루어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기도하시죠.
120년 전에 주님의 교회, 내매교회를 세워주시고, 지금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주님이 함께하시며,
순교 신앙으로,
사도들의 터 위에 그리스도와 연합된 교회를 이루어가려고 하는 이 교회가
복되고 복되도록 축복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날,
나는 아버지의 유품, 할아버지께서 사립기독내명학교장(私立基督內明學校長)으로 발급한 선친 강신정의 수업증서(修業證書)와 정근상장(精勤賞狀)을 기증하였다. 두 증서는 할아버지께서 친필로 쓴 문서이며. 대정(大正) 12년 3월 20일에 발급되었다. 대정(大正) 12년은 1923년이고, 강신정 학생은 만 10세였다. 103년 전 문서이다.
목사 강석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