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능력
- 등록일
- 2026년 8월 31일
- 설교일
- 2026년 8월 30일
1.
티베트, 네팔에서 일어난 빙하 홍수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후들거렸습니다. 시속 170km로 몰려든 거대한 물, 흙, 돌덩이 홍수는, 무서운 기세로 도망치는 사람들과 마을을 덮쳐 파괴했습니다. 마치 거인이 개미집을 밟아 뭉개는데, 도망치는 개미 떼 같았습니다. 나는 이 장면에서 노아 홍수 심판을 떠올렸습니다. 티베트, 네팔의 빙하 홍수가 하나님의 심판이었을까요? 창세기 6:5-7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었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분노가 느껴집니다. 세상이 악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분노’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분노를 피한 한 가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어떻게? 은혜를 입었을까요?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창 6:9) 하나님의 분노를 피할 수 있는 사람, 노아는, 여호와의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노아는 우리 시대에 구원받는 사람이 되는 길을 알려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2.
빙하 홍수는 산업혁명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중세기 종교개혁,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문명의 후유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불과 600년밖에 안 되어, 하나뿐인 녹색별 지구촌에 ‘온난화’라는 괴물을 탄생시켰습니다. 사실 거대한 빙하가 떨어져 진도(震度) 5.4 수준의 지진과 같은 지진파가 된 것은 자연적 현상입니다. 노아 홍수 때의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빙하가 고여 빙하 호수가 자연적으로 형성된 둑을 무너뜨려 V자 계곡을 따라 쏟아져 내려, 계곡 주변에 터 잡은 마을을 덮친 현상은, 수백 년 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배출된 CO₂가 지구 온도를 높여, 빙하에 균열을 만들어 사고를 친 것입니다. 이미 남극과 북극, 남아메리카 고산 지대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자연 재해가 히말라야산맥에서도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의 에너지 사용으로 빚어진 빙하 홍수라 하니, 산 아래 제일세계 국가가 사용한 쓰레기가, 산 위 제삼 세계 나라를 통타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과연 제일세계 국가나 국민이, 자기 나라 반대편에서 벌어진 재난에 대해 ‘내 탓’이라고 여길까요? 소수뿐일 것입니다.
3.
다시 창세기 6:7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사람이 만든 세상이 악(惡)하여, 홍수로 다 멸하고 노아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다시 시작하게 하겠다고 했는데, 이 홍수 심판은 ‘하나님의 분노’가 아닐까? 질문하면서, 떠오른 영화가 있었습니다. 30여 년 전, 1995년에 제작된 ‘세븐(seven)’이라는 영화입니다. 은퇴를 일주일 앞둔 나이든 형사와 그의 뒤를 이을 젊은 형사, 두 사람이 연쇄살인범 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입니다. 사건은 밀턴의 ‘실낙원’에 나오는 문구 “지옥에서 벗어나 빛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와, 단테의 ‘신곡’에 나타나는 7가지 죄악인 탐식(貪食), 탐욕(貪慾), 욕정(慾情), 나태(懶怠), 교만(驕慢), 시기(猜忌), 분노(忿怒)를 주제로 일어나는 살인사건인데, 젊은 형사는 임신한 아내를 살해한 자수한 신문기자인 범인을 분노로 죽이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젊은 형사는 악(惡)한 세상을 선(善)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으나, 결국 마지막 죄악인 ‘분노’를 알면서도 참지 못하게 됩니다. Summer set이라는 도시가 무관심으로 범죄를 막지 못한다는 설정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가 떠오른 이유는, 임신한 아내를 죽인 살인범을 죽이지 않고 법의 재판에 맡겨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갈등하다가 ‘분노’의 방아쇠를 당긴 것과, 노아 홍수를 일으킨 ‘하나님의 분노’가 연결되면서, 빙하 홍수가 ‘하나님의 분노’의 경고성 재해라고 해석해야 하는가? 물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땅 위에 사람 지었음을 한탄하고 마음에 근심이 된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을 계획하여 실행했다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조금 색다른 해석과 물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4.
마가복음 1:1213은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40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시며, 천사들이 수종 들더라.” 기록했습니다. 마태와 누가는 마가복음을 참고하여 자세한 내용을 전합니다. 마태복음 4:111은 마가와는 다르게, 예수께서 광야로 가서 시험 받은 내용이 분명했습니다. 마태는 세 가지 시험받게 하려고, 광야로 이끌려 갔습니다. 마가는 ‘사탄’. 마태는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받으러”(마 4:1)가셨다고 했습니다. 3절에서는 ‘시험하는 자’ 5, 8절은 ‘마귀’, 10절에서는 예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그러자 “마귀는 예수를 떠났다”(11절) 했습니다. 누가복음 4:1~13은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복음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마귀와 대결한 셈인데. 우리는 그 결과가 궁금합니다. 이 대결에서 누가 이겼을까요? 예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하셨으니, 예수님이 이긴 것일까요? 그런데 세 복음서는 그냥 사탄은 얼마 동안 물러가, 예수님께 다시 덤벼들 준비를 하는 것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기고 지고’의 질문은,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본문이 말씀하는 내용과 관계가 없지만, 나는 무승부였다고 판단해 봅니다.
5.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 적대자’, ‘하나님 뜻 훼방자’와의 대결, 첫 라운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에덴동산에서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과 뱀의 첫 라운드, 승자는 어느 쪽일까요? 자,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켜졌나요? 깨졌죠. 그렇다면 뱀의 도전이 성공한 셈입니다. 뱀이 자기의 목적을 이룬 것입니다. 도저히 체급이 다른데, 뱀이 이길 수 없는 도전이었는데, 뱀은 성공했습니다. 어떻게? 뱀은 ‘하나님의 약점’을 파고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점? 하나님께 흠이 있다는 뜻일까요? 하나님의 완전성을 부정하는 행위라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께 흠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시각, 관점의 차이인데, 하나님께 약점이 있었습니다. 유일한 약점이라 할 수 있는데,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을 믿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 마음으로 믿은 것인데, 이것이 하나님의 약점으로 작용했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창조 세계를 사람이 잘 다스리고, 관리를 잘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소위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창고 열쇠 맡김과 같았습니다. 단 한 가지 금지의 말씀만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사람이 뱀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이것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예정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바르게 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사람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믿었던 것입니다. 믿어주는 것, 하나님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놓친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점이라 하겠는데, 치명적인 유혹이요 시험이었던 뱀의 미끼 “하나님같이 된다. 죽지 않는다” 여기에 사람은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간과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이 결과로 첫 라운드의 결과를 판단한다면, 물론 승자 찾기 기록은 아니지만, 뱀의 승리였다고 판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 질서가 파괴되었고, 하나님의 수정이 불가피했습니다. 노아 홍수도 단테의 ‘신곡’에 나타난 7가지 죄악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분노’한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지 못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라운드에는 예수께서 등장합니다. 선수가 바뀐 셈이긴 하지만, 예수님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요 10:30)라 했고,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가 나이다”(요 8:54) 하셨으니, 화육(化肉) 하신 하나님과의 두 번째 대결은 앞에서 살핀 대로 판단하면, “사탄아, 물러가라” 소리친 것이지만, 이긴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무승부? 또는 승패 불분명 판정, 판정 유보가 되겠습니다.
6.
나는 세 번째 라운드를 중요하게 봅니다. 우리와 직접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틸리케 목사님의 책 ‘신과 악마 사이’에서, 예수님 유혹에 실패한 사탄은, “제자와 교회에게, 유혹을 성공할 때까지 시험하겠다.” 라고 했답니다. 베드로전서 5:8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라고 했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가, 사탄과의 대결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이미 아담은 약점을 노출한 바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을까요? 이론적으로는 ‘예수님 믿으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사람도 교회도 실패하고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상이 어떤지, 선과 악의 대결을 판단한다면, 선의 영역은 악이 지배하고 있는 영역보다 훨씬 좁다고 하겠습니다. ‘선<악’의 세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정권을 쥔 대통령으로 평해 봅니다. 대통령은 개인이 아닙니다. 집단의 우두머리이죠. 나는 두 장의 사진으로 오늘의 세상을 평해 봅니다.
하나는, 2026년 6월 14일 사진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80회 생일잔치에, 백악관 마당에 UFC 이종격투기 경기장을 만들어, 피투성이의 경기를 관람하는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철망에 갇힌 트럼프, 자기가 만든 철망 속에 자신을 가둔 것으로 보였습니다. UFC 이종격투기는 로마 시대 대형 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이 목숨 걸고 결투하는 장면이 연상되었습니다. 황제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아래를 향할 때, 환호하며 황제를 찬양하는 죽임의 경기장이 떠오른 사진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망 경기장을 만들어 놓고 세계인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는 놀이를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고 여겼습니다.
다른 하나는, 2026년 6월 18일, 시카고에서 ‘오바마 대통령 센터’가 개소식을 했습니다. 초대받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은 AI를 이용하여 ‘건물 위에 검정 쓰레기 봉지를 올린 쓰레기통’을 난민촌에 세운 사진을 올리고는 “10년 뒤 오바마 도서관은 미국을 증오하는 사람들의 성지가 될 것”이라고 모욕하고 조롱하는 행위를 보인 사진입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견제와 균형, 사법부의 독립, 자유언론, 공정한 선거 등을 민주주의를 떠받드는 공통된 가치”를 언급하며, 미국의 가치를 지키려 노력하자고 했습니다. 미국 건국 때부터 지켜온 미국의 소중한 가치를 “내가 대통령이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 식으로 더럽히고 있는데, 이런 행위를 ‘선(善)’하다 할 수 있을까요? 전쟁을 일으켜 젊은 생명을 땅에 묻고, 다른 나라의 땅을 일방적으로 미국 것이라고 선포하며 떼쓰는 말이 ‘선(善)’일 수 있나요? 나는 ‘오멘’ 영화에서, 666싸인(sign)을 머리에 가진 아이가 성장하여, 미국 대통령이 되어 세계정치를 좌지우지하는 내용을 떠올리며, “아하! 오늘의 세계는 악(惡)이 득세한 세상이로구나”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판단의 근거는, 하나님의 뜻이 평화(平和)인데, 전쟁을 만들면 하나님의 뜻 거스름이죠. 사탄의 지배를 받음입니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는 지도자들은 사탄의 도구가 된 자입니다. 분쟁을 만들고 분란을 획책하며 국민을 분열하는 정치지도자들도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탄의 도구라 하겠습니다.
세상은 지금 사탄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온통 거짓말이 가득합니다. 허위가 진실을 덮었습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핑계를 낳습니다. 거짓말은 속임을 낳고, 허위를 낳습니다. 거짓말은 양심을 속이고, 불신을 낳습니다. 거짓말은 진실과 진리를 훼손하고, 책임 전가를 낳습니다. 거짓말은 징벌을 가져오고, 추방을 낳습니다. 어둠을 불러오고, 죄악을 낳아 감춥니다.
거짓말은 관계를 깨뜨리고, 불화를 낳고, 모함을 만들며 파괴를 낳습니다. 거짓말은 신뢰를 부숴 싸움을 낳고, 싸움이 장성하여 전쟁을 낳고, 전쟁은 확대되고 확산하여 종말을 가져옵니다. 거짓말은 죽음을 낳고, 영혼을 파멸시켜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온 산을 불태우듯, 작고 작은 거짓말 하나가 온 세계의 평안과 평화를 소멸시킵니다. 이것을 사람이 모를까요? 알면서도 양심을 속이고, 죄의 사슬에 묶여 자유를 잃은 인간. 아, 슬프다. 오호라, 참으로 불행한 존재로구나 어떻게 우리는 악의 거짓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7.
우리가 사탄과 대결하면, 100전 100패입니다. 사람은 사탄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한 개의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을 대하게 하면 됩니다. 성령께서 마귀를 대적하게 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5:4이 제시한 답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5:7~8절을 KJV(King James Version)으로 봅시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악(惡), 사탄을 대하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마지막 라운드인 요한계시록대로 처음 것이 다 지나가고, 눈물, 사망, 애통, 곡함, 아픔이 다시 있지 않는 ‘새 하늘 새 땅’이, 이 땅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미혹하는 마귀는,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는 둘째 사망(계 20:14)의 심판을 받고, 진정한 평화(平和)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믿음이 소중한 오늘입니다. 요한 공동체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이라 하면서, 예수를 그리스도임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예수를 사랑한다 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세상, 악과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라 했습니다.
이것을 증언하는 분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아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 안에도 아들의 생명이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생명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