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당신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콘크리트 벽의 작은 예배당 안쪽과 십자가

1.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세 번의 편지를 썼습니다.

성경의 고린도전서는 두 번째 편지이고, 고린도후서는 세 번째 편지입니다.

고린도전서에는 전체적으로 고린도 교회 교인이 잘못 믿고 있는 것을 회개(悔改)하기를 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편지 고린도전서를 받은 후, 그들은 잘못된 신앙생활을 회개했습니다. 이 사실이 고린도후서 7:16, 7:9에 나타나 있는데,“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회개한 것을 보고, 신뢰하게 되었다고 기뻐했습니다. 그것도 ‘범사에’입니다. 또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라고 했습니다.

교인들이 뉘우치고(悔), 돌아섰다(改) 했습니다. ‘고쳤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의 바람직한 모습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교회 안에 불완전한 부분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13에 기록된 대로 교회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 자칭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교회를 혼란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에 교인들이 미혹에 넘어가서 교회가 어지러워졌다는 말씀입니다.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고후 11:14-15)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얼마나 많은 시험에 빠져 들었는지 알려줍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거짓 교훈에 미혹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하여, 고린도후서를 집필했고, 직접 교회를 찾아갈 계획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고린도후서의 내용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넘어지게 하려는 사탄으로부터, 주님의 교회를 바르게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준 것이 고린도후서입니다. 이미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 교회로 주님의 교회 되게 하는 길로 ‘가장 좋은 은사인, 사랑’을 말했고(고전 13장), 또 교회를 자라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라 고백하며 바울파니, 게바파, 아볼로파니 하는 것을 없애라 하였습니다. 교인의 성화(聖化)를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사람의 모임’이 되지 않도록 경계했습니다.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되지 않도록, 성만찬을 빙자하여 술 취하지 않도록, 옷차림이나 장식품을 화려하게 장식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소외감을 갖지 않도록 배려하는 삶, 성화(聖化), 거룩한 구별된 삶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하면서, 복음 전파에 걸림돌이 되는 어떤 것도 희생하길 강조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전파한 후 버림받을까 두려워 함”(고전 9:27)이라 하며, 자기의 자랑스러운 모두가 배설물(빌 3:8)이고, 오직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됨(빌 1:20)이 신앙의 목적이라 하면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 10:31)라 했습니다.

2.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간절한 권고의 편지를 받고 회개하여, ‘사랑’으로 교회와 성도 관계를 채웠습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의 내용으로 보면, 거짓 사도들이 교회를 혼란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린도후서 13:5은,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예수님을 믿는다, 예수님을 따른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무섭고도 중요한 리트머스 말씀입니다.

“믿음 안에 있는가? 점검하라.”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고 판단하게 할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계시는가?” 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들어보면 “예수가 안에 있는지, 없는지”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안에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을 여러 가지로 판단하는데,바울은 고린도후서 2:14~16에서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를 풍기나 보고, 어떤 사람을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다.” 라 했습니다.

판단해 봅시다.

당신이 예수님을 자신 안에 모시고 산다면, 당신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야 합니다. 당신에게는 어떤 냄새가 나는가? 죽임의 냄새일까요? 살림의 냄새, 향기일까요? 예수님이 당신 안에 살아계신다면, 당연히 살림의 향기를 풍겨야 합니다.

또, 고린도후서 5:9~10에서는 “몸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라.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선악 간에 몸으로 행한 짓을 따라 받는다” 하며, “화목하게 하라(고후 5:19), 화목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이라 했습니다.

입술로만, 생각으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일을 행할 때, 심판대 앞에서 선한 판결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불화를 만들고, 자기 자랑으로 자기를 높이려 하는지.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성도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게 하는지(고후 11:3), 잘 살피라 한 것입니다.

3.

이런 상태의 교회가 평안할 리 없고, 이런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 행복할 리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하며, 수십 년의 교회 생활을 했고, 교회 직분을 받아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시지 않으면” 한 마디로 ‘꽝’입니다.

이런 뜻에서, 갈라디아서 2:20의 사도 바울의 고백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고백의 말씀은,2,000년 동안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변함없는 거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통하여 성직자, 교회의 직분을 맡은 이들, 교회를 이루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모든 이들이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지, 당신을 위해 생명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고 있는지, 잘 살펴보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4.

천진무구(天眞無垢)한 시인 천상병(1930–1993)을 떠올렸습니다.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으로 6개월 옥고를 치르며, 3번의 전기 고문 후유증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된 시인, 윤이상 작곡가, 이응로 화백 등 194명과 ‘대남 적화 공작’을 벌였다고 처벌받았으나, 결국 무혐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평생 고난의 흔적을 몸에 지니고 살았던 시인, 그가 떠오른 이유는 그의 시가 던지는 구원의 메시지가, 오늘의 한국교회와 성직자들에게 주는 뜻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비오스(bios) 삶을 추구했답니다. 비오스(bios)는 곧 생명, 목숨으로 가치 있는 삶을 뜻하는데, 나는 이 비오스 삶이 그리스도인의,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상병 시인이 비오스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시 “나의 가난은?” 을 묵상해 봅니다.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툼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의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볕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볕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물질적 풍요에 비해, 정신적 빈곤을 겪는 현실에서, 자발적 가난을 통해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는 본보기를 보여준 시인, 무소유였지만 가난과 불행에 주눅 들지 않고 늠름했던 시인,“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고 ‘귀천’(歸天)에서 말한 시인의 ‘행복(幸福)’ 시를 들어봅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이런 신앙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특히 성직자들이 이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5.

중국인 14억 명이 사용하는 중국어를 1960년대 말까지 간체(簡體) 한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랑 애(愛)’자를 ‘마음 심(心)’이 빠진 ‘애(爱)’로 만들었습니다. ‘사랑 애(愛)’인데, ‘마음을 뺀 사랑(爱)’이 있을 수 있느냐? 이의를 제기하며 시빗거리로 등장했지만, 사람의 마음 작용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유물론(唯物論)의 공산당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마음(心)’을 없앤 글자가 하나 더 있습니다. ‘부끄럽다’ ‘부끄러움’을 새김으로 쓰는 글자 ‘부끄러울 치(恥)’입니다. 역시 ‘마음’에 신경 쓰지 않는 공산당은 ‘부끄러울 치(恥)’ 자에 ‘마음 심(心)’을 제거하고 ‘그칠 지(止)’를 붙였습니다. ‘부끄럽다 치(耻)’입니다. 부끄러움에 마음을 뺏으니, 진정한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후안무치(厚顔無恥)요 인면수심(人面獸心)이 됩니다. 모든 중국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최근 중국인 여행객들의 비정상적인 행위 배경에 유물론(唯物論)의 공산당이 추구한 무심(無心)의 독소(毒素) 영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6.

‘마음(心)’이 없는 ‘사랑(爱)’은 ‘사랑(愛)’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것은, 마음(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 안에, 네 마음에, 네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네 마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가?” 라는 바울의 물음은,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 사도를 분별하라는 물음으로 제시한 질문입니다.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데,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가 묻는 물음에는우리의 모든 행위가 그리스도의 향기요, 우리의 모든 삶이 사랑으로 인도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는데,우리의 믿음이 이 사랑이 빠진 것은 아닌지 늘 살피고,사랑이 빠지지 않도록 힘쓰는 우리가 되게 도우소서.

지금 한국교회가 많이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를 이끌고 가는 성직자들 믿음에예수님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설 수 있도록 도우소서.

저희 가정을 항상 이끌어주시는 성령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가장 중요한 사랑이 메마르지 않도록, 충만하도록 채우시고 도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