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수님의 목회
- 등록일
- 2026년 8월 3일
- 설교일
- 2026년 8월 2일
찬송: 96장
1.
오늘은 본문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목회’를 주제로 삼아 말씀을 나눌까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진단하는 여러 소리를 들어보면, 쇠퇴해 가고 있다, 교회가 비어가고 있다, 교인의 수가 줄고 있다, 예수를 새로 믿는 사람들 수보다 믿음을 가진 채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의 수가 훨씬 더 많다고 진단합니다.
이런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목회를 책으로 썼고, 쓰고 있습니다.
준비하면서 늘, 내가 목회했던 때와 아들 목사가 목회할 미래와 비교하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목회와 무엇이 다른가?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 물음으로 얻는 답은 현재 총체적 위기다, 교회 붕괴라는 내리막길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때인데, 브레이크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2.
현재 한국의 기독교 교회에는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한마디로 “예수님이 없다.” 목사 자리에서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목회”가 아닌, 결국 “예수님이 없는 목회”라 총평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목회가 어떤 것이길래, 예수님의 목회가 없다고 비교하여 말할 수 있다고 진단하면서, 예수님의 목회가 어떤 것인지 찾아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목회, 이것을 알아야만, 오늘 목사들의 목회를 달아보고 재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목회는 복음서 안에 그대로 기록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음서가 가르치는 예수님의 목회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면, 제일 중요한 본문이 마가복음 1장 15절의 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마가복음 1:15의 말씀은 예수님 복음의 내용, 예수님 목회의 내용이라고 말씀드립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이 선언의 말씀은 2,000년 동안 반복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이 어떤 때인지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진단하는 잣대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이 말씀 앞에 서지 않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것은, 하나님 심판의 날이 가까이 왔다, ‘곧’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곧’이 아직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판을 미루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고, 아직 돌이킬 기회가 있음을 깨닫고, “가까웠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는 말씀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길’로 돌아설 일이다, 이것이 우리의 목회요, 우리의 신앙이라 말씀드립니다.
2,000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들어온 사람들은, 너무 많이 들었고, 하나님은 역시 아무 일도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판단을 하는 것은, 복음적인 ‘때’를 오해한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지금이야말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오늘의 한국교회, 한국교회 목사들의 목회를 볼 때, 우리 시대는 복음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너무 멀리 떠나보내고 있다는 진단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 선언하시며, 목회를 시작하셨습니다.
3.
예수님의 목회는 무엇으로 시작되었는가?
오늘 마가복음 1:16~20 본문을 보면,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인데, 어부였습니다.
어부에게 적합한 말, 물고기를 낚는 어부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세리 마태에게는 뭐라 하셨을까?
세리의 세금 거두기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 될 때이니, “나를 따르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 되게 하겠다”라 말씀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누구에게는 “나를 따르라” 하시고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사람 되게 하리라”
이렇게 각자에게 적합한 말씀을, 그를 만나서, 한 사람씩 만남으로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이 부른 사람들이 제자가 된 것입니다.
이 제자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요,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묻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당신에게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목사 당신에게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예수님의 목회 첫걸음은 제자 될 사람을 직접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만나 “나를 따르라” “나를 믿으라” 하신 것처럼, 목사의 목회, 예수님 목회를 닮는 것은, 투르나이젠이라는 목회학 박사가 ‘목회학 원론’에서 “한 사람의 영혼을 돌보는 것이 목회의 원론이다”라고 했는데, 그래서 목사는 양을 찾아가 만나야 합니다.
그가 어떤지 찾아가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고, 영적 상태를 살피고, 복음을 믿고 따르도록, 예수님을 의지하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시작이고 목회의 첫걸음입니다.
흔히들, 교회 성장시키려고 목회한다고 말합니다. 잘못입니다. 아닙니다.
교인의 마음을 얻으려고 심방한다고요? 이것도 아닙니다.
목사인 내가, 교인에게 인정받으려고, 그래서 내가 무엇인가 영광을 누리고, 높은 지위를 얻어내기 위하여서? 아닙니다.
예수님의 심장으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하는, 예수님의 목회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목사 된 사람들의 첫 번째로 배워야 하고, 닮고, 살아가야 할 걸음이라 말씀드립니다.
4.
두 번째로 예수님의 목회, 예수님이 보여주신 목회는 어떤 것일까요?
마태복음 25:45~46 말씀을 중요하다고 이해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마지막 가르침으로 ‘최후의 심판 비유’ 마지막 부분입니다. 최후의 심판으로 양의 무리와 염소의 무리, 구원받아 창세로부터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있을 사람과, 저주를 받아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갈 사람으로 나누어 구별하는 때로, 영생과 영벌에 들어가는 것으로 나뉩니다.
이때 예수께서 “내가 어려운 사람으로 있을 때 나를 찾아와 돌보았고, 위로하고, 아픔을 나누었느냐?” 라 질문합니다. 양에 속한 무리가 “언제, 내가?” 하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푼 너희에게는 영원한 복이 약속되고, 창세 전부터 예비 된 나라의 상속자가 된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지극히 작은 하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너희에게는 영벌(永罰)의 심판만이 있을 뿐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가르침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복음의 목회를 시작하자마자, 비유로, 때로는 몸으로 직접 보여주셨는데, 바로 이런 삶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눅 10장) 강도 만난 그에게 자비를 베푸는 그 사람이 영생을 누리는 구원받은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너도 가서 그와 같이 행하라” 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는 3가지 잃어버린 자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첫 번째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찾아 나선 목자,
두 번째는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을 때까지’ 찾고 결국 찾은 후 잔치를 연 여인의 마음,
세 번째는 집 떠난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려서 모든 것을 회복해 주시는 아버지, 이 모든 것이 하나를 만나는 목회입니다.
만날 때까지, 찾을 때까지, 돌아올 때까지, 한 사람을 꾸준히 ‘될 때까지’ 만나는 것이 예수 목회라 하겠습니다.
사울이 예수 믿는 신도를 핍박할 때, 다메섹으로 향하는 그를 불러 만나십니다. (행 9:4~5)
“사울아, 사울아” “누구십니까?” “네가 박해하고 핍박하는 예수다”하며, 만나셨습니다.
예수님 편에서 원수 같은 사람 사울을 만나, 그를 바꿔 바울이 되게 하셨습니다. 잘 들어야 합니다.
목사는 자신을 원수처럼 여기는 교인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찾아 만나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목회입니다. 병자, 고통받는 자, 혼자인 사람, 또 복음서에 나오는 치병 치유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을 보면, 온통 예수님의 목회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가르칩니다.
내가 할아버지, 아버지의 책을 쓰면서 할아버지 아버지 때의 목회를 보면, 이러한 예수님의 목회를 본받아서 복음적 목회를 하셨다는 점이 오늘 우리 시대를 사는 동역자나 후배들의 목회와 다른 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찾아가 만나는, 그리고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만나서 그가 회복되도록 돕는 목회, 이것이 우리 시대에 꼭 있어야 할 목회라고 말씀드립니다.
5.
세 번째 예수님의 목회는 예수님 자신이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2:24~26에서 밀알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시며, 자신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을 텐데, 그럴 때 가까이 온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밀알 한 알의 신비는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 인데,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9:30 가상칠언(架上七言) 마지막 말씀, “다 이루었다” 하셨습니다.
무엇을 다 이룬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원하신 목회를 “다 이루었다” 하시고,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
나는 이것이 목사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욕심 버리기’다 라고 해석합니다.
목사가 교회를 통해 예수께서 “버리라” 하신 것을 얻는 데 마음 쓰기 시작하면, 예수의 목회가 아닙니다.
목사가 먼저 일용할 양식으로 감사하며 살 줄 알아야 예수의 목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옛 어른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목회를 몸으로 보이셨습니다.
기도와 심방과 청빈과 경건과 흔들림 없는 자세를 늘 견지했는데, 바로 거룩한 삶이었습니다.
교인을 편견 없이 평등하게 대했습니다.
권력이나 권세자 앞에서도 꼿꼿했습니다. 허리 굽힘이 없었습니다.
이런 예수님 목회를 몸으로 실천하는 목사에게 쌓이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교인들의 ‘신뢰(信賴)’입니다.
목사를 신뢰하니까, 전하는 복음도 믿게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쌓여 교회를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6.
이런 뜻에서 나는 ‘예수님의 목회’를 살릴 때, 내일의 교회에 희망이 있음을 믿습니다.
지금의 목사나 교회는 ‘신뢰’를 잃었습니다.
신뢰 회복 없이는 복음적 교회도 세워질 수 없는 법입니다.
오히려 신뢰를 잃어버린 교회는 소멸(消滅)되는 것이 더 낫다고까지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들이 없어져야 새살이 생기고 새순(筍)이 돋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교인은 신뢰할 수 있는 목사를 찾아 방황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파스칼(Pascal, 1623–1662)은 명상록 ‘팡세(Pensées)’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신학자요, 철학자, 물리학자인 파스칼이 이 말은 의미심장(意味深長)합니다.
나는 이 말을 ‘작은 것을 소중히’라고, 다시 해석해 봅니다.
작은 일을 소중히 하는 목회, 교인을 만나고, 교인을 편견 없이 대하고, 주님을 배워서 목사가 거룩해지는, 이 목회의 길을 ‘예수님 목회’가 가르친 것입니다.
나는 할아버지, 아버지는 이 목회를 통해서 교회를 성장하게 하는 밭과 씨앗이 되어, 후광으로 교회가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또, 한 번 더 반성합니다. 그저 목장을 잃어버리지만 않으려고 애쓰다가 은퇴한 것 같습니다. 아들 목사가 예수님 목회를 잘 이어가길 늘 기도합니다.
예수님 목회를 잘 배우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제자들을 만나 나를 따르라 하셨고,
잃어버린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찾을 때까지 찾아가시고, 자기의 몸을 희생하며 본 보여주신 예수님 목회를,
우리도 배우고 따르며, 이 길 걷는 저희 가정이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일로 하나님의 영광 가리지 않는 우리가 되도록 축복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