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주 열린 교회 설교

원주 열린 교회 설교 원문에 실린 그림 또는 사진 1 원주 열린 교회 설교 원문에 실린 그림 또는 사진 2

1.

2년 전, 2024년 부활주일에 설교한 목사입니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때 “복 있는 사람이 많이 있는 행복한 교회” 되길 설교했었습니다.

기억하면 목사 설교하기 힘드니까, 잊었다고 문제 되지 않으니 걱정 놓으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데살로니가전서 1:6-8 말씀에서“너희가 많은 환난 가운데서,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주를 본받는 자가 되어,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 라는 사도 바울의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한 말씀을 의지하여, 설교 준비를 하였는데, “많은 환란 가운데서”는 평화로운 때가 아니란 것이죠. “시련의 고난 가운데서”라는 것인데, 여러분을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열린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어머니의 품을 갖춰, 소문나는 교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이것으로 설교를 다 한 셈입니다.

여신현 목사님께 ‘열린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들었습니다.

이곳 주소가 ‘태장동’이고, 옛날에 원주시의 쓰레기 소각장 동네였습니다.

원주시 쓰레기 소각장 터 위에 세워진 교회라는 이야기를 듣고, 떠올려진 말씀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3:12-13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죽임을 당하셨는데, 예수께서 치욕의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도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영문 밖에, 누가 계시는 곳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께로 나아가자. 이것이 히브리서 13:12-13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1년에 한 번씩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속하는 속죄제(贖罪祭)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때 두 마리의 흠 없는 염소를 성별(聖別)하여, 한 마리는 제단에 번제물로 드리고, 다른 한 마리는 제사장이 두 뿔을 잡고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산 채로 성문 밖 광야로 내몰았습니다. 이 염소를 ‘아사셀 양, 내 보내는 염소’(레 16:21-22)라 했습니다.

히브리서 13:12-13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 밖에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대속의 십자가 고난을 받기 위해, 영문 밖으로 세상 죄를 짊어지고 나가신 것처럼, 십자가 아래 세워지는 교회도 영문 밖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문 밖 교회는 십자가가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성문 안 큰 건물의 성전, 예루살렘 성전 같은 교회가 아닙니다.

작더라도 십자가 아래의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저는 원주시 쓰레기 소각장 터 위에 세운 ‘열린 교회’가, 영문 밖 교회임을 확신하였습니다.

2.

영문 밖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살아 있습니다.

이것이 ‘열린 교회’가 장애가 있는 이들을 품고 키우는 교회로, 어머니의 품을, 사랑의 품을 갖춘 교회입니다.

주보 뒷면을 보니까, ‘열린 교회’가 풍족한 교회가 아니고, 재산이 많지도 않은데도, 후원하는 선교사가 많더군요. 북한에, 아프리카에, 일본에, 우간다에 후원하는 일들이 무엇입니까?

어머니의 품입니다.

사랑을 품고 갖춘 ‘열린 교회’라는 것이죠.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그것이 내게 한 것이라”(마 25:40) 하셨습니다.

강도 만난 자에게 자비를 베푼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이 “영생을 얻는 자”(눅 10:28)라 하셨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려움과 고난을 겪는 사람, 아픔이 있는 사람인데, 자신의 품을 열고 끌어안는 사람이 영생을 얻는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이 누구일까요?

성안, 대형 교회 교인 되길 마다하고, 영문 밖, 작은 교회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는, 찬송가 323장을 실천하는 ‘열린 교회’ 성도들이야말로 교회의 사도적 전승을 지키며, 사도신경의 신앙고백대로 살아가는 성도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자부심이 생기시나요?

여러분, 사도신경을 믿습니까?

사도신경이 무엇인지를 알고 암송하면 좋겠습니다. 신약성경 최초의 신앙고백은 빌립보서 2:5-11입니다.

낮아지신 그리스도, ‘케노시스 그리스도’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빌 2:5)으로, 하나님의 본체이지만 자기를 비워 종의 몸으로 사람이 되어, 자기를 낮추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 이것이 믿음이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갈라디아서 2:20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암송하는 사도신경을 Credo라 합니다.

영어로는 “I believe.” 입니다. “내가 믿습니다”입니다.

라틴어 Credo는 Cor와 Do의 합성어입니다.

Cor는 Cordia ‘심장, 심령, 마음’이며,Do는 ‘고정(固定)한다’ 또는 ‘준다’의 뜻입니다.

Credo는 ‘내 심장을 ~에게 고정한다’ ‘내 마음을 ~에게 준다’가 됩니다.

사랑에 빠지면 이렇게 됩니다. 진실로 신뢰하면 줍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께,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의 심령, 나의 마음을 고정하는 것이 Credo((사도신경)입니다.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예수 살기’, ‘예수 본받기’, ‘예수 마음 나누기’가 ‘예수 믿기’입니다.

이것이 Credo, 신앙고백입니다.

3.

데살로니가 교회를 보면, 이 신앙, 예수께 나의 모든 것을 못 박고, 예수님의 삶을 살았습니다.

“많은 환란 가운데서, 기쁨으로 성령의 말씀을 받아, 바울처럼,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믿음을, 저는 “어머니의 품”을 가진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가 어려움에 처한 것을 듣고, 힘에 넘치는 헌금을 하여 도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사도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이라”(살전 2:4)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지를 배웠고, 행했다.”(살전 4:1)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며 당부한 말씀을 직접 들은 것은 아니겠지만,“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라”(요 13:31-35)를 생활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넉넉해서, 여유가 많아서, 풍족해서가 아닙니다.

‘환란 가운데였다’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살을 찢고 몸을 나눈 것입니다.

저는 숲길 걷기를 좋아하고, 자주 합니다.

작년 12월에 잎이 다 떨어진 백련산 숲길을 걸으며 쓴 시입니다. 들어보셔요. 나무들이

그냥 서 있는 줄 알았다.

어느 날,

나무들이 내게 말했다.

살기가 너무 힘들어 죽겠어,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

하더니

슬프디슬프게, 너무나 서럽게,

우는 것이다.

너무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나도, 사는 게 힘들어 죽겠지만

우는 나무를,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나무들이 내게 말했다.

원주 열린 교회 설교 원문에 실린 그림 또는 사진 3

당신 때문에

살았다고,

당신 때문에

살겠다고.

그날 이후,

나는 숲속에서 나무들의 나이테 속에 담아둔 노래를 들었다.

시(詩)라기 보다는, 제 감상문(感想文)입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겨울바람이 ‘휘익!’ 지나가는데, 그것이 나무들의 울음소리로 들렸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죽고 싶어”라 하는데, 이 소리는 따져보니 세상 사는 우리 모두의 소리였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세상 사는 것만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나무들이 “나, 너무 아파. 너무 힘들어, 너무 슬퍼, 괴로워.” 하는 소리를 듣고, 목사인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우는 나무들을 꼬옥 안아줬습니다. 그랬더니 숲속 나무들은 나이테 속에 담아 두었던 브람스의 음악, 베토벤의 교향곡,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치고이너바이젠의 violin 선율을 제게 들려줬습니다.

여러분이 나무를 꼬옥 끌어안듯이, 예수님께서 사랑하라 하신 이 땅 위의 사람들을 사랑하자는 시(詩), 감상문(感想文)입니다.

4.

프레드 에들러 라는 심리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찾아오는 우울증 환자들에게“두 주간만 네 처방대로 따르시오. 내 처방은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마다,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해줄까를 궁리하여 해 보는 것입니다.”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에들러 교수의 처방을 권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님을, 목사님은 교인들, 교인은 목사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처방을 실천해 보십시오.

놀랍게도 에들러 박사의 처방대로 한 사람들은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흔히들 생각하기를 “사랑받지 못해서 병이 생긴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사랑받지 못하면 병이 생깁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하여 태어났다”라는 복음송도 있습니다.

“나는 사랑을 받아야 해!” 라 합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식물도, 동물도 사랑받지 못하면 병이 생깁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으면, 더 큰 병이 생깁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위기는, 사랑받지 못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사랑을 넘치도록 받았는데, 그 사랑을 나누지 않아서, 받은 사랑을 쌓아만 두어서, 사랑이 부패하여 생긴 위기입니다.

사랑 결핍이 삶에 어두운 그림자로 작용하는 것, 맞습니다.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받은 사랑이 풍족하여 넘치는데 쌓아둔 사랑의 부패가 독(毒)이 되는 것입니다.

호주 여행 중에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병원 앞 게시판에 환자에 대한 안내가 게시되었습니다.① 전갈에게 물린 분이 여기에서 치료받았다. 하루 만에 퇴원했다.② 뱀에게 물린 분이 치료받았다. 3일 만에 퇴원했다. ③ 미친개에게 물렸다. 현재 10일째 치료 중인데, 곧 완치되어 퇴원 예정이다.④ 사람에게 물렸다. (어떤 진단일까요?)

여러 주일이 지났는데, 아직 무의식 상태이다. 회복 가능성이 무척 낮다.

과학자들이 실험했습니다.① 부부 싸움을 악에 받쳐서 하면, 입김이 나오는데, 입김을 모아 실험하니, 코브라 독보다 강한 맹독성 물질이 나왔다.② 타액(唾液)을 검사했는데, 평소에는 이상이 없었는데, 강제로 감금하고 약 올리고 신경질 부리게 했더니, 황소 수십 마리는 즉사(卽死)시킬 수 있는 독극물이 검출되었다.③ 즐겁게 웃고 난 후, 뇌검사를 했다. 독성을 중화시키고, 암세포를 죽이는 호르몬이 다량 분비되었다.

과학적 실험의 결과는, 분노, 미움, 증오, 화를 지속적으로 간직하는 것은 몸에 독(毒)을 쌓게 되어, 몸을 병들게 한다는 덕입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라든가, 도산 안창호의 말씀 “일소일소(一笑一少) 일노일노(一怒一老)”는 옳은 지혜라 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사도 바울이 권면한 말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 18)나, 빌립보 교인에게 권면한 말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에 따르는 삶은 장수비결이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5.

제 어머니는, 제 나이 66세 때, 100세를 일기로 2014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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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시아버지, 목사 남편, 목사 시아주버님, 목사 아들, 목사 사위목사 시조카, 목사 손자, 목사에 둘러싸여서 평생을 사신 어머니께서 유언으로 은퇴 목사인 제게 하신 말씀이 “예수 잘 믿어라. 예수밖에 없다”였습니다. 정신이 맑으셨던 어머니는 아들, 딸. 손주들 이름을 하나씩 부르면서, 각기 다른 말씀을 남기셨는데, 목사인 제게 “예수, 잘 믿어라”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눈에는 아들 목사가 예수를 잘 믿지 못한 것으로 보이셨구나 “내가 예수를 잘 믿지 못한 것일까?” 하며 마음이‘덜컹!’ 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의 유언을 곱씹어 생각해 보니, “예수님 잘 닮아라. 예수님처럼 살아라. 예수님만 바라보아라. 예수님 품을 갖추어라.” 하신 것임을 깨달아 새기게 되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이로구나.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구나.

가장 귀하고 귀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품고 사는 것이구나.

이것이 어머니 100년의 일생, 목사에 둘러싸여 헌신하면 살아오신 어머니께서 주신 믿음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가장 소중하게 여기신 것, 평생 마음에 품어 담고 사신 것을 마지막 말씀으로 막내아들인 제게 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평생 품 안에 간직하며, 예수님의 마음에 심장을 고정시켜 사셨던 그 품을 아들 목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어머니는,생명의 씨앗 뿌리고 가꾸는 분입니다.

세상에 소금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맛을 내는 분입니다.

어머니는 있는 것, 아낌없이 나눕니다.

어머니는 어떤 역경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기뻐하며,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작은 감사를 찾아내, 큰 가치를 부여합니다.

어머니는 사소한 일에 큰 마음으로 즐거워합니다.

어머니는 소소한 성공을 보람으로 여깁니다.

이와 같은 어머니의 품을 갖추면,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소문이 날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저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머니의 품을 갖춘 교회임을 말씀드리면서,‘열린 교회’도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어머니의 품을 갖춘 교회로 소문이 나는 교회를 이루어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기도) 데살로니가 교회, 좋은 소문이 나는 그 교회 뿌리에어머니 품이 있었음을 깨달으면서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칭찬을 ‘열린 교회’가 이어가도록 축복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사(勸士) 임직식 권면(勸勉)1.

먼저, 교인에게 권면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예수께 모인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밭에 떨어진 씨앗 비유입니다.

네 종류의 밭이 있습니다.

길가 밭처럼 딱딱하게 굳은 밭, 가시덤불이 가득한 밭, 돌멩이가 가득한 밭, 그리고 옥토입니다. 딱딱하게 굳은 밭은 갈아 부드럽게 해야 하고, 가시덤불을 치우고, 돌멩이도 주워 없애면 옥토가 됩니다.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농부를 밭을 옥토가 되도록 땀을 흘립니다.

그런데 밭이 옥토가 되었어도, ‘이것’ 없으면 건강하고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거름’입니다.

밭에 거름은, 신앙적 비유로 말하면, 땅의 본질 ‘섬김’이요, 생활로 설명하면 ‘기도’입니다. 교우 여러분이 옥토가 된 밭에 거름이 되십시오.

열린 교회에 뿌려진 씨앗이 된 임직자들은, 100매,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시오”제 말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입니다.

2.

권사(勸士)의 ‘권할 권’(勸) 자는, ‘가르치다, 권면하다, 장려하다, 인도하다, 옳은 일을 하도록 지도하다, 힘쓰다, 힘써 하다’의 뜻입니다.

사전의 뜻대로 하면 됩니다. 그런데 직분을 맡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는 것입니다.

권면이 무거운 짐 지우기라면, 예수님의 마태복음 11:28-29 말씀을 믿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하시고,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직분의 무거운 짐을 지면, 주님이 약속한 위로를 주님으로부터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교회에서 권사의 직분은 두 가지를 하라는 직분입니다. 하나는 교역자를 돕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교인을 보살피라는 직분입니다.

옛날에는 목사의 집 쌀독을 살피는 일을 권사가 했습니다.

교회가 목사 생활비를 충분히 드리기 어렵던 시절, 성미를 모아 일용할 양식에 부족하지 않게 살폈습니다. 교인 심방의 일을 권사가 맡았습니다. 교인의 형편을 살펴 목사께 알려 기도연결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의 교회에서 맡은 일이 달라지긴 했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그래서 권사는 기도의 역군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어머니의 품에 속합니다.

아무쪼록 권사임직식을 통해, 옥토에서 많은 열매를 얻어 나눌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