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울타리를 없애야
- 등록일
- 2026년 6월 23일
- 설교일
- 2026년 6월 21일
1.
공덕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말씀을 나누게 됨을 기쁘게 여기면서, 교회의 머릿돌이며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이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공덕교회가 남대문 교회의 지원을 받아 101년 전, 1925년에 세워졌습니다.
공덕교회가 십자가 아래 세워진 후 6년 되는 해, 1931년에, 21살의 천재 시인 이상(李箱)이 신문에, 숫자로 쓴 시 ‘오감도(烏瞰圖) 시제사호(詩第四號)’를 발표했습니다.
숫자로 쓴 시(詩)를 보면, 1,2,3,4,5,6,7,8,9,0의 숫자를 모두 거꾸로 뒤집힌 숫자로 썼습니다. 시(詩)란 글자로 쓴다는 상식과 통념을 뒤집은 시(詩)였고, 파격적인 시(詩)로 문단(文壇)은 이상의 시(詩)가 “시(詩)다, 아니다”로 난리가 났습니다.
이 시는 ‘환자(患者)의 용태(容態)에 관(關)한 문제(問題)’를 책임의사(責任醫師) 이상(李箱)이 0.1이라고 진단한 시(詩)입니다. 시인은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이 나라와 사회의 현상을 보면서, 이 나라와 사회를 환자로 판단하고, 책임의사로서 진단해 보니, 건강지표 기준 1에 미치지 못하는 0.1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건강검진표로 몸의 상태를 숫자로 표시되어 받고, 건강 상태를 판단하시죠?
이상(李箱) 시인은, 1931년 우리나라 사회의 상태가 0,1로, 병든 상태라고 진단한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병일까요?
숫자는 사람의 생활 가치를 재는 부호입니다. 당신의 연봉은 얼마입니까?
당신의 집은 몇 평이며, 시가로 얼마입니까?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알게 됩니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 준비생에게는 몇 등급입니까? 가 되겠죠.
삶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가치가 숫자인데, 솔직히 말씀드려, 우리는 모두 숫자에 목매달아 사는 존재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숫자가 이상의 시에서는 모두 거꾸로 뒤집혔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가치관이 전도(顚倒)된 세상”이란 뜻입니다.
시인이자, 책임의사인 이상(李箱)은, 지금 자신이 숨 쉬고 몸담아 살고 있는 세상이, 비정상적이며 전도된 가치관이 지배하는 병든 세상이라 진단했습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내는 세상인 것입니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고, 칼이 펜보다 강한 세상,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폭력으로 억누르며 정의라고 우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책임의사로서 환자의 상태가 0.1이라, 비정상이다, 병들었다고 진단했으니, 당연히 고칠 수 있는 처방전도 냈을 것입니다.
저는 거꾸로 된 숫자를 이리저리 살펴봤습니다.
어디에도 건강을 회복하는 처방전 문구가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처방전을 찾다가, ‘오감도(烏瞰圖) 시제사호(詩第四號)’ 시(詩)를 ‘거울’에 비춰보았더니, 모든 숫자가 정상적으로 1,2,3,4,5,6,7,8,9,0으로 보였고, 책임의사 진단 0.1도 1.0이 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거울’이 처방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상(李箱)이 처방전으로 준 ‘거울’을, 교회가 받았을 경우, 이 ‘거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가, 가치관이 전도된 세상에 거울이 되어 바른 가치관을 회복하게 하는 사명을 받은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교회가 장로교 신앙 원리인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교회,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 땅 위에 펼치는 교회,주님 뜻대로 살아가는 구원 백성 되게 하는 교회 되어, 세상을 구원하는 교회로, 101년 전에, 이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가 공덕교회라 말씀드립니다.
2.
요즈음 한국교회는 위기,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고 합니다.
교회와 교인 수의 급감, 가나안 교인의 증가, 가정마다 신앙의 계승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말을 잘 듣던가요? “교회 가자” 하면, “엄마 아빠나 가세요”하는 자녀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헌금이 줄고, 교회당이 비어 집회 때 빈자리가 늘어나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이 아니라,기독교의 사회적 신뢰가 해를 거듭할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통계도 많습니다.
공덕교회도 한국교회가 앓고 있는 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이 틀리기를 바랍니 다.
저는 교회를 작은 마을 한 가운데, 언덕 위에 심어진 나무로 비유해 봅니다.100년 된 나무라면, 줄기가 한 아름이 넘는 큰 나무가 됩니다. 풍성한 잎으로 좋은 그늘이 되고, 새들이 깃들여 쉼을 얻습니다. 나무 그늘에 평상이 놓이고, 동네 어른들이 모여 정담 나누고, 소식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는 평화로운 그림이 그려집니다.
교회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줄기는 나이테 따라 굵어지는데, 그 속이 비었다면?
오랜 세월 자라 가지는 많은데, 잎은 말라 떨어져 앙상하다면?
꽃을 피워 열매 맺어 나누어야 할 나무에, 비실비실 꽃 몽우리 맺혔다가 활짝 피지 못하고 떨어지고, 열매가 맺히지 않아 나눌 것이 없다면?
나무 아래 평상에 모이는 어른들도 사라지고, 새들도 깃들려고 날아들지 않을 것입니다.
나무가 고목(枯木)으로 된다면,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진단해야 합니다.
이때, 진단하는 잣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3.
건강한 교회를 위한 예수님 당부의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정한 마태복음 28:16-20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에클레시아)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하신 약속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교회를 세우는데, 제자들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당부하셨습니다.
첫째, 마태복음 28:19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라.” 세상으로 제자들에게 “가라” 하시며 파송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 구원받으십시오”라 외치라 하셨습니다.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너희는 ‘가서’라 했습니다.
‘앉아서’ ‘오라’가 아닙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누군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을 만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전해보셨습니까?
수십 년 신앙생활 통해 귀에 인(印)이 박히도록 들은 말씀일 텐데, ‘가서’, 그렇게 했습니까?
아니었다면, 이번 기회에 실천해 보시길 권합니다.
두 번째,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복음이신 줄,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줄, 예수를 믿어야 살고, 살아서 믿을 때 영원히 사는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키도록 하려면, 여러분이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아야 면장 한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성경을 알도록 배우십시오.
성경 말씀,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기 위해 배우고, 예수님이 누구이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배워야 합니다.
장로교가 어떤 교회인지 배우십시오.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신앙인의 책임이 어떤 것인지 먼저 배워야 합니다.
배워 확신을 가지고, 가서, 가르치고 지키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갖추어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임마누엘 은혜와 축복의 약속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태복음 28:19-20은 교회를 진단하는 잣대로 기준이 될 것입니다.
4.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를 실천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역사는,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와 약속을 붙잡고 신앙생활 했습니다. 이 믿음의 길이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로마가 새롭게 일어나는 그리스도교를 핍박했습니다.
유대교가 집요하게 교회 세움을 방해했습니다.
그리스, 로마로 이어지는 문명은 숫자 위에 세워진 문명으로, 이 문명에 젖어 사는 사람의 가치관을 바꾼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감사하며 살아보자 했지만, 안 되더군요. 냉장고가 가득 차 있어도, 쿠팡으로 더 삽니다. 새벽마다 문 앞에 포장된 물품이 배달됩니다. 현실 앞에서 무력해지는 우리이기에, 주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은 늘 전쟁과 같습니다.
그래서 섰다가 넘어지게 하는 유혹과의 투쟁에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처음 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를 잘 지켰습니다.
초대교회는 십자가(十字架) 위에 세웠습니다.
이때의 교회, 교인들에게는 울타리가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14에서“예수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 곧 십자가로 헐었다.” 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장벽을 넘었고, 율법의 높은 울타리를 허물었습니다. 복음과 위배 되는 것이 있으면 과감히 버렸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남고, 소망만이 넘치게 했습니다. 나눔과 희생과 헌신, 돌보고, 약한 자를 품는 사랑의 공동체를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를 가슴에 품고 세워 갔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시련과 고난과 시험과 핍박 속에서도 성장하며 자랐습니다.
초대교회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한국교회도 그랬습니다.
양반과 상놈의 계층 울타리를 없앴습니다. 남녀의 구별도 무너뜨렸습니다. 교육을 통해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에게 꿈을 꾸게 했습니다.
농촌, 농민 살리기를 했고, 근검, 절약, 절제하는 삶을 살며, 윤리 도덕적으로 청빈했습니다.
한글을 가르쳐 문맹률이 가장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목회자들도 성 프란시스의 청빈을 본받으려 했습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살았습니다. 본(本)이 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온 세계 교회가 놀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5.
그런데 바로 이때부터 사탄이 뿌려놓은 위기의 씨앗이 움텄습니다.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세상살이가 풍족해지자, 교회와 교인들의 믿음 생활 안에 틈새가 생기고, 틈새를 통해 시험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갈매기의 꿈’ 소설 이야기입니다.1970년에 출판된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은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는 유명한 말을 우리에게 희망의 말로 전했습니다. 원래 이 소설은 4부까지였는데, 1970년에 소설이 발표될 때는 3부까지만이었습니다. 리처드 바크는 44년이 지난 2014년에 4부를 공개했습니다. 조나단 리빙스턴 갈매기가 사라진 후 이야기인데, 남은 갈매기들은 조나단을 숭배하고, 그의 어록을 외우는 의례에 매달리고, 조나단의 가르침은 교리로만 남게 하고, 이것들이 갈매기들의 삶에 울타리가 되어, 조나단이 일궈낸 성공은 구경만 하고 칭송할 뿐, 갈매기들은 더 이상 날지 않고, 모래밭에 엎드려 날개를 접고 쓰레기통을 뒤지던 과거로 돌아간 갈매기들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무엇이 오래된 나무를 고목(枯木) 되게 할까요?
무엇이 큰 나무줄기 속을 텅 비게 할까요?
무엇이 무성했던 잎들을 마르게 하고, 땅에 떨어지게 할까요?
무엇이 꽃망울을 시들게 하여 꽃 피우지 못하게 할까요?
무엇이 젊은이들로 교회를 떠나게 하며,무엇이 안나가, 가나안 교인을 늘어나게 할까요?
교회가 제 몸 가꾸기에만 몰입하는 동안, 나눌 열매는 얻을 수 없게 됩니다.
교회가 예수께서 물리치셨던 세 가지 유혹에 빠져, 누리고, 사용하는 한, 교회는 사랑의 품을 상실하고, 새들이 깃들일 그늘과 숲을 메마르게 할 것입니다.
교회가 갈매기의 꿈 4편처럼, ‘옛날에는’에 파묻혀 땅의 것만 추구하며 하늘을 보지 않는 갈매 기가 되는 동안, 교회의 큰 나무줄기는 각질만 쌓이고 안은 텅 빈, 울리는 꽹과리 소음(騷音)만 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교회 생활에도 수많은 울타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사랑으로 막힌 담, 울타리를 허물어 세운 교회인데, ‘우리끼리’의 울타리를 치면 되겠습니까?
오래된 교회에서 보면, ‘우리 가족 자리’라는 게 있던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식사 시간에 앉는 자리에 누가 함께 하시나요? 오늘 동석한 분의 얼굴을 보시어 확인해 보셔요. 새로 본 얼굴을 찾아 따듯하게 인사해 보셨나요? ‘굴러온 돌, 박힌 돌’ 하며 울타리를 만들지 않았나요?
복음의 거울 앞에, 공덕교회와 여러분을 세워 보십시오.
6.
해가 거듭될수록, 사탄의 교회 공격, 성도에 대한 유혹은 더 강렬해지고, 교묘해지고, 증가할 것입니다. 교회의 위기는 앞으로 더욱 심화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위기의 때에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람을 부르십니다.
열왕기 19장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혼자 나서서 싸운 엘리야의 승리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라고 한 바알과 아세라는 ‘전도된 가치관’을 축복이라고 제공하는 종교입니다. 850:1의 싸움은 전도(顚倒)된 가치관의 세상과 올바른 하나님의 뜻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엘리야의 승리를 이상(李箱)의 시로 표현하면, 0.1의 진단이 하나님의 능력을 담은 거울로 정상적인 1,0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 19장에서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엎드려 하나님께 “내 생명을 거두어 달라” 탄원합니다. 850:1에서 승리했는데, 현실을 아합과 이세벨에게 쫓기는 신세로 도망다니느라 피곤하고 고단합니다. 하나님은 이때, 천사를 보내시어(왕상 19:5) 엘리야를 먹이고 지켜주시고, ‘세미한 음성’(왕상 19:12)으로 만나 주시고, 엘리야에게 이스라엘 가운데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입 맞추지 않은 7,000명이 있다(왕상 19:18)고 알려주셨습니다.
엘리야는 ‘혼자’ 인줄 알았습니다. 이런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있다. 7,000명도 있다” 하십니다.
엘리야는 비로소 힘을 얻고, 후계자 엘리사를 만나러 일어섰습니다.
여러분이 엘리야가 되십시오.
엘리야가 되어 이 시대의 전도(顚倒)된 가치관을 전파하는 바알과 아세라와 대결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리고 여러분과 같은 믿음을 가진 많은 사람이, 여러분과 함께 하는 줄 믿으십시오,여러분,교회가 위기에 처한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전도(顚倒)된 가치관이 제공한 온갖 울타리를 없앱시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신앙을 회복하고,주님의 뜻대로의 교회를 이루기 위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르는 신앙, “가서,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주님의 마지막 당부를 실천하는, 한 사람이 될 때교회의 위기는 극복될 것을 확신합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 라는 주님의 약속을 마음껏 누리는 공덕교회와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축도교회의 머릿돌이며,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주님의 뜻 받들어 사는 이들에게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우리 안에 모든 울타리를 없애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감동 감화, 인도하시는 은총이주님의 몸 된 공덕교회 위에 와,주님의 교회를 세워 가는 모든 성도와, 가정과 일터,그리고 다른 자리에서 이 예배에 동참하여 예배하는 모든 이들 머리 위에,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