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복된 계명, 효(孝)
- 등록일
- 2026년 5월 12일
- 설교일
- 2026년 5월 10일
1.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옛날에는 어머니 주일이었는데, 아버지들께서, “왜 아버지 주일은 없느냐?” 라고 섭섭하게 여기며 이의를 제기하여, 어버이 주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5월 둘째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지키지만, 저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 생각을 더 많이 합니다. 왜 그럴까? 이유를 묻다가, 조금 엉뚱한 생각이긴 하지만, ‘배꼽’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배꼽은 어머니와 내가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 어머니와 내가 탯줄, 생명줄로 이어졌었고, 어머니가 탯줄로 어머니의 영양을 공급하여 준 나의 밥줄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 중에 배꼽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배꼽은 사람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10개월 동안 생명을 같이 했던 흔적입니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배꼽으로 연결되어 배꼽을 통하여 영양분을 받아 살았던 흔적입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직접 흙으로 빚어(창 2:7) 아담을 만드셨고, 하와는 아담을 잠들게 하여 갈빗대 하나로(창 2:21-22) 만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을 통해 태어나지 않았죠.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도 배꼽이 있지만, 어머니와 탯줄로 연결되어 10개월을 한 몸으로 지낸 흔적 없이 창조된 아담과 하와에게는 배꼽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실 때, 가짜 배꼽도 만드셨을 것이라고, 믿거나 말거나,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아담과 하와 이후의 모든 사람에게는 배꼽이 다 있습니다. 요즘은 과학이 발전하여 사람의 염색체 x와 y를 분석하여, 태어날 사람의 성(性, sex)을 결정하는 것은 어머니 염색체뿐이라고 하여 아버지는 아무런 힘이 없음이 밝혀졌는데, 이런 의미에서도 어머니와 한 몸이었던 흔적, 배꼽 때문에 어버이 주일이지만 어머니를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남자들께서 섭섭히 여기진 않길 바랍니다. 남자 모두도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어머니 주일에 부르는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동요가 있습니다. 문학박사 양주동 선생의 시에, 작곡가 이흥열 선생이 작곡한 노래입니다.
일제가 우리나라 국권을 늑탈하였던 1930년대입니다.
이흥열 청년은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많았습니다. 음악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났는데, 작곡을 위해 피아노가 없으면 공부할 수 없음을 알게 되자, 어머니께 편지를 씁니다.
“어머니, 피아노가 없어 음악 공부를 더 이상 할 수 없어요. 소자는 음악 공부를 접고, 귀국하려 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유학으로 늘어난 빚으로 힘들었지만, 다음 날 새벽부터 땅거미가 기어 나올 때까지, 동네 산뿐만 아니라 먼 거리 산을 뒤지며 쉼 없이 솔방울을 긁어모았습니다. 두 손이 다 부르트도록 왼 산들을 훑었습니다. 산의 나무를 화목으로 사용할 수 없었던 때에, 불쏘시개로 화력이 좋은 솔방울을 팔아 거금 400원을 아들에게 보냈습니다. 1930년대 쌀 한 가마가 13원이었으니, 정말 큰돈을 보낸 것입니다. 아들은 피아노를 샀고, 처음으로 작곡한 노래를 어머니께 헌정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토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넒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기득하여라.
-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에 오직 한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이 땅에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가사를 음미하면, 구구절절 다 맞는 표현입니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머님의 정성을 지극하여라.”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저는 이 동요를 부를 때마다 늘 울었습니다.
2.
저의 어머니는 1915년 생입니다. 1931년, 16살 나이에 두 살 위 18살 총각과 혼인했습니다. 당시에는 조혼하는 경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16세면 어린 나이입니다. 조부 강병주 목사님과 외조부 이시복 장로님 두 분이, 노회에서 만나 의(義)가 통해서 “내게 둘째 아들이 있소”, “내겐 셋째 딸이 있소”하고 약혼을 약속하여, 혼인하였습니다.
목사의 며느리로, 목사의 아내로, 목사의 어머니로, 그리고 목사의 할머니로 7남매의 어머니로 100수 하셨습니다. 강씨 집안에 시집오시어, 84년 동안 강씨 집안 식구들을 위하고, 섬기던 교회를 위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철이 들고서부터 어머니를 뵈면, 어머니께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을 챙기는 것을 한 번도 보질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100세에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 67세 된 목사인 제게 “예수 잘 믿어라. 예수밖에 없다.”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2014년 12월 13일,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어머니를 생각하며 2019년에 “난 괜찮다” 시를 썼습니다.
“어머니 주름
할머니 손 주름
사랑의 흔적
주름진 골마다 담긴
이야기 풀어내면
깊이만큼 큰
고통과 인내가 드러나지만
난 괜찮다
한 단어로
지난 때를
정리하신다.” (어머니의 손, 2014년 9월 29일, 어머니와 아들의 손, 2014년 11월 12일)짧지만 어머니를 잘 표현한 시라고 자평(自評)합니다.
주름진 손을 붙잡고 세상 떠나시기 전에, 눈물 흘리며 “감사합니다” 했더니, 유언하셨는데, 유 언하신 것을 되새기면, 남편이 교단 총회장을 지낸 목사, 시아버지도 목사, 아들도 규모가 있는 교회를 목회하고 은퇴한 목사이고, 그리고 아들의 아들이 2013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는데, 할머니요 어머니께서 아들의 손을 붙잡고 하신 말씀이 “예수 뿐이다. 예수 잘 믿어라” 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 덕분에 삽니다. 어머니 덕분으로 사는 것입니다.
3.
또 한 분의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2:51을 보면,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일(말)을 마음에 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12살 때, 유월절 절기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부모가 12살 아들을 사흘 동안 잃어, 찾느라 난리가 났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흘 후에 찾았는데,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 알지 못했습니까?”(눅 2:49) 했던 소동입니다.
어떻게 얻은 아들입니까?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입니다. 남자를 알지 못했을 때입니다. 정혼했는데 임신하면, 부정한 짓 했다고 돌로 사형하던 때입니다. 그런데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말을 전합니다. 처녀의 몸으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말이고, 그 내용이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예수라 하라.”(눅 1:31) 더 놀라운 말을 전합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그 당시의 관행으로 보면 마리아가 14살이나 15살쯤 되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처녀의 몸에 아기를, 성령의 임재, 하나님의 능력이 덮어서, 거룩한 사람, 하나님의 아들을 낳는다는 전언은 받기 어려운 말들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순종했고, 임신했고, 처녀의 몸으로 아기 예수를 받았습니다. 젖을 물리어 키웠죠. 12살이 되었고, 유월절 복잡하고 어지러운 예루살렘에서 잃었던 것입니다.12살 때 사건은, 엄마의 자리에서 판단해 보면, 내 품에서 떠날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12살 예수께서 부모에게 순종하며 섬겼다고 했고, 마리아는 모든 말(일)을 마음에 두었다 했습니다. (눅 2:51)저는 마리아가 모든 일을 ‘마음에 두었다’라는 성경의 기록, 이 장면을 상상하여 “마음에 새겨둔 어머니 기도”란 짧은 글을 남겼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태어난 아기를 키우며 가졌던 마음이, 마리아와 같다고 여기며 썼습니다.
“마음에 새겨둔 어머니 기도”
얼마나 많은 기도로 네가 자랐는지
망막에 넣어도
아파하지 않을 인내로 너를 키워왔음을.
네 어린 시절이
하루의 삶에 지치고 휘어진 부모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요, 위로요, 희망이었는지.
네 천진한 해 맑은 눈망울
한 점 흠 없는 표정이
하루의 모든 고단함을 씻어내는 샘이요, 힘이었는지.
방긋 웃음에도 파안대소(破顔大笑)했다.
불분명한 옹알이 소리에도
천재(天才)니, 신동(神童)이니 과대망상(誇大妄想)도 부끄럽지 않았다.
작은 열(熱)에도 가슴을 덜컹 떨어뜨리고,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으로 아파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똑 같게 들려지는 울음에도
네 뜻 구별하는 능력을 가졌지
네게 대한 사랑이 만든 초능력(超能力).
포근히 잠든 네게서,
새근거리는 숨결 곁에서
이것이 행복이구나, 행복에 겨워했다.
잘 키워야지,
좋은 엄마이어야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다짐하고 다짐하면서
네게 있었던 모든 일
네가 보여준 모든 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먼 훗날
네가 어른 된 날
네 스스로 깨달음의 기쁨을 소유하는 때
내 마음 속에,
내 마음 속에
기도와 함께 차곡차곡 쌓아둔 사랑의 기억 속에
새겨 두었다.
네가 꺼내어 가질 수 있도록.
4.
생각해 보셔요.
오늘의 우리에게는 살아온 인생의 모든 길에 늘 어머니께서 곁에 계셨습니다. 아프거나, 외로워하거나, 성공하여 기쁘거나, 실패로 좌절할 때, 어떤 경우에든지 어머니는 여러분 곁에 늘 계셨습니다.
어버이의 자녀에게 나눈 사랑으로 성장한 우리입니다.
저는, 75세 된 할머니가 입원하여 너무 아프고 괴로워서 소릴 지르는데, 그 소리를 듣고 너무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 소리는 “엄마~~!” 였습니다. 75세 된 할머니께는 엄마가 생존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몸을 웅크린 채 “엄마, 엄마” 하며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심방 하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힘이요, 위로였으며, 치유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어머니란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에 대한 ‘효(孝)’는 “해라, 해라.” 해서 할 것이 아니라,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성경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이해해 봅니다.
법(法)의 제정에는, 제정하게끔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살인이 없었다면,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면 벌받는다는 법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으로 인해 폐해가 심각한 경험을 하면서, 살인 금지법과 살인을 막기 위한 강력한 규제법을 제정하게 된 것입니다.
법이 제정되는 데는 원인 제공이 있다는 것으로, 사건이 없었으면 법이 생기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법을 제정하면서 조심해야 합니다.
특별한 구두를 만들어 부자 된 분이, 벽을 타고 안전하게 올라가는 신발을 발명했습니다. 그런데 뉴스에서 살인범이 벽을 타고 넘어 가정을 파괴한 사건을 보고, 자신이 발명한 신을 신고 아무 곳이나 들락거리며 못된 짓을 하면 안 되겠다 하여, 하나만 남기고 전부 파기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사고가 없으면 법이 없습니다. 법이 없는 나라가 좋은 곳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명기 5:16, 십계명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이 계명도, 예부터 불효(不孝)가 가정과 사회의 문제였다는 것을 역설적 추론이 가능합니다.
첫 가정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서 태어난 첫아들 카인은 효자였을까요?
동생 아벨을 살인한 형을, 부모에게 효를 행한 아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담은 어땠나요?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먹지 말라”는 말씀에 불순종으로 불효(不孝)한 자녀였습니다.
신명기 5:16,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뒤집어 풀어보면, “네 부모에게 불효(不孝)하면, 네 생명이 짧고 불행해 지리라”가 아닌가요?
왜, 십계명에 부모 공경을 강조했을까요?
부모에게 불효(不孝)하는 현실이 커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효로 빚어진 불행한 현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5.
예수님의 말씀, 마가복음 7장에서도 불효(不孝)의 현상을 만나게 됩니다.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리새인들의 눈에 정결법(淨潔法)을 지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흠집을 잡기에 혈안이 되었는데, 제자들이 장로의 유산 중 하나인 손을 씻고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정결법을 어긴 것입니다.
제자들이 정결법을 어겼으니, 부정(不淨)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정결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되는데, 정결법을 어겼으니, 죄인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손 안 씻고 음식 먹는다고, 그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다.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악한 생각,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한다”라고 했습니다. (막 7:20-23)예를 든 것이 본문의 ‘고르반’ 장로의 법입니다.
하나님의 계명. 십계명 제5계명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봉양(奉養)하고, 필요한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데 ‘고르반’ 장로의 전통에 따르면, 장로의 전통이란 율법에 대한 랍비의 해석인데, 율법을 지키기 위한 해석입니다. 문제는 해석을 지키는 것, 곧 장로의 유산을 지키는 것도 율법을 존중하여 지키는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어떤 물질에 대하여 ‘고르반’ 선언을 합니다. ‘고르반’이란 “이것은 하나님께 드린 물건”이란 선언입니다. 고르반 선언을 하면, 그 고르반 물건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고, 단지 개인적 만족이나 기쁨을 위해서는 쓸 수 있다고 랍비는 해석했습니다.
예수님은, 장로의 유전인 고르반 전통을 교묘히 이용하여, 고르반 선언으로 부모에게 나눌 것을 “못한다” 하고, 자기를 위해서는 쌓아두는 사회 현실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고르반 법으로 부모가 가난하여 고생하는데도, 자녀는 축재(蓄財)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효하는 악한 자녀는 말할 겁니다. “난 고르반 법에 충실했으니, 율법이나 계명을 어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장로의 유전은 지켰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율법의 뜻, 계명의 가르침은 내팽개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핑곗거리를 만들어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을 지키지 않음을 꾸짖은 것입니다.
효(孝)의 문제는 핑계를 만들어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바쁘다고, 손주들 교육 때문에 쓸 곳이 많아서, 회사 일이 너무 많아 시간이 부족하여서, 등등의 핑곗거리를 양산하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지 말라 하셨습니다.
제 불효(不孝) 한 가지를 자백(自白)합니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많은 자료 중 ‘선포되지 못한 설교’ 원고가 있습니다.
설교 준비는 마쳤지만, 입원하게 되었고, 세상을 떠나심으로 선포되지 못한 마지막 설교 원고였습니다. 설교 원고 중에 몇 줄 안 되는 내용인데,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의 상태를 남겼습니다.
“우리 부부(夫婦)는 부상(負傷)으로 둘이 함께 자리를 펴고, 치료(治療)를 위해서 5주간(週間)을 한 방에 누워 지냈습니다. 저는 허리를 다쳤고, 아내는 추석(秋夕) 떡을 찾아 들고 오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손목과 무릎뼈가 금이 갔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오른 손목 때문에 손까지 압박붕대(壓迫繃帶)를 감았으니 오른 팔을 못 쓰고, 왼쪽 무릎뼈가 갈라졌으니 앉고 서고 누 울 때에 아프고 불편함은, 옆에서 보기가 무척 가여웠습니다. 저도 앉아 있어도 눌려 아프고, 누울 때와 일어날 때와, 누워서 뒤척일 때마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苦痛)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와서 돕겠다는 것을 사양(辭讓)하고 불구자(不具者) 노부부(老夫婦)가, 서로, 그야말로 상부상조(相扶相助)해서 서로 손발이 되어줘 가면서 살아온 모습을 상상(想像)을 해 보십시오.
그러나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처럼 결혼(結婚) 66년에 이번처럼, 우리 부부는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깨닫게 해준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로 자기의 아픔보다도 상대방(相對方)의 고통(苦痛)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것은, 분명 독립(獨立)된 두 개의 개체(個體)이면서도, 사랑으로 결합(結合)된 한 몸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용산제일교회 설교 원고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에서) (강신정 목사의 1997년 수첩 기록)어머니, 아버지의 병상 상황을 설교문에 남기신 것인데, 두 분이 이렇게 아파 하셨는데, 저는 몰랐습니다.
이 설교 원고를 찾아 읽으며, 저는 펑펑 울었습니다.
목회가 너무 바빠서가, 고르반이 된 것입니다.
떠나시고 나니, 가슴을 치게 합니다.
6.
여러분,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습니다.
자녀에게 사랑으로 헌신한 부모는, 세월 따라 노인이 됩니다.
노인 된 부모에게 자녀 된 올바른 도리(道理)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 말씀이나, 십계명 제5계명의 가르침은 핑계를 대며 효(孝)를 팽개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땅에서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는 약속이 부모에게 효(孝)를 행함에 있다고 했으니, 제5계명은 복된 계명입니다.
몸에 좋은 것이라면 양잿물도 먹는다고 하지 않던가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것을 약속하셨는데, 우리가 먹지 않고, 핑계를 만들면서 하지 않는다면, 바보 중 바보요, 굴러들어 오는 복을 차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살고, 복을 누리는 길이 몸에 좋고, 삶의 행복이라 하시니, 부모에게 효(孝)를 행하시길 바랍니다.
송강 정철은,“어버이 살아계신 제 섬기기를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했습니다.
공자도,“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가만 두지 않고자식이 효도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수욕정이풍부지(樹慾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불대(子慾養而親不待)‘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성경은 부모에게 효(孝)를 다함이, 복 있는 자가 되는 길임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핑계를 만들며 부모 공경을 피하려 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 하나님의 계명은 복 된 명령이요, 복 된 계명입니다.
어버이 주일을 지키면서복 있는 사람의 길을 바르게 걷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