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잃어버린 교회를 찾아서
- 등록일
- 2026년 1월 7일
- 설교일
- 2026년 1월 6일
1.
병오년(丙午年), 새해를 시작하면서 ‘받은 복, 많이 나눌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말의 해’의 1년을 생각해 보면, 말 타고 다니는 한 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우리가 말을 잘 타려면 체중을 좀 줄여야 할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 운동도 많이 하고 걷기도 하면서 몸의 살을 빼야, 말을 바르게 탈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신앙적으로도 교회가 어떤 상태인지 볼 때, 저는 오늘의 교회가 너무 비만하지 않은가, 정신적으로 비만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교회도 좀 살을 빼야 하지 않는가?
자꾸 ‘채우기’보다 ‘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해 아침, 첫 주간이고 하니까 뭔가 희망적인 말씀을 준비해야겠는데, 자꾸만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었어요.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벨론 벨사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유린하고 성전 기명(器皿)으로 잔치를 열지 않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벽에다가 글씨를 쓰셨습니다.
그 글씨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왕을 저울에 달아보았더니 무게가 부족했다’라는 ‘데겔’이라는 이 말씀이 자꾸 입속에서 오글거리는 거예요.
그날 밤에 하나님 성전의 기물을 가지고 잔치를 열었던 벨사살은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하나님을 모독한 결과죠.
하나님의 저울로 달아서 무게는 모자란 것 같지만, 실제로 이 벨사살 왕은 비대하고 거대한 국가를 경영하는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저울 수치에 모자란 사람이었다고 봅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혹시 우리의 교회, 우리의 신앙이 너무 살이 쪄서, 데겔, “야, 나의 저울에 달아서 모자란다”라는 평을 받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우리가 2026년, 말의 해에 우리의 비만이, 교회는 물론 수치로는 줄었지만, 정신적으로 그렇 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좀 더 반성하면서 체중을 줄이는 한 해를 살아, 연말에 오늘 마태복음에 예수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를 향해서 “I don’t know you. 내게 떠나라.” 이렇게 얘기하셨는데, “내가 너를 몰라” 하는 이 말씀이 바뀌어져서 “I know you.” 우리를 기억하시고 축복하시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
저는 노회로부터 신년하례회 설교를 부탁받고 2025년 제110회 총회 선언서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총회는 “살아계신 하나님, 처음 사랑을 회복하게 하소서!” 로 주제를 정했습니다.
오늘 두 곳의 성경 본문도 총회가 정한 주제에 맞춘 본문입니다.
주제 설정의 이유를 밝혔는데“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데, 이 시대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고,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인간의 교만으로 모든 생명의 신음이 더욱 깊어진다”라고, 오늘의 교회가 당면한 현실을 진단하였습니다.
동시에 시대만이 아니라, 교회도 세상의 불의에 오염되었다고 자책했습니다.
총회 선언서 내용을 그대로 발췌하여 말씀드립니다.
“교회가 자기 의로움에 취하여 세상과 등진 채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사랑하기보다 정죄하고 심판하는 독단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할 뿐, 주님의 뜻을 행하며 좋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총회 선언서의 고백입니다.
구구절절 올바른 반성의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반성의 말이 2025년 제110회 총회에서만 선언서에 기록된 말일까요?
저는 2025년 이전의 선언서들도 살펴보았습니다.
창피하게도 매년 총회원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선언서가 발표됐습니다.
매년 반복되었습니다.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선언서는 훌륭한 말 잔치로 끝난 선언서임을 증명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3.
구미정 교수가 한국교회를 진단하기를“한국교회는 이 땅의 근현대사와 어깨를 나란히 성장하면서, 국가주의니, 경제주의니 하는 금 신상에게 번번이 절했습니다. 그 대가로 풍요와 번영을 챙겼습니다. 말하자면 ‘상승 타락’입니다. 한국교회가 차린 대형마트에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탐욕의 열매가 즐비합니다. 부자 되셔요, 성공하세요, 귀를 간질이는 설교에 더하여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끼어 파는 상술이 넘쳐납니다.” 라 했습니다.
누구도 이 진단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총회가 “살아계신 하나님, 처음 사랑을 회복하게 하소서!” 한 것은, 우리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라 믿습니다.
요한계시록 아시아의 7 교회에 대한 계시의 말씀을 따르면,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그래, 내 교회 세우고 키우느라고 수고한 것, 인내한 것, 믿음을 지킨다고 헌신하고 희생한 것 잘 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와 교인들아. 책망할 것이 하나가 있구나. 너희는 처음 사랑을 버렸구나. 회개하라. 회개하지 않으면, 네 촛대를 옮기리라.” 이 내용을 여러분이 잘 아십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십자가가 없는 교회, 주님의 뜻이 소멸하여 가는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는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자랄 수 없고, 성장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기운인 십자가가 없고, 주님의 뜻이 소멸하여 가는데, 무엇을 가지고 자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처음 사랑, 곧 십자가를 잃어버린 교회는 더 이상 주님의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이 교회에 대한 또 하나의 설명이, 마태복음 7장 산상수훈에 예수께서 더욱 확실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은 교회는,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없습니다.
불법을 행합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교회를 향하여 주님이 무엇이라 하십니까?
“나는 너를 모른다. 내게서 떠나라. I don’t know you.” 얼마나 무서운 선언인지 모릅니다.
저는 우리가 새해 첫 주간에 우리가 어떻게 한 해를 살아야 할까? 할 때, “내가 너를 모른다”하는 예수님의 선언을 듣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여, “I know you.” 라는 말씀을 듣도록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4.
제가 아는 한 교회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선교사들이 선교활동하며 사용하던 땅과 건물을 조건 없이 A 교회에 기증하고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A 교회 당회는 시내 한복판의 값비싼 땅을 어떻게 할까? 논의한 끝에, 고층 아파트를 지어, 임대 사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A 교회 당회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선교사들이 땅을 남겨놓고 떠났을 때, 어떤 기대를 했을까? 되물으면서 선교사들의 기대에도 맞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임대 사업으로 돈을 벌려는 발상 자체가, 교회를 비대해지려는 생각이라고 여기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목사입니다.
강남의 B 교단, C 교회는 새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지하철역에 이어진 지하 통로를 불법으로 연결했습니다. 주님의 교회로서 불법으로 실행한 이 일이 편리성은 얻었을지 몰라도, 올바른 행위였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일은 “예수께서 불법을 행한 자들아” 하신 말씀에 해당하는 일이 아닐까요?
우리는 어떤 일을 실행하기 전에 예수님의 말씀 앞에 서서, 한 번쯤 고민해야 할 일이라 말씀드립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질 것이라고 질책하시고,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강도의 소굴이 된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져야 하며, 불법이 가득 찬, 사랑이 사라진 곳은 더 이상 지성소도, 거룩한 곳이 아니라는 선언인 것이죠.
그래서 이 예루살렘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가 남지 않도록 무너지고, 그리스도의 몸인 주님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5.
우리가 잃어버린 교회를 찾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 중 쓴맛이 나는 말씀 앞에 우리를 세워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4:33에서“누구든지 자기의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여러분, 예수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때. 여러분은 모든 소유를 버릴 수 있습니까?
버릴 수 없다면,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데, 예수님의 말씀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가요?
예수님은 누가복음 18:22에서 영생의 길을 묻는 부자 청년에게“네게 한 가지가 부족한 것이 있구나.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부자가 아니겠지만, 이 부자 청년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할 수 있나요?
도대체 예수님의 이런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신 것입니까?
저는 야고보서 1장 15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라는 말씀에서 길을 얻습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모든 게 채워져 있어 일용할 양식에 부족함이 없었지만,‘더’의 ‘덫’에 걸려서, ‘더’의 ‘유혹’에 넘어가서,결국 “먹지 말라”라는, 그것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간 것과 같은,이러한 행위가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더’의 ‘덫’을 뿌리치는 길이 무엇일까?
나누기, 버리기, 쌓아두지 않기, 창고문 열기, 사망해 잇대어 있는 욕심에 기웃거리지 않기,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이 걸음을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의 해에 말을 탈 수 있는 우리의 체중 줄이기, 이 신앙의 길을 우리가 걸어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6.
저는 작년 11월 16일 기독교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깜짝 놀라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황청에서 새 교령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의 핵심적인 것이 무엇이었냐 하면,우리는 성모 마리아를 더 이상 공동 구세주로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로마 교황청에서 발표한 내용이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서 내려왔던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인데,마리아 신격화는 민간 신앙의 결합으로 된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마리아는 구원의 협력자일 뿐,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라 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를 구별하는 신학적 장벽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사라졌습니다.
루터가 교황을 ‘적그리스도’라 부르며 개혁했던 교리적 단절이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가톨릭 교황청에서 교령으로 발표했다는 겁니다.
가톨릭이 변화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보수적인 종교가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데,오늘 우리 개혁교회라고 하는 우리의 교회들은 어떤가요?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수많은 선언서를 만들며 회개한다는 말만 늘어놓은 세속화된 우리의 교회를 떠올리면서부끄러운 마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우리가, 우리의 교회가 ‘더’의 ‘덫’에 걸려서 채우기, 쌓아두기, 창고문 걸어두기, 욕심과 욕망에 기웃거리기에 힘을 쓰면서정말 그렇게 걸어가려고 한다면, 교회가 어떻게 될까요?
손으로 물을 아무리 담으려고 해도, 결국 손가락 끝 틈새로 물이 빠져나가듯우리의 교회는 피폐해지고, 교인은 점점 줄어들고,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돌아설 때입니다.
저는 2026년을 우리가 그런 해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럴 때 연말에 이르면,주님은 우리를 향해서 “I know you.” “내가 너를 안다, 네가 걸어온 그 길, 말을 타고 달려온 그 걸음을 내가 안다.” 라고 인정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한번 해봅시다.
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도우실 겁니다.
기도하시죠.2026년을 우리에게 잃어버렸던 주님의 교회를 회복하는 한 해로 살아갈 수 있도록,또 우리 서울노회가 앞장설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축도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와서울노회 모든 교회와 성도들과새해를, 잃어버린 교회를 찾아주님으로부터 내가 너를 안다고 인정해 주실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하는모인 우리 모두의 머리 위에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길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