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가난의 행복

가족신년모임 설교 원문에 실린 그림 또는 사진 1

성경: 누가복음 6:20, 마태복음 5:30
찬송가: 427장

1.

윤 인석 장로님으로부터 설교 부탁을 받고 묵상하면서, 어떻게 한 해를 시작할지 그려보았습니다.2026년은 병오(丙午)년, 말(馬)의 해입니다.

새해 첫날, 올 한 해 동안 우리는 말 타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을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몸의 체중을 줄여야겠다, 몸이 가벼워야지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체중을 줄이려니까 매일 걷기 해야 하겠고, 달리기도 좀 열심히 해야겠구나. 또 먹는 것 알맞게 먹고, 과식은 금물이구나 하면서, 욕심을 버려야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을 떠 올리면서, 신앙으로 체중 줄이기는 어떤 것일까? 이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말을 타기 위해서 체중을 줄여야 하듯, 한 해를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도 체중 줄이듯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2.

먼저 떠오른 예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면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중에“일용할 양식으로 감사해라” 하는 말씀을 주셨잖아요.

마태복음 6장 11절에서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했는데,누가복음 11장 3절에서는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했습니다.

일용할 양식, 이것을 기도하라 했어요.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사실 첫 사람 아담이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에서 생활할 때,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일용할 양식에 감사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더’라고 하는 ‘욕심’이 생기면서 타락하게 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 타락하여 쫓겨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는데,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종살이라고 하는 것은, 돌로 탑을 쌓고 문명을 만들고, 도시 속에 머물고 살며, 노예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한 겁니다.

여기에서 이끌고 나온 광야에서의 생활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만나와 메추라기로 일용할 양식을 삼고 살았어요.

그러니까 가장 자연적인 삶의 태도가 뭐냐?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는 태도구나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신앙적으로 일용할 양식으로 감사한다는 것은나누기, 버리기, 쌓아두지 않기, 창고 문 열기, 사망에 잇대어 있는 모든 욕심에 기웃거리지 않기, 이것들이 말의 해인 우리에게 요구되는 신앙의 길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우리에게 솔직히 좀 불편하긴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정직한 대면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의 신앙의 습관에는 예수님의 말씀 또 성경 말씀을 새기며 살면서,내게 좋은 말, 자기가 은혜를 받았다고, 위로를 받았다고 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만마음에 새기며 사는 경향이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예수님의 말씀 중에 단맛에만 맛 들여 귀 기울이는 태도,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태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더 깊어지려고 한다면, 한 걸음 더 내디뎌서예수님의 말씀 중에 쓴맛이 나는 말씀, 그 말씀으로 자신을 새겨보고, 세워볼 때신앙이 깊어지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예수님의 말씀 중 쓴맛이 나는 말씀을 말씀드리려고 하니까한번 그 말씀 앞에 자신을 세워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듣고, 갈등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예수님은 누가복음 14장 27절에서“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제자가 되고 싶은데,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따르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 라고 하셨어요.

여러분, 이 말씀 앞에 설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또 누가복음 14장 33절 예수님의 말씀에서는“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이 말씀을 액면대로 생각한다면,우리가 모든 소유를 버릴 수 있나요?

버릴 수 없다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이 말씀에 걸리게 되는 거죠.

예수님에게 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질문했던 부자 청년에게도똑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와서 나를 따르라.”(눅 18:22)우리 가족 중에는 다 팔고, 선교사로 멀리 가난한 나라로 나간 사람 있어요.

있긴 하지만,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말씀대로 살아낼 수 있을까?

예수의 제자가 되고 싶은데, 예수님의 말씀 앞에 서보니까, 고민이 되고 갈등하게 되는 겁니다.

여기 설교하는 저도 늘 이 갈등 속에서 어떻게 이 말씀을 설교해야 할까?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던 목사 중 한 사람입니다.

이런 말씀, 예수님의 껄끄러운 말씀을 생각해 보면감히 나는 예수의 제자다, 예수의 제자가 되고 싶어, 나서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예수님 앞에,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우리는 고민하게 됩니다.

4.

이 새해 첫날,저는 2026년을 말 타고 다니는 저의 모습을 그려보면서산상수훈(山上垂訓) 팔복(八福)의 첫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누가복음 6:20은, 예수님께서 “너희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라 하십니다. 누가복음이 더 원본입니다.

너희 가난한 사람 복이 있다고 했어요. ‘가난’ 앞에 어떤 수식어가 없습니다.

이것을 마태복음 5장 3절은 약간 교회적으로 해석해서,“심령이 가난한 사람, 곧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고,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 했습니다.

누가복음의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이나 마태복음이나 하나님 나라, 천국은, 이것을 얻는 자에게는 최고의 가치를 소유하는 것이죠.

가장 귀한 것을 누리는 행복이 가난한 사람 되는 것이고, 심령이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 한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얻게 될까?

성경은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야고보가 말씀한 내용인데,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에 이르게 한다”(약 1:15)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욕심은 사망을 낳게 하는 덫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이 욕심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더’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가 넘어서고만 선이 무엇이냐 하면, ‘더’입니다.

하나님이 사실 금을 그어놨어요.

“이것은 먹지 말아라” 했는데,그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여’(창 3:6)그만 ‘덥석’ 물은 거예요. 일용할 양식으로 충분했는데 ‘더’ 먹은 거예요.

‘더’의 ‘덫’에 걸려 넘어지자, 아담과 하와가 불행해진 겁니다.

행복이 멀어졌어요. 깨져버렸어요.

이미 에덴동산에서의 삶은 모든 것이 충분했지만, 그것에 감사하지 않고‘더’의 ‘덫’에 걸려서, ‘더’ 채우려고 했던 결과, 에덴에서의 추방이라고 하는 불행한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것이 가장 귀한 가치요 우리의 행복이라고 할 때, ‘더’의 유혹, 시험 앞에서, 우리가 할 게 뭐냐 하면? 이거예요.

STOP!

멈추어야 합니다.

‘더’를 안 해야 합니다.

이 ‘더’의 뒤쪽엔 무엇이 있느냐?

멈추지 않고 계속 걸으면, 끝에 사망(死亡)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살고 싶으면, 지금 멈춰 서서, ⮏(유턴)을 해야 합니다.

어디를 향해서 가야 될까?

바로 에덴동산을 향해서 가야 합니다.

처음 자리를 회복하는 자리로 가야 돼요.

가족신년모임 설교 원문에 실린 그림 또는 사진 2

그래서 저는 오늘, 우리가 욕심의 덫에 걸려서 나가려고 하는 길을 한문(漢文)으로 표현해 봅니다. 부(富)자를 보셔요.

지붕(면(宀):집 사방이 지붕으로 덮어 씌워져 있는 집)이 있어요.

한 사람(一)이 있고, 그 사람의 입(口)이 있고, 밭(田)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가족을 일용할 양식을 먹이고, 밭이 충분히 있어서 지붕(宀)을 덮어놨어요.

쌓아뒀다는 얘기죠.

이것이 바로 부(富), 우리가 추구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창고가 채워져 있어요.

다음 글자는 우리가 좋아하는 복(福) 자입니다. 우리가 복을 얼마나 원합니까?

복(福)의 변인 시(示)자는, 기원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 복(福)자를 보면, 지붕(宀)이 있던 부(富)자에 지붕(宀)이 없어졌는데, 이것은 창고가 열려있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집 재물, 여러분의 집 소산(所産)이 창고가 열리어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복 있는 사람, 복자(福者)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부자 되세요.” 라고 하는데,잘못 기원하는 거예요.

부(富)는 폐쇄되어 그 속에 갇혀버리게 합니다.

그러나 지붕을 없애면, 창고의 문을 열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복(福)이 됩니다.

5.

‘더’의 ‘덫’에서 헤어 나와 걸어가는 그것이 뭐냐?

가난을 향하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팔복의 두 번째 복에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이 행복이 아니라, 쇠사슬이 되고, 축적하는 그것이 무거워져서 우리의 몸을 죽음을 향해 가도록 하는 그곳에서 해방되어서,가난을 향하는, 가난해지는 걸음을 걷기 시작할 때,하나님의 나라, 천국 사람이 되는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오늘,“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하는예수님의 말씀 속에 담겨있는 뜻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 오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 우리가 좀 체중을 줄였잖아요? 줄일 수 있잖아요?

지금 냉장고 속에, 옷장 속에 있는 것으로 충분히 감사하며 살 수 있는데. 꼭 뭐 새것이 나왔다고 광고할 때, 유행에 좀 안 따르면 어때요? 옛날 옷 좀 입고 다니면 누가 욕하나요? 그게 요즘은 오히려 패션이 되더라고요.

이렇게 해서 절약한 것을 어떻게 할까요?

선교지에 가서,정말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으로 오셨는데, 그 예수님 만나서, 가난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위해서 애쓰는 이들을 위해서 후원한다든가 하면 절약한 것이 큰 의미가 되겠죠?

우리 주변에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이들 있으면, 그들을 도와서 자그마한 사랑을 나누려고 그 절약한 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것을 한번 애써 본다면, 더 소유하는 일을 멈추어서 걸어가는 그 걸음을 하나님이 복되다 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서 2026년 말에, 체중을 줄여서 잘 달려서 한 해가 작년보다 덜 소비하면서 살았어. 그래서 기후도 좀 좋게 만들었어. 이런 자부심을 가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고 기원합니다.

기도하시죠.

예수님은 자기를 버리시고 나누시고 생명까지도 나누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이고, 이 십자가의 은혜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2026년 우리 모든 가족 되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