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네 이름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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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제가 은퇴를 하고 나서 저의 지나온 목회를 돌아보면서 굉장히 고민에 빠졌던 문제 한 가지를 여러분에게 먼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축복받는 거 좋아하시죠?
목사가 예배 마지막 기도로 축복 기도하죠? 여러분은 “아멘” 합니다.
그런데 그 축복의 기도가 어떤 내용인가요?
그 내용이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이 복을 받고 싶다 할 때 어떤 복을 받고 싶습니까?
다 소원하는 게 있죠?
가난하면 돈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축복 기도 해 달라고 합니다.
사업이 성공하고, 일이 잘 돼서 돈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시겠죠.
또 내가 사회적으로 지위가 너무 낮아서, 소외도 당하고, 사람들로부터 멸시도 받고 해서 속상했는데, 나한테 좀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지도록 축복해 주십시오.
보통 할 수 있는 기도죠.
그런 기도 해보셨죠?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것은 나름대로 권세를 쥐는 것인데, 사실 나라의 운영이나 사회의 운영이나 이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잘 살고 유세도 부리는데, 그 사람들을 바라보면 속상할 때도 있단 말이에요. 나는 왜 이 모양인가? 그러다 보니까 어떤 기도가 나와요?
나도 좀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자리를 얻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생기고, 그런 축복을 바라게 되죠.
제가 얘기한 이 세 가지 외에, 개인적으로 병이 든 사람,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축복의 내용이 병이 나았으면 좋겠다, 내가 정신적인 고통에서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아뢰고, 이것을 얻는 것을 자신의 축복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조금 더 넓힌다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내 가족, 내 가정이 복을 받아 풍족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나의 한 달 살림하는 생활비는, 총회에서 나오는 연금이 70만 원 정도, 나라에서 주는 노인 연금 집사람하고 합치면 50만 원, 국민연금 20만 원이 다예요. 아이들이 도와주고 그래서 삽니다. 집사람하고 둘이 200만 원 가지고 산다면 잘 사는 거예요? 아닌가요?
잘 사는 거 아니면? 내 얼굴이 어때야 해요?
여러분들 볼 때 제 얼굴이 쭈그렁 방 퉁이 되어서 맨날 신경질 부리고, 화를 내고, 홧김에 술 한잔 먹고 부수고 난리를 치고 애꿎은 가족에게 화풀이하고 그래야 하나요? 제 얼굴에 그런 얼굴이 있어요? 없어요?
사실 풍족하게 넘치진 않고 빠듯한 생활이긴 하지만, 모자라지 않아요.
기뻐요.
나는 일용할 양식에 충만한 은혜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뻐요.
그래서 나는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제게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도록 한 그것이, 내게 주신 축복이요 은혜로 믿기 때문에, 나는 소유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서 제가 왜 고민이 있었다고 얘기하는가 하면, 모든 사람이 같은 신앙을 가진 건 아닙니다.
다들 뭔가 좀 더 가지고 싶고, 더 누리고 싶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다른 사람한테 위세를 부리고 싶은 것을 소망하고 그것을 축복해 달라고 목사에게 부탁했는데, 지난날 목회하면서 많은 축복 기도를 해줬는데, 교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해달라고 축복했단 말이에요.
이것이 왜 내게 고민이냐 하면, 과연 하나님의 뜻에 맞는 축복인가 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축복이라면 문제가 없는데, 만약 하나님이 싫어하는 축복이었다고 한다면, 내가 “축복합니다”라고 한 그 축복이, 제가 여러분들을 축복해서 잘되도록 한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거라면, 결국은 하나님은 싫어하셔서 치실 거예요. 제가 축복한 그 축복이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매를 맞게 하는 일이 되었다면 어쩔까요?
저는 그런 두려움이 목회할 때는 깨닫지 못하다가, 뒤늦게서야 그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굉장히 고민이 많고 내가 정말 축복한다고 하면서 큰 죄를 범했구나.
진짜 축복을 받게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하는 축복을 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부끄럽고 교인들한테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서 바른 말씀을 전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오늘 제가 설교 전에 드리는 말씀이에요.
- 하나님을 믿으시죠?
예수님 따르시죠?
그러면 성경 속에 있는 인물들을 알아야 하겠죠?
성경 속에 있는 인물 중에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사람이 많지요. 예를 들면, 아담도 알아야 하고, 노아도 알아야 하고, 아브라함도 알아야 하고, 이삭도 알아야 하고, 그리고 야곱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모세도, 여러 예언자, 다윗, 솔로몬, 바울, 베드로, 야고보, 요한도 알아야 합니다.
신구약을 통틀어서 그래도 꼭 알아야 할 사람 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면, 저는 야곱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신구약을 통해서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열두지파의 시조가 된 야곱이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새 이스라엘이니까 새 이스라엘 열두 명도 따지고 보면 야곱의 전승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야곱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어떻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것을, 오늘 성경을 통해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 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너 고향을 떠나라. 아비 집을 떠나라” 했더니 순종하여 떠났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라 합니다. 따라서 해봅시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무엇으로?
순종.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순종으로!”
금방 이해가 될 거예요.
그러면 그 아들 이삭은 뭐냐?
아버지가 모리아 산에 가서 아들, 100세에 얻은 아들, 하나님의 약속, 네 후손을 하늘의 별같이 바닷가에 모래처럼 많게 하리라 한 약속의 아들을 번제물로 드리라 했어요.
번제물이라고 하는 건 가슴을 가르고 안에 있는 내장은 다 버리고, 그 나머지를 불태우는 제사예요.
12살짜리 아들한테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짐을 지우고서, 모리아 산을 찾아간 겁니다.
이 모리아 산이 나중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곳, 예루살렘입니다. (대하 3:1)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려고 그래요.
여러분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이 아들이 “아버지, 불태울 화목은 가지고 올라가는데, 왜 번제 할 어린 양 제물은 없습니까?” 묻습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길을 걷고 있어요?
100세에 얻은 아들이었잖아요. 이 아들을 죽이기 위해서, 번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올라가는데 “아버지 왜 제물이 없습니까?” 물으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가 “네가 재물이다.” 이 말은 할 수 없고, “하나님이 친히 준비해 주시겠지.” 그랬단 말이에요.
아버지가, 어떻게 했어요?
모리아 산에 정해진 곳에 가서, 아들을 꽁꽁 묶더니 칼을 들어서 목에다 댄 거예요.
렘브란트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보면,아주 고뇌에 찬 얼굴로 아들을 보질 못하고 그냥 칼을 목에 들이대고, 다른 손으로 아들의 눈을 가립니다. 이삭은 빛을 받은 뽀얀 목과 가슴을 그대로 내놓고 하늘을 향하는 몸짓입니다. 한번 렘브란트라는 화가의 그림을 보십시오.
그랬는데 하나님께서 가로막고, “내가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지 알겠다”라 하며, 숫양 한 마리를 대신해서 번제로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비로소 아브라함은 칼을 놓습니다. 순종의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이곳을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셨다, 예비해 두셨다’ 하는 곳이 되었죠.
아멘.
이삭에게는 이것보다 큰 일이 없습니다.
만약 나의 아버지가 나를 그렇게 했다면, 나는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 안 믿었을 거예요.
어떻게 아들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는 아버지가 있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이삭은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내 목숨을 바치려고 했을까? 질문하며, 여기에서 내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구나 하는 것을, 아버지의 행위를 통해서 깨달은 것입니다. 이 믿음을, 아버지의 그 믿음을, 이삭은 가슴 속에 품고 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갔는데, 나는 아들의 이 믿음이 아버지 믿음보다 더 크다고 생각해요.
- 이삭이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딸 리브가(창 24:15)와 가정을 이루었는데,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다가, 60세가 됐을 때 쌍둥이를 낳습니다. 맏이는 빨간 애를 낳았어요. 그래서 ‘에서’. ‘붉음’이라고 하는 이름을 주었고, 둘째 녀석이 나오는데 뱃속에서 맨날 싸웠대요. 둘째가 형 발목을 꽉 붙잡고 따라 태어났어요. 그래서 둘째 아들의 이름을 ‘야곱’, ‘발꿈치를 잡다’ ‘움켜쥠’이라고 지었어요.
자, 이제 야곱 이야기를 합니다.
야곱이라는 히브리어가 ‘아카브’인데, 뜻은 ‘속이는 자’ ‘거짓말쟁이’입니다.
이 ‘아카브’가 ‘야코브’가 되고, ‘야코브’가 ‘야곱’이 된 겁니다.
그것이 ‘움켜쥔 손’이에요.
움켜쥔 손.
야곱은 이름대로 산 거예요.
형의 발목을 움켜쥔 손으로 붙잡고 나왔죠.
야곱의 형 에서가 얼마나 호방하고 호탕한 사람인지 아시죠? 거침이 없어요.
어느 날 사냥을 하다가 배가 고파 집에 왔는데, 마침 동생이 팥죽을 끓이니까 “야, 그거 좀 다오. 한 그릇 먹자.”
야곱이 뭐라 그랬어요?
“형의 장자권(長子權),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팔라. 그러면 내가 팥죽을 줄게.”
에서는. “아, 그거? 뭐 말로 준다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내가 지금 배고파 죽겠는데, 장자권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 하며, “그래, 팥죽 줘.”
야곱은 “맹세해.”
“아, 그래, 그래. 맹세하지, 맹세해. 팥죽 한 그릇만 주면 내 장자권 너한테 넘겨줄게.”
“맹세했지?” “맹세했어!”
그래서 먹었어요.
대범하고 호방한 에서는, 이 일을 마음에 담지 않고 곧 잊어버렸을 것이지만.
야곱은 이 맹세를 움켜쥐었습니다.
야곱은 장자권을 얻은 거예요.
장자권이 얼마나 중요한지. 에서는 가볍게 여겼고, 야곱은 귀하게 여겼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았다(창 25:33) 하고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창 26:34), 옛 개역 번역은 “경홀(輕忽)히 여겼다” 했습니다.
장자권을 얻었으니까, 그다음에는 어머니 리브가가 협조합니다.
이삭이 나이 들며 눈이 어두워졌어요.
이삭이 백내장을 앓았을 것으로 짐작해 보는데. 리브가는 에서의 사냥하는 냄새나는 옷을 야곱에게 입히고, 양털 수염도 붙이고. 가짜 에서를 만들어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습니다.
나는 이삭이 에서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고 생각해요.
알았지만 모른 척하고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셨구나’ 하고 야곱에게 축복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 야곱은 아브라함의 축복, 이삭의 축복을 형에게서 가로챈 사람입니다.
이것도 이름대로죠.
그랬더니 노발대발한 사람이 생겼어요. 그의 형이죠.
평소에도 얄밉게 행동했던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아버지만 죽어봐라. 그러면 네 목숨은 내 거다.”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이래서 야곱이 도망을 갑니다. 어머니의 오빠인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도망을 가는데.
다음 얘기는 많은데, 간략히 설명하면 그곳에서 야곱은 성공해요.
아내가 네 사람이 되었습니다.
레아와 라헬 실바와 빌하, 네 아내가 열한 아들을 낳아요.
그리고 외삼촌을 슬그머니 속여 약한 양들은 전부 외삼촌 쪽으로 돌리고, 건강한 놈들만 자기 쪽으로 돌려, 자기의 낙타나 염소나 양이나 종들이 무진장 많아졌죠.
그래서 귀향할 때 형에게 보내는 예물이 창세기 32:13-15에 있는데, 어마어마했어요.
소위 말하여 축복받은 겁니다.
이제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혼자 하란까지 가서 성공하여 대가족을 이루어, 20년 만에 고향을 향해서 떠나는 겁니다.
그런데 이때 야곱이 뭐라고 얘기를 하는가 하면, “나는 주께서 내게 베푸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 더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너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습니다.”
(창 32:10)고향으로 오는 길에서 천사들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사자에게 한 말이에요.
내가 은혜를 받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가만 보니까 내 지팡이와 내가, 내 지팡이 이것만 가지고서 요단강을 적수공권으로 건넜지만, 내 지팡이,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이렇게 내가 성공했습니다. 부자가 됐습니다.
내가 누리는 축복이 누구 힘으로? 내 힘으로! 그렇게 해서 형한테도 예물을 뇌물로 보내고. 얍복강 가에서 머무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4. 이것이 참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이 혹시 조금의 재물을 모았다면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내 힘으로, 내가 얼마나 고생하고 뼈 빠지게 일해서 얻은 건데, 이런 생각 안 하시겠어요?
외국에서 오신 우리 형제들, 한국에서 어떻게 돈을 벌어서 내 나라에 있는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또 자녀들이 있으면, 자녀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뼈 빠지게 일하고 있는 거야. 내 힘으로! 지금 이러신 거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해요.
여기에서 야곱이 소중히 여긴 것이 뭘까? 질문할 때, 성공입니다. 물질적인 풍요, 편하게 말해서 부자가 되는 것, 그러니까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야곱은 삼촌 집에서 20년 종살이를 하면서도 이것을 잊지 않았어요. 돈 없으면 힘이 없는 거야. 어떡하지? 돈을 벌어야 해. 양심을 속이기도 했고, 내가 내 지팡이를 의지하여 가정을 이루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재물을 축적했고, 오늘이 있게 했으니까, 내가 나를 보아도 “와! 대단하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얍복강에 도달한 겁니다. 여기에서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해요.
제가 서울역 가까이에 있는 성남교회라는 교회에서,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교회학교 총무로 봉사할 때, 그때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었어요. 저는 이제 성남교회를 떠나고 목사가 되고 세월이 지났는데, 그 어린 학생을 만났어요. 어린아이가 아니죠.
대만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성남교회에서 전하는 간증을 들었어요. 한국 김을 대만에서 가공하여 온 세계에 판매하는 기업을 운영합니다.
한국의 김이 얼마나 인기입니까? 없어서 못 팔아요. 성공했는데, 간증을 들어보니 지금의 성공이 실패를 딛고 일어난 거예요.
비슷한 일을 하며 코스닥에 상장할 정도로 성공했었는데, 믿었던 사람의 배반으로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고 빚덩이를 끌어안게 돼서 모든 게 다 영이 되었어요. 그때 박 장로님이 고통 속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듣고 붙잡은 말씀이, 시편 119편 71절과 72절이에요.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장로님은 ‘믿음이 없는 성공은 독(毒)이다’라고 말합니다. 성공한 것 같지만 믿음 없는 성공은 독이 되어 뒤집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원숭이를 잡기 위해서 항아리 안에 맛있는 것을 두면, 원숭이가 손을 넣어요. 그러면 원숭이는 잡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원숭이는 한 번 꽉 잡은 것, 절대 놓지 않는답니다. 그걸 동영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정말로, 원숭이가 손을 안 빼고 잡힙니다. 사람 같으면 놓을 텐데.
그래서 믿음이 없는 성공은 독이 됨을 체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어서 성공한 것 같았는데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그 고통 속에서.
시편 119편 71절의 말씀을 얻어 “고난 당한 그것이 내게 유익이 되었다”라고 고백하고.
그다음에는 모든 회사의 일들을 선교에 목적을 두고 기도하고 훈련하고. 모여서 찬양하고 성 경 말씀을 연구하면서 회사를 운영했더니. 지금 세계에서 유명한 부자 기업이 되었습니다.
재물 욕심으로 패망했던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 뭔가?
움켜쥔 손을 펼 줄 알고 나눌 줄 아는.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을 혼자 독식하고, 배를 채우고, 회사를 크게 하고. 내가 권위를 누리고, 명예를 차지하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그렇게 축복해 주시는 이유가 나누라, 줘라, 비워라, 하는 말씀을 담았기에. 그것을 깨달았다는 거예요.
이제 야곱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내 지팡이를 짚고 살아온 야곱이 한밤중에 홀로 남았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와서 씨름을 겁니다. 씨름이라고 하는데, 사실 더 발전하면 싸움이요, 전쟁입니다. 싸움을 걸어왔다는 거예요. ‘얍복’이라는 말과, 히브리어로 ‘씨름하다’라는 의미와 같은 것입니다. (얍복나루에서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어떤 사람’은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밤새도록 씨름했는데 야곱을 이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야곱도 조일성 목사님처럼 힘이 센가 봐요. 내가 조 목사님하고 씨름하면 이길 수 있겠어요? 버티기는 하겠지만, 이길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서로 타협해야 해요. 날이 새면 이분은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요구사항을 제시하는데, ‘어떤 사람’은 “나로 가게 하라”였는데, 야곱은 “내게 축복(祝福)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야곱이 생각한 ‘축복(祝福)이 무엇인지’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야곱은 지금 다 가지고 있어요.
네 아내도 있고, 열한 아들도 있고, 양과 나귀와 낙타와 많은 종이 있어요.
형에게도 떼어주고도 재물에 부족함이 없는 부자예요.
무엇이 더 필요했을까요?
야곱이 축복해달라는 건 “더, 더, 더” 이것을 요구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의 마음에 평안이 없었어요. 기쁨이 없었어요. 늘 불안했어요. 형이 나를 죽이지 않을까?
형과 어떻게 하면 화평을 누릴 수 있을까?
그래서 “축복해 주시오” 하는 그 말속에는, 물질을 더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내 마음에 참 평안을 주십시오” 였습니다.
소유가 아무리 많지만 허탈하고 비어 있는 게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빈자리를 “당신의 은혜로 축복해 주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놓지 않겠습니다” 하니까,“네 이름이 뭐냐?” 물어봤어요.
몰라서 이름을 물은 것이 아닙니다.
“너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느냐?”
를 물으신 것입니다.
야곱은 “야곱입니다” 자기 이름을 말합니다. “나는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 지혜로, 오늘까지 누리고, 살고, 채우면서 살아온, 움켜쥔 손을 가진 사기꾼이요, 거짓말쟁이며, 양심을 속인 나입니다.”
고백한 겁니다그랬더니 “너 이제 야곱이라고 하지 마라. 그 이름은 이제 버려라.”
뭐라고 했어요?
“이스라엘”다른 말로 얘기하면, 하나님과 겨룬 사람, 하나님과 겨루어 본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어쨌든 이런 새 이름을 주셨어요.
다른 말이 아닙니다.
“그래, 네가 고백한 대로, 너는 네 힘으로 살려고 했던, 지난날을 다 버리고, 이제는 네가내 이름으로 살아라, 내 뜻으로 살아라, 내 능력으로 살아라, 내 힘으로 살아라.”
이것을 야곱에게 축복해 준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입니다.
사람이 바뀐 것이죠.
그의 가치관이 바뀐 것입니다.
억만금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 뭐였는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 하나님 뜻을 순종하며 사는 것이구나.
이제야 아브라함 할아버지의 신앙, 믿음이 왜 귀한 것인지,아버지 이삭의 그 믿음이 왜 소중한 것인지,이제야 알게 돼서 무릎을 꿇고, 할렐루야, 이 축복에 감사하고 봤더니아침 해가 뜨기 시작했어요.
참 재미나요. 성경에 표현이!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했죠?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에요.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어요.
모세도 10계명을 받은 다음에 하나님 얼굴 좀 보자고 했더니, “야, 이놈아. 너 내 얼굴 보면 죽는다.” 그래서 “너는 내가 지나간 다음에 내 등을 볼 것이다”하고서는, 모세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시고 쑥 하나님이 지나가셨어요. 지나가시니까 손이 저절로 떨어졌는데, 그때 모세가 하나님의 뒷모습만 봤는데도 얼굴에 광채가 너무 강해서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에 수건을 씌웠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와 있는 내용이에요.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죽는 건데, 야곱은 하나님과 더불어 씨름했어요. 씨름하면서 사람이 바뀐 거예요.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저는 이 하나님의 축복을 저의 축복 기원과 비교하면서,“그렇구나. 내가 이제부터 축복할 때는 돈 잘 벌게 해달라고, 성공하게 해달라고, 권세를 쥐게 해달라고, 대통령이 되게 해달라고 하는, 뭐 이런 유의 축복 기도가 아니라, 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서 올곧게 서서, 예수님의 제자로 올바르게 살도록 축복해 주는 것이 바른 축복이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 그래서 여기에서 야곱이 “당신의 이름이 뭡니까?” 그러니까 “이놈아, 그런 건 묻지 마라” 하고, 바로 축복했잖아요? 왜 이름이 중요하냐면요. 고대 중동에서는 그 사람의 이름을 알거나, 또는 귀신이나 신의 이름을 알면 사람이 조종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름을 안다는 건 그를 조종하는 권능을 가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름을 모를 때 우리는 손 들고 질 수밖에 없는데, 이름을 알려주면 안 돼.
우상들은 이름이 있어요? 없어요? 우상들은 이름이 있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뒤에서 조종하는 거예요. 물질도 이름이 있는 거예요. 그렇죠? 바알도 이름이 있고, 아세라도 이름이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은 이름이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나는 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있게 한 신이 나다. 나는 나. 나는 이름이 없다.”
왜? 사람에게 조종을 안 당하십니다. 이제 이때부터 야곱이 변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된 다음에 바뀌어요. 이 장면에서 꼭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야곱이 축복을 요구했을 때의 그 마음 자세입니다.
“너 누구냐? 네 이름이 뭐냐?” 할 때, 야곱은 야곱으로 살아온 자기를 봤어요.
자기를 봤더니 요즘 말로 얘기하면 “나는 죄인이구나.”
를 깨달은 것입니다.
죄인의 삶을 살아온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무릎 꿇고 “야곱입니다” 엎드렸다는 것은, “나는 죄인입니다. 나의 옛사람은 죄인입니다.” 한 것입니다.
내 지팡이만 의지하고 자신만만해서 야곱으로 살아가는 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라고 하는 것을 알고, 무릎을 꿇은 거예요. “당신만이 나를,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담겨있는 내 인간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당신만이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고백하는 것이 “나는 야곱입니다.” 하는 말 속에 담겨있는 무릎 꿇음이에요.
그래서 실제로 야곱은 이때 축복해 주셔서 새 이름 이스라엘을 주시는 이 말씀으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것이죠. 기쁨과 평안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하나님, 할아버지의 하나님이 이제부터 ‘이스라엘, 나의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이렇게 되면 좋겠어요.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난 묻지 않겠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 부끄럽게 살았던지 또 너의 발자국을 보고 너의 흔적들을 보고 네가 살아온 모든 것들을 볼 때에, 거짓과 위선으로 채워졌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문제 삼지 않겠다. 이렇게 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너는 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게 모든 것을 맡기고, 나를 의지하며, 내 뜻대로 살아봐. 이것이 내가 원하는 거야. 너는 야곱의 삶을 버리고 너는 이스라엘로 살아. 내 안에 네가 있게 해야 해. 이것이 나의 축복이야.”
아멘.
그래서 이스라엘이 된 야곱은 달라진 사람이죠변화되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얼굴을 뵙고도 죽지 아니한 야곱이 되었고,아침 해가 돋았다는 것은 새 생명의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문학적인 표현이에요성경 보세요. 브니엘을 지날 때 아침 해가 돋았다(창 32:31)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痕迹), 스티그마가 있다(갈 6:17)고 고백했죠.
야곱도 바울처럼 흔적을 지닙니다.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서 절뚝절뚝 절었습니다. 이후 야곱의 삶을 보면, 창세기 47:31에 요셉을 만납니다.
죽기 전에 요셉을 불러 “요셉아, 내가 죽으면 이 애굽 땅에 나를 묻지 말아라. 나를 내 조상들의 묘 막벨라 굴에다가 묻어다오. 맹세해라.” 하고, 요셉이 “아버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맹세합니다.” 하니까,“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창 47:31) 했습니다.
- 자, 여러분 모두 축복을 좋아하시잖아요?
받기를 원하는 축복이 어떤 축복이면 좋을까요?
저는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더 초즌’(The Chosen, 부름받은 자)이라고 하는 시리즈를 보고 있어요. 너무 은혜가 돼서 음미하면서 천천히 보고 있는데, 이런 장면이 나와요. 시리즈2 마지막 편에서 예수님과 마태가 산상설교를 할 장소에서, 어떤 내용으로 설교할까, 대화하며 설교문을 작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설교할 산상수훈의 내용들을 다 얘기하는데, 시작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선언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내용을 쭉 얘기하니까, 마태가 귀담아듣고 다 기록하고는 “예수님, 그거 별로 인기가 없겠네요. 좋은 얘기보다 나쁜 얘기가 더 많잖아요.” 예수님은 “설교지, 선언이기 때문에 그런 거야.” 하자, 마태는 “그래도 그 방법이 별로 안 좋아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로 시작하면, ‘너 세상에 가서 소금 뿌려라.’ 그렇게 듣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인가 했더니 전쟁이 났을 때, 땅을 나쁘게 만들어 먹을 것이 생기지 않도록 해서, 먹을 것을 얻을 수 없으면, 그 땅을 점령할 이유가 없어 물러가게 하는 방법으로 소금을 뿌린 역사적 경험을 떠올린다는 설명이죠.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에서 그런 일을 한 경험이 있으니까, 소금 되라는 말씀을 들으면,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마태의 생각을 듣고, 예수님이 고민을 해요. 밤새도록 고민하더니,“마태야, 내가 다 완성했다.” “그래서 뭐예요?” “그렇지. 내 설교는 지도야, 지도! 나를 찾게 하는 지도인데, 네 말대로, 소금으로 시작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내놓으신 예수님을 찾아가는 지도의 시작을 팔복(八福)으로 얘기하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복이 있다.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사람은 정말 기뻐하라. 왜? 하늘의 상이 클 거니까.” 말씀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세례 요한을 그립니다. 팔복을 말씀하는 장면들이 아주 묘합니다. 지도라고 하면서 거기에서 하신 말씀은, 팔복으로 말씀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곁에 내가 있으니, 그곳을 찾아가면 나를 만날 거다. 그것이 진정한 하늘의 복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세계에서 가장 검소한 대통령으로 추앙받은 지난 5월 13일에 세상을 떠난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대통령처럼 여러분이 살면 좋겠습니다. 무히카 대통령은 자기 월급 90%를 다 나눠주고 10% 가지고 살았어요. “나는 가난한 대통령이 아니야. 왜? 가난이란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뜻인데, 나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가난하지가 않아.” 사실은 가난했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진 대통령으로 살다가 90세에 떠난, 무히카 대통령처럼, 이름 없이, 빛없이도, 빛이 되어 살아가는 감추어진 별같이 살아가는 사람. 작은 사랑 가슴에 품고, 그 사랑 키우려 땀 흘려 노동하고, 받은 삯을 내배 채워서 불리는 것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나누고 나누는 참 목자 조일성 목사님처럼, 여러분의 목사님은 그런 분이에요.
비우고 나누고 주고 해서 사랑해야만, 사랑이 많아지게끔 하는 사람처럼 살아갈 때 여러분이,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너는 누구냐?” 물음에,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지 생각하면서야곱처럼 살지 말고, 이스라엘이 되어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기도)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지도(地圖)를 받아서, 그 지도 따라가 예수님을 만나 팔복자(八福者)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