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네 이름이 무엇이냐?
- 등록일
- 2025년 9월 24일
- 설교일
- 2025년 9월 21일
1.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의 믿음과 믿음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어떤 분은 성공적인 삶을 살기도 했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실패와 좌절의 과정을 거쳐, 온전한 믿음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만나는 사람에게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고, 그들을 통해서 우리의 올바른 신앙을 갖출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인 야곱을 만나보려 합니다. 야곱은 아브라함, 이삭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의 조상으로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12살의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바치라 했을 때(창 22:2) 이삭에게 번제에 쓸 나무를 지우고, 모리아 산,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대하 3:1) 그곳에 올라갔습니다. 이삭은 어린 나이이긴 하지만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자신을 번제물로 바치며 보여준 아버지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이어받았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신앙을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서부터 이어받았으나, 정작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사람으로 온전히 살기 시작하였을 때는, 오늘 본문의 사건으로부터였습니다.
2.
창세기 25장에, 이삭과 리브가의 사랑은 깊었으나, 하나님께서 리브가의 태를 닫으시어, 이삭은 60세에 쌍둥이 아들을 얻습니다. 리브가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습니다.
맏이는 온몸이 붉게 태어나 ‘에서’라 했고, 둘째는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나 ‘야곱’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야곱’은 히브리어로 ‘아카브’인데 ‘속이는 자, 거짓말쟁이’란 뜻입니다. ‘아카브’가 ‘야코브’로 부르다가 ‘야곱’이 됩니다.
‘움켜쥔 손’, 태어날 때부터 야곱은 이름처럼 살았습니다.
본능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겠죠. 생존경쟁,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세계에서 처절하게 살아남는 길을 선택하며 걸었습니다. 야곱의 살아가는 태도를 어느 누구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대범한 성품의 형, 에서의 단순함을 이용하여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얻었습니다. 배고픈 형에게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팔라”(창 25:31) 하며, 맹세를 요구했고, 에서는 대수럽지않게 여기고 그렇게 했습니다. 성경은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창 25:33-34)고 했습니다.
이후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을 받아, 야곱은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쟁취했습니다. 이 일로 형 에서와는 원수지간이 되었지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축복을 차지한 야곱입니다.
3.
에서의 분노를 피하여, 하란 땅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피하여, 20년 종살이하면서, 레아, 라헬, 빌하, 실바의 4 아내에게서 11명의 아들을 얻고, 외삼촌의 목장 관리의 품삯을 축적하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여정에서, 벧엘에서 꿈을 통해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으나,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9창 28:21)이라 했습니다.
아직 야곱은 할아버지, 아버지의 하나님이지, 나의 하나님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다.
태어난 11명의 아들의 작명(作名)도 레아와 라헬이 지었지, 야곱은 라헬이 마지막 아들을 출산하며 죽기 직전에 ‘베노니’(슬픔의 아들)이라 한 것을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창 35:18)으로 바꾼 것 뿐입니다.
야곱은 교묘하게 외삼촌을 속여 자기의 양과 나귀와 낙타를 불리면서도 “나의 하나님 은혜”라 하지 않고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다.”(창 32:5) 했습니다. 창세기 31:42에서도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셨다. 하나님이 내 손의 수고와 고난을 보셨다.” 합니다. 도 라반과 미스바에서 언약을 맺으면서도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상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했다”(창 31:53)고 했습니다.
야곱은 철저히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 노력으로, 내 재능으로’ 내 재산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도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을 때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창 32:10) 했습니다.
이때까지 야곱은 모든 것을 ‘제 힘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야곱은 외삼촌의 재산이 늘어나게 된 것도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외삼촌 이 아신다. 내 발이 으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다.” 하며, 야곱 자신을 높였습니다.
이것이 얍복강 가에 이른 야곱입니다.
야곱이 여러분 자신과 같다고 여겨집니까?
야곱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4.
성공(成功)입니다.
그 성공이라는 것이 물질적인 풍요, 편하게 말해서 “부자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것입니다.
정말 열심이었습니다.
양심을 속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내 지팡이를 의지하여, 가정을 이루고,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재물을 축적하여 오늘을 누리게 되었으니, ‘내’가 ‘나 보기에도’ 대단합니다.
박찬범 장로의 간증입니다.
서울성남교회에서 신학교졸업 후, 교회학교 총무로 봉사할 때,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소년이 장성하여, 대만에서 김을 가공하여 세계각국에 판매하는 기업으로 크게 성곡한 장로입니다. 그는 과거에 코스닥에 상장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한순간, 하루아침에 부도로 모든 것을 잃은 때가 있었습니다. 이때 깨달은 것은 ‘믿음 없는 성공은 독(毒)’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실패를 통하여 자기가 원숭이 같았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동영상으로 원숭이 잡는 방법을 보여줬는데, 아귀가 작은 항아리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먹이를 두면, 원숭이는 그것을 쥐고 결코 먹이 쥔 주먹을 펴지 않습니다. 결국 잡힙니다. 박 장로는 자신의 과거가 원숭이였다고 했습니다. 재물 욕심으로 패망했던 그는, 시편 119:71-72 말씀으로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5.
움켜쥐는 손으로 ‘내 지팡이’ 잡고 살아온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한밤중에, 홀로 남아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했습니다.
씨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었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씨름하다’로 번역한 히브리어와 발음이 비슷한 얍복강에서, 어떤 사람은 씨름(싸움의 뜻도 있음)으로 야곱을 제압할 수 없어, 싸움을 끝내려면 합의해야 했습니다. 서로의 요구사항을 말하는데,“나로 가게 하라” 하자,“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What is your name?)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 ‘하나님과 겨룬 사람’으로 바뀝니다.
야곱에게 싸움(씨름)을 걸어온 분이, 자신을 하나님, 또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임을 밝힌 것입 니다. 야곱은 “이름을 알려달라” 했습니다.
고대 중동 사람들은 이름을 알면, 신(神)이나 귀신을 사람이 부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세도 부름을 받을 때, 하나님을 향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보낸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출 3:13) 했을 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출 3:14) 곧 “모든 존재하는 것을 있게 한 자다”라 했습니다. 이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물음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야곱에게 축복했습니다.(창 32:29)6.
여기에서 야곱이 “내게 축복하라”한 축복 요청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재물이었을까요?
야곱은 이미 부자입니다. 4 아내, 11 아들, 형에게 보낸 예물만 보아도 어마어마했습니다. (창 32:13-15)야곱의 불안은 에서였습니다. 20년 전 고향을 떠날 때, 형의 분노를 피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분노를 없애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그가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납니다.”(창 32:11)왜 에서가 두려움,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까?
야곱으로 살아온, 야곱 자신 때문이죠.
‘내 지팡이’를 의지하며 살아온 야곱의 삶이 가져온 두려움, 이 두려움이 생산한 불화(不和).
이것을 없애 평화, 평안, 화평을 누리게 해달라는 것이, 야곱이 축복해 달라 한 내용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그리고 이 날밤, 얍복강 가에서의 씨름이 야곱에게는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축복을 요구한 야곱은, 이제야! “나는 당신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 죄인입니다”를 인정한 사건입니다.
‘내 지팡이’를 의지하며, 자신만만했던 야곱으로 살아가는 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무릎 꿇은 것입니다.
자신을 우상화하여 내 뜻대로 살아온 야곱을 내려놓고, “도와주셔요” 두 손 벌린 것입니다.
7.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네 이름이 무엇이냐?” 묻습니다.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닙니다.
야곱의 입으로 듣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음은,“그래, 넌 어떻게 살아왔느냐?” “너는 너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부끄럽게 살지는 않았느냐?” “뒤돌아봐, 너의 발자국을! 살펴봐, 네가 만든 흔적들을! 나의 뜻 없이, 네 뜻으로 만든 자국을! 거짓과 위선으로 채워진 네 삶의 조각들, 속고 속여야 살 수 있다고 하는 세상 속에서 잘 살아왔다는, 네가 성공적이라는 성취 속에 누군가의 눈물을 쌓아 이룬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봐.” “이제, 야곱의 삶은 버려.” “너는 이스라엘로 살아. 네 안에 내가 있어야 해. 이것이 내 축복이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된 야곱, 야곱과 달라진 이스라엘입니다.
변화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옛사람 야곱을 벗어버리고, 새사람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곳 이름을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이라 명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는데(출 33:20), 그래서 모세도 하나님께서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출 33:23)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했으니,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된 야곱은 절뚝거리며 아침 해를 맞이했습니다.
야곱의 몸에는 없어지지 않는 흔적(痕迹, 스티그마)이 남았고, 새 생명으로 거듭났습니다.
이후의 이스라엘이 된 야곱의 삶을 창세기 47:31에서, 야곱은 요셉에게 자신이 죽으면,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고 맹세를 받고,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했습니다.
8.
자. 여러분, 축복, 좋아하시죠?
여러분이 받기를 원하는 축복, 어떤 축복인가요?
혹시 재물, 명예, 권력이 아닐까요?
이것은 예수께서 40일 금식기도 후, 사탄의 유혹에 미끼로 던진 것으로, 예수께서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24에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마태복음 6:33에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했습니다.
먼저 구할 것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사탄이 내민 미끼를 축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결과이니, 저주를 축복한 셈입니다. 저주받는 축복이라도 받고 싶다면, 정말 심각한 병이요, 유혹에 넘어간 믿음이라 하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검소한 대통령으로 불린 우루과이 호세 무히카 대통령이 2025년 5월 13일 별세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가난한 대통령이 아니다. 가난이란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지만, 나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거의 없다”라고 했습니다. 가장 가난했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진 대통령 무히카처럼,
이름 없이, 빛없이도, 빛이 되어 살아가는 감추어진 별같이 살아가는 사람. 작은 사랑 가슴에 품고, 그 사랑 키우려 땀 흘려 노동하고, 받은 삯을 나누고 나누는 참 목자 조일성 목사처럼,
팔 복을 말씀하시며,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자, 화평케 하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긍휼히 여기는 자, 예수 때문에 박해받는 자,그들 곁에 계시는 예수님을 찾아, 그곳에서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자의 복을 누리는 우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