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자격(資格) 4, 순교신앙

자격(資格) 4, 순교신앙 원문에 실린 그림 또는 사진 1

교회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오늘의 교회와 같은 형태의 교회 시작은, 사도행전 2:1-4,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죽임을 당한 후, 제3일에 부활하시고, 부활 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행 1:3)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기다리라.”

(행 1:4)“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한 것에서 ‘약속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5:26에서“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라 했습니다.

요한복음 14:16에서도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하셨고, 요한복음 14:26에서도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세상 떠나신 후 잊을 것을 예측하고, 성령으로 함께 하시며 예수께서 가르친 복음, 예수께서 보여주신 삶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복음서가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이 약속을 남긴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시고, 제자들이 보는데, 승천(昇天)하셨습니다.

이날 이후로, 우리는 천사가 전한대로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라는 전언(傳言)대로, 재림(再臨)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이 오시는 때는 ‘종말(終末)’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늘 종말신앙(終末信仰)이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승천 이후 10일이 되는 날, 120 성도가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쓸 때(행 1:14)였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으로 120명 각 사람에 위에 하나씩 임하여,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행 2:3-4)

2.

이 사건이 최초 교회가 세워질 때의 현상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120명 성도가, 방언이 터져 성령께서 말하게 함을 따라, 온 나라말로 복음을 전하자, “새 술에 취했다”라고 조롱하는 소리도 들었지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날 세례를 받는 사람이 3,000명이나 되었습니다.

베드로 설교의 주제는 단순했으나 강렬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였습니다.

이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은 찔림을 받고 놀라고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아 죽였다” 했으니, 너무나 큰 죄를 범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둘 리 없다고, 두려움에 빠져 “어찌할꼬?”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받고, 죄 사함을 받아라.”

(행 2:38) 하여,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최초 교회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논문이나 책을 읽으며 빠르게 이해하는 방법으로, 책의 중심 개념들의 단어들을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되는데, 이 방법으로 초대교회에 있었던 것을 정리해 봅니다.

‘십자가’, ‘부활’, ‘영생’은 ‘믿음’에 대한 ‘복음’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 나라’, ‘은혜의 해’, ‘희년 선포’는 ‘소망’, 곧 ‘희망’에 대한 것입니다.

‘죄 사함’, ‘용서’, ‘구원’, ‘사랑’은 ‘사랑’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사랑 장’에서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어야 할 것’(고전 13:11)이라 했습니다.

초대교회 안에 믿음, 소망, 사랑이 다 있었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 담긴 중요한 많은 단어 중에서, 핵심적인 것 하나를 선택한다면, ‘십자가(十字架)’입니다.

3.

교회의 상징인 십자가(十字架), 이 십자가에 예수께서 달려 속죄의 피를 흘리시어,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十字架)에 달려, 자신의 생명(生命)을 내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 땅에 오시어, 생명을 내어줌으로 순교(殉敎)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교(殉敎)의 피로 세워졌습니다. 이 교회가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20:22-24에서 사도 바울의 말씀은,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오라고 했습니다.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거기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성령이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시지만, 나는 피할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합니다.”

비장한 결단의 말씀입니다.

순교(殉敎)를 각오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20:28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필 때, 자기를 위하지 말고 성령께서 활동하시게 하라고 권면(勸勉)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순교(殉敎)로 세운 교회라 하신 것입니다.

4.

그렇습니다.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의 피 흘림으로 시작된 교회 역사는, 순교의 피를 흘리며 이어져 세워지며 성장했습니다.

순교로 흘린 피를 먹고 교회는 자라고 확장되었습니다.

세계의 역사를 변화시켰습니다.

교회에 대한 핍박이 순교를 결단하게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핍박이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가져오고,핍박으로 흩어진 성령의 불길이 온 아시아에 교회를 세우게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사도, 선지자들의 터, 곧 순교의 피 위에 세운 교회는(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전진기지가 되었습니다. 2,000년 그리스도교 교회의 역사가 같은 과정을 밟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그리스도교 역사에도 순교의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시작된 천주교에 대한 4번의 박해로, 다산 정약용의 형제들이 순교했고, 1846년에는 1984년에 이르러 성인(聖人)으로 시성(諡聖) 된 조선인 최초의 신부 김대건 신부가 순교했습니다. 1866년 병인(丙寅)년에는 최소 4,000명 이상이 순교했습니다.

조선(朝鮮)의 근대화 과정에서 쇄국정책(鎖國政策)의 강화라는 정치적 이유로 불똥이 천주교로 뛴 결과였습니다.

이 회오리바람의 시련 덕분으로, 프로테스탄트(개신교)는 정치적 이유로 순교라는 어려움 없이, 개방의 물결을 타고 비교적 쉽게 빠르게 선교의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압제라는 민족적 수난과, 6⸱25 동족상잔(同族相殘)의 공산주의와의 이념 전쟁과 후유증으로 많은 순교자가 생겼습니다. 일제의 왕을 신격화한 신사참배(紳士參拜) 강요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한 십계명 제1계명을 강제로 지키지 못하게 했고, 주기철 목사님과 같이 순교의 피를 흘렸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 이념으로 인해 수많은 순교의 피를 흘렸던 것이, 우리나라 그리스도교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런 아픔을 가진 민족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련과 고난,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많은 순교자의 흘린 피는, 대한민국의 그리스도교 역사가 세계가 놀란 한국교회 성장의 밑거름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증언합니까?

교회는 순교의 피가 있을 때, 자란다는 것입니다.

5.

자,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적인 어려운 문제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21세기, 순교할 일이 없는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위해서 여러분의 목숨을 끊을 일이 있을까요?

지금 한국교회가 순교해야 할 만큼 복음을 전하는데 핍박받는 상황이 있나요?

북한이나 중국이라면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순교할 만한 고난이 없습니다.

얼마나 신앙생활 하기에 편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목숨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할 수 있을까요?

“죽으라.” 하면, “죽겠습니다.” 하겠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까?

교회가 십자가의 피, 순교자의 거룩한 피 흘림으로 세워지고, 성장하고, 땅끝까지 퍼져나갔다는 것은 은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교회가 순교(殉敎)로 세워진다는 것도 알고, 믿습니다.

그러면 ‘내가 교회’라고 하는 교회 다니는 우리는 모두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것일까요?

그래야 한다면, 저도 여러분에게 설교할 수 없습니다.

순교해야 하니까, 죽은 제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모두 순교(殉敎)하여 생명을 바치면, 어떻게 교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누구도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합니다. 목사인 저 역시, 이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순교신앙(殉敎信仰)’을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순교신앙을 갖추는 것이, 신앙인으로서 자격(資格)을 갖추는 것임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교회가 순교로 세워졌고, 앞으로도 세워져 가야 함은 틀림없습니다.

모두가 다 순교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서!

‘복음(福音)’이 무엇인지 묻고 답을 얻어야 합니다. ‘복음’은 ‘살림의 말씀’입니다.

사망 권세에 사로잡혀 죽은 자가 된 죄인을 살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 중심에 십자가(十字架)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흘린 피가 십자가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생명(生命)’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순교신앙(殉敎信仰)을 갖춘다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生命)이 담긴 것’을, 주님께서 피 흘림으로 생명을 내놓음으로 세우신 교회를 위해 내놓는 것,이것이 순교신앙(殉敎信仰)입니다.

6.

자, 자신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내게, 나의 생명(生命)이 담긴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로, 시간(時間)입니다.

째깍째깍, 쉼 없이 흐르는 시간은 내게 무한대로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우리의 인생에 제공된 시간은 제한적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때가 있는, 시간의 한계를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째깍째깍, 째깍째깍 흐르는, 시간은 생명입니다.

시간에 나의 생명이 들어있습니다.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내놓으면, 그것이 순교신앙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 예배드리러 나왔습니다.

교회 오는 길, 예배드린 시간, 집에 가는 길에 사용하는 시간은, 모두 나의 생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제한된 나의 시간, 생명을 드려 예배하고, 생명의 양식으로 설교 말씀 듣고자 바치는데, 설교 준비하는 목사가 준비 없이 강단에 오른다면, 그 목사는 외식(外飾)하는 목사가 분명합니다. 목사는 최고의 미쉐린 요리사가 최선을 다하여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처럼, 정성껏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선포해야 합니다.

둘째로, 재물(財物)이 곧 생명입니다.

여러분의 지갑 속에 무엇이 있습니까? 카드죠. 카드를 사용하면 무엇이 나갑니까? 땀 흘려 번 ‘돈’이 나갑니다. ‘재물(財物)’이 나갑니다. 재물이 그냥 얻어지던가요? 시간을 투자하고, 땀을 흘리고, 몸을 움직여 달란트를 사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얻는 재물은 나의 생명입니다. 불로소득(不勞所得)을 제외한, 우리가 땀 흘리고, 시간을 들여 얻는 재물은, 생명입니다.

나의 재물을, 주님을 위해서, 교회의 사역을 위해서 내놓는 것은, 이 역시 순교신앙으로 사는 것입니다.

교인의 헌금은 교인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정말 소중히 다뤄야 합니다. 그런데 교인의 헌금을 가볍게 보는 목사를 많이 봅니다. 선교헌금으로 호의호식(好衣好食) 하는 데 사용하는 선교사도 있습니다. 이런 목사는 하나님께서 벌하십니다.

헌금은 생명값을 치르고, 주님의 몸을 위해 제물로 드린 것이므로 아껴 사용하고,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일 원도 헛되게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셋째로, 우리의 재능(才能), 달란트, 능력(能力)도 생명을 투자하여 얻은 것입니다. 제가 설교하는 목사로 50년이 되었습니다. 이 설교가 잘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여러분이 평하겠지만,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여 설교합니다. 이 설교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신학생일 때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지금은 설교를 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긴 세월 동안의 know, how가 쌓였습니다. 이 know, how가 능력입니다.

피아노 반주자의 반주도 반복하여 연습하고, 피나는 노력으로 얻는 것입니다. 공짜로 가지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의사의 진료 한 마디, 그곳에 길고 힘든 수련의 기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철도원이 쇠망치로 기차의 바퀴를 두드리며, 소리를 들으며 상태를 진단하는 것은 숙련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러한 재능, 능력은 생명을 사용하여 얻는 것이므로, 생명 그 자체입니다.

굼벵이에게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굼벵이보다는 훨씬 더 많은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뭘?” 하며, 꼬리 빼기는, 달란트 나눠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능으로 봉사하는 것도, 순교신앙으로 사는 것입니다.

끝으로, 몸이 생명입니다.

걷고, 찬송하고, 손을 높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만나는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짓고 웃음을 나누는 우리의 몸은 생명입니다.

우리의 몸, 육신은 생명을 담고 품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몸도 생명입니다.

그래서 이 몸을 드리는 일, 몸을 바쳐 행하는 일을 하는 사람, 그에게는 순교신앙이 있습니다. 생명이 담긴 그릇을 함부로 굴린다면, 하나님께서는 화를 내십니다.

우리의 육신, 몸은 생명이 담겨 있어 귀합니다.

그런데 술 취하고, 음욕으로 방탕하고, 마약, 도박, 향락, 폭력, 폭언, 무절제, 탐욕 등으로 몸을 병들게 하고 망친다면, 우리의 몸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엡 2:22)요 ‘성령의 전’(고전 3:16, 6:19)인 것을 망각하는 것이니,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불신(不信)입니다.

순교신앙은 몸을 위하게 여깁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의 생명이 담긴 것을 내놓고, 헌신(獻身)하며 사는 것이 순교신앙(殉敎信仰)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는데,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라 한 말씀에, 바울의 철저한 순교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7.

자, 여러분. 이 광염교회가 무엇으로 세워졌을까요?

저는 설교 준비를 하면서, 광명교회 예배당 건물, 벽돌 한 장, 한 장을 묵상했습니다.

기도하는데,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광염교회 예배당을 이룬 벽돌 하나, 하나가,이 자리를 지키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교인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봅니다.

53년 동안, 광염교회를 목회한 서정덕 목사와 사모, 신범순 목사와 사모, 이선규 목사와 사모, 이건화 목사와 사모, 김창주 목사와 사모, 김찬홍 목사와 사모의 이름도 불러봅니다.) 여러분 모두, 바울이 에베소서 2:13에서 말했듯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 광염교회 성도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형제자매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받은 형제자매로 구원의 방주인 광염교회를 여기에 세우고, 지키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경계할 것이 있습니다.

구원의 방주(方舟), 벽돌 하나를 빼어 바람구멍을 만들어 시험과 유혹이 방주에 들어오게 하는 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벽돌에 금이 가게 해서, 벽돌을 깨뜨리고는 ‘좋아라’ 한다면, 성도가 할 짓이 아닙니다. 구멍을 만들고, 틈을 만들면 그곳으로 사랑이 빠져 나가게 됩니다. 결국 구원의 방주는 가라앉게 됩니다. 이 구원의 방주는,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떠나보낼 때, ‘역청(瀝靑)’을 발라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것처럼, 노아가 홍수 전에 나무로 방주(方舟)를 만들 때도 ‘역청(瀝靑)’을 발라 물 샐 틈이 없게 했습니다.

‘역청(瀝靑)’이 무엇일까요?

‘순교신앙(殉敎信仰)’입니다.

여러분이 순교신앙으로 이 교회를 잘 지키면,이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교회가 될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순교의 피로 세우신 교회입니다.

교회에는 이름이 아름답게 기억될 분도 있지만,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름을 남기는 분도 종종 있습니다.

이 자리를 지키는 여러분은 어떤 이름을 남기고 싶으십니까?

순교신앙으로 살아있는 교회가 되게 하는 거룩한 성도로 살아야 합니다.

이 마음으로 여러분의 생명을 주님을 위해 거룩하게 사용하시길,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기도)주님의 교회에서 내 이름이 기록될 때, 벽돌 속에 새겨질 때,내 이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름일지,자기의 이름을 남기려고 하는 욕망의 이름일지,생각하게 하소서.

순교신앙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