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자격(資格) 3, 성경을 알아야

1.

지난 주일에 드린 말씀을 복습합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며, 우리는 주님의 몸에 연결되고 연합된 한 사람으로서, 주님께서 나누시는 영양분, 모든 것을 받아 사는 사람입니다.

교회의 몸인 주님과 연결되고 연합된 우리이므로, “우리가 교회다” “내가 교회다”라 했습니다.

주님의 몸을 세우는 한 사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행하여, 어떤 일이 일어날지 주님을 시험해 보자고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들이 갖추어야 할 자격(資格) 중 하나를 더 말씀드리려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성도로 살기 시작하면서 과거와 달라진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교회 다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부터 교회를 다닙니다.

둘째로 성경 찬송가를 가지고 다닙니다. 요즘은 교회가 비치하여 빈손으로 출석하기도 하지만, 성경 찬송가를 가지고 예배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셋째로 헌금을 구별하여 드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생명과 모든 것을 받았음을 감사하며, 일부분을 성별(聖別)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드리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시간, 재물, 목소리, 재능 등을 드리는 것입니다. 헌신(獻身)입니다.

넷째로 신앙이 깊어지면서 성경 구절 몇 구절을 외웁니다. 여기에 주기도문, 십계명, 사도신경을 외우고,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암송하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3:16은 세계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외우듯, 우리도 거의 다 외웁니다. 복음의 핵심 성경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창세기 1:1도 외우시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신앙고백입니다.

아무도 ‘태초에’ 없어서, 직접 만드는 과정을 보지 못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시편 23편도 빠질 수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121편도 좋아하는 성구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여호와께서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라.”

2.

꼭 알아야 할 성구 중 하나를 말씀드립니다.

요한복음 5:39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라.”

성경에서 무엇을 얻는다고 했습니까?

‘영생(永生)’

성경이 누구를 증언한다고 했습니까?

“예수님”

그리스도교 교리의 핵심은 ‘구원’ 문제입니다.

성경의 큰 틀은 ‘구원론’이 중심에 있습니다.

타락하여 죄지은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질문하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는다’라고 성경이 답합니다.

구약학자 장일선 박사는 ‘생명나무와 가시덤불’ 책에서, 그리스도교 구원론을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습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며, 가시덤불로 들어가는 길을 막습니다. 생명나무 열매를 따 먹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후로 인류는 생명나무 열매, 곧 영생을 얻게 할 에덴동산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으나, 그 길은 감추어져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2,000년 전에 한 젊은이가 나타나 “내가 그곳을 안다. 생명나무가 있는 동산으로 가는 길을 안다. 나를 믿고 나를 따르라” 소리쳤습니다. 사람들은 수군대며 “네가 누구인데, 그 길을 안다는 것이냐?” 물었습니다. 젊은이는 “내가 그곳에서 왔습니다. 내 이마의 상처와 흐르는 피는 가시덤불을 헤치느라 얻은 것입니다. 나는 동산 주인의 아들입니다. 내가 그곳에 이르는 길입니다. 내 말을 믿으십시오.”

장일선 박사가 만든 인류 구원에 대한 비유입니다.

“내가 그곳에서 왔습니다. 나는 동산 주인의 아들입니다. 내가 그곳에 이르는 길입니다.”라 한 이 젊은이가 누구일까요?

요한복음 3:16의 증언대로,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가복음 1:15에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 하신 예수님이며,

마태복음 4:19에서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며 제자를 찾아 부르신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6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하신 예수님입니다.

이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증언한 책이, 성경입니다. (요 5:39)

3.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려면,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길,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는 다니는데, 성경을 소유하고는 있는데, 정작 성경을 잘 모르는 교인이 많습니다.

교회를 수십 년 다녔고, 성경 통독, 성경 필사, 많은 성경 공부를 오랜 시간 동안 했는데도, “성경을 아십니까?” 하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눈길을 피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머릿속이 하얘진답니다.

“목사님 계시니까” 하면서, 목사님 입을 쳐다보기도 합니다.

혹시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성경을 설명해 달라고 하면, 성경에 대해, 믿음에 대해, 구원에 대해 시원하게 답할 수 있습니까?

교인과 대화해 보면, 한결같이, “성경은 너무 어려워요! 잘 모르겠어요.” 합니다.

“성경은 자장가 같아요. 읽으려고 펴면, 스르르 잠이 와요.”라 솔직히 말하며 웃기도 합니다.

알아야 면장(面長)을 한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성경을 알아야’ 교인의 ‘자격(資格)을 갖추는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24:13-36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난 사건입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어떤 여자들이 빈 무덤 소식을 전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걷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두 제자에게 다가와 함께 걸으며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눅 24:27) 했습니다. 마을 가까이 갔을 때, 해가 저물어 함께 유하러 집에 들어가서 음식을 나눌 때, 떡을 떼어 축사하고 두 제자에게 나누자, 그들의 눈이 밝아져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자, 예수님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한 말은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불타지) 않더냐!”(눅 24:32) 였습니다.

두 제자는 떠났던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이 사건 중심에 성경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의 가르침을 들을 때에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감동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건이 여러분에게도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또 하나는, 사도행전 8:26-40 사건입니다.

에티오피아 내시, 간다게 여왕의 국고를 맡은 관리가 수레를 타고 이사야서 53장, 고난 받는 종에 대한 예언을 읽으며,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답답해 할 때, 빌립이 수레에 올라 성경을 풀이하고 해석하여, 예수님을 가리킨 것이라 전하여, 주의 영이 이끌어 관리가 세례를 받게 된(행 8:29) 사건입니다.

이와 같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 올바르게 사는 길을 얻기 위하여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4.

히브리서 4:12-13은 성경의 역할을 알려 줍니다.

구절을 따라 읽으며 뜻을 나누어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성경은 과거의 책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적용되는 현존(現存)의 말씀이란 뜻입니다.

교회는 말씀이 살아있어야 산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고, 혼(魂)과 영(靈)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

우리의 모든 것을, 영육(靈肉) 간에 모든 것을 수술하는 날카로운 칼같이, 안다는 것입니다. 감출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

말씀이 저울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5:25에 벨사살 왕이 잔치를 열었는데, 하나님의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을 기록했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라는 뜻입니다.

그날 밤, 벨사살 왕이 죽임을 당한 것처럼, 말씀의 저울에 달려,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날 것”(히 4:13)

곧 마지막 때 말씀의 판단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의인으로 인정받을 것인지, 죄인으로 판정되어 게헨나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에 던져질 것인지, 말씀으로 판정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바르게 살았는지를 재어보는 저울추가 성경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성경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결과를 맞이하게 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 하나님이 무섭습니다. 왜 하나님이 무섭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고, 따르지 않고, 행하지 않으니, “무섭다”라고 하게 되는 것이지, 말씀을 지키고, 따르고, 행하면,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5.

정리해서 다시 말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우리는 몸이신 주님과 연결된, 교회요, 내가 교회를 세워가는 사람입니다.

내가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데, 필요한 자격이 무엇일까요?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왜?

성경이 주님을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주님 몸의 한 지체가 되려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로소 자격(資格)이 있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십자가에 대해서, 예수 믿는 자의 삶에 대해서, 그를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우리는 성도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살아 있게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의 말씀, 성경 말씀이 늘 살아 있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알면,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성경을 알면, 예수님을 따라 살게 됩니다.

성경을 알면, 심판 때 구원받습니다.

성경을 알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됩니다.

성경을 알면,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이라고 증언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한다고 합니다.

성경을 아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 보실까요?

“하하, 내 마음에 쏙 드는구나. 네 마음과 삶 속에 내 말이 살아있구나. 참 기쁘고 흡족하구나.” 주님께서 이렇게 여기신다면, 어떻게 하실까요?

여러분 안에 주님의 말씀이 살아있으면,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사람인데, 주님은 여러분을 어떻게 하실까요?

상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시편 1편 1절은 “복 있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이 좋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안에 성경이 살아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교회도 성경이 살아있는 교회가 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며, “아, 너희가 날 시험하는구나.” 하면서, 그다음에 무엇을 하실까요? 그다음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이 살아 있게 하는 교회를 세워 기뻐하시는 주님께서 복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끔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내 안에 육화(肉化)하여,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광염(光鹽)교회도 이름 그대로 주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복 된 교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오늘 우리들이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며

과연 내가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한 사람으로

내 안에 주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지 스스로 살피고,

혹시 잘못되어 있다면 바꾸어

이 교회를 살아있는 교회 되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