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자격(資格) 2

자격(資格) 2 원문에 실린 그림 또는 사진 1

설교 준비를 하면서, 광염교회는 어떻게 여기에 세워졌지? 질문하게 되었어요.

교회가 처음 시작된 곳이 염리동(鹽里洞)입니다.

조선(朝鮮) 시대 때, 마포에 한강 나루터가 있었고, 장안(長安)에 소금은 공급하는 곳이 염리동이었습니다. 소금 시장, 소금 가게들(염전;鹽廛)이 염리동에 있었죠. 염리동은 소금 동네로 소금 장수들이 많이 살았답니다. 염창동(鹽倉洞)에는 소금 창고(倉庫)가 있었습니다.

자격(資格) 2 원문에 실린 그림 또는 사진 2

광염교회는 염리동(鹽里洞)에서 소금 염(鹽)과 빛 광(光)을 합쳐 지어진 이름으로, 온 장안에 빛과 소금을 전하는 교회 되자는 기도가 담긴 것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광염교회는 어떻게 여기에 세워졌지? 질문하게 되면서 떠오른 영화가 있었습니다. ‘벤허’입니다. 2,000년 전 갈보리 언덕입니다. 그 언덕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힌 분의 손과 발, 그리고 창에 찔린 옆구리에선 끝없이 피가 흘렀습니다. 이 피는 세운 십자가를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날 제육 시쯤,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덥혔습니다. (눅 23:44-45)제구 시에 달린 그분이 큰소리 지르고 숨질 때, 예루살렘 성소의 휘장이 한 가운데가 찢어졌습니다. (막 15:37-38)이날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은 벤허 영화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영화가 제작된 1960년대 초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의 얼굴을 직접 드러내지 못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예수께서 등장할 때는 등을 보이거나, 멀리서 흐릿하게 처리했습니다.

그날, 예루살렘 성소의 휘장이 찢어질 때, 하늘이 열리고 어둠이 짙었으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장면이 골고다 언덕을 향합니다. 비는 그치고 세상이 밝아졌습니다. 배경음악으로 벤허의 주제곡 ‘사랑의 테마’가 흐르면서, 카메라 앵글은 골고다 언덕의 세 십자가를 멀리서부터 가운데 십자가로 초점을 맞추어, 그분의 피 흘리는 발을 close up 합니다.

그분의 발에서 흐르는 피가, 내린 빗줄기와 합쳐져 냇물이 되어 낮은 곳으로 흐르고, 언덕의 계곡을 지나 흐르는 강물을 따라 온 세상을 향합니다.

감독은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가 바다에까지 이르고, 온 세상으로 퍼진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은 영화시사회에서 “주님,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요!?”

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 피가, 19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동방의 등불’이라 예찬한 나라, 대한민국에도 흐르게 되어, 53년 전, 1972년에 소금 가게(염전;鹽廛)들이 있던 염리동(鹽里洞)에 광염(光鹽)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 교회는 예수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2.

한 번 더,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질문하며 쓴 시(詩)입니다.

지난 6월 첫째 주일에 금호동 언덕에 세워진 성호교회 70주년 기념 예배에 축시(祝詩)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일부분을 나눕니다. “처럼” 갈릴리 호숫가 작은 마을 그분이 설교하실 때 마음이 열린 이들, 갈릴리 나트마한 언덕에 모인 이들 하늘의 말씀 들을 때 삶의 목표가 달라진 이들,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마음속에 되새겼던 제자들 예수, 그분을 닮으려 그분의 삶 몸으로 산 말씀으로 세상의 빛(光), 세상의 소금(鹽), 어떤 때는 세상의 본이 된 그들 처럼 소금 시장 있었던 염리동에 복음 밭을 일구어 섬김으로, 헌신으로, 사랑으로 예수, 그분을 닮아가며 복음 씨앗 키우는 사람들 있네 복된 광염교회에.

  1. 저는 교회의 시작과, 어떤 사람들이 교회를 시작하였는지에 대한 두 이야기를 드리면서,사도 바울의 서신 중 옥중서신(獄中書信)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와 교인의 ‘자격’(資格)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성서 27권 중 13권의 편지를 남겼습니다.

신학책을 저술한 것이 아니라, 편지입니다.

13권 전체를 요약하면, 첫째, 교회란 어떤 곳인지를 설명하고,둘째, 신앙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셋째, 특별히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기로 입교(入敎)한 사람에게 그리스도교가 어떤 종교인지, 유대교와 비교하여 설명하고, 그리스도인 됨이 어떤 것인지를 알렸습니다.

13권의 편지 중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여서 옥중서신(獄中書信)이라 부릅니다.

이 편지들은 그 당시에 양피지(羊皮紙)에 기록되었습니다.

성서 한 권을 필사(筆寫)하는데 양이나 염소 가죽 50마리가 필요하다니, 대단히 비쌉니다.

요즘이야 개인마다 소장할 수 있지만, 초대교회 시대에는 귀해서, 회람(回覽)하며 낭독했다고 합니다. 에베소서도 회람서신(回覽書信)입니다.

1장 1절에 ‘에베소에 있는 성도’라 했지만, 갈라디아, 고린도, 빌립보, 그리고 ‘서울 염리동에 있는 광염교회 성도’라 읽는 것입니다.

4.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정말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5장 10절에서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했습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실지 그것을 실천해 보고, 주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실지 시험해 보라 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의 말이 어떻게 들립니까?

바울은 지금 자신만만합니다.

우리가 “한 번 시험해 봐. 나를 알아봐. 나는 잘못이 없어. 내 가슴을 열어 봐. 눈곱만한 거짓이 있는지 찾아봐.” 자신 있을 때 이런 말을 하게 되는데, 바울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해 봐. 말씀대로 살아 봐. 어떻게 되나. 주님을 시험해 봐.” 이 바울의 에베소서 5장 10절 질문을 마음에 품고 에베소서를 만나면, 교회가 어떤 곳인지, 또한 믿는 사람의 자격에 대한 올바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1장 23절에서 강력하게 선언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다.”

큰 소리로 함께 외쳐봅시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다.”

그리고 우리는? 본문에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엡 2:20)인데,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고, 그리스도 예수께 연결하여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는 자’(엡 2:21)라 했습니다.

우리가 누구라고요?

내가 누구라고 했나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는 자’입니다.

게다가 ‘우리를 예정(豫定)하사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한(엡 1:5) 사람’이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정말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모퉁잇돌이 된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연결이 되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가 되는 귀하고 귀한 사람임을 믿을 때, 자신의 몸을 함부로 굴릴 수 없는 법입니다.

마태복음 16:16~18에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하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에클레시아)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했는데, ‘에클레시아’ 뜻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건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반석(베드로) 위에 세우겠다고 한 교회는 건물로서의 예배당, 집회 장소로서 교회당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성도들의 모임, 두세 사람이 예수님 이름으로 모이는 그것을, 교회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가르친 것과 일치합니다.

자, 잘 들어 보셔요.

‘사람들의 모임’인데, 이 사람들이 머릿돌이요 모퉁잇돌 되신 ‘그리스도 예수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의 교회나, 바울이 그리스도의 몸이라 한 교회, 모두 다 그 당시 유대교의 성전, 예루살렘 성전, 거룩하다고 하지만 속에 온갖 장사꾼이 가득 찬 타락한 성전, 건물로서 거룩한 장소로 여기던 것과는 다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라 선언한 것입니다.

자,주님의 몸이 교회인데, 이 교회에 우리가 연결되었다면, 우리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모인 “너희가 교회다”라 말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교회인 것처럼, 예수님과 연결된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가 됩니다.

놀라운 선언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세례를 받고, 성만찬(聖晩餐)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동참하는 너희가 교회다.” 믿습니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교회입니다.

외쳐봅시다.

“우리가 교회다.”

“내가 교회다.”

그렇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다니는, 걸어 다니는 교회입니다.” 이와 같은 자의식(自意識)이 교인으로의 자격 갖추기에 중요합니다.

5.

예루살렘 성전과는 근원적으로 다릅니다.

성전(聖殿)은 ‘혼자’ 속죄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하고 죄 사함을 받는 곳입니다.

죄 사함을 위한 속죄 제물을 가져오지만, 직접 하나님께 드릴 수 없고, 반드시 ‘제사장을 통하여’ 드립니다. 직접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지만, 의미로 ‘혼자’ 하나님 앞에 섭니다.

‘제사’가 소중한데, ‘제사’ 드리는 ‘건물’이 덩달아 더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가톨릭 중세 교회가 타락하게 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제사를 드리는 성전을 아름답게 거룩하게 화려하게 건축하게 된 것입니다.

성전을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라고, 성전 건물 안에 하나님을 가두게 됨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계실 것이라고 믿으면서, 성전 건축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성서의 하나님과 만나는 일에 어긋났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하면서,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짓듯,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화려하게, 높고 높은 첨탑을 올렸습니다.

정말 사람 보기에 아름답고 웅장하여, 저절로 경건한 마을을 갖게끔 건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증거가 있습니다.

솔로몬왕이 7년을 걸려 지은 성전이 완공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왕상 6:12-13)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여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에 있겠다고 하셨나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계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건이 붙습니다.

“내 법도, 내 율례, 내 계명을 지키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내 법도, 내 율례, 내 계명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내 백성 가운데 거한다 하였지,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열왕기상 9:1-9를 꼭 읽어보십시오.

솔로몬왕이 굉장히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답답하기도 했을 겁니다. 어쩌면 떼쓰듯 하나님께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답하셨는데, 열왕기상 9장입니다. “솔로몬아, 네 기도와 간구를 들었다.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그곳에 두며, 내 눈길과 마음이 거기에 있으리라. 그러나 조건이 있다. 내 법도, 내 율례를 지켜라. 아니면,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고,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세상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게 하리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네가 간청하니, 내 이름, 내 눈, 내 마음은 그곳에 두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네가 나의 법도와 율례와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만약 지키지 않고 내 이름을 더럽히면, 이 성전을 허물어, 네게 부끄러움이 될 것이다.”

6.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성전 중심의 유대교 제사는 허물어졌고, 교회, 주님의 몸이 세워졌습니다.

이 교회는 모퉁잇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공급받으며 연합한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를 이룰 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공급받은, 그리스도 몸의 일부분인 우리 안에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모든 자원이 주님의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께 받아 주님의 몸을 세워가는 것, 우리 교회가 이래야 합니다.

이것에 대하여 바울은,“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하나가 되라.”

(엡 4:13)“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어라.”

(엡 4:22-24)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 진실함이다.”

(엡 5:8-9)“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7).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冑)를 입어라(엡 6:13).”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엡 4:30)이 모든 권면을 종합하면,“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엡 3:17-19), 곧 ‘사랑의 교회를 세우라’고 한 것입니다.

7.

초대교회는 로마와 유대교의 탄압과 핍박이라는 고난 속에서 ‘오직 믿음으로’ 자랐습니다.

고난과 핍박의 역경이 ‘교회’를 세우는데, 보약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복음의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 성장의 뿌리에, 일제의 탄압과 6⸱25전쟁의 시련에서 공산주의의 핍박이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자라게 되었음을 알게 되고, 그 안 깊숙한 곳에 순교(殉敎)의 피가 거름 역할을 했다는 것이 알려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지금 광염교회를 저는, ‘큰 시련과 고난의 때’라고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이 교회가 주님의 교회로 올바르게 세워질 ‘은혜의 때’임이 분명합니다. 시련과 고난의 때에 주님의 교회가 그것을 거름 삼아 자랐던 것처럼, 여러분의 지금의 고난과 시련이 은헤가 되어서 광염교회를 자라게 할 줄로 믿습니다.

누구로부터 될까요?

“내가 교회다. 내가 그리스도의 몸이야.”

라고 고백하는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이루시길 기대하실 줄 믿습니다.

기회를 은혜로 만드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래서 자격(資格)을 갖추기 위해 힘쓰십시오.

주님의 몸인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랑의 갑주를 입고, 분파 분쟁의 문제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에 상처 내기를 하는 것을 멈추게 하셔요.

주님의 몸인 교회의 생명을 갉아 파괴하는 죄악을 범하지 마셔요.

주님을 기쁘게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교회의 자격, 교인의 자격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주님을 시험해 보십시오.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 되는 광염교회를 세워가는 청지기가 되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주님을 시험해 보길 권합니다.

(기도)53년 전에, 소금 시장이 있어 온 장안에 소금을 제공했던 이곳에 광염교회를 세우신 뜻을 새기면서, 우리가 교회요, 우리가 주님의 몸인 교회요, 우리가 주님의 사명을 받은 빛과 소금이요 고백하면서 시련과 고난과 역경을 은혜의 때로 바꾸어가는 신도와 교회가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