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자격(資格)
- 등록일
- 2025년 6월 10일
- 설교일
- 2025년 6월 8일
2024년 12월 3일 밤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불과 155분 만에 국회의원 204명이 비상계엄령 해제를 찬성하여, 계엄령을 해제하였고, 이후 대한민국은 소위 탄핵정국의 소용돌이에 들어가, 지난 6개월을 복잡하고 어지럽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2025년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했고,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어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저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할 줄, 상상하지도 못했고, 꿈도 꾼 적이 없습니다. 온 국민은 마른하늘에 벼락 치듯 선포된 계엄령에 놀라고 놀랐습니다. “무슨 일이야?” 당황스러웠습니다. 소수의 계엄을 계획한 사람을 제외하고,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질문을 하나님께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모르셨나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의 마음속은 모른다고 합니다.
아무리 AI가 발달한다고 해도, 사람의 마음은 온전히 알 수 없을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은 아셨을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때요?
저는 하나님께서도 몰랐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을 하나님은 믿었습니다. 그래서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관리를 맡긴 것입니다.
아담을 철석같이 믿은 하나님은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며, “먹지 말라”한 것을 어길 줄 모르셨습니다. “내가 누군대? 생명을 주고, 이 세상을 만든 난대, 먹지 말라는 내 말을 감히 거역해?” 하나님은 아담을 믿었을 겁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행히 생명나무 열매는 먹지 않고, 뱀의 유혹이 있었다, 이브가 먼저 따 먹고 나누어 줘서 먹었다 등의 핑계가 있긴 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었습니다. 아담으로 하나님은 크게 속상하셨을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고, 모르는 것 없이 다 아신다는 믿음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사람의 생각, 수시로 기분 따라 변하는 마음마저 다 아신다고 믿는다면, 80억 인구의 모든 것을 관리하시는 하나님을 너무 괴롭히는(?) 것이 아닐까요? 결국 저의 결론은 ‘하나님은 모르셨다’입니다. 그러나 수습의 길,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그 길은 하나님께서 간섭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방향으로 이끄신다는 것이, 목사인 저의 믿음입니다.
비상계엄 선포 후 1주일이 지난 12월 10일 자 서울신문 1면은 ‘시총 144조 날아갔다’였습니다. 그리고 탄핵 찬반 시위로 온 나라는 조용할 날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파란색인지 빨간색인지 저는 모릅니다. 오늘 저는 6월이 현충일, 한국전쟁 기념일이 있는 호국의 달이어서 보라색 넥타이를 했습니다. 이렇게 6개월이 지난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국가부도가 나서 경제가 완전히 망가졌나요?
모든 공장이 모두 다 운행 정지되어 모든 국민이 실업자가 되었나요?
정치권에서는 반복된 소음이 들려왔지만, 여러분을 포함해서 대한민국 국민은 제 자리를 잘 지키며 국론을 지켜보면서, 혼란에 휩쓸리지 않고 나라를 지켰습니다. 대통령 선거도 별 탈 없이 치러,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통령의 자격(資格)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의 자격이 어떠해야 올바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
오늘 대통령의 자격 이야기를,투표로 뽑은 대통령이 어떤 대통령이어야 자격(資格)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솔로몬왕을 치적과 평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솔로몬왕이 어떤 왕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솔로몬을 긍정적으로 훌륭한 왕이었다고 알고 있을 겁니다.
과연 그럴까?
몇 가지 시각으로 솔로몬왕을 평(評)합니다.
이 평을 듣고 난 후에, 솔로몬왕을 다시 판단하기를 바랍니다.
- 이스라엘은 12지파가 연합해서 이루어진 민족입니다.
야곱의 12 아들이 12지파의 조상입니다.
야곱이 오랜 도피로 인한 타향살이에서 돌아오며, 형 에서를 만나기 전, 얍복강 가에서 밤새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며 축복을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었고, 야곱은 “야곱”이라 답했죠.
하나님은 “네 이름을 지금부터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뜻과 함께. ‘하나님이여 통치하소서’라는 뜻이 있습니다. 지금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후자의 뜻으로 사용합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은 하나님께 불경한 태도라 할 수 있어서, ‘하나님, 우리를 통치하소서. 우리를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후로 이스라엘은 출애굽하고 광야 40년 생활, 사사시대를 거쳐 사울이 왕으로 추대될 때까지, 이스라엘은 12지파공동체입니다. 우리나라가 한글을 말하고 사용하는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그리고 제주도라는 부족들이 모여 지방마다 각기 특색있는 사투리로 조금씩 말이 다르지만, 한글로 하나로 형성된 것처럼, 이스라엘은 히브리어를 사용하고,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12지파가 한 공동체를 이뤘습니다. 자연스럽게 서로 견제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주도권 싸움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는 서로 끊임없이 권력투쟁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12지파공동체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시기는 ‘다윗왕과 솔로몬’이 통치했던 80년뿐입니다.
통일왕국의 시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의 나라’라는 이상향 같은 국가관을 가지는데, 다윗왕과 솔로몬왕은 가장 위대한 왕으로 높임을 받습니다. 그래서 통일왕국이라는 시각으로 솔로몬은 높임 받을만합니다.
- 두 번째 시각은 솔로몬왕의 자리에서 평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뒤를 이어 통일왕국의 왕이 되었지만, 치적(治績, 정치상의 업적)으로는 으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솔로몬 왕궁을 건축했습니다.
지혜가 뛰어나서, 이스라엘의 영향력을 확대해서 넓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다른 나라와의 교역이 활발하여 경제적인 부를 누렸습니다.
성경의 잠언, 전도서를 남겼습니다.
솔로몬의 치적을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거론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
(마 6:29) 물론 예수님은 들꽃 하나보다 못한 솔로몬의 영화이지만, 솔로몬의 치적을 높인 것이긴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생각을 예로 든 것인데, ‘으뜸’의 영화를 말할 때 인용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으로 솔로몬왕은 콧대가 높았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만족하면서 “내 업적 봐!” 했을 겁니다.
- 그러나 국민, 백성의 자리에서 솔로몬의 치적을 평하면, 솔로몬왕의 치적은 180도 달라집니다.
구약 본문 열왕기상 12:4에 나타나 있는데, 솔로몬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자, 에브라임 족속인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온 회중과 함께 요청합니다.
“왕의 아버지, 곧 솔로몬왕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해,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이스라엘 백성은 솔로몬왕의 재위 동안, 과도한 세금으로, 끊임없이 계속된 건축에 노동력을 제공하느라,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었습니다.
나라는 온갖 건축물로 화려했으나, 백성은 고역에 시달렸다는 것은, 외화내빈(外華內貧)의 나라 살림인 셈입니다.
결국 솔로몬이 죽자마자 쌓였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솔로몬왕의 통치를 어떻게 보십니까?
백성의 눈으로, 백성이 “죽겠다”라고 하는 통치가 잘한 것일까요?
솔로몬은 자기의 영화와 영광을 위한 통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통치가 아니었다는 것이 백성, 국민의 평이었습니다. 4) 네 번째로 하나님의 자리에서 평해 봅니다.
열왕기상 11장의 개역성경 소제목을 ‘솔로몬의 마음이 여호와를 떠났다’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11:1에“솔로몬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일찍이 서로 통혼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왕상 11:2)하며 금지했는데, 솔로몬이 이들을 사랑했답니다.
후궁이 700명, 첩이 300명입니다.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이 3,000 궁녀를 거느린 것에 비교될 일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 마음과 다른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이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습니다.”
(왕상 11:4) 시돈 여신 아스다롯, 암몬의 가증한 밀곰, 모압의 그모스를 위해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 암몬의 몰록 산당도 건설하여 섬겼습니다.
솔로몬왕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몇 번이나 경고했으나 듣지 않았습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은 솔로몬왕을 어떻게 평하겠습니까?
신앙적으로 평하면, 솔로몬을 실패한 왕입니다.
- 마지막으로 성경 형성사의 관점에서 평합니다. 여러분이 창세기 1장과 2장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남녀를 만드셨다.”
고 ‘하나님’이라고 하는 창세기 1장과“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을 빚어 아담을 만드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들어 아담에게 잘 관리하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담을 잠들게 하고 갈비뼈(오른쪽인지? 왼쪽인지?)를 빼어 여자를 만들어 아담에게 데려오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산 한 가운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는 먹지 말라” 하는, 2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호칭이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힘(Elohim)’입니다.
창세기 2장의 ‘여호와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여호와(Yahweh)’입니다.
창세기 1장은 ‘E 문서’, 제2장은 ‘J 문서’라고 학자들은 분류합니다.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성경이 기록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 때, 기록되었습니다.
왜? ‘J 문서’가 기록되었을까?
J 문서의 중심 가르침은 “사람아, 너는 흙이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네게 생명을 준 것은 나 여호와 하나님이다.”
라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입니다. ‘사람아, 너는 흙이다’라는 말 속에는 ‘이놈아, 넌 나 없으면 없어. 교만하지 말아라’ 한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할까요? 다윗과 솔로몬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한 것일까요? 솔로몬과 다윗이 자기 일들이 잘 되니까. 자기를 높이기 시작했고, 마치 바벨탑을 쌓듯이 높아져 그 위에 앉을 것을 경계해서 ‘이렇게 하면 안 돼!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
라고 기록을 남겨 경종을 울리려 한 것입니다. 창세기 2장, J 문서의 기록 목적입니다. 이와 같은 성서 형성사의 자리에서 솔로몬의 치적을 볼 때, 하나님을 거역하는 오염된 신앙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Memento Mori’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겁니다.
“너도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여라”. 로마에 개선장군이 입성할 때, 노예 한 사람은 해골을 들고 따라다니면서 “Memento Mori, Memento Mori”를 반복하여 말하게 했답니다. 승리에 취해서 콧대가 높아지는 개선장군에게 “당신도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라고 일깨우면서, ‘헛되고 헛된 인생’(전도서 1:2)을 깨우쳐주는 소리였습니다.
J 문서가 다윗과 솔로몬에게 이 역할을 한 셈입니다.
이렇게 성경 형성사로 볼 때, 솔로몬왕은 실패로 비판받을 왕입니다. (Vanitos (‘공허한’을 뜻하는 라틴어)화, 16~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역에서 시작된 정물화에 죽음을 상기시키는 두개골, 썩은 과일(부패), 연기, 모래시계, 유리컵, 달팽이, 거품, 등을 포함한 화풍, 전도서 1:2) 3. 영원할 것 같은 영화를 누린 솔로몬왕도, 때가 되어 죽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을 직접 받았습니다.
아히야가 새 옷을 입었는데, 여로보암 앞에서 이 옷을 12조각으로 찢고, 여로보암에게 10조각을 주면서,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네게 준다”(왕상 11:29-31)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솔로몬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고, 다윗과 같지 않아 내 길로 행하지 않고,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왕상 11:32-33)이라 했습니다.
솔로몬도 아히야의 예언을 알았을 것입니다.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자, 솔로몬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였다가, 솔로몬왕이 죽고 르호보암이 새 왕이 되자 돌아와 새 왕에게 청원합니다. 청원 과정에서 솔로몬왕의 노신(老臣)들이 한 말이 정말 중요한 지도자의 덕목(德目)입니다.
여로보암은 르호보암왕에게 “백성에게 솔로몬왕이 지운 멍에를 가볍게 해 주시오. 그러면 왕으로 섬기겠습니다.”
라 제안했습니다.
르호보암은 솔로몬왕의 가신에게 물었습니다.
나이 든 신하들이 준비한 답은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소서.”
(왕상 12:7) 였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솔로몬의 통치를 어떻게 평하는지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솔로몬의 가신들입니다.
솔로몬왕의 명령을 받들어 실행했던 관료였습니다.
솔로몬을 받들며 솔로몬의 영화를 이루게 했던 신하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눈에 솔로몬왕의 치적이 부정적인 평가였습니다.
그래서 왕위를 이어받은 아들, 르호보암 왕에게“백성 위에 군림하지 마십시오. 백성을 섬기는 왕이 되십시오. 아버지 솔로몬을 닮아가지 마십시오.”
라고 충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충언은 르호보암 왕의 마음에 든 답이 아니었죠.
기분이 좋았을 리 만무합니다.
르호보암 왕은 어린 시절부터 자기와 함께 특혜를 누리며 놀았던 친구 신하들의 아첨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백성들은 두드려 패야 말을 듣습니다.” 했고, 이 말을 따라“내 새끼손가락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징계했지만, 나는 전갈 채찍(쇠 채찍, 새번역)으로 다스리겠다.”
고 했습니다.
나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남유다왕국과 북이스라엘왕국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아히야의 예언이 이뤄진 것이 되었지만, 그곳에 잘못된 선택이 있었습니다.
왕의 잘못된 선택으로 하나였던 나라와 민족이 분열되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남 왕국에 남은 지파는 유다 지파였고, 제사를 위한 레위 지파로 두 지파가 남유다왕국이 되고, 북 왕국은 나머지 10지파가 여로보암을 따랐습니다. “섬기는 왕이 되소서, 우리가 종이 되어 섬기겠습니다.” 했을 때, 섬김의 leadership을 가졌다면, 하나님은 도우십니다. 예언으로 발표했던 자신의 계획을 바꾸십니다.
그러나 섬김의 leadership을 거절함으로 민족은 둘로 분열되었습니다.
아버지 솔로몬은 분열의 씨앗을 심었다면, 아들 르호보암은 군림하는 왕이 되려 하다가 나라와 백성을 분열했습니다.
둘 다 자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권좌(權座)에는 늘 마귀(魔鬼)가 틈타기 마련인데,솔로몬과 르호보암은 마귀가 개입되는 권좌의 유혹, ‘갑(甲)질하기’를 뿌리치지 못한 왕이 되었습니다.
4.
이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어 봅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 십자가 죽음을 예고한 직후,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자신의 두 아들을 예수님 좌우편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한 사건입니다.
마가복음 10:35-45에서는 두 제자가 직접 부탁하였는데, 어머니의 치맛바람이 센 우리나라 교육 현실로 보아 마태의 상황이 어울린다고 여겨 택했습니다.
이 일을 들은 다른 제자들이 불평했다는 것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는 뜻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자리를 탐하기 전에 자격(資格)을 갖추라 하셨습니다.
“큰 자 되길 원해? 섬기는 자가 되어라.”
“으뜸 되길 원해? 종이 되어라.” 하시며,“인자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섬김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함이다.” 하셨습니다. 인자(人子)는, 그리스도교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 화육(化肉)하시어 섬기는 자리로 오신 것, 이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섬김’입니다.
섬김의 자격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자기 자리를 비워 종의 자리로 낮추셨다’(빌 2:5-8)라고 말씀했습니다.
‘갑(甲)질’할 수 있고, 권세를 부릴 수 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를 높인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어 섬기는 것이 권좌를 차지하려는 사람의 자격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21대 대통령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되기를,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섬김의 자격을 갖추길 기도하는 우리 국민이 되어야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5.
지난 5월 15일에.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이 식도암 투병 끝에 90세로 별세하였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검소한 대통령, 우루과이 국민은 El Pepe라 불렀습니다.
2010년 제40대 대통령으로 취임 후, 공관이 아닌 외곽 허름한 농가에서 부인과 살았습니다. 대통령 월급의 90%를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기부했습니다.
1987년 산 낡은 폭스바겐 비틀을 운전하며 사용했습니다. 중동의 한 부자가 “100만 달러로 사겠다”라고 했을 때, “돈이 전부가 아니다”하며 거절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무히카 대통령의 말입니다.
“나는 가난한 대통령이 아니다. 가난이란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지만, 나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거의 없다.”
라 하며, 우루과이를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나라로 바꾸었습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기는 쉽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의 기초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라 설파한 대통령이었습니다.
무히카 대통령은 권좌(權座)의 마성(魔性)에 빠지지 않고 섬김의 자격을 갖추고 살아, 온 세계인의 존경받는 지도자로 남았습니다.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서는 꿈같은 이야기 같지만,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염교회 교우 여러분,이 나라 지도자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섬김의 자격을 갖추게 되길 기도합시다.
될지, 안 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모를 뿐만 아니라 걱정도 많지만, 대통령이 섬김의 자격을 갖추면 나라가 올바르게 서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이 교회를 올바르게 목양할 목자도, 섬김의 자격을 올바르게 갖춘 목회자를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