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수님의 마음으로
- 등록일
- 2025년 5월 28일
- 설교일
- 2025년 5월 25일
김영란 시인이 “제주 4⋅3 사태 때 억울하게 숨져간 사람들에게 바친다”하며 낸 시집에 올린, ‘꽃도 아픈 사월에’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뭇매처럼 쏟아지는 부신 빛이 아려서 지천으로 봄까치꽃 온몸이 다 퍼렇다. 하늘도 아래로 내려 꽃에 입을 맞춘다.
시인은 들꽃 봄까치꽃의 보라색 빛에서, 뭇매를 맞아 퍼렇게 된 멍을 연상했습니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떠올린 것입니다.
봄까치꽃 꽃에서 멍이 든 몸을 가지고, 고통의 나날을 보낸 이들의 마음을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광염교회와 교인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때의 목사 마음을 써 놓았던 것,광염교회 한 달 설교를 부탁받고, 4월 21일에 ‘목회수첩’에 썼던 글을 읽어 드립니다.
“교회, 교인의 마음과 몸은 어떨까?
상상해 보니 퍼런 멍이 든, 아픔으로, 고통으로, 힘이 든 교회, 교인이 떠올랐다.
얼마나 괴로울까? 또 이런 교회와 교인을 바라보는 주님의 마음은 얼마나 속상할까?
주님의 십자가로 세우신 교회요,그래서 이름도 빛소금 교회로 정했고,사랑으로 불러 모은 제자들이요,목숨 나누고, 생명 나누어, 구원의 은혜 조각 붙잡고 모인 교인들인데교회 때문에 상처 입은 것 보니,주님의 마음 또한, 상상이 된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정직한 대면이 필요하다.
사랑이 식어 냉랭한 골이 된 사랑방, 회복의 불씨는 무엇일까?
퍼런 멍이 든 잿더미 아궁이에 남은 불씨가 무엇일까?
후후, 불어봐야겠다.
‘교회사랑’ 불씨는 남아 있겠지.
후후, 생명의 바람, 성령의 바람 불어 보자.
매캐한 연기가 생기겠지.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힘들겠지.
그래도 퍼런 멍이 들어, 잿더미 된 아궁이에 기도하듯 웅크리고 엎드려, 후후 불어대면,남아 있던 사랑의 불씨가 살아나겠지.
그래, 불쏘시개 말씀 준비하자.
부뚜막에 걸어둔 무쇠솥에 따끈한 밥 만들고, 누룽지 남겨 숭늉 만들어 마시며,따끈해진 아랫목, 냉랭했던 온돌방 데워, 커다란 이불 펼쳐놓고, 두 발 밀어 넣어, 오순도순 모여 앉아, 두런두런 옛날얘기 나누며, 사랑방 교회 회복을 위해,따뜻한 교회 만들자.”
2.
이런 마음으로,5월 4일 주일에 “어린이 같아야”,5월 11일 주일에 “어머니 같아야”,지난 주일 5월 18일에는 “십자가(十字架)가 있어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오늘은 사도 바울의 마지막 편지 빌립보서와 예수님의 평지(눅 6:17) 설교 마지막 부분으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제목을 정하고, 이 예수님의 마음이 광염교회와 교인들의 신앙, 마음과 삶에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의 여러 편지 중, 마지막 편지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때,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가까운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이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구나” 스스로 느끼게 되면, 남기는 말이나 글에 비장함을 담게 됩니다. 빈말이나 헛말을 하지 않습니다. 당부의 말씀 속에 간절함이나, 진정성을 담아 전합니다.
여러분이 빌립보서를 읽을 때, 이와 같은 바울의 마음을 가지고 읽으면, 구절구절, 한마디 한마디가 심령을 쪼개고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귀한 말씀이 되고, 신앙의 진수가 무엇인가를 전 하는 말씀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빌립보서가 그렇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 1:8)‘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라 한 것에서 바울의 교회를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렬한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살았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와 교인을 지극한 심정으로 사모했는데, 하나님께서 증인이라 하였습니다.
빌립보 교인에게 한 바울의 당부는, 광염교회 성도들에게도 꼭 필요하다고 강 목사는 생각했습니다.
바울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7)“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빌 3:1)“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4)“너희는 내게 배우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빌 4:9)빌립보서는 바울의 옥중서신(獄中書信)이지만, ‘기쁨의 서신’이라 부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은혜라는 가장 귀한 것, 천하보다 귀한 생명 구원을 얻었기에, “기뻐하라”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믿음을 본 받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기뻐하라’한 것은, 우리가 기도한 대로 응답받은 것만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치 않은 고난을 겪는 것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지내놓고 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고,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길을 베푸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바울은 이것을 알고 경험했고 믿었기에 “기뻐하라” 할 수 있었습니다.
3.
바울이 전한 빌립보서 2:1-4을 봅니다.
바울은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교제나 긍휼,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을을 품고, 아무 일에나 다투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바울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는 삶입니다.
이대로 되면, 이대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바울 말씀을 그대로 행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몸이 멍들 정도로 심한 고난 속에서, 고통 속에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방법은 단순명료(單純明了)합니다.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빌 2:5)바울이 고백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빌 1:20), 이것이 장로교 신앙의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방법이 ‘예수님의 마음으로’입니다. 자, 여러분, 이제부터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거울 앞에 세웁니다.
이 거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거울 앞에 서서 자기를 보면, 누가 보입니까? 여러분 자신이죠. 겉 사람입니다.
겉 사람의 심장을 보셔요. 보이나요? 보이지 않습니다.
그 심장이 ‘내 것’일까요?
바울의 말씀에 따른다면, 분명히 뛰는 심장이 ‘내 것’이지만, 그 심장은 누구의 것과 같아야 할까요?
옳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우리의 심장이지만, 예수님의 것이어야 합니다.
거울을 통하여 예수님의 심장이 뛰는 것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 된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심장을 그리스도의 것으로 바꾸는 것, 의학적으로 설명하면 ‘심장이식 수술’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 1:8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라고 한 말의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심장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의 심장,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니 심장이식 수술을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에게 허락되는 은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어떤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 사랑, 용서, 기다림, 자비와 긍휼을 나타내며 베풀게 될 때, 비로소 예수의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성 프란시스(St. Francis of Assisi)의 ‘평화의 기도’ 기도문대로 사는 것입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잘못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됩니다. 위로받기보다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게 하소서예수님의 심장을 가지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면 이렇게 될 수 있고, 됩니다.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 용서받고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 영생을 얻게 됨을 깨닫게 하소서.
예수님의 걸음을 걷기 시작하는 사람은 이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거울 앞에서 우리를 확인했습니다.
4.
이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울 앞에 세웠던 ‘나의 눈’을 ‘너, 곧 믿음의 형제자매’를 향합니다.
나의 ‘믿음의 형제자매’를 바라보는 눈이, 그 눈빛이 어떤가요? 또 입은 어떤 모양입니까?
눈이 초승달같이 되고, 입은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나요?
아니면 눈이 도끼눈에다가, 입꼬리가 아래로 처진 메기입이나, 금방이라고 사람을 물 것 같은 불도그 개의 입인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산다면, 눈과 입의 모양부터 달라져야 옳습니다.
사람의 관계란 신비롭습니다.
마음에 품은 것이 말이 되고, 표정, 몸 말로 나타납니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게 됩니다.
보내는 눈빛이 흘기는 눈빛이면? 돌아오는 눈빛이 부드럽거나 고울 리 만무(萬無)합니다.
보내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면? 돌아오는 마음 역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아주 단순하고도 확실합니다.
목사가 아궁이에 남은 불씨를 일으키려고, 시커먼 연기 마시며, 후후 불어 ‘사랑의 불씨’를 키우고, 말씀의 불쏘시개를 넣고, 권면, 잔소리의 잔가지를 넣어 불이 사그라들어 식어가는 아궁이에 불을 피워, 굴뚝으로 연기를 빼내어 냉랭했던 사랑방 아랫목을 따사하게 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 각자 품고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사용하기 시작하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의 것과 바꾼 예수님의 심장을 사용해 보길 바랍니다.
실눈을 뜨고, 무슨 말 하나 눈치 보며, 입을 삐죽거리며, 머리 뒤 꼭지 뒤통수에 대고 험담 내뱉지 마십시오. 사람은 영적(靈的)인 존재입니다.
쑤군거리는 소리의 파장을 통해, 영적인 귀가 열려 듣고 다 알게 됩니다.
사람이 어떤 동물입니까?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려 합니다.
되로 받으면, 말로 되돌려 주는 존재가 사람이니,오는 말 속에 칼이 들었는데, 가만히 있으면 칼에 찔리고 베여 죽겠는데, 어느 누가 가만히 있겠어요? 본능적으로 더 큰 칼 말을 빼어 반격하게 되죠.
살려고 같아지는 겁니다.
이런 곳에 화평한 공동체가 될 수 없겠죠. ‘평화’가 존재하겠어요?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의 신호, 내가 품고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미소로 보 낸다면, 웃는 얼굴에 침 뱉겠어요? 저절로 화평해집니다.
5.
강 목사는 교회를 섬길 때, 예배 후 공동식사 시간에 식탁에 앉기 전에, 누구 앞에 식판을 내려놓으려 하는지 확인하고, 평소 소원하게 지내던 분, 누군지 평소 대화하지 않았던 분 등, 새 사람과 식사하기 운동을 펼쳤어요.
장로들은 장로들끼리 늘 앉더군요.
신도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늘 모든 신앙생활을 공유해 오던 교우들끼리 식사하며 떠드는 것은 사랑의 공동체로 옳지 않다고 가르치며, 새 신자, 얼굴 모르는 신도를 찾아 앉아 대화하라고 했습니다.
평소 데면데면한 분 앞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것이 어색하죠. 불편하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대화의 물꼬가 터질 리 없지만, 한 달여 지나면서 식당이 마음 열린 대화방이 되고, 2차로 장소를 옮겨 믿음의 친교를 이어가는 것, 서로를 알게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교회가 자라더군요.
해 보셔요.
매 주일, 같은 사람, 지겹지 않으신가요?
예수님 마음으로 식탁에 앉기 전에, 얼굴 보고 바꿔보시길 바랍니다.
교회 안이 화기애애(和氣靄靄)하여, 화기애애(和氣愛愛)해질 것입니다.
6.
사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100% 실천하며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도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씩 해 보는 겁니다.
도전! 하나씩! 누가복음 6:46-49 예수님 말씀입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않느냐?”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흙 위에 집 지은 사람 같아, 탁류가 부딪칠 때 무너진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 짓는 사람 같아, 탁류가 부딪쳐도 요동하지 않는다.”
태산(泰山)이 높은가요?
하늘 아래 뫼(山)입니다. 오르고 오르면 오를 수 있습니다.
씨앗 뿌려 열매 맺는 것이 손길 없이 될 수 있나요?
하나가 30배, 60배, 100배가 되는 그곳에 옥토를 가꾸는 손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의 마음으로’ 사랑의 눈빛, 사랑의 말, 사랑의 마음을 나눕시다.
내 눈 속에 숨겨둔 도깨비 찢어진 눈빛 버립시다. ‘혀’에 대하여 걱정이 많았던 야고보 사도는 ‘혀는 불, 혀는 쉬지 않는 악’이라 하며 바르게 다스리라(약 3:6, 8) 했습니다. 만악의 근원인 혀에 두어 입안에 둔 험한 말, 가시 돋친 말투 버립시다. 가시 날리지 맙시다.
내 마음에 감추어 둔 마귀가 넣어둔 악한 생각 버리고, 이것들을 ‘예수의 마음으로, 성령의 도움으로’ 갖추게 될 때멍든 교회 치유하고, 멍든 여러분의 심령은 건강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되나 보십시오.
바울은 시험해 보라고 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3:4-5)“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나신 것처럼,우리도 약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하여지리라.”
우리의 눈은 영혼의 창입니다.
우리의 눈빛을 통해 우리의 영적 상태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유혹에 넘어간 눈을 가지고 형제자매를 바라봐서 될 것입니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릇이다 보니, 자꾸 다른 것이 들어와 담기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마귀가 집어넣는 것 받아 담아두면 망조(亡兆)가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식 수술하여 받은 예수님의 심장, 마음을 잘 지켜, 예수님의 마음으로 기쁨 가득해지는, 사랑이 충만하게 넘치는 광염교회 이루시길, 사랑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