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어머니 같아야
- 등록일
- 2025년 5월 12일
- 설교일
- 2025년 5월 11일
지난 주일에 “어린이 같아야” 제목으로 “어린이 같이 되자” 했는데한 주간 동안 조금 어린이 같아졌습니까?
오늘은 “어머니 같아야” 제목으로 교회가 어떻게 세워져야 할까? 말씀을 드립니다.
마태복음 16장 15절에서 18절을 읽어보면,예수님께서 길을 가다가 제자들에게“사람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질문하신 다음제자들을 향해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십니다.
내용을 아실 거예요.
베드로가 나서서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했죠.
여러분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줄,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믿으시죠?
그러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너는 베드로구나.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했습니다. 교회라는 단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최근에 레오 14세가 로마교황이 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이 반석 위에’를, ‘베드로 위에’로 해석해서 ‘교황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운다’ 라고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고, 레오 14세는 267대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문자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한 결과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사람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에클레시아’라고 하신 이 말씀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에요.
여기에 우리가 조금 전에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고백한 대로, 신앙고백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에클레시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예배당, 교회당이 교회가 아닙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담겨있어요.
에클레시아라고 하는 단어에는 ‘불러내었다’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누구를? 왜 불렀을까? 하는 질문이, ‘에클레시아’라고 하는 단어, ‘내 교회’라고 하는 이 말 속에 담겨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누가 불렀을까?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렀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끊임없이 시대별로 하나님은 필요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부르셨고 그 부른 사람들이 교회를 이뤘어요.
물론 “예수님 이전에, 구약에 무슨 교회가 있어?” 하겠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고 나선 삶이 교회를 이루어가는 삶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엇 하는 사람일까? 할 때,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셔서 주님의 교회를 만들어가고 세워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에클레시아라는 이 단어를 통해서 마음속에 새겨야 합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불렀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요,그리스도의 교회요,성령의 교회입니다.
이 말은 사람이 교회의 주체가 아니라는 겁니다.
누구를 불렀을까요?
부름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요, 제자라고 부르는데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누구를 말하는 것 같아요?
우리죠.
저를 포함해서 여기 모인 모든 교우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에요.
자, 왜 불렀을까요?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예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 땅 위에 세우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습니다.
이 교회를 우리는 ‘구원의 방주’(救援의 方舟)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교회를 표현할 때 물결치는 바다 위에 자그마한 배를 그리는데, 그 배의 중심에는 십자가 돛대를 세워놨습니다.
파도 위에 배.
세상에서 여러 파도를 겪게 되겠지만, 거기에 배가 있다는 것은 그곳에서 구원하는 배라는 뜻이죠. 나일강에 띄운 모세의 갈대 상자도 구원하는 교회를 상징하고,노아 홍수 때 노아가 산꼭대기에 만들었던 배도 구원의 방주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방주를 만드는데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부름을 받은 사람이 할 일이 무엇일까요?
노아가 만든 방주가 만약 구멍이 뽕뽕 생겨 물이 들어온다고 한다면, 방주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못하죠.
아마 홍수가 나서 물 위에 뜨자마자 금방 가라앉을 거예요.
그래서 노아는 나무로 방주의 모양을 만든 다음에 ‘역청’을 잔뜩 발랐습니다.
또 모세의 어머니가 어린 모세, 갓난아기를 담을 상자를 갈대로 만들었다고 했어요.
갈대로 만든 상자는 물에 넣자마자 물이 들어오는 건데, 어떻게 물이 안 들어오게 했을까요?
역청을 잔뜩 발랐어요. 그랬더니 나일강 위에 띄워졌습니다. 물이 새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역청을 바른 방주도 오랜 세월 동안 산꼭대기까지 다 물에 잠기는 홍수 속에서도 노아의 방주는 침몰하지 않았습니다.
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방주를 만들 때 뭘 해야 할까요?
세상의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생명을 구원하는 배가 됩니다.
이제 아셨죠?
우리가 뭘 해야 해요?
배를 만드는데 어떻게 해야 해요?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해요.
그래야 이 교회가 구원의 방주가 됩니다.
광염교회도 구원의 방주가 맞습니까?
그러려면 구멍이 생겨서, 또는 금이 생겼는지 세밀히 잘 살펴봐야 합니다.
2.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어머니 같아야’라고 정하면서 구원의 방주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어머니 같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높은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이 낮고 천한 우리들을 굽어살피시고,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살펴보시며,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
이 기도 속에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있을까요?
하나님 좀 두렵죠?
하나님이 무섭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높이 계셔야 합니다.
나하고 좀 멀리 떨어져서 나를 좀 덜 보셨으면 좋겠어요.
죄인 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죠.
거룩하시며, 처음(Α)이며 나중(Ω) 이신 하나님.
이 하나님을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니까, 어떤 마음에 들어요? 하나님에 대해서?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에 알게 모르게 하나님에 대해서 가졌던 태도라 하겠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대하는 태도였어요.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금방 벌주시는 하나님으로 믿었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꾸 하나님은 저 멀리 계셔야 했어요.
오랜 세월 동안 굳어진 하나님에 대한 태도이었는데, 이러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신 분이 예수님인 거예요.
벌써 다르잖아요. 경외(敬畏)의 대상으로 무서워하고 하늘 높이 계시는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가까이 가기에 너무 두려운 하나님, 직접 하나님을 보면 죽게 되니 제사장만을 통해 소통해야 하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아빠”하고 불렀으니까 금방 가깝게 되잖아요. ‘하나님이 멀리 계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한 율법 외에,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두려움을 가졌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언자 중 몇 사람은 하나님의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으로 택한 호세아 예언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져서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 호세아를 부르셔서 아주 놀라운 요구를 하십니다.
이 요구가 호세아 3:1~3의 내용인데.
“너는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윤리적, 도덕적으로 지킬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인지 모릅니다.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몸을 내어준 여인을 데려와서 사랑하라고 했어요.
여기 가정을 이루신 남자 성도에게 몸 파는 여자인데 데려와서 아내로 맞이하고 사랑하라면, 그렇게 하실 분 아무도 없을 겁니다.
물론 호세아에게 데려오라 한 여자는 성창(聖娼)으로도 불리는,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곳에서. 제물을 바치고 바치러 온 남자들에게 몸을 주는, 이스라엘 편에서 음녀(淫女)인 여자입니다. 아이를 많이 낳게 하는 일종 다산(多産) 우상에게 바쳐진 여자를 의미하지만, 어쨌든 이스라엘의 신앙으로 판단할 때 받아들일 수 없는 여자입니다.
호세아서에서 음녀(淫女)라고 한 이 여자는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에 빠져 있음을 상징한 여인이었습니다.
도대체 용납될 수 없는 여인이었는데, 이러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라” 호세아에게 말씀하신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호세아는 고멜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런데 이미 그녀는 다른 남자의 씨를 뱃속 자궁(子宮)에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호세아는 태어난 아기 이름을 지어주고. 또 고멜이 집을 나가 다른 사람 아기를 뱃속에 가지고 왔는데도, 또 받아들여 딸을 낳으니 이름을 지어줍니다.
얼마나 호세아가 괴로웠겠어요?
이러한 예언자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고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신 것이며, 어떤 하나님임을 말씀하신 것일까요?
2장 23절 말씀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긍휼(矜恤)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라.”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 수 없는 사람을 긍휼히 여긴다고 했는데, 이 긍휼(矜恤)의 히브리어가 ‘헤세드’라고 하는 단어로, ‘헤세드’는 모든 어머니에게 있는 ‘자궁’(子宮)과 같은 어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어머니의 자궁이 되어, 품고, 사랑을 주시는 자비와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호세아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신 겁니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서“나는 긍휼의 하나님이야.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여라” 하십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자궁을 가지신 ‘어머니 같으신 하나님’입니다.
호세아만 이렇게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을 보면 이런 말씀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네 구속자요, 모태(母胎)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 44:24) 하면서 “야곱의 집, 이스라엘 집에 남은 자여,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내게 업힌 너희여.
노년에 이르기까지 백발이 될 때까지 너를 품을 것이요,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사 46:3~4)여기에 표현된 것은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죠.
또 이사야 49:1에서는 “태(胎)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어머니 복중(腹中)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
(사 49:15)어머니의 심성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심을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서 알려주신 겁니다.
그래서 호세아나 이사야 예언을 읽어보면, ‘어머니 같으신 하나님’ 고백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거룩하시고, 무섭고, 두려우신 하나님만이 아니라,긍휼(矜恤)의 하나님입니다.
이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느냐 하면,우리들도 헤세드, 긍휼(矜恤)을 나누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3.
이제 사도 바울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 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고, 정말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갈라디아서 4:19를 보면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해산하는 수고’,바울은 장가를 가보지 않은 분이신데 해산의 수고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어머니의 사랑을 깊이 체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여기에서 바울이 말씀한 ‘그리스도의 형상’이 무엇일까요?
갈라디아서 6:14~17에“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라 하면서“내 몸에 예수의 흔적(痕迹)(스티그마)이 있노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갈라디아서 2:20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서 볼 때에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라고 한 것은, ‘십자 가’(十字架)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랑’입니다.
바울은 우리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가슴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 사랑이 뿌리내리도록 해산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비단 예수를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걸까요? ‘주님의 교회’에도 역시 이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4.
이러한 사도 바울의 간절한 마음이 본문으로 택한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말씀에도 아주 명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내용은 여러분이 아시니까 설명하지 않고, 본문 그대로 다시 읽어봅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 울리는 꽹과리 된다.”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지식이 많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많은 구제를 하고, 내 몸을 희생하고 헌신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
사랑이 없으면 꽝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여러분 가슴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 사랑이 없으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것이라는 얘기예요.
구원의 방주라고 하는 이 교회가, 사랑이 없으면? 가짜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같은 사랑이 없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방주 밑창에 구멍이 나는 것과 같습니다.
구멍 난 배가 항해에 나선다면, 항해할 수 있을까요?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떠나자마자 침몰하고, 구원선(救援船)이 아니라, 배에 탄 사람들 다 죽이는 멸망선(滅亡船)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누가 구멍을 낼까요?
사탄은 어떻게 하더라도.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구원의 방주를 만드는 사람들이 역청을 바르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비난하게 하고, 욕심부리게 하고, 미움을 가지고 싸우게 하고, 증오하게 하고, 질투하게 하고, 불평하게 하고, 분당을 만들고, 불신하게 하고, 자존심을 세워 귀를 닫고, 거짓말을 내뿜게 하는 것이죠. 사탄은 구원의 방주를 만드는 믿음의 사람들을 자꾸 구멍 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갖춘 것을 바꿔치기 하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형상이 가슴에 있었는데, 이걸 빼내고 엉뚱한 것을 집어넣어서 구멍이 나니까, 방주도 구멍이 생기는 거예요.
바울은 오늘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너희가 구원의 방주가 되지 못하고, 사랑이 없으면?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 되고 싶어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구원의 방주라고 하는데, 왜 구원의 방주가 못 되는가? 누구를 통하여 구원의 방주가 안 되는지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잃어버리면 거기에 구멍이 생겨, 이 방주에 물이 들어오고, 시험이 들어오고, 결국은 침몰하게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나 하나쯤이야”하고 사랑을 포기하면, 그 하나의 구멍으로도 교회라고 하는 배는 가라앉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5.
탈무드에 보면 ‘하나님은 세상 구석구석에 다 가고 돌볼 수가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본성 중 하나인 긍휼(矜恤), 이 긍휼은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어머니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긍휼이 있어요.
이처럼 교회도, 어머니의 긍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실 인생에서 고난을 겪게 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어머니죠.
왜 그럴까? 왜 인생의 고비 때 엄마를 찾을까?
엄마에게는 하나님의 긍휼(矜恤)이 넘치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제가 나이 들어서 군대 졸병으로 입대했는데, 8월 15일 음력 보름이었어요.
훈련병이었는데 그날 저녁 갑자기 부대에 비상이 걸리고, 전부 연병장으로 나오라는 거예요.
그러더니 담벼락을 향해 세워놓고는, 무서운 조교가 “소리 질러! 엄마 불러봐!” 그러는 거예요.
군대 들어와서 머리 빡빡 깎이고, 훈련병 옷 입고 정말 ‘피(P)가 나고, 알(R)이 배기고, 아이(I)고 소리가 절로 나는’ PRI 교육을 받으면서 고생하며, 안 그래도 집이 그리워 죽겠는데, 대놓고 뒤에서 “엄마! 소리 질러 불러! 이것 봐라? 이것밖에 목소리 못 내? 기압 받고 할래?” 윽박지르는데, 기압 받기도 전에 “엄마~, 엄마~” 하던 녀석들이, 한 명 두 명 울어대는데, 저라고 안 울 수 없었죠.
50년도 더 된 옛날일 이지만, 지금도 그때 그 장면 거기를 떠올리면 가슴이 ‘찡’해집니다. 그런데 그때 그렇게 울고 나니까, 많이 시원해지더라고요.
여러분.
왜 우리는 엄마를 생각하면 울게 될까요?
나이가 많아도 “엄마”하고 불러보는 그 부름 속에 담겨있는 어머니, 그 어머니는 변함없는 ‘사랑 덩어리’요, 긍휼의 하나님 품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나 성도는 ‘사랑 덩어리’여야 돼요.
6.
교회에 어머니가 없다면?
오늘 바울은 사랑이 없다면? 이라 했는데, 교회에 어머니가 없다면? 교회에 사랑이 없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교회가 아니에요. 당신 안에 사랑이 없다면? 어머니 없는 사람이 돼요.
어머니 없는 사람, 얼마나 불행해요.
물기가 없는 사막,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무지,메마르고 숨 막히고 건조한 황량한 세상 같은 교회라면, 구원의 방주가 될 수 있나요?
안 와요 아무도!
이제 저는 어머니 같은 교회를 이루는 방법 하나를 알려드립니다.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가보시면, 본 곡을 연주하기 전에 단원들이 전부 앉아 있고, 지휘자가 나오기 직전에 한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 나옵니다. 아시겠죠? 바이올린 제1 주자입니다. 보통 그 사람이 악장을 맡는데, 바이올린을 켭니다. 그게 무슨 음인지 아세요?
A 음(音) 입니다. 바이올린으로 이 A 음을 내면, 각기 다른 모든 오케스트라에 동원된 악기들이 이 A 음에다 자기 악기 음을 조율하여 맞춥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Oboe라고 하는 목관악기 주자가 A 음을 붑니다.
다른 악기들이 이 소리, A 음에 맞춰서 조율합니다. 때론 피아노 반주자가 계속 A 건반을 두드리죠.
그렇습니다.
바로 이 A 음에 맞춰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음을 조율하고 악장이 앉으면, 지휘자가 나와 오케스트라를 지휘합니다.
합창을 피아노 없이 아카펠라로 할 때에는 튜너기를 사용합니다. 역시 A 음입니다.
화성이 아름다운 음악이 돼요.
소리굽쇠도 사용됩니다. “웅웅” 울리죠? 이 “웅웅” 하는 이 소리가 A 음입니다.
소리굽쇠를 두드리면, 이 진동이 다른 것에 전달됩니다.
이때 진동수가 같아져요.
공명(共鳴)이라고 하죠. 또한 ‘떨림’도 같아집니다. 공진(共振), 같이 떨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공유(共有)하게 돼요. 이 소리를 모두 공감(共感)하게 됩니다.
동일한 주파수로, 서로 닮기로, 울림을 같게 합니다.
이렇게 되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게 되고, 우리는 화음(和音)을 듣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머니의 사랑 소리굽쇠가 아들과 딸에게 전해져서, 아들과 딸 역시 사랑의 소리굽쇠를 키워가며 살게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원리를 깊이 생각해 줘야 해요.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흥얼흥얼, 우리 아기 둥둥 둥둥”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거나, 등을 두드리면서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자장자장 잘도 잔다”라고 하거나, 등에 업고 몸을 흔들어가면서 “잘 잔다, 잘 잔다, 우리 아기 최고”하는 이런 소리가 바로 소리굽쇠 울림에 공명하는 것처럼, 어린아이들의 심령 속에 가득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헤세드를 가진 어머니의 역할인데, 이 역할을 오늘의 교회에 맡기고 있는 겁니다.
이 ‘A’ 음이 우리말 계명으로는 ‘라’ 음(音)이 되는데, A가 뭐예요?
알파벳의 첫 글자죠.
헬라어로도 A는 첫 글자입니다.
그런데 아가페(Agape), 사랑, 이것이 A로 시작이 돼요.
그러므로 바울이 “사랑이 없으면?”
이라 말씀할 때, A가 없으면? B, C, D, E, F, G, X, Y, Z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씀 아니겠어요?
여러분이 깊이 생각하셔야 해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다양한 성도들이, 제일 먼저 조율하여 맞춰야 할 음이 ‘사랑’입니다.
이것이 ‘어머니 같아야’입니다.
저는 A를 빼놓으면, 바로 그것이 불협화음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 같아야’라는 제목으로여러분이 아가페를 가슴에 채우고, 하나님의 헤세드를 생각하면서이 교회가 하나님의 헤세드로 채워지는, 아가페로 채워지는 교회가 되도록, 힘쓰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를, ‘어머니 같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도하시죠.
하나님 우리는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타성에 젖어, 내 안에 사랑이 소멸하며,율법과 규례와 전통과 여러 가지 관습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마다 아가페의 A자를 생각하고우리 안에 헤세드가 살아 움직이고 활동할 수 있는 교회를 이루어가고 우리 자신의 신앙이 되도록 힘써 노력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만에 하나 악한 세력이 바꿔치기하며 슬그머니 숨겨 둔 것으로교회 안에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것이 있다면 과감히 내어버리고 사랑을 회복해 가는 우리가 되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