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어린이 같아야

책을 읽는 어린이를 다빈치풍으로 표현한 그림 책을 읽는 어린이를 마티스풍으로 표현한 그림 책을 읽는 어린이를 베라스케스풍으로 표현한 그림 책을 읽는 어린이를 솔거풍으로 표현한 그림 책을 읽는 어린이를 피카소풍으로 표현한 그림 책을 읽는 어린이를 이중섭풍으로 표현한 그림
김민수 목사님의 AI 그림: 다빈치, 마티스, 베라스케스, 솔거, 피카소, 이중섭 풍

여러분이 늘 신앙의 좌표로 삼고 있는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성경이죠.

신약 성경은 복음서와 사도들의 서신과 요한계시록, 세 권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시간상으로 제일 먼저 기록된 것은 사도들의 서신입니다.

다음으로 복음서가 기록되었고,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의 서신들을 보면, 이때에는 이미 교회들이 있었어요.

교회들이 있었는데 그저 편안하게 성장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로마의 핍박도 있었고, 유대교의 방해도 있었습니다.

또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여러 시련과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서 사도에게 질문하게 되고, 사도들은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 교인들의 신앙을 올바르게 인도하기 위해서 서신들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로마서부터 베드로 전후서까지 이어지는 서신들이죠.

복음서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요?

사도들이 세운 교회, 처음에는 예수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경험한 사람도 있고,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두 눈으로 보고 도망쳤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가면, 우리들도 옛날 일은 자꾸 잊어버리게 되잖아요.

처음 교회에도 예수님에 대한 기억이 자꾸 흐려지는 경향이 있었어요.

안 되겠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교인들에게 바르게 알려주기 위해서, 복음서 네 권이 기록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서를 초대교회 교인들이, 예수님을 망각하려고 할 때에 잊지 않도록 하려고 기록되었다는 그 목적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이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이 세상 종말이 올 때 우리는 어떤 신앙으로 살아야 할까? 미래에 관한 기록인 것 같지만, 우리는 매 순간순간을 종말론적으로 살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지켜가야 할까? 하는 물음에 답을 세상의 종말 묵시를 통해서 알려줬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을 키우고 바르게 하기 위한 기록이 요한계시록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개괄적으로 신약성서 27권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어요.

신약성서는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또 예수를 믿고 따르려고 하는 성도들의 믿음을 바르게 세우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 우리들 개개인의 신앙과 믿음, 신앙생활의 뿌리가 무엇이냐 하면, 성경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일, 교인 여러분들의 모든 믿음의 행위를 성경의 빛으로 늘 살필 때올바른 교회, 건강한 신앙생활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2.

여러분은 오늘 광염교회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교회를 다니십니까?

왜 예수를 믿으며 교회에 다닙니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 9절에서“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3절에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습니다.

믿으세요?

우리가 왜 교회를 다니는가? 우리가 왜 예수를 믿는가? 바로 구원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하면서, 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강조했을까요?

상대적인 상황이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유대교가 있었어요.

유대교는 율법 종교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강조하는 종교였는데 율법 종교인 유대교는 율법을 잘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던 거예요.

이것이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정신세계였는데예수를 믿는 소수의 사람이 복음을 믿을 때 “율법을 믿으면 구원받는다.”

가 아니라,“예수를 믿어야 구원받는다.”

를 세상에 선포하게 된 겁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가 “율법을 잘 지키면 구원받는다” 할 때에, 율법은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다 지킬 수 없으며, 오히려 율법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애쓰는 그 사람의 죄를 더 드러내 는 것이라 하면서, 율법 아래의 모든 사람은 한 사람도 의인이 될 수 없고 모두가 죄인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죄를 속량해 주신 십자가를 통해서, 대신 희생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구원이라 강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복음과 율법이 충돌하는 시대적인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현상이 교회가 나라의 중심이 되었던 중세 가톨릭교회에서도 있었어요.

간단히 설명하면, 어느 날 교황이 이런 선포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면죄부를 사야 구원을 받습니다. 여러분의 조상이 지금 연옥에서, 지옥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고난받고 있는 조상들을 위해서 면죄부를 사면 그 죄가 용서받아 의롭다 인정받게 되어 구원받게 됩니다.”

교황이 이런 선포를 했어요.

교황의 선포는 교회의 선포입니다.

교회가 이런 얘기를 하면서 면죄부를 팔았죠.

물론 여러분이 알다시피 로마의 성당을 짓기 위해서 이런 얘기를 했는데, 이것이 틀렸습니다.

옳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선포한 그 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고 한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와 있고, 바울도 고백한 대로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는다”가 아닙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나 칼뱅이나 종교 개혁자들은 로마 교황청을 향해서“아니요! 당신들의 이야기는 잘못된 것”이라 하면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른다’라고 선포한 것이 종교개혁 정신입니다.

우리가 이어받고 있는 거예요.

종교 개혁자들은 복음으로 다시 돌려놓았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신앙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 우리 시대에서도 교회가 원치 아니하는 시련을 겪게 될 때,복음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예수님 말씀 앞에 우리를 세우는 것이 올바른 태도요, 종교개혁의 전통을 올바르게 지켜가는 교회의 자세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3.

예수께서는 ‘구원’에 대한 여러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요한복음에 있는 구원에 관한 몇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요한복음 12장 47절에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어요.

요한복음 11장 25절에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질문하셨어요.

여기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다’라는 말을 다른 말로 얘기하면 ‘구원받는다’ 입니다.

또 우리가 잘 외우고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죠. 그리고 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한다”라고 하셨어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라는 말은 ‘구원받는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길, 진리, 생명, 생수, 생명의 떡이라고 하면서, 이것만이 아니라 내 아버지 집은 거할 곳이 많은데, 그곳에 내가 거처를 마련하여 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이끌고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3) 하셨습니다.

예수님 계신 곳에 있는 그것이 뭘까요?

구원입니다.

이 약속을 요한복음 14장 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9장 16절을 보니까,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이 질문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구원을 받겠습니까?” 질문한 것이죠.

예수님은 답을 주셨습니다.

“너 가진 것 다 팔아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그랬더니 부자 청년은 재산이 많아서 근심하며 떠났다 했습니다.

이후에 이 부자 청년은 어떻게 됐을까요?

예수님을 따랐을까요? 안 따랐을까요?

저는 나중에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신문에서 세상 떠나기 전에 평생 모은 재산을 학교에 장학금으로 기증하시는 귀하신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아마 부자 청년도 그랬을 거다. 저는 그런 짐작을 합니다.

누가복음 10장 25절에서도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부자 청년과 똑같은 질문을 했어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하니까,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말씀하면서,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는 것, 자비를 베푸는 것, 그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요 네가 구원받는 길이다. 이것을 지금 가서 행하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생각해 보세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남긴 종들에게 주인이 하신 말씀은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여라” 였습니다.

한 달란트 그대로 둔 사람에게는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이 누리는 즐거움입니다.

이어서 최후의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양과 염소 무리로 나눌 때,염소의 무리에 속한 사람을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그들에게는 영벌에 던져질 것이라 하면서의인, 양의 무리에 속한 사람은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셨죠.

이 영생에 들어간다는 게 구원받는다는 말씀이죠.

4.

이렇게 예수님은 이렇게 구원에 대한 말씀을 많이 가르치셨는데오늘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말씀도 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본문 18장 1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의 대답이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입니다. 예수님 답을 들으면서, 우리 옛이야기에 ‘삼 년 고개’를 떠올리지는 않았나요?

‘삼 년 고개’에서 한 번 구르면 3년이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는데, 거기에서 자꾸 구르면 뭐가 돼요? 자꾸 젊어지죠? 너무 많이 구르면 어떻게 되죠? 어린애가 되겠죠?

그런 얘기처럼 우리가 자꾸 굴러서 어린아이가 되어야 천국에 간다는 얘기일까요?

예수께서는 이것을 말씀한 건가요?

아니죠.

예수님 말씀은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다.”

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깊이 마음에 새겨들어야 합니다.

중세 교회의 수도사 중에는 ‘어린아이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해서, 기저귀를 차고 작은 배냇저고리 같은 것을 입고 기어다니면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갓난아기 흉내를 내는 수도사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 말씀이 이런 것을 말한 것일까요? 말씀을 잘못 이해한 겁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은“천국에서 누가 큰가?” 하는 물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천국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뜻하는데, 제자들이 이 질문을 할 때 자기를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면, 자기들은 구원받은 사람으로 천국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미 내가 천국에 들어왔고, 다른 제자들, 친구들도 천국에 들어왔는데, 그곳에서 누가 큰 자인지 서로 키재기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십니다.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천국은 당연히 들어간 걸로 생각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아닌 거예요.

제자로 선택되었으니까, 구원은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아닌 거예요.

여기서 바울의 말씀을 다시 한번 떠올려봅시다.

로마서 10장 9절과 13절에서“만일 입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에 “믿습니다.” 했습니다. 여러분 다 믿으시죠?

그리고 혹시 집회할 때 통성기도 하면서, “‘주여~! 삼창’하고 기도 시작합시다.” 그러면 어떻게 했어요? “주여~! 주여~! 주여!” 주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잖아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다 구원받는다고 바울이 말씀했어요. 또 우리는 사도신경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며”라고 고백하셨죠?

그러면 우리는 구원 받은 사람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오늘 “돌이켜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너에게 천국은 없다.”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우리가 “나는 구원받았어”라고 하는 믿음의 확신이, 예수님의 길에서 벗어날 때도 유효한지 도전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길이 십자가를 향하는 길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벗어날 때도 과연 우리에게 허락되는 천국이 유효한가? 하는 물음 앞에 서게 된다는 겁니다.

5.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할 것은, 본문에서 예수님이 진짜 하고 싶으신 말씀은“너희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라는 말씀을 하려는 게 아니고, 진짜 하고 싶었던 말씀이 6절 이하에 나타나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에서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트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마 18:6)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강조하시면서“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 하게 하면 찍어버려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 하게 하면 빼어 내버리라.”

“삼가 이 작은 자 중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이 말씀은 교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지 말라는 것이죠.

겸손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라는 말씀이죠.

그래서 18장 14절에서는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되려면, 작은 자 한 사람을 실족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린이 같아야 한다는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에요.

6.

다시 “천국에서 누가 큰가?” 이 질문을 새겨봅시다.

천국에서 누가 크냐? 작으냐? 키재기는 세속적 가치관으로 비교하기입니다.

누가 더 많이 가졌습니까? 누가 더 많이 헌금했나요?

누가 더 오래 교회를 다녔는가요? 누가 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나요?

비교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구석으로 낮은 자리로 떠밀려가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는 이런 곳이 아닙니다.

“천국과 똑같아야 해. 그래서 키재기를 하며 사람을 밀어내는 일, 실족하게 하는 일 하지 말라.” 이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면서 한 어린아이를 세워서 구원받았다고 콧대를 높이고, “나는 높은 자리를 차지했어”라고 하는 이들에게, 그들과 비교하면 작고 작은 어린아이 하나를 세워놓으신 거예요.

그리고 자신을 이 어린아이같이 낮추는 사람이라야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 역설이죠.

마태복음 23장 11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 큰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굉장히 힘든 얘기를 하고 계세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빠지기 쉬운 유혹을 이기는 길을 여기에서 가르쳐주신 것인데 자꾸만 계급을 만들어서 높은 자리를 탐하고.

권세를 부리고 싶어 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돌이켜, 어린이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하신 그 뜻을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7.

여러분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시길 바랍니다.

형제들끼리 싸우다가도 아버지가 기침으로 “어흠!” 경고하면 싸우던 것 다 멈춰요.

어제 싸웠던 거 마음에 남겨 두고 언제 내가 복수하리라 앙금을 가진 적이 있나요?

다음날 되면, “언제 싸웠어?” 하면서 같이 토닥거리면서 노는 게 어린 시절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린 시절에 우리는 친구와 다투었어도 금방 화해하지 못해서 안달하고 눈치 보면서 다녔어요. 그래서 싸웠는데 눈이라도 마주치면 씩 웃어주죠. 그러면 금방 화해가 돼요. “미안해”라는 말도 하기 힘들어서, “미난해” 이렇게 표현했던 우리 아닙니까?

그래서 배시시 웃으면 다퉜던 일 봄눈 녹듯이 녹아버리죠.

어린 시절을 어른이 돼서 내가 어떤 문제들을 놓고 형제들과 갈등과 대립 등 여러 가지 시련 속에 빠지게 될 때를 비교해 보세요.

나의 기분, 내 자존심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 교회의 사랑보다 더 클까요?

비교해 보세요.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 많이 합니다.

그런데 대개 5절까지만 본문으로 택해서 설교하고 마는데, 저는 6절 이후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염광교회가 어린이 같은 교회로 돌이키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어려움은 거의 다 “천국에서 누가 큰가?”

라는 질문에서 파생됩니다.

그래서 어린이 주일에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 “너희가 돌이켜 어린이 같이 되라.”

이 말씀을 순종하는 주님의 교회를 이루어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어린이 같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기도』우리는 자칫 천국에서 누가 큰가 하는 것으로내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을 많이 행하는데예수님은 우리를 향해서 돌이켜 어린이 같이 되어야천국의 큰 자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한 주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