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에벤에셀
- 등록일
- 2025년 4월 17일
- 설교일
- 2025년 4월 12일
우리가 1년에 한 번씩 가족 모임을 하면서우리 집안의 어른들께서, 또 형제들이 묻혀있는 이곳에 와서 추모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추모한다고 하는 것은, 이곳에 묻히신 분들이 어떤 삶을 살았던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셨던가?
이것을 생각하면서 그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을 우리가 더 가꾸어가고 더 풍성하게 하자고 결심하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오래전에 오형범 장로님께서 5주기 되는 날에 썼던 시를 먼저 여러분들에게 낭독해 드리려고 합니다.
시의 제목은 “받은 것, 드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 많고 많은데 드린 것, 생각해 보니 없다. 추도일 되니 부끄러움과 죄송스러움이 마음을 점령하여 눈시울을 붉게 한다. 그렇구나. 부모란, 그렇지. 그래도 조금도 섭섭타 하지 않고 노엽다 않으셨지. 그냥 바르게 잘 사는 거로 기뻐하셨어. 떠나시고 나니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어 가슴이 저며지는데 그렇구나. 부모란, 그래야지 받은 생명 이어 나눈 우리이니 이을 믿음 잘 보이며 살아 못다 한 효(孝) 배운 대로 살아야지.
오형범 장로님 5주기 때, 부모님의 사랑과 자녀에 대한 소망을 새기고, 살펴보면서 쓴 시였어요. 2. 저는 오늘 또 한 분을 추모하기 위해서 사무엘상 7장 12절 말씀을 본문으로 택했습니다.
사무엘상 7장 12절 말씀은 사무엘이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을 때,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미스바로 모여라. 기도하자”해서, 미스바로 모여 기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블레셋 군대를 다 물리치는 내용이 7장 12절 앞에 나와요.
그래서 ‘미스바’ 하면, 기도하는 장소로 유명하고,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능력을 주시는구나.” 이렇게 우리는 이 말씀을 이해해 왔습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에 사무엘이 미스바 근처 한 곳에, 커다란 돌 하나를 취해 세워놓고, 이 돌은 ‘에벤에셀’이라 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에요. 에벤에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우리와 함께 하셨다”라고 했습니다.
돌에 에벤에셀이라고 썼다고 가정합시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지금, 여기, 현재에요.
현재 여기까지, 내가 살아온 삶, 우리 민족이 걸어온 출애굽하고의 모든 삶, 여기에 오기까지 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지금 여기가 쉼표예요.
쉼표, 에벤에셀 돌 앞에서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우리와 모든 삶의 걸음걸음마다 함께 하셨다.
이 고백을 한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생각하면서, 우리 큰아버님 오형기 목사님이 70세가 됐을 때, 전주에서 개척하셨던 새한교회에서 마지막 은퇴 설교를 하셨는데, 그때, 바로 이 사무엘상 7장 12절 말씀으로, 에벤에셀의 은혜를 전하셨던 것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자신의 지나온 칠십 평생, 만주를 떠돌고 영국더기 병원에서 일을 하고 월남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전주에 터를 잡고 개척교회를 세우고, 전주 기전학교 교목 생활을 하시면서, 사랑하는 딸도 시집 보내고. 강 목사도 사위로 맞이하도록 허락해 주셨어요. 그때, 허락하지 안했으면 여기에 없을 사람이 많아요.
우리 가정에 어른으로 살아오셨는데, 어른께서 70세 은퇴를 하시면서, “내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니 ‘에벤에셀’이었다”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러면 쉼표, 다음에 어떻게 갈 거냐?
에벤에셀의 믿음을 가지고 앞날도 살겠다고 말씀한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에벤에셀,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도우셨다 하고는 마침표 점 찍는 게 아니에요.
여기까지도 도우셨지만, 내 앞으로의 인생과 내 앞으로의 걸음에도 나를 도우실 것이라고 하는 믿음으로 사셨기 때문에, 두 분이 “같은 날 돌아가게 해주세요” 하셨는데, 같은 날은 맞는데 따로따로 다른 해에 돌아가신 거예요.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얘기인지 모릅니다.
기도를 잘해야 돼요.
3.
이런 생각을 해요.
쉼표로 멈춰서서 지난 세월을 반추(反芻)해 보니.
제힘으로 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힘으로 여기에 오게 되었구나.
그래서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지었는데, 그 지나온 날을 어떤 날들이었을까 생각을 해보면, 무엇이 하나님의 은혜인가?
길을 가다 보면 절벽 앞에 서는 것과 같은 고통의 날들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 순간이 있어요.
인생을 살아보면 그래요.
정말 죽고 싶어 할 정도로 힘들 때가 있는데, 그때에도 나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나를 돌아서게 하신 하나님이세요.
이것만이 아니라 살다 보면 늘 바른길만 갈 수가 없어요.
어떤 때는 곁길을 갈 수 있어서, 이 길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른길인데 내가 다른 쪽에 가 있어요.
정도(正道)를 걷지 못하여 거기서 괴로워하는 그때에도 주님은 내 이름을 부르시고, “얘야 내 길은 여기야” 하고 불러주시는, 그렇게 함께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또 세상에는 예수님만 계신 것이 아니죠.
늘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넘어지게 하는 악한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유혹한 녀석인데 우리를 얼마나 많이 유혹하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유혹을 당해서 엉뚱한 짓을 할 그때,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그때에도, 나를 버리지 않고 기다려주시고 돌아오기를 기도하시는, 사랑이요, 품을 가지신 하나님이셨더라는 겁니다.
이것만이 아니라 시편 23편의 말씀대로 내가 사망의 골짜기를 다니고, 시련의 계곡에 빠져서 이제는 정말 절망이야 하는 그때에도, “무슨 말이야 내가 너와 함께하잖아! 내가 너를 지키는 목자잖아!” 말씀하시면서, 이끌어서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겁니다.
인생의 모든 경우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는 것, 이것이 에벤에셀이에요.
하나님이 지켜주셨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셨고, 하나님께서 동행하셨고, 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품어주시고, 잘못이 있음에도 용서하시고, 때로는 “요놈 봐라?” 혼내야지. 사랑의 매를 들어 야단도 치시면서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 이것이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요, 우리 집안의 어른들이 믿고 우리에게 넘겨주신 믿음의 유산인 하나님입니다.
- 이제 우리는 오늘 이 추모하는 시간을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또 유혹도 있고, 시험도 있고. 고난도 있고, 기쁨도 있고, 보람도 있고, 때로는 미움도 생기고, 증오도 생기고, 절망하게도 하는 삶의 현장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요?
크게 다 같이 외칩시다.
“에벤에셀의 신앙!” 여기까지 도우신, 여기까지 함께하신, 지금까지의 모든 나의 삶을 붙잡아주신 하나님을 붙잡고 살게 하신 하나님께서앞날에도, 앞길에도, 함께 하심을 믿고.
손을 내미시는 하나님의 손 붙잡고.
믿음의 유산을 잘 지켜가는 우리 모든 가족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