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네가 희망이다
- 등록일
- 2025년 1월 3일
- 설교일
- 2025년 1월 1일
2025년 새해를 맞이하며,주님의 평안이 올 한 해 동안, 주님 뜻 받들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2. 우리는 지난 2024년 마지막 달에 123155로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습니다.
새해 첫날 새벽, 서울 하늘을 살폈습니다. 미명(未明)의 하늘에 검은 구름이 채워졌습니다.
제가 느낀 감정은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을씨년스럽다.
국어사전의 뜻은 ‘남이 보기에 퍽 쓸쓸하다’, ‘살림이 매우 궁색하다’인데,보통 날씨가 스산하고, 따사함을 느낄 수 없고, 밝지 못할 때 쓰이는 말로,침울(沈鬱)하고 심란(心亂)한 상황, 어수선한 분위기, 불안정하여 걱정만 쌓이는 형편 등등을 나타냅니다.
결코 좋은 의미의 단어가 아닙니다.
저는 120년 전의 을사년(乙巳年)의 하늘과 같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을씨년스럽다’의 어원이 된 120년 전, 1905년 을사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조선과 일제 사이에, 저는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으로 배웠던 ‘을사늑약(乙巳勒約)’의 조선(朝鮮)의 국권(國權)을 잃어버린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조약으로 일제는 조선의 국권을 보호(保護)한다는 표현이지만,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늑탈(勒奪)의 조약’, ‘폭력이나 위력으로 빼앗긴 조약’이라 바꾸었는데, 이후 우리는 36년 동안 주권(主權)을 잃어버린 백성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뼈아픈 그날의 원통함을 ‘을사년스럽다’로 표현했는데, 이것이 날씨에 차용돼 ‘을씨년스럽다’가 됐다고 합니다.
우리의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창씨개명(創氏改名)해야 했습니다. 신사참배(紳士參拜)를 강요받았고 하나님께만 경배하는 믿음이 훼손(毁損)되었습니다. 너무나 기가 막히는 일을 겪으면서 ‘을사년스럽다’라고 말하는 백성의 마음에 담은 것은 무엇일까요?
‘절망(絶望)’입니다.
3.
그런데 우리는 120년이 지난 2025년 을사년에 비슷한 ‘절망(絶望)을 느낍니다.
여러 상황을 말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듭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완전히 둘로 나뉜 것 같습니다.
쪼개졌습니다.
광화문과 여의도, 보수와 진보, 태극기와 촛불(응원봉), 빨강과 파랑이라는 지명(地名), 이념(理念), 상징어(象徵語), 색깔(色)로 분열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파란색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입었습니다. 파란색으로 나를 민주당이라고 보지 말아요. 만약 제가 붉은색으로 후드를 둘렀다면 국민의 힘 당이라고 하겠습니까?
저는 오늘 평화를 비는 마음, 희망을 말하려는 뜻을 푸른색(色)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저앉아 한(恨)스러운 현실만 한탄(恨歎)해야 할까요? 120년 전, 절망 앞에 선 우리 민족이 무엇을 했을까요?
몇 분의 시인을 말씀드립니다.
한용운은 1925년에 시집의 서문 격인 ‘군말’에서 “나는 해 저믄 벌판에서 도러가는 길을 일코 헤매는 어린양이 긔루어서 이 시를 쓴다”라고 하며 ‘님의 침묵’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님은 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 님은 갓슴니다 (중략)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엇슴니다. (중략) 아아 님은 갓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엿슴니다. 이상화는 1926년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씁니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략)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중략)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윤동주도 1941년 5월에 ‘새벽이 올때까지’에서 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오. 다들 살어가는 사람들에게 흰 옷을 입히시오. (중략)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 올게외다. 1941년 6월에 ‘돌아와 보는 밤’에서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중략) 이제 창(窓)을 열어 공기(空氣)를 바꾸어 들여야 할텐데 1941년 9월에 ‘길’에서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게 나아갑니다. (중략)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어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시인들은 우리의 역사가 어둠이었을 때, 절망으로 주저앉은 것이 아니라, 빛을 노래하였습니다.
가슴 속에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습니다.
옥고(獄苦)나 죽음이라는 고난을 겪게 되었지만, 시 속에서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그들의 희망이 시로 남아, 2025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삶을 맑고 밝게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120년 전에 교회는한글을 가르치고, 농사법을 개량하고,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권고하며, 믿음으로 국난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많은 성직자가 경건(敬虔)과 청빈(淸貧)을 본보이며 목양(牧羊)했고, 때(時)에 대하여 예언자의 몫을 감당하며 국권을 회복하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4.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마가 1:15)예수께서 세상을 보니, ‘때가 찼다’라고 판단합니다.
하나님 심판의 때, 종말이 가까웠다고 하십니다.
이 시대가 절망적(絶望的)이라고 평한 것입니다.
그냥 망하도록 내버렸습니까?
아닙니다. 살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우린 예수께서 제시하신 살길을 구원(救援)이라 합니다.
어떤 살길입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이 말씀은,“세상(때)의 종말을 이끌어 오게 한 삶에서 돌이켜 살아라. 여기에 희망이 있다.
절망을 바꾸어 희망 되게 하는 길이다.”
라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복음을 믿으라” 입니다. 복음인 예수님을 따름에 희망이 있습니다.
이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마태 5:13)“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마태 5:14) 하십니다.
이것은 다른 말이 아닙니다.『너희가, 네가, 희망이다.』예수께서는 “나를 따르겠다고 나선 네가, 절망의 세상에 희망이다”라 하신 것입니다.
5.
저는 새해 첫날, 이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때가 차서, 심판을 향하는 절망의 세상에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희망입니다.
우리 모두 『내가 희망이다』 소리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을사년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