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입추가 지났는데도 무더위가 수그러들지 않아서 계속 잠 못 이루는 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또 마침 올림픽 중계방송도 한밤중에 있어서 더불어 잠 못 이루는 분들도 있습니다.

무더위가 수그러들지 않는 이 현상을 지구온난화의 가속화 현상 때문이라고 합니다.

2015년에 전 세계 온 나라 대표들이 모여서 파리기후협약을 맺었습니다.

지구의 평균 온도가 섭씨 1.5도 올라가는 것이 굉장히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산업화 이전 수준으로 1.5도 이하로 억제하기로 협의했습니다.

이산화 탄소를 줄이자는 협약이었는데, 사실 이 협약은 실패한 협약이 되고 말았습니다.

작년 7월 24일입니다.

신문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그리스도상에 큰 글씨가 기록된 사진 뉴스를 보았습니다. 뭔가 했더니, 지구 평균 온도 1.5도 높아지는데 남은 시간이 5년 364일이라고 하는 기후위기시계가 표시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원문에 실린 그림 또는 사진 1

오늘이 2024년 8월 11일이니까, 이제 5년 남았어요. 일종의 경고를 보낸 것인데,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무신경합니다. 올해 유례없는 사우나 습식 열탕에 앉은 것과 같은 여름을 지냈습니다.

지구 평균 온도가 섭씨 1.5도가 올라가는 것이 뭐 문제냐 하겠지만, 학자들은 지구의 온도가 1.5도 올라가는 것이, 지구 종말 시작의 징조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적색 경고등이 켜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산화 탄소를 줄이는데, 우리는 무신경으로 협조도 별로 하지 않습니다.

저도 오늘 교회를 오는데, 이 일에 협조하려면 자가용을 타고 안 와야 합니다. 버스나 전철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집에서 떠날 때부터 너무 더우니까, 차를 타고 시원하게 왔죠.

운전하고 오면서 설교 준비를 했던 마음으로 보면, 부끄럽기가 그지없는데 “어쩔 수 없잖아? 너무 더워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사실 속으로는 굉장히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섭씨 1.5도, 이것이 지구의 생명을 지키는 마지노선이라고 하는데, 지금 이 선을 넘어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지구의 위기라는 말씀입니다.

  1. 이 더위도 힘든데, 뉴스를 보니까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조심하세요.

4년 전입니다. 최재천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를, 종식하는 방법을 제시했었습니다.

어려운 게 아니었는데, 백신을 개발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좋은 방법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백신을 모든 사람에게 부작용 없이 개발하려면, 보통 3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백신을 30년 후에, 모두에게 아무 지장 없이 투약할 때가 되면, 지금의 이 바이러스는 지나가고, 새로운 종이 나타난다는 거예요. 그만큼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나는 기간이 짧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백신 개발이 30년 이상 걸려 사용하게 되어도, 결국은 뒷북 치기에 불과합니다.

최재천 교수는, 백신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현실적인 백신, 2가지를 이야기했는데,하나는 행동 백신이고, 다른 하나는 에코 백신입니다.

행동 백신은 아주 쉬워요.

우리도 해봤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입니다.

최 교수 주장은 이런 겁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정상들과 사람들이, 딱 두 주일 동안만, 나돌아 다니지 말고 스스로 격리해서 두 주일만 멈추어 있으면, 바이러스 전파 경로가 차단되기 때문에, 바이러스 창궐이 종식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백신이 없답니다.

이것이 행동 백신입니다. 안 만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옮길 이유가 없다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되겠어요?

그건 안 되죠.

그래서 두 번째 방법을 제시하는데, 에코 백신입니다.

이것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인데, 바이러스가 사람들에게 건너오지 못하도록, 야생동물들, 박쥐라든가, 사향고양이라든가, 낙타, 이러한 동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지 말고, 바이러스 보유 동물들과의 접촉을 아예 없이 하라는 방법입니다.

서식지를 자꾸 개발한다고 파괴하니까, 바이러스 보유 동물들이 결국 사람 사는 곳으로 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바이러스를 전파하기 때문에, 이것이 면역력이 없는 우리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창조 질서로 경계선을 그어놓았는데,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넘어가는 것, 경계선을 부숴버리는 것, 이것을 멈추는 것, 이것이 에코 백신이라고 최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우리의 건강에, 평화에 좋은 거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쟁도 선을 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넘으면 위기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3. 좀 거창하게 지구, 자연계 현상을 이야기했는데, 지구, 자연계만이 위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극심한 위기에 봉착하였습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교단 총무님을 만날 일이 있어서 만나 대화하던 중에,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교단의 교인이 4천 명이나 줄었다고 합니다.

신암교회도 예배 인원이 줄었어요. 4천 명 속에 아마 포함된 것 같습니다.

비단 이렇게 교인이 줄어든 것만으로 위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다른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곳곳에서 위기의 징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지구촌교회가 예배당 건축 문제로 인해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목사님과 교인들, 원로 목사와 젊은 목사 사이에 파생된 어려운 문제들을 사회에 드러내, 여간 불편한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다른 교단만이 아닙니다. 신암교회 역시 위기감이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사실 많이 나이가 들었어요. 우리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다음 세대가 이 신암교회를 어떻게 이어 갈지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게 솔직한 우리의 현상이에요.

왜 주님의 교회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까?

저는 저 나름대로 오랫동안 생각을 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할 거룩을 세속의 가치로 바꾸면서부터, 교회가 지켜야 할 선을 지키지 못하여 위기를 맞이하였다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암교회는 새로운 담임 목사 청빙을 하게 되었고, 노회에서 허락하게 되면, 새로운 담임 목사님을 모시고, 나름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하는 마음이 여러분에게 있으리라 생각하였는데, 이럴 때 저에게 설교를 맡긴 것은 어떤 뜻이 있을까? 저 나름대로 생각을 하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 마태복음 16장에 있는 내용으로 위기 극복의 길을 여러분과 찾아보려고 합니다.

  1. 마태복음 16장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뽑고, 복음 전파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을 지나시다가, 제자들에게 질문하시죠.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그 질문 다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다른 사람이 뭐라 하는 것은 소용없다. 너희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셨습니다.

이 질문을 하자,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실 이 베드로 한 사람이 얘기한 것 같지만, 이 베드로의 대답은, 초대교회, 마태복음이 기록되던 때, 교회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마태 공동체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베드로 개인의 고백이면서, 동시에 만인사제설(萬人司祭設)에 따른다면, 첫 교회에서부터, 2024년에 오늘에 이르기까지, 온 지구상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드렸던 그 신앙고백이고,오늘 이 교회의 여러분들 역시, “예수님은 나의 구주시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하는 신앙고백을 가지고 계시죠?

그래서 이 신앙고백은, 그냥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신앙공동체의 모든 공교회가 공유(共有) 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뒤에 뭐라고 하셨어요?

“아, 베드로 너 참 훌륭하구나. 성령께서 너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셨다.” 얘기하시면서,“네 신앙고백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 이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음부의 권세라고 하는 것, 곧 사망의 권세, 죽음의 권세가, 내 교회, 에클레시아를 이길 수 없다.”

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이 말씀 속에 담긴 것, 교회란 어떤 곳이냐? 죽음의 세력, 죽음을 가져가는 모든 세력에서부터, 죽임의 모든 것으로부터 생명을 지켜내는 곳, ‘생명공동체이다’라는 말씀인 거예요. 우리의 교회가 이렇게 되어야 해요. 교회가 생명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죠.

이 선포를 하신 다음에, 베드로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베드로야, 너에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

가톨릭교회는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삼아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줬다. 그 천국 열쇠를 교황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만,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 오늘 이 자리에 예배하러 모인 신암교회의 성도들 여러분에게도 주님께서 천국 열쇠를 주셨습니다.

이것을 믿으셔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주님은 그리스도십니다”라고 하는 이 고백 속에 담겨있는 뜻을 깊이 생각해야 해요.

주님이 나의 구주라고 하는 말은 그걸 뒤집어서 읽어보면,“나는 구원이 필요한 죄인입니다.”

이걸 인정하는 거예요.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죄인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이 교회는 죄인 공동체라고 십자가를 내걸고 온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동시에, “주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하는 고백은,교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은혜의 공동체’임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태복음 16장에 베드로의 신앙고백 속에 담겨있는 것은우리의 교회가 세상 안에서 생명에 빚진 죄인 공동체로서 겸손해야 하고, 구원을 받은 은혜를 늘 감사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에요.

이것이 없어지고, 이 감동과 이 감사가 사라지게 되면 마른 뼈다귀 같아요.

해골 골짜기가 되고 말아요.

마태복음 16장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평화 모드입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바뀝니다.

21절에 ‘이때로부터’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때로부터. 이때로부터 라고 하는 게 뭘까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말씀하시고, 천국 열쇠를 주신 이후에, 예수께서 처음으로 “나는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3일 후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어요.

제자들을 대표에서 베드로가 또 나섭니다.

저는 이 장면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두 팔을 벌려 가로막으면서,“어? 주님! 왜 갑자기 고난받고 죽는다고 말씀하십니까? 안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가 쌍 손을 들고 막겠습니다.”

아마 이렇게 얘기한 것 같아요.

그런데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 생명 지키겠다고 나선 베드로를 향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뭡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구나.”

바로 조금 전까지 너의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칭찬을 하시고 천국 열쇠도 주셨는데, 나에 대한 신앙고백 위에 세운 교회는 사망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오! 베드로를 향해서 사탄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야단을 치신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무엇이 있을까요?

이것은 우리가 조금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 장면에, 우리의 첫 교회들과 성도들이 예수님께 거는 기대와,예수님께서 교회와 제자들에게 거는 기대가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 본문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교회를 목회하고 있다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목사로서 기대하는 기대가 있는가 하면, 여러분이 목사에게 기대하는 기대가 있을 겁니다.

그것이 같다고 보십니까?

아니에요?

사실은 일치해야 돼요.

그런데 사람이 같을 수 없는 것 같이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이죠.

바로 이 얘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만을 마음에 두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이 교회에는 어떤 분들이 모입니까?

여러분 다 각양각색의 욕구와 욕망, 소망을 가지고 교회에 오지 않습니까?

모두 같습니까? 비슷하긴 해도 각각 달라요.

예수님의 발걸음이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십자가를 향한 것이라고 한다면,교회와 교회의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 이상이라든가 꿈이라든가 현실적인 욕망을 향하고 싶은 이런 것들이 채워져야 한다고 하는 마음의 욕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현실을 부정할 수가 없어요.

여기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왜? 자연스럽게 사람의 일을 추구하다 보면, 교회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들이 희석되거나 포기되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계선이 무너지고 세상의 가치를 수용하여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시면서 물리치셨던 그것들을 교회가 움켜쥐고 교회의 거룩 성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바로 마태복음 16장 21절 이후의 내용이 그러한 상황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질된 교회는 더 이상 주님의 교회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말 뒤에 “안 됩니다. 주님에게 그런 죽음이 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막겠습니다”라고 한 그 말 뒤끝에 연결되어 있는 음부 권세의 끄나풀들을 끊어버리려고 목소리를 높으신 것입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여라. 사람의 일을 생각지 말아라.”

이것이 우리 신앙의 본질이기도 해요.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늘 주님의 교회를 올바르게 세워가려고 하면 반드시 훼방하는 사탄의 작용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이런 훼방하는 힘이 베드로를 통해서 작동되었다고 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누굽니까?

예수님의 수제자, 대표예요.

그를 통해서 사탄이 역사했다는 것.

우리가 두려운 마음으로 기억해야 할 점입니다.

이제 마지막 장면입니다.

아주 분위기가 나빠졌잖아요. 베드로를 향해서 사탄아, 했으니 좋을 리 없죠.

그러고 나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16장 24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여러분께서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우리가 주님의 교회를 올바르게 세우려 할 때 훼방하는 사탄의 힘이 작용하게 되면, 교회는 당연히 위기에 봉착하게 되겠죠?

예수님의 16장 24절 말씀이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능력이요, 힘이요, 말씀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을 다시 정리하여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세상을 향해서 곁눈질하지 말고 앞서 걸어가시는 예수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자꾸만 그럴듯하게 보이는 세상에 유혹되지 아니하고 거룩함을 지키면서 한 걸음씩 예수님의 걸음을 밟아가다 보면, 우리 안에 위기가 기회가 되고, 우리 안에 깃든 어려운 문제들이 녹아 사라지고, 도움을 얻는 은혜가 가득 채워질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것,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걷는 길이라고 말씀하셨고, 이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이 신앙이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올바른 걸음이 될 것입니다.

이제 신암교회가 새로운 목사님을 맞이하고 취임식을 하겠죠.

담임목사다 교회를 이끌어가는데, 목사님이 취임하고 나서 여러분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목회학에서는 목회(牧會)라고 얘기하고, 또 다른 말로는 목양(牧羊)이라고 합니다.

목양의 정신이 뭘까요?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까지, 이 설교는 제가 신암교회에 설교한 적이 있어서 중복하지 않겠습니다만,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고 결국은 찾아서 어깨에 메고 돌아 오는 것, 이것이 목양(牧羊)이에요.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람을 키우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제 후배가 이 교회 담임을 맡게 되는 건데, 이런 생각을 했어요.

목사라고 한다면 누구나 주님의 교회를 올바르게 세우고, 교인들이 올곧게 신앙고백으로 살아가게 하면서, 그 교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이러한 교회를 이루고 싶은 꿈을 가졌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의 비유로 설명한다면, 열매 맺는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 7절에서“네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네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리라.”

말씀이 아주 오묘해요.

“목사, 당신이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 안에 거하는 내 마음 안에, 예수님의 말씀 로고스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 로고스는 사랑이죠.

그렇게 되면, 그것이 무엇을 구하든지 원하는 대로 이루게 해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의 말씀이요한복음 15장 7절의 말씀인데, 아마 새로 맞이하는 여러분의 목사님도 이런 말씀들을 의지하면서 목회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할 일이 있습니다.

신앙교회의 성도 여러분, 주 안에서 신앙고백으로, 믿음으로, 하나 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 되는 준비를 하세요.

두 번째로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세요.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걸으면서 예수님을 닮아 가십시오. 그러면 위기를 맞이했다고 하는 교회들이 십자가의 도를 이루는 교회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십자가의 도를 이루어가는 교회를 주님께서 칭찬하지 않을 리가 만무합니다.

저는 이제 신암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칭찬받을 준비를 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도하시죠.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신앙고백 위에 이 교회가 세워지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사탄아, 물러가라” 이 말을 듣지 않도록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저희가 되게 하시고,“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그 말씀을새기며 행하는 저희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