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교회가 시작된 날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오늘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우리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려고 합니다.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된 첫 교회에서부터, 2,000년이 지난 21세기에 이르기까지이 땅 위에 존재했던 모든 교회는 순교자의 피흘림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고자 하는 믿음의 열심, 이것 없이 세워진 교회는 한 교회도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한일교회도 똑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고백하는 이 한일교회도 그냥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는 말씀이에요.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 이후 바로 오늘 오순절 성령 강림주일에 첫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지는 데에도 그냥 성립된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가 옥에 갇혀서 채찍에 맞는 고난을 받기도 했고, 또 예수의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강요, 핍박을 받는 제지 속에서도,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는 것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이 이방인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방인 지역에도 교회가 세웠집니다. 여기에도 순교자의 피,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 자신의 재물을 내어놓는 헌신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가 많은데, 이 교회들이 세워지는 과정을 보면 교회를 핍박했던 사울이 바울이 되어서 세운 교회들은 사도 바울이 고백한 내용대로,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며 사형선고를 받은 가운데 하나님만 의지하였다.”

(고후 1:8) “옥에 갇히고 39번의 태형을 5번, 파선, 강도 만나고, 주려 굶주리고, 춥고 헐벗는 역경을 겪으면서”(고후 11:23-27) 세운 교회였습니다. 종교개혁 때도 수많은 신도가 죽었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라는 사명을 가지고 간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만 일까요?

주님의 교회, 한일교회의 80년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 안에 어떤 것들이 들어 있습니까?

그냥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오늘의 한일교회가 생긴 것이 아닌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교회 역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받은 여러분들의 부모님 세대의 기도와 헌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믿음의 열심들이 모여져서 오늘의 한일교회를 이루고 있고, 이곳에 함께 참여한 여러분들은 이 신앙의 전승을 이어가려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2.

저는 오늘 고린도 교회를 통해서 우리의 교회, 한국교회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 중, 주후 55년에 에베소에 머물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좋은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에 대한 문의도 있었지만, 들려온 이야기들은 고린도 교회가 고린도 도시에 있는 여러 세속주의의 물결에 휩싸이면서, 신앙적인 문제가 교회 안에 생기게 되었다는 겁니다.

교회가 어지러워지고, 교회의 신앙적 가치관이 흔들리고, 파벌이 생겨 다툼이 생겼습니다.

가슴 아픈 소식입니다.

저는 교회 안에 있었던 여러 문제를 다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단지 이러한 일들로 인해서 고린도 교회가 흔들리고 있었고, 위기를 맞고 있었다는데 관심을 기울입니다. 에베소에 있었던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서 편지를 보냈는데, 이 편지 속에는 고린도 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마음의 생각이 담겨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울은 교회의 상황을 듣고 걱정하면서 이런 마음을 가졌을 거예요.

어떻게 세워진 교회인데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바울은 기도하면서 왜 고린도 교회가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가슴을 치며 아파하면서 이 상황을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상황을 잘 진단했을 거라고 저는 짐작합니다.

그리고 또 한편 이대로 이 상태를 가만 놔두면 고린도 교회가 어떻게 될까?

결국은 문 닫을 수밖에 없고, 복음 전파도 어렵고, 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될 거다.

위기로구나.

이것이 바울이 가졌던 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세운 바울의 입장에서 이러한 고린도 교회의 형편을 그만두고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다시 올바르게 세워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해결 방법을 찾아서 제시한 것이 고린도 전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바울의 고린도서를 통해서 해결 방안으로 제시된 것을 정리하면서, 이것이 오늘의 한국교회에, 좀 더 축소해서 한일교회에 적용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3.

크게 세 가지로 정리가 될 수 있겠는데, 바울은 고린도서에서 다시 한번 교회가 어떤 곳이고,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교회는 어떤 곳인가?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가? 뿌리를 일깨웁니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십자가로 세운 교회입니다. 십자가로 세워진 신앙공동체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3절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했다.” 했습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했더니, 고린도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는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

하면서,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서 “이 터는, 곧 교회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다.”

결국 이런 말씀이 강조하는 것은, 교회는 십자가 아래 세워진, 십자가의 도(고전 1:18)를 따르는 신앙공동체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터전으로 삼아서 주님의 십자가를 믿고 의지하면서 세워진 것이 교회다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한일교회는 십자가 탑이 두 개나 있어요.

한일교회는 십자가 두 개의 탑 아래에 있는 교회예요.

또한 예배당 안에는 십자가가 교회의 중심에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신앙공동체여야 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십자가로 세워졌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생긴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여 바로 세워가는 첫 걸음입니다.

십자가가 뭡니까?

십자가의 도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자기를 드러내려고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신이 영광을 받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철저히 인류의 구원을 위한, 곧 타자(他者)를 위한 것입니다.

희생입니다. 십자가의 본질입니다.

십자가 자체가 내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 있던 그것이 바뀌어서, 다른 사람, 이타(利他)가 되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한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빌 3:5-6)라고 자랑했던 그 사도 바울이, 내가 자랑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을 드러내는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것이 제자의 도이며, 신앙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교회가 반성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드러내야 할 우리들이 자꾸만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내가, 내가” 이 소리가 많아지면 교회는 시험에 듭니다.

교회가 주님을 드러내고 십자가의 도를 따라가게 되면, 그곳에 은혜가 넘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교회는 십자가 아래에 세워진 공동체다”라고 가르친 겁니다.

  1. 두 번째, 바울의 가르침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이 장로교회의 신앙원리 제1조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니까“하나님을 바로 알고, 삶 전체를 바쳐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세례 교육을 받을 때,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배우면서 마음에 새겼던 겁니다.

이어지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를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복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신앙입니다.

기억이 희미하신 분들은 다시 한번 마음에 잘 새기시기 바랍니다.

이 신앙고백 원리, 이 말씀의 본문이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0:23-33절의 내용을 보면, 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 지역에는 우상숭배 제단이 많았어요.

그래서 우상에게 제사를 드린 다음에, 제물로 바쳤던 동물이 시장에 나왔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교인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탄수화물 섭취해야 삽니다.

그래서 시장에 가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사서 먹어도 되느냐? 먹으면 안 되느냐?

하는 것이 고린도 교회의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바울의 답은 간단합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제사의 제물로 바쳤던 음식을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에서 적용되는 것을 질문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됩니다.

바울은 이런 입장이었습니다.

아주 분명합니다.

먼저 나에게는 먹는 것, 제물로 바쳐졌든 바쳐지지 않았든, 그것은 내게는 음식일 뿐이다.

단순히 음식의 문제이지, 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먹어도 괜찮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먹으라고 주신 음식이지, 우상도 인정하지 않는 신앙의 면에서는, 그게 뭐 문제 되느냐 하는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바울은 내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누군가가 양심에 거리낌이 된다면, 그를 위하여 나는 먹지 않겠다.

여러분 제가 예배 마친 다음에 나가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면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목사님이?!” 하면서 놀라시겠죠?

제가 오늘 운전을 하고 교회까지 왔는데, 운전하기 전에 오늘 내가 은혜를 넘치게 하려면 한 잔해야 되겠다 하여, 포도주를 한 잔 마시고, 얼굴이 빨개지고 술 냄새 풍기면서 설교를 했다면, 여러분 어떻게 보시겠어요? 난리 나겠죠?

그런데 술 담배가 제게 문제가 되느냐? 바울의 입장으로 보면 그것은 문제가 안 돼요.

그런데 여러분이 만약에 목사님이 술 담배를 하다니? 한다면, 여러분의 양심을 위해서 나는 안 합니다. 이게 바울의 입장이에요.

저는 사실 술 담배 할 줄 몰라요.

성찬식 포도주만 조금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헐떡헐떡 거립니다.

바울의 마음을 깊게 이해해야 합니다.

내 양심에 거리낌이 되진 않지만, 다른 사람의 양심에 거리낌이 된다면, 나는 내 양심의 거리낌의 자유를 포기하겠다는 말이에요.

내게 내 양심이라는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 양심의 자유가 남의 유익에 걸림이 된다면, 남의 유익을 위하여 나의 자유를 행하지 않겠다.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전한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 속에 담긴 의미를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의 말씀의 뜻은 나의 자유가 타인의 양심에 걸려, 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데, 내가 하나님을 믿고 살지 못하게 한다면, 곧 구원에 방해가 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 합니다. 내가 자유하는 그 행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아니다. 이건 하지 말아라.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구원을 기뻐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나의 자유가 누군가를 하나님을 믿게 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나의 자유가 잘못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직장에서 여러분이 교회에서 직분 가진 신앙 좋은 분이라는 것을 다 아는데, 정직하지 않다면, 누가 여러분을 보며 예수 믿겠다고 할까요? 동네에서 교회 다니는 것 다 아는데, 입만 열면 이웃을 욕하며 다닌다면, 누가 당신을 보고 교회에 다니고 싶어 할까요? 말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자유가 다른 사람의 구원의 길을 막는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한 사람이 구원 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의 자유를 마음대로 하라고 자유를 줬지만, 하지 않는 자유 또한 너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신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본문 10장 31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뒤 10장 33절에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라 말씀하였습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라고 합니다.

따라서 해 봅시다.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어떻게 하라고요?

먹지 말아라.

자유, 너의 자유를 고집하지 말아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와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를 같이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중요한지, 중요하게 여겼는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이 말씀을 전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 을 얻고자 함”이라고 고린도전서 9장 19절에서 말씀하셨고, 고린도전서 9장 22절에서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고 말씀한 겁니다.

한 사람의 구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로교 신앙 원리 제1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말씀하신 뜻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겁니다.

5.

세 번째 가르침이 있는데, 고린도전서 11:1에,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라 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바울의 마지막 편지인 빌립보서 2:5-11을 보면,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서적으로는 이 고백이 마태복음 16:16, 베드로의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보다 먼저 된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말씀하셨죠.

교회를 세우게 된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된 것이 마태복음에 나오니까, 먼저 된 걸로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빌립보서 2;5-11, 낮아지신 그리스도 신앙고백이 더 먼저 된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할 때, 바울은 “너희 마음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 하면서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말씀했는데 여기에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낮아지신 그리스도는 그는 근본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셨다. 하나님과 동등하셨던 그분이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라는 말에는, 예수님도 하나님처럼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린다’ 할 때 하늘을 향하잖아요. 그것처럼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된 분으로서 예배받으시는 분이었는데, 그분이 스스로 낮아지셔서 우리를 섬기는, 종의 자리에 내려오셨다. 이 ‘낮아지신 그리스도’, 섬김의 종으로 오시는 그분을 본받은 것이 사도 바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영광 받는 자리를 비우시고 낮은 자리로 낮아지신 예수님의 마음을 간직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간직하고 실천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삶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고린도교회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가 어지러워졌습니다.

저는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다는 이 말이 어떤 뜻일까? 물으면서, 베드로에게는 “양무리의 본이 됨”으로 이해된다고 믿습니다.

오늘 한일교회에 장로 두 분의 임직식이 있습니다.

장로임직을 받는 분들에게는 베드로전서 5:3, “양 무리의 본이 되라”가 항상 전달됩니다.

양무리의 본이 된다는 말이 어떤 뜻일까요?

바울은 ‘예수님의 흔적을 갖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믿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내 몸에 예수님의 흔적(스티그마)이 있다” 했어요.

이 ‘흔적이 있다’라고 하는 표현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면, “내게는 십자가가 있습니다”를 고백한 것이라 믿습니다.

십자가가 있다는 말은 십자가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랑’이잖아요.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사랑을 본 보여주는 사람, 이 사람이 양무리에 본이 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교회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요, 교회에 파생되는 제 문제를 해결하는 근원적인 해결방안입니다.

“나는 한 사람의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나의 흔적이에요.”

이렇게 고백하며 보여주셔요.

그래서 바울은 교회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극히 사랑했어요.

양무리의 본이 되는 사람은, 이 흔적, 십자가의 흔적, 사랑을 보여줄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길이요. 교회의 죄의 문제들을 다 녹여버리고 다시 교회를 성령충만한 교회로 변화시켜가는 능력이요.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6.

오늘 임직할 두 분 장로님께 부탁을 드리고, 이미 장로가 돼서 시무하거나 은퇴하신 분들에게도 묻고 싶고, 뿐만 아니라 한일교회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주님의 교회로 가꾸어 가기를 원하는 모든 교우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는데,“여러분은 예수님의 스티그마가 있습니까?”

“세상에서 그 스티그마를 보여주십니까?”

예수님의 흔적, 흔적이 있습니까? 그 흔적을 좀 보여주세요.

보여주세요.

보여줘. 좀 보여주세요.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서 못 박힌 자리를 도마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처럼.

장로 되려는 분, 장로 되신 분들, 교회를 사랑하신다는 여러분들, 여러분은 신앙을 “십자가 진다”라고 말씀하잖아요.

“십자가 진다”라는 것은 고통과 고난의 흔적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그 말에는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사랑의 흔적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그래서 바울은 이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이 가하지만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직분 맡은 자가 되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1:24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몸에 채운다.”

한 말씀의 뜻입니다.

이 길을 걷고자 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장로로 세워지지 않겠습니까?

또 이렇게 살려고 하는 흔적을 보여주는 교인들이 많아질 때, 구원받은 사람이 많아질 것이니, 이 교회가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교회 되지 않겠어요?

흔적을 보입시다. 향기를 풍깁시다.

그래서 오늘의 한일교회의 장로임직의 큰 잔치가 성령충만한 복된 은혜가 넘치는 귀한 예식이 되기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기도하시죠.

오랜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십자가 아래의 교회인 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기도 하고, 때로는 내 주장만 펼쳐서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저희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살 수 있는 길, 사랑의 흔적, 십자가의 흔적을 보이며, “위기다, 위기다”하는 그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길을 얻는 은혜로운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