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바로 너!
- 등록일
- 2024년 5월 3일
- 설교일
- 2024년 4월 28일
1년 전, 5월 14일 주일에 “너희는 거룩하라” 제목으로,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거룩한 사람이 되어 세속적인 세상을 바꾸고, 속물화되는 교회를 바꾸는 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했던 목사가, 여러분을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은, 설교 제목에서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누구일까요?”
“바로 나!”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면, “설교 끝!”
입니다.
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하나님이 찾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장희라는 가수가 1970년대에 작곡한 가요 ‘그건 너’가 있어요.
이런 내용입니다.
모두 잠들은 고요한 밤에 어이해 나 홀로 잠 못 이룬다. 왜? 바로 너, 너 때문이야.
비 오는 명동거리를 우산도 쓰지 않고 혼자 걸었는데, 왜? 바로 너! 너 때문이야.
전화를 걸려고 동전 바꿨는데, 당신이 받으면 끊었네, 그리곤 바보처럼 울었네. 왜? 바로 너! 때문이야. 이 노래에서 ‘바로 너!’
를 설교 제목으로 인용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바로 너’ 이 말은 좋은 말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부부 사이에 “난 너를 사랑해. 내가 사랑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야. 누군지 알아? 바로 당신!” 고백하여 자녀를 낳은 것이죠.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네가 내가 찾던 사람이야.”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오늘 나는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이 되는 길”을 여러분과 함께 찾아보려 합니다. 요즘 세상을 여러분은 어떻다고 보는지, 저는 모릅니다.
물론 자연의 아름다운 경관 앞에서 우리는 어둡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맑은 공기를 마시고, 좋은 환경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요즘 세상을 평하는 시각은 ‘어둡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저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둡다’라고 평합니다. 전쟁이 그치지 않고, 국가 간의 분쟁도 끊임이 없습니다.
생태계의 온난화 현상으로 이상고온, 이상한 홍수, 허리케인, 지진, 쓰나미, 대형산불이 반복적으로 거대하게 세계 구석구석을 공격하며, 세상이 어지럽구나, 세상이 어둡구나, 하여 인류를 불안에 떨게 합니다. 또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일용할 양식 구하는 일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해야 하고,물가는 오르는데 벌이가 따르질 못합니다. 세상도 날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악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어둡게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어두운 대로 놔둘 수 없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재빠르게 적응하며 사는 것이 옳은 길인지, 밝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당연히 밝은 세상을 만들어야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 밝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1-5 천지창조 첫째 날의 창조 본문을 볼까요?
창세기 1장 1절은 위대한 선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선포합니다.
2절에서는, 창조 전 상태를 설명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
이 상태를 혼돈, 공허, 흑암이라 했는데, 한 마디로 “카오스(chaos)”라 합니다.
무질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 뒤엉켜 있는 상태, 게다가 빛 한 점 없이 캄캄합니다.
끝없는 굴속, 빛이 한 점도 없는 어둠, 아무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이곳에 내가 있다고 상상해 보면, 한 마디로 공포, 두려움, 무서움, 절망으로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셨습니다.
첫 번째 창조입니다.
말씀에 따라, 빛이 카오스 세상에 창조됩니다. 빛에게 귀(耳)가 있어, 빛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한 것입니다.
이소희 시인은 ‘귀의 비밀’이라는 시(詩)에서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겨난 것은 빛에도 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만물에는 귀가 있기 때문에 세미한 음성만 듣고도 태어난 것입니다.”
라 썼습니다.
빛에 귀가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인 “빛이 있으라”를 듣고, 순종하여 빛이 세상에 창조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제 설교의 주제입니다.
나는 시인의 신앙을 우리도 갖추면 좋겠다고 말씀드립니다.
우리도 귀를 열고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우리도 빛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잘 들어보셔요.
“빛이 있으라”하신 창조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이 세상의 빛이 되어라.”
라는 말씀으로 들리지 않나요?
오늘, 이 시대가 어둡다면,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밝게 바꾸어 가는 사람이란 뜻이죠.
창조에 대한 성경 기록은, 창조에 대한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지만,한편 이 말씀을 읽는 사람아, 너는 어떤 사람이 되려느냐는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말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려느냐? 그렇다면 너는 카오스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 어둠이 활개 치는 세상, 무질서와 혼란이 가득한 세상에서 빛의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이 시대가 어둡다, 카오스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빛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믿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일생 목회하면서 제 가슴 속에 늘 남아있는 물음이요 대답이었습니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한 세상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빛으로 시작하여 질서의 세계를 조화롭고 아름답게 창조하셨는데,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악이 작동하게 하여 평화가 깨어지고, 사람이 서로 반목하고, 책임 전가, 핑계나 대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살인자가 되어 가정을 파괴했습니다.
추방으로 어둠의 세상에 던져졌는데, 어둠의 사건을 일으킨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지, 창세기 6:5-7을 보니“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했던 세상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 없애야겠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캄캄한 세상에서 반짝 빛나는 한 사람 이 있었습니다. 누구죠?
노아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든 노아입니다.
성경은 노아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라고 했습니다. 이 표현대로라면 우리는 노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아를 위대한 사람으로 추앙하고, 노아는 우리가 오르지 못할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노아가 구원의 방주를 만든 과정을 보면,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노아가 될 수는 없어도, 노아처럼 살 수는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런 노아를 세상 사람들, 그 시대 사람들은 바보다, 미쳤다, 산꼭대기에 배를 만들다니 정신 나갔다, 이렇게 날씨가 쾌청한데 무슨 홍수냐 하면서 비아냥거리며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 말씀을 믿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나요? 믿지 않나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나요? 불순종하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고 순종한다면, 여러분이 노아와 같은 존재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노아 같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노아처럼 구원의 방주를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며, 구원의 방주에 한 조각이라도 될 수 있는 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며,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도 어땠는지 볼까요?
우리는 아브라함을 위대하고 큰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이요, 믿음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우리와 비슷하게, 어려운 일을 겪으면, 도망치고 피하려 했습니다.
왕 앞에서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거짓말하여 생명을 구했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려고 한, 비정한 아버지였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이었다고 하더라도, 곧이곧대로 아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아버지가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만약 제게 하나님께서 같은 명령을 하신다면, 저는 제 목에 칼을 댈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들 대신에 제 생명을 번제물로 드릴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려 했고, 하나님은 염소를 대신 준비하셨죠.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 아브라함에게는 노아와 똑같고, 만물과 똑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네 아비의 집, 친척의 집, 네 고향을 떠나라” 하시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떠났습니다.
100세에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 요구하였을 때, 아들을 바치려고 했어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었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아브라함은 정말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임이 분명하고, 큰 인물임을 인정합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을 정리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을 들어서 구원역사를 이끌어 감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책입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나요? 믿지 않나요?
믿는다면, 여러분은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입니다.
- 여러분은 성경의 인물들을 높고 높은 사람으로 우러러보면서, 자신은 그들에 비하여 보잘 것 없다고 낮추지 말길 바랍니다.
물론 정치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적으로도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뼈 빠지게 일해야 하고, 고향을 떠나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책임감으로 땀 흘려야 하는, 힘이 없는 위치인 것도 인정합니다.
그냥 평범한 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무슨 큰일을 하는 사람도 아닌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한 사람, 한 사람, 너무나 소중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가족, 교회에서,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입니다.
풀잎 하나처럼, 작은 새, 밤마다 우는 뻐꾸기, 소쩍새처럼, 어둠의 곳, 생명 사망의 곳에서, 큰일하는 귀하고 귀한 다이아몬드보다 더 희귀한, 인류의 긴 역사에서 유일(有一)한 자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류 역사 속에 ‘강석찬’은 오직 하나 뿐이죠.
과학이 발전해서 복제한 강석찬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강석찬은 가짜이죠.
바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인류 역사에서 앞으로 종말의 때까지 ‘유일한 나’임을 알고 소중히 여기고, 옆의 한 사람도 존중해야 합니다.
달에서 찍은 녹색별 지구 사진을 보니까, 정말 작은 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기에 80억이 바글바글, 뽁짝뽁짝 거리며 살고 있어요. 아무리 이 세상에서 큰일을 한다고 잘난체하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바로 여러분과 꼭 같이 점 하나에 불과해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은 달라요. 무지렁이 한 마리 같기도 하고, 별 볼 일 없는 존재인 것 같아도, 가슴 속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슴 속에, 하나님 말씀이 있고, 그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그는 하나님께서 찾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사랑에 빠진 사람, 예수 사랑에 빠진, 예수님 믿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지, 성경의 말씀을 들어봅니다. 요한복음 1:5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증언인데. “깨닫지 못하더라”를 원어로 해석하면 “이기지 못하더라”라고 합니다. 창세기 1장의 빛의 창조와 같습니다. 카오스에 빛이 있으라 하시니 질서의 세상이 창조된 것이죠.
‘빛이 비취니, 어둠이 이기지 못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한 것인데, 동시에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우리를 향해 “너희가 세상에 빛이다”라고 인정하시는 말씀이며, 빛의 사람을 어둠이 이기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큰 힘이 되는 말씀이요, 인정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이 될 때, 우리도 세상에서 어둠을 물 리치고, 어둠을 이기는 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 어떻게?
되물으면 솔직히 움츠러듭니다.
노아니까, 아브라함이니까, 바울이니까, 베드로니까 할 수 있고,예수님이나 하실 수 있지, 우리가 어떻게? 라고 말합니다.
왠지 어렵고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렇죠. 세상에 드리운 짙은 어둠을 물리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못할 일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봅니다.god라는 보컬이 있었죠.god의 ‘촛불 하나’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를 들어봅니다. “세상엔 어려운 친구들이 많다.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을 그 친구를 위해 이 노래를 부릅니다. 힘내라, 친구들아. 지치고 힘들 때 언제나 니곁에 있을께.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 잡아줄게. 내게 있는 건 성냥 하나와 촛불 하나. 이 작은 촛불 하나로 무얼 하나 하지만, 촛불 하나 켠다고 어둠이 달아나나? 하지만 그렇지 않아. 작은 촛불 하나 켜보면 달라지는 게 너무 많아. 또 다른 초 하나가 놓여있어, 불을 밝혀, 촛불이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네 개가 되고, 어둠은 사라져 간다.”
성냥 하나와 초 하나가 있으면, 촛불을 켜서 어둠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외롭고 힘들어하는 너에게 “내가 곁에 있어”라 말하고, 힘들어하고 손이 비어 부끄러워하는 손을 붙잡으며 “내가 네 손 붙잡고 있어, 힘내, 넘어지지 마, 절망하지 마, 희망 버리지 마” 이렇게 말하며, 촛불 하나를 켜겠다고 하는 god의 마음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과 같다고 여겨졌어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둠 속에 있는 친구를 위하는, 촛불 하나를 켜고, 촛불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결국 어둠이 사라지게 하는 희망을 나누며,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하며 동행(同行)하는 이 노래야말로, 우리 가슴 속에 품고 살아야 할 빛의 사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할 우리의 삶을 표현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찾아 쓰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 큰일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소중히 여기며 기다리는 사람, 주께서 찾아 쓰시는 한 사람은, 위대한 사람? 큰일 하는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작은 일 하나 하는 사람,촛불 켜는 사람, 쓰레기 줍는 사람,새싹을 닮아, 한 사람씩 나와 숲을 푸르게, 하늘을 맑게 가꾸는 사람,당신이 그 한 사람이 될 때, 그것이 쌓이고 쌓여, 넓어지고 넓어져, 하나님의 첫 번 창조인 어둠을 물리치고 질서의 세상을 이룬 빛, 큰일이 되게 하는 그 한 사람입니다.
- 에베소서 5:8-10을 봅니다.
바울은 우리를 향해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너희는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이제는 빛이라”라고 불러줍니다.
왜? 빛이라 하였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삽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참빛’이라 하셨어요. ‘참빛’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요? ‘빛’입니다.
여러분, 강 목사가 빛나나요?
머리는 확실히 빛난다고 하겠는데, 저는 제 삶이 빛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빛의 열매를 맺어, 주를 기쁘시게 할 것으로 주께서 어떻게 하실지, 시험해 봐라.”
“시험해 보라” 이 말씀 속에 담아둔 믿음은, 흔히들 기대하는 ‘축복’이 아니라, “이 세상이 밝아지지 않나,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의 사람으로 어둠을 밝히며 살아보면, 이 세상이 밝아지게 되고, 덤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 평화와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약속한 것이죠. 세상이 왜 어둠에 사로잡히게 되었을까요?
결국, 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데, 사람다움을 잃었어요. 사람다움을 버렸어요.
우리 시대의 어둠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람다움을 포기한 것에서 파생된 현상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면서 사람다움을 회복한다면, 어둠은 물러나고 빛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레갑 교회가 빛으로 가득 채워지길 축원합니다.
(목사 강석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