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성탄은, 하나님의 약속 지킴이다.
- 등록일
- 2023년 12월 27일
- 설교일
- 2023년 12월 24일
며칠 전에, 신암교회로부터 성탄 카드를 받았습니다. 교인들 141명이 서명한 이름이 담긴 카드였습니다. 저는 이런 카드를 김성호 목사님께서 담임목사 하실 때부터 매년 받았으나, 오랫동안 매년 받기만 하고, 한 번도 답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오늘 성탄 카드로 답장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 성탄의 기쁜 소식 알리는 나팔 소리가 “뿌우~~~~~~~~~~~~~~!” 울리고 헨델의 ‘메시아’ 09 알토와 합창 “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여”가 배경음악이 된 카드입니다. 신암교회 모든 성도들께, 이 성탄이 치유와 회복의 복된 소식이 되길 기원드립니다. 2023년 12월 24일 목사 강 석찬〗
2.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인 메리언-웹스터가 ‘2023년, 올해의 단어’로 ‘진짜, 진정성’을 뜻하는 ‘어센틱(authentic)’을 선정했습니다. “이 단어는 2023년 11월 27일 현 시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쓰이고, 열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라고 선정 배경을 밝히면서, “우리는 ‘진짜의 위기’를 목도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학생이 실제 논문 저자인지, 정치인이 발언했다는 것이 정말로 했는지 믿을 수 없습니다.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조차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라 하며, “진실성의 위기(crisis of authenticity)를 목도하고 있다”라고 선정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2006년에는 ‘트루시니스(truthiness)’를 뽑으며 “사람들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 받아들인다”고 했고, 2016년에 옥스퍼드는 ‘탈진실(post-truth)’을, 2017년에 콜린스는 ‘가짜뉴스(fake news)’를 올해의 단어로 뽑았었습니다.
이미 AI가 만든 가짜뉴스가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사용하는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버젓이 게재되고, 유명인의 목소리와 영상으로 조작된 혐오 발언이 소셜 미디어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현실입니다. 챗GPT의 등장과 함께 확산하기 시작한 가짜, 허위 콘텐츠는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급속한 AI의 발달로 AI가 가짜 데이터까지 생성할 수 있게 되어, 진실을 검증하는 것이 갈수록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짜가 진짜로 인식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설교하는 저를 보십시오. 혹시 제가 AI가 아닐까 의심해 본 적은 없지 않나요?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이죠. 빨리 없어질 직업이 법률을 다루는 변화, 검사 직업이 1등이랍니다. 다음이 의사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벌써 로봇이 수술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가 목사라고 합니다. AI를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고, 맞춤형 원하는 설교를 하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일찍 은퇴를 잘했다고 하겠습니다. 후배 목사님들 어려울 것 같습니다. 걱정이 됩니다.
우리는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할 때 나누던 대화가 있습니다.
“참기름, 진짜요?”
“이 양반, 속아만 살았나? 정말, 거짓말 하나 붙이지 않고 말하는데, 참말로 진짜, 진짜, 참기름이라오.”
뻔한 거짓말인 줄 세상이 다 아는데도, 나는 모른다고 딱 잡아떼며 입을 틀어막으면, 증거를 가지고도 진실을 구별해 내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된, 혼돈(混沌)의 세상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3.
이런 세상이지만, 그래도 성탄은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성탄을 맞이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성탄은, 하나님의 약속 지킴이다”라 정했습니다.
요즘 ‘싱어게인 3시리즈’가 방영되고 있는데, 무명 가수들이 “나는 이러이러한 가수다”라 한 것에서 빌려왔습니다.
우리는 성탄에 대해 많이 알고 있습니다.
성탄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세상에 보낸, 은혜의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신학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된, 화육(化肉)의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다 옳은 해석입니다.
그런데 저는 성탄을 예언하거나, 성탄의 의미를 해석하거나, 성탄을 직접 다룬 복음서를 묵상하면서, 성탄의 은총, 그 배후에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약속의 성취”입니다.
그리고 약속의 성취인 성탄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의 삶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것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4.
세 본문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구약의 본문 이사야 7:14은,“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예언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어떤 상황에서 예언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솔로몬이 죽은 후, 남 유다왕국과 북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된 것을 압니다. 둘로 나뉜 이스라엘 민족은 평화롭지 못했습니다. 자주 분쟁하며 전쟁도 치렀습니다. 남 유다의 아하스 왕 때, 북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아람의 르신 왕과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했습니다. 이사야 7:2를 보면, 아하스 왕과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 렸다” 했습니다. 불안에 떨고 있었다는 뜻이죠.
이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보내어 “연합군은 연기 나는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고 낙심 말라” (사 7:4)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지 못하는 왕에게 징조를 주신다고 하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너무나 유명한 성탄 예고, 메시아 탄생의 예고를 약속(말씀)한 것입니다. 주전 733년경의 예언으로, 예언의 성취를 아하스 왕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예언은 논란이 되었습니다.
‘처녀’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 라는 물음입니다.
이사야는 ‘처녀’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알마’를 사용했는데, 영어로는 ‘virgin’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처녀로 번역된 ‘알마’의 어원은 ‘감추다, 숨기다’라는 뜻인데, 일반적인 우물가에서나 마을 잔치에서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처녀가 아니라, 남자와 격리되어 자라온 처녀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목적 때문에 선별되고 격리되어 자라온 처녀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왕비나 후궁이 되기 위하여 구별된 처녀라는 의미입니다. 이사야는 이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되는 것을 ‘징조’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730여 년 후에 일어날 예수 탄생의 죄와 사망으로부터 믿는 자를 구원할 구속사적 은총의 약속이라 했고, 아하스 왕에게는 전쟁의 공포로 떨고 있는 유다 왕과 백성을 구한다는 역사적인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예언으로써 이중적으로 예언된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약속을 예언했는데, 그 방법은 동정녀가 아들을 낳는 자연법을 초월한 신비로운 방법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관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어려움에 부닥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또 훗날 죄와 죽음의 사슬에 묶여서 사망을 향해 가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메시아를 보내시는데, 그 방법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자연법을 뛰어넘는 초월적이고 신비한 방법으로 이루어 간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한 것을 반듯이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구원의 문제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의 법을 넘어서서라도 이루어져야 할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5.
서신의 본문 빌립보서 2:6-8은, 사도 바울의 마지막 편지에 담긴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최초의 신앙고백으로 알려진 것입니다. 낮아지신 그리스도(κενοσίς κρίστος) 고백이 마태복음 16:16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고백보다 더 앞선 교회의 고백입니다.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는 어떤 분이라 했습니까?
“근본 하나님의 본체였다”, 곧 “하나님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자리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갖고, 곧 섬기는 자가 되고, 자기를 낮추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창조주시오, 또한 심판주 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어서, 성경을 읽다가 ‘여호와’란 이름이 나오면, ‘아도나이(나의 주님)’라고 읽었던 그들입니다.
너무나 거룩하시어, 하나님의 얼굴을 뵈면 죽음이라고 여겼던 때였는데, 그 하나님께서 스스 로 자신을 낮추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신(神)이 인간(人間)이 되는 이 방법이 파격(破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파격적인 방법 배후에 무엇이 있습니까?
왜, 하나님은 이렇게 파격적인 방법으로 사람이 되신 것입니까?
약속에 대한 신실함 때문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데 무슨 다른 중요한 것이 있느냐? 신의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야, 내가 내려갈 때까지 내려갈 것이야.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마음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κενοσίς κρίστος 고백, 여기에도 이사야 예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강력한 의지를 만나게 됩니다.
6.
이제 마태복음의 내용을 봅니다.
마태복음은 마리아가 잉태한 것이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나님에 의한 잉태. 이 신비롭고도 놀라운, 파격적인 수태입니다. 이 역시, 예언의 성취, 곧 하나님 약속의 성취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특별하고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의로운 사람’(마 1:19)이라 했는데, 요셉은 율법에 대하여 흠이 없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율법을 잘 알고, 바르게 철저히 지켜 온 사람입니다. 혼인의 절차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요셉은, 자기도 모르게 임신한 마리아는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게 됨을 알았습니다. 요셉이 살던 시대의 율법에 따른 제도요 사회의 관습이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수태된 아기를 살리는 방법을 찾아 실행하려 했는데, 이혼증서를 써주고 관계를 끊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이 길마저 막으십니다. 주의 사자가 마리아를 데려오라 했고,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임신이지만, 하나님의 하시는 일로 수용했습니다.
여기에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이 시대의 제도나 구조적인 관습이나 이 모든 것을 뛰어넘으셨다는 것을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참으로 묘합니다.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은 약속한 말씀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이죠. 세 본문은 모두 다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 중요했던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며 자연법을 질서 유지 수단으로 두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뜨렸습니다.
율법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삶의 법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도 뛰어넘으셨습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 만들어 놓은 경계선도 허물면서까지 중요하게 여기신 것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이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세우셨던 질서를 스스로 허물면서까지 지키려 한 것이 무엇입니까?
약속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구원의 약속입니다.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은 모든 것을 포기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높은 권좌도 버리고 낮아질 수 있었고,사랑으로 주셨던 율법도 포기할 수 있었고,그 율법으로 세워진 모든 질서를 깨뜨릴 수도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 난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정도로 한 사람의 구원,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일을 소중히 여기셨다는 것, 이것이 세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약속을 지키고 구원을 이루는 것을 위하여 하나님 스스로 깨지는 사건이 성탄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사람이 되시는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7.
요한복음 1장은 말씀이 육신이 되심을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 성탄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지킨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모든 말씀이 ‘참’이로구나, ‘진실’이로구나, ‘거짓’이 없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창조의 과정을 보면, “있으라,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다”입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온 말씀 “있으라. 존재하라” 말씀은 ‘진짜’라는 것이죠.
거짓의 혼돈(chaos)이 틈을 탈 미세한 틈새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진실을 전하며, 모든 거짓에 대하여 강력하게 저항하며 반대합니다.
세상에 만연한 모든 거짓에 대하여, 세상을 넘어뜨리려는 악의 하수인이 되어 사용되는 모든 허위에 대하여, 우리들 예수 믿는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은 강력하게 저항하고 대결해야 합니다.
눈곱만한 거짓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 그 어떤 거짓도, 가짜도, 우리 안에, 교회, 사회, 국가 속에, 내 안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가짜뉴스, 거짓말, 아니면 말고, 내로남불, 모함, 사기, 등등의 가짜가 세상을 어지럽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래서 혼돈의 세상을 질서의 세상으로 변화하게 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온 교회가 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가 지켜오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보이고 결단을 한다면, 교회가 올바르게 세워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언해 줍니다. 한 사람의 생명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올곧게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 하나님께서 자신의 체면을 구겨도 “괜찮아”하셨고, 내가 세운 법이 못쓰게 되어도 “괜찮아” 하셨는데, “괜찮아”하신 이것이 사랑이요 성탄이라고 한다면,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답이 나옵니다. 무너지고 낮아지고 허물면서 “난 괜찮아”하신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8.
그런데 우리의 교회 안을 살펴보면, 사실 너무나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비 복음적인 것을 복음인 양, 강단에서 선포하기도 합니다.
예수 믿으면 세속적 가치관의 욕망을 채우는 복을 받는다고 현혹(眩惑)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용서할 줄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고 용서를 주문처럼 읊조림으로, 가짜신앙을 쌓으면서 믿음이 깊은 척 속입니다.
온갖 탐욕을 채우려 안달하면서, 말로는 혼자 청빈한 척하기도 하죠.
예를 들자면 끝이 없는 우리의 믿음 생활입니다.
목사는 오늘의 한국교회와 교인들의 신앙을 보면서,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에 온몸이 떨립니다.
저는 성탄일을 앞두고 벗들에게 편지를 나누었습니다.
성탄의 의미를 나누면서, 거짓이 만든 혼돈의 세상과 교회를 걱정하면서“그래서, 하늘 향해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노래하며 산 윤동주 시인의 빛이 더욱 빛나는 것이겠죠”라 했더니,Amos라는 이름을 쓰는 목사님이 답신하길“진짜가 진짜로 인정받지 못하고, 진짜임에도 힘의 논리로 가짜가 되는 세상!!!
우리 삶에 진짜는 어느 것일까요?
진리를 알지니, 예수님만이 참이며 진리이십니다.
그 진리가 이 땅에 오셨고, 다시 오실 진리를 기다립니다.” 했습니다.
저는 Amos 목사님에게 “당신이 진짜, 진짜 목사로군요”라 답했습니다.
신암교회 성도 여러분, 2023년 올해의 단어 ‘진짜’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거짓, 가짜’에 물든 것이 있다면, 회개하며 바꾸는 성탄 맞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온 교회가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켜오던 모든 것을 다 포기할 결단을 할 수 있다면, 이 교회는 올곧은 교회가 될 줄 확신합니다.
진짜 주님의 교회가 됩니다.
구원의 방주가 될 것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약속지킴입니다.”
기도 : 주여, 여기에 오시옵소서. 오시어 어둠과 거짓에 사로잡혀 혼돈과 무법천지로 사망의 세계가 된 이 땅에 빛과 참의 생명과 진리가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려는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