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먼저, 나무가 있었다.
- 등록일
- 2024년 7월 14일
- 설교일
- 2021년 6월 20일
요즘 저의 일과를 몇 가지 소개하면,소래 포구에 있는 포도밭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찾아 가꾸고 있어요.
포도밭 일꾼인 셈이죠.
또 일주일에 한 번, 선배 목사님 내외분과 함께 등산합니다.
산을 오르내리며 우거진 숲속에서 나무와 꽃들을 만납니다.
내리쬐는 태양의 볕을 받아 몸에 담고, 바람의 소리를 듣습니다.
집에서는 늘 살아오던 대로 지나는데, 한 가지 일이 늘었습니다.
펜화를 그리는데 주로 나무를 대상으로 삼습니다.
공들여 엽서 1장을 채우는데, 꽤 많은 시간을 집중해야 하는데 즐거움이 큽니다.
완성한 그림을 보면서, 나름 보람도 느낍니다.
포도밭에서 포도나무를 만나고, 등산하며 나무가 이룬 숲에서 나무들을 만나고, 나무를 그리면서 나무를 만납니다. 나무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죠.
어제, 옥상에 올라 다육식물들, 고추 몇 그루 물주며 보살피다가, 문득 내 집이 백련산 자락 끝에 위치함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내 집이 원래 나무들이 먼저 자리 잡고 있던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숲에 자리 잡고 살던 나무들을 잘라 없애 집터를 만들고, 자른 나무로 집을 짓고 사람이 살고, 그것이 이어져 지금 내가 여기에 사는 것이구나 알게 되었죠. 갑자기 나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조용히 말했죠.
“고맙다. 감사하다.”
2.
설교할 때,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깨달음을 나눕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인 나무를 통해서 얻은 깨달음을 나누려 합니다.
창세기 1장의 본문을 보시죠.
하나님의 셋째 날 창조를 기록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동물들이 태어나기 전에,그곳에 먼저 나무가 있었습니다.
과학자들도 인정합니다.
고고학적 발굴로도 증명되고 있지요.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며 식물을 동물보다, 사람보다 먼저 만드셨습니다.
셋째 날, 하나님은 물과 뭍을 나누시며, 물은 바다, 뭍은 땅이라 부르셨고, 보시기에 좋았답니다. 그리고 땅을 향해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말씀하셨죠.
말씀이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대로 되었습니다.
땅에 채워진 식물을 보시고, 하나님은 좋아했습니다.
“아하!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사람보다 먼저, 그곳에 나무가 있었구나!”
또 창세기 2장에 따르면, 이 에덴동산 한가운데 하나님 몫의 생명 나무를 두셨습니다.
“나무가 사람보다 나이가 많구나. 사람보다 나무가 더 오래 사는구나.” 이 사실에 대하여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든다, 나이가 많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깨달은 삶의 지혜가 많아,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이라 여깁니다. 나이가 든 사람이 꼰대 짓만 않는다면, 나이가 든 그의 역할이 있다는 말이죠.
최근에 36세의 이준석이 보수정당의 대표가 되어,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세계정치에서도 드문 일이라 하여 놀라운 사건으로 여기는데, 걱정하는 소리도 꽤 높습니다.
무엇을 걱정하는 것일까요?
삶의 경험이 너무 적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정치 경험이 많은 나이 든 사람들이 젊다고 비난하고, 실수 하나 보자고 함정을 파는 것이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잘 도와주면 됩니다.
젊은 대표도 열린 마음으로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를 수용하는 자세를 갖추면 잘 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사람보다 너 나이가 많고, 더 오래 생존하는 나무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고 판단했습니다.
3.
나의 책장에는 나무와 연관된 책이 몇 권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읽고 감동했던, 어른을 위한 동화인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나무와 사람 사이의 우정 이야기이기도 한 책이 있어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 주기도 합니다.
식물학자 차윤성 씨의 책 ‘나무의 일생’과, 부부 산림학자의 우리 숲 답사기인 ‘우린 숲으로 간다’ 책은, 어린나무로 시작하여 죽음 이후에도 숲을 위해 봉사하는 나무의 일생을 알게 합니다.
가끔 설교에서 인용한 나무 심는 사람으로 알려진 울라브 하우게의 시집도 있습니다.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린 나뭇잎에 내린 무거운 눈을 털어주는 마음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최근에는 나무 의사인 이종영 씨의 책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운다’를 탐독하고 있고, 화가 김종원 씨의 ‘오늘도 나무를 그리다’를 통해 펜화로 그림엽서에 나무 그리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나는 요즘 숲길을 걸으면서 나무와 친해지고 있습니다.
나무의 냄새를 맡고, 갈라진 껍질과 옹이 진 부분에 담긴 이야기, 계절이 바뀌며 쌓이는 나이테 속에 담겨둔 이야기들을 들어보려고 노력합니다.
지구에서 생존하는 생물 중 가장 오래 사는 생물이 나무라고 하죠.
나무는 지구를 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산소를 생산하고 온난화의 주범인 일산화탄소를 품습니다. 녹색별 지구는 세밀한 먹이사슬로 건강을 유지합니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생물은 없습니다. 세밀하게 짜인 먹이사슬의 한 가운데 나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나무는 어느 한 부분도 버릴 것 없이 유용합니다.
우리는 나무가 울창한 숲을 거닐며 평화를 느낍니다. 신선한 공기를 맛보며 감사합니다.
옥상에 고추 몇 그루 가꾸고 있는데, 흙갈이해야 했습니다.
안산에서 텃밭을 가꾸는 사돈의 밭 가까운 오래된 밤나무 숲속에 들어가 흙을 얻었습니다.
낙엽이 썩고 썩어 만든 황토의 부드러운 감촉을 손바닥으로 느끼면서, 흙이 나무의 작품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이 죽으면 돌아가는 곳이 흙입니다.
이 흙의 시작이 나무의 죽음이었습니다. 나무가 사람보다 먼저 그곳에 있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 흙으로 아담을 만들게 했습니다.
4.
나무를 다시 봅니다.
나무는 늘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삽니다.
나는 이 모습을 기도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오래전(2009. 6. 2) 시였지만, 찾아 나눕니다. “은총을 주시옵소서, 은총을 주시는구나.” 봄 산에 올랐다. 벌거벗은 나무들이 하늘 향해 두 손 벌리고 서 있다. 작든, 크든 모두 두 손 벌리고 하늘을 향해 기원하고 있었다. 은총을 주시옵소서. 늦은 봄 산에 올랐다. 갈색 왼 산이 연두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은총을 갈구한 나무들에 파릇파릇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은총이 나리고 있었다. 크고 작든 간에 모두에게 은총이 나리고 있었다. 여름 산을 올랐다. 산은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 찼다. 아! 은총을 기원했더니, 은총을 주시는구나! 산은 빈틈없이 은총으로 채워져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물결치는 나뭇잎들이 쏴아- 쏴아- 흔들거리며 춤추고 있었다. 바람결에 따라, 주신 은총을 감사하고 있었다. 손에 손을 맞잡고 노래하며 춤추고 있었다. 너와 나, 나무가 다르다고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함께 춤추지 못하는 하나가 있다. 은총을 받지 못한 나무 한 그루 그냥 메말라 벌거벗은 그대로 부끄러운 갈색 몸 그대로 은총으로 옷 입지 못한 움직이지 못하고 거기에 있었다. 은총에 단절된 나무, 갈고리 된 뿌리로 땅을 움켜쥐어 펴지 못한 손에 은총을 담을 곳이 없었다. 은총이 나릴 곳이 없었다. 아, 거기 은총을 달라 하는 그곳에 은총을 주시는구나.
물론, 나무가 팔을 벌린 모습은 빛을 향한 생명 살림의 열망이지만, 나의 눈에는 나무들이 손에 손잡고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어떤 기도일까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라 생각하니까, 숲속에서 들리는 바람결에 부딪치는 잎새들이 만드는 파도 소리와 같은 “쏴아!”
하는 그 소리는 찬양으로 들립니다.
소음(騷音)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화음의 합창입니다.
나무들은 햇볕을 많이 받기 위하여 서로 경쟁합니다.
그런데 이 경쟁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죽이는 경쟁이 아닙니다.
상생(相生)과 공존(共存)의 지혜로 서로를 살리는 경쟁입니다.
예배 후에 귀가하면서, 늘 곁에 있지만 지나치던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셔요.
가지들이 하늘 향해 자라는데, 겹쳐서 자라는 가지는 하나도 없습니다.
서로 겹쳐지지 않도록 배려하여 ‘사이’를 두며 자랍니다. 아무리 많은 가지라도 엉킨 가지는 없지요. ‘수관기피’라고 하는데. 옆 나무의 영역으로 침범하지 않는 현상을 말합니다. 생존전략이긴 하지만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죠. 나는 줄기와 가지가 서로 닿지 않는 이 현상을 ‘사랑’이라고 여깁니다. ‘틈새’를 서로 둔 것인데, 이 틈으로 햇볕이 들어오고, 바람이 지나갑니다. 모든 잎이 햇볕을 골고루 많이 받도록, 바람의 길을 만들어 잎사귀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합니다.
함께 살아가며 성장하는 나무의 지혜, 정말 놀랍습니다.
줄기에서 갈라진 가지들의 가느다란 끝부분을 우리말로 ‘나무초리’라 하며, 나무줄기의 꼭대기를 ‘우듬지’라고 부릅니다. ‘우듬지’는 나무줄기의 맨 꼭대기 부분으로 나무가 어느 방향으로 뻗어나갈지 결정하는 나무의 ‘끝눈’입니다.
‘우듬지’는 햇볕을 잘 받는 쪽을 향합니다.
‘우듬지’가 방향을 잡는 대로 나무는 자랍니다.
나뭇가지마다 있는 나무초리는 옆 나무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자신이 살아가는 길을 찾습니다.
이렇게 ‘우듬지’가 방향을 잡았는데, 다른 더 큰 나무가 햇볕을 가리면, ‘우듬지’는 다시 방향을 틀어 햇볕을 향합니다. 그래서 나무의 몸통이 기역으로 또는 니은으로 휘어지게 되죠. 이처럼 굽은 나무는 주변의 환경이 만든 현상입니다. 움직일 수 없는 나무이지만, 주변의 변화에도 재빨리 대응하며 살아갑니다. 가지의 우듬지는 배의 돛대 꼭대기에서 주변을 감시하는 선원의 역할과 같습니다.
암초를 피해 순항하게 하고, 많은 고기가 있는 곳에 그물을 내리도록 방향을 잡습니다.
우듬지의 역할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5.
오래전, 홍콩의 한 신문에 나무로 만들어진 한자로, 지구촌에 경고장을 날린 컷이 생각납니다.
첫 글자는 “나무 빽빽할 삼(森)”입니다. 나무 목(木)자 세 개로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두 번째는 “수풀 림(林)”입니다. 나무 목(木)자 두 개로 만들어진 글자이지요. 삼림(森林)은 나무가 많이 우거진 수풀을 뜻합니다.
세 번째로는 “나무 목(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숲을 파괴합니다.
나무(木)를 베어 없앱니다.
삼(森)자에서 나무 하나를 없애니, 림(林)이 되고, 다시 없애니 나무(木)만 남습니다.
남은 나무에 잎을 떼어버리면 무엇이 될까요?
십자가(十)입니다. 십자가(十字架)의 상징인 무덤의 표식으로 죽음이라는 것이죠.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일까요?
나무를 살려야 지구가 산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6.
오늘 나무 이야기를 나누며,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가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을까 묻습니다.
나무들이 모두 두 팔 벌려 소리치기를“사람들아, 우리를 벌목(伐木)하려 숲(森林)에 들어오지 말라.”
“이젠 그만! 집을 넓히기 위해 숲을 사라지게 말라.”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우리 나무들처럼, 우리를 존중해 주시오.”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잠이 든 한밤중에 불어온 바람에 잎새를 비비며 하나님께 울면서 탄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보다 먼저 이 세상에 있었던 나무,세밀하게 짜인 생명 세계 먹이사슬 한가운데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생명 세계 살리는데, 사람을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온 나무, 이 나무의 일생을 배우기를 바랍니다.
그루터기로 남은 때까지도 희생하고 헌신한 나무처럼, 죽음 이후에도 곤충의 보금자리가 되고, 박테리아의 먹이가 되고, 버섯이 자라게 한 후, 썩어 흙이 되어 새로운 생명이 깃들게 하는 나무의 놀라운 일생과 지혜를 배우면 좋겠습니다.
이런 나무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혼자 살려고 하지 않는 데 있다고 여깁니다.
공존하고 상생하는 지혜, 아낌없이 자신을 나누는 일생, 흙이 되고 흙이 된 이후에도 생명 세계를 위해서 자신을 주는 나무, 빛을 향하는 우듬지의 이끎을 따르는 나무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하는 삶을 가르칩니다.
목수이신 주님을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목수 일을 하며 나무를 다뤘습니다.
나무를 절단하고, 대패질하며, 하나님께서 사람 짓기 전에 나무를 먼저 두신 목적이나, 나무에 두신 생명의 호흡을 느꼈을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예수께서 포도나무 비유에서 “너희는 가지라. 많은 열매를 맺으라.” 말씀하신 것도, 목수로 나무를 다루며 깨달은 것이리라 상상해 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성경에서 깨달음을 얻으려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줍니다.
오늘 우리는 나무의 전언(傳言)을 듣습니다.
일생을 살림의 삶을 사는 나무,아낌없는 사랑 나눔을 본 보이는 나무,살아있을 동안만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사랑을 주는 나무,‘사이’와 ‘틈새’를 만들어 ‘상생(相生)과 공존(共存)’의 삶을 보여준 나무,햇볕을 향하며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게 하는 나무, 이 나무의 생명력을 나누어 갖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무처럼, 세상을 살려가는 사람이 되어봅시다.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