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셉의 눈물
- 등록일
- 2026년 3월 15일
- 설교일
- 2010년 8월 29일
1.
주님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살아오는 동안, 내 뜻대로 되지 않았으면 주님 뜻대로 인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목회 35년 만에 3개월의 안식년 휴가를 시작, 몸만 아니라 수염도 머리칼도 쉬게 하자.
저도 살려고 나오는데 매일 날카로운 칼로 무참하게 뜻을 꺾어왔죠.
그래서 몸이 쉴 때 너도 쉬라 했더니, 이 모습이 되었습니다.
멜버른에 오기 위해 시드니 공항에 있었는데, 우연히 황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저를 보며, 보호색으로 “보기 좋다” 하시더군요.
설교도 3개월 동안 쉬리라 했는데, 내 뜻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여기에, 주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믿기에 순종했습니다.
멜버른에서 역사가 있고, 긍지와 자랑스러움이 있는 교회에서 말씀 전할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께, 교회 당회, 주현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2.
제게는 늘 마음속 한구석에 질문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교회 교인이 되어, 이렇게 매 주일 성수 주일 하면서 “믿는다”라는 것이 뭔가?
“예수를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시죠.
“주께서 강권(强勸)하시어, 예수를 믿게 했다.” 맞습니다.
그런데 교인의 신앙 목적이랄까? 예수 믿는 목표랄까? 를 보게 되면, 다시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질문이 생깁니다.7월 16일 자 호주판 크리스천 투데이에 이어령 교수가 한국교회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자신의 필요를 구한다.
이것을 달라, 저것을 달라 한다.
혹 하나님께 나의 이것을 드리겠다, 저것을 드리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하나님께 무엇이 필요하냐 묻는 이가 있을까?
하나님이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교회는 말씀으로 빵을 구하는가?” 했습니다.
3.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이민섭 작사, 작곡)애창 복음송입니다.
애창한다는 것은 노랫말이 마음에 울림이 있다는 뜻입니다.
노랫말이 멜로디와 조화를 이루어, 노래하는 사람, 듣는 사람에게 감동이 되거나 위로가 되거나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랑받기 위해서”라는 노랫말이 목에 가시가 되곤 합니다.
기독교 복음의 본질이 희석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런 목사의 마음을 누치 챘는지, 속편이 나왔습니다.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 걸고마워요. 그 사랑 가르쳐 준 당신께주께서 허락하신 당신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더욱 섬기며이제 나도 세상에 전하리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 전하기 위해주께서 택하시고 이 땅에 심으셨네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설경욱 작사, 작곡)4.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다시 한번 예수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는 “예수 닮기 원합니다” 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2장에서 고백한 ‘낮아지신 그리스도’(케노시스 그리스토스)“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시작한 신앙고백처럼, 낮아지신 그리스도 마음을 품고 사는 신앙.
갈라디아서 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한 말씀을 새기고 새겼습니다.
신앙이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게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예수님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신앙일까요?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빌 2:5-11)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의 원조입니다.
마태복음 16:16, 베드로의 유명한 신앙고백“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은,사도 바울의 빌립보서 신앙고백보다도 몇 신명 후의 고백입니다.
시기적으로는 예수께서 살아계신 때의 고백이지만, 기록된 때가 바울 서진들이 복음서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CREDO란?
I believe.
라틴어 Cor+do의 합성어입니다.
Cor는 Cordia 심장, 심령, 마음Do는 ‘고정한다.’ 또는 ‘준다’의 뜻입니다.
Credo는 ‘내 심장을 ~에게 고정한다’, ‘내 마음을 ~에게 준다’가 됩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에 고정하는 것이 Credo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앙고백으로 산다는 것, 곧 예수님에게 나의 심장을 고정하고 산다는 것, 예수님께 내 마음을 주고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단순하고도 명료합니다.
예수 살기입니다.
예수 본받기입니다.
5.
짧은 기간이지만, 호주에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호주 정착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면, 모두에게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인데 ‘눈물’일 것입니다.
후배 목사님 한 분은, 자신의 이민 목회담(牧會談)에서“양들의 울음소리에서 목회를 배웠습니다.” 했습니다.
양들이 왜 우는지, 그것을 깨닫는데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눈물로 살아왔다는 것인데, 이야기를 듣는 제 가슴 속에 눈물의 강이 흘렀습니다.
‘눈물’… 여러분은 어땠습니까?
이민 생활 시작한 후, 모든 것이 뜻대로, 계획한 대로, ‘순풍(順風)에 돛 단 배’였나요?
무지개 있을 줄 알고 호주로 왔는데, 무지개를 잡았나요?
매일매일 행복에 겨웠나요?
아니면, 광야에 던져진 고통이 계속되고 있나요?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도와 달라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면,여러분의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이 ‘눈물’이 되어 흐르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조금 세월이 지나고,하나님 손길, 섭리에 대한 믿음이 깊어지면,지금은 알지 못했던 깨달음이 생기고, “아하! 그랬구나!” 하는 무릎을 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감사였구나.
모든 것이 은혜였구나.
모든 것 속에 하나님의 오묘한 계획과 간섭이 있었는데, 알지 못하여 미리 보지 못하여 안달했구나! 할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 속에 이미 희망을 심어두셨고,고난 속에 은혜의 씨앗을 두어 싹틔우고 계시는데,아직 줄기가 나오지 않았다고,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열매 맺지 않는다고원망하고 조급해했던 철부지 신앙이 부끄러울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저의 시(詩) “은총을 주시옵소서, 은총을 주시는구나.” 를 드립니다. (2009년 6월 2일)
“봄 산에 올랐다.
벌거벗은 나무들이
하늘 향해 두 손 벌리고 서있다.
작든, 크든 모두
두 손 벌리고 하늘을 향해
기원하고 있었다.
은총을 주시옵소서.
늦은 봄 산에 올랐다.
갈색 왼 산이 연두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은총을 갈구한 나무들에
파릇파릇 새 순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은총이 나리고 있었다.
크고 작든 간에 모두에게
은총이 나리고 있었다. 여름 산을 올랐다.
산은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 찼다.
아!
은총을 기원했더니,
은총을 주시는구나!
산은 빈틈없이 은총으로 채워져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물결치는 나뭇잎들이
쏴아- 쏴아- 흔들거리며 춤추고 있었다.
바람결에 따라, 주신
은총을 감사하고 있었다.
손에 손을 맞잡고 노래하며 춤추고 있었다.
너와 나, 나무가 다르다고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함께 춤추지 못하는 하나가 있다.
은총을 받지 못한 나무 한 그루
그냥 메말라 벌거벗은 그대로
부끄러운 갈색 몸 그대로 은총으로 옷 입지 못한
움직이지 못하고 거기에 있었다.
은총에 단절된 나무,
갈고리 된 뿌리로 땅을 움켜쥐어 펴지 못한 손에
은총을 담을 곳이 없었다.
은총이 나릴 곳이 없었다.
아, 거기
은총을 달라 하는 그곳에
은총을 주시는구나.” 여러분의 눈물 삶에 이 시의 깨달음이 위로되기를 바랍니다.
성찬경 시인은 ‘은총을 내려주시는구나’에서
“야속하다 싶을 만큼 묘하게
표 안 나게 내려주시는구나
슬쩍 떠보시고 얼마 있다가
이슬을 주실 때도 있고
만나를 주실 때도 있고
밤중에
한밤중에 잠 못 이루게 한 다음
귀한 구절 하나를 한 가닥 빛처럼
내려주실 때도 있다
속속들이 다 아신다, 다 아신다
그러니 오히려 안심이다
벌거벗고 빌면 그만이다
은총을 내려주시는구나,”왜? 고난을 통해 은총을 주시는가?
6.
저는 오늘 ‘예수님의 그림자’라 하는 요셉 이야기 속에서 ‘요셉의 눈물’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요셉의 눈물,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 ‘신앙이 무엇인지’ 물음에 길을 얻고자 합니다.
요셉 이야기는 모두 잘 안다고 전제하여 생략합니다.
요셉은 강제로 이민자가 되었습니다.
노예 신분에서 제국의 권력 제2인자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성공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요셉의 성공 이야기를 전하려 한 것일까요?
물론 요셉에게서 성공의 비결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성공 비법만을 전하기 위해서 요셉 이야기를 기록했다면, 세상의 흔하디 흔한 3류 소설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이,요셉을 반복적인 시련의 파도 속에서도,절망하여 쓰러지지 않게 했는가를 전하려 한 것입니다.
본문은 요셉과 형제들 간의 두 번째 상봉입니다.
요셉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본문을 봅니다.
최대로 감정을 억제한 채, 요셉을 말합니다.
“… … 너희 아버지…,… … … … …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 … 안녕…, …하시더냐?
지금까지 생존…하셨느냐?”(창 43:27) (목사가 요셉의 마음을 헤아리어 묻는 말로 표현함)17살에 강제로 팔려 13년간 고생 끝에, 그중 10년은 감옥살이하면서 눈물 흘렸던 요셉입니다.30세에 바로왕 앞에 섰으니, 7년 풍년 후 2년의 흉년을 계산하면 지금은 39세입니다.22년 만에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요셉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고국에 계시는 가족의 안부를 묻는 여러분의 마음과 같았습니다.
요셉은 험난한 세월 동안, 이 그리움을 삼키며 살아온 것입니다. 요셉은 동생 베냐민을 봅니다.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냐?”(창 43:29)더 이상 감정을 억제할 수 없는 요셉의 마음이 성경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요셉이 아우로 인하여 마음이 타는 듯하므로, 급히 울 곳을 찾아 들어가서 울었다.”(창 43:30)‘마음이 타는 듯하여’, 이 장면을 상상하면 도저히 그냥 읽을 수 없습니다.
눈물이 저절로 흐릅니다.
요셉은 방성대곡(放聲大哭) 후,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7.
바로 여기에서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나타납니다.
요셉은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나는 요셉이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 45:5)“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으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은,“나는 하나님에 의해 먼저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 무슨 말입니까?
“나는 사명자다”“나는 보냄을 받은 자다.” “나는 하나님이 앞날, 가족과 민족의 앞날, 나라의 앞날, 출애굽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준비하여 보낸 사람이다.” “나는 여호와이레이다.” “내가 여호와이레다.” “그러므로 내게 오는 어떤 고난도 그 안에는 하나님의 숨은 뜻이 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날이 오면, 그날이 되면, 알게 될 것이다.” 요셉은 자신의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생을 반추(反芻)하며, 자신을 이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을 이끌고 가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규정한 것입니다.
이 자의식이 요셉의 신앙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눈물 속에 사명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에게 분노가 아니라,형님들 덕분(德分)에 성공하게 되었다고, 용서(容恕)했습니다.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신을 이민자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지금 애굽의 절대권력자가 된 동생 요셉은 자신을 노예로 판 일로 떨고 있는 형들에게 “감사해요.” 를 말한 셈입니다.
이런 자세는 바울의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는 말씀과도 상통합니다.
만약 요셉이 형들에게 이를 갈고 노예로 팔린 것을 한으로 여기었다면? 국무총리는 되지 못했을 것이며, 가슴에 둔 분노가 병이 되어, 요셉은 없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병원 앞 게시판에 환자에 대한 안내가 게시되었다.(1) 전갈에 물렸던 분이 여기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루 만에 퇴원했다.(2) 뱀에 물린 분이 치료를 받았다. 3일 만에 퇴원했다.(3) 미친개에게 물렸다. 현재 10일 째 치료 중인데, 곧 완치되어 퇴원 예정이다.(4) 사람에게 물렸다. 여러 주일이 지났는데 아직 무의식 상태이다. 회복 가능성이 무척 낮다.
과학자들이 실험을 하였다.(1) 부부싸움을 악에 바쳐서 하면 입김이 나오는데, 입김을 모아 실험했다. 코브라 독보다 강한 맹독성 물질이 나왔다.(2) 타액(唾液)을 검사했다. 평소에는 이상이 없었는데, 칸막이 속에 강제로 가두어 두고 약을 올리고 신경질 부리게 했다. 황소 수십 마리를 즉사시킬 수 있는 독극물이 검출되었다.(3) 그러나 즐겁게 웃고 난 직후, 뇌를 검사했다. 독성을 중화시키고 암세포를 죽일 수 있는 호르몬이 다량 분비되었다.
과학적 실험의 결과는 분노, 미움, 증오, 화(禍)를 지속적으로 간직하는 것은 독극물 분비를 왕성하게 하여 위벽을 헐게 하고, 몸을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로 사도 바울의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 18)나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는 2,000년 전에 21세기의 과학적 근거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성령의 지혜로 건강 장수의 비결을 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8.
신앙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첫 질문을 생각해 봅니다.
신앙은 그 자체가 사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눈물 속에 두신 하나님의 사명을 깨달았기에 눈물을 넘어 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요셉입니다.
여러분이 여호와이레입니다.
이 사명을 여러분은 여기, 호주에서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눈물은,사명을 완수하게 하는 능력을 위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이 교회가 희년을 맞이할 때, 오늘의 고난과 고생스러움이 자랑이 될 것입니다.
사명이 있으면, 모든 것이 다 감사가 됩니다.
사명이 있으면, 그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그 어떤 절망이나, 고난, 어둠에 넘어질 수 없습니다.
사명은 희망이 됩니다. 사명은 체념과 허무와 좌절과 후회가 자리하지 못하게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여기에서 정착하는 동안 경험한 모든 역경과 눈물이, 이민자로서의 선구자적인 사명을 위한 고난과 역경이라 여기시길 기원합니다.
이러한 사명자로서의 자의식이,통곡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지난날의 고생스러웠던 날들이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고 뜨겁게 감격했던 요셉처럼 되는 것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날이 이루어질 때까지 요셉의 믿음과 사명으로 굳건히 서실 기원합니다.
광야에 버려진 것과 같은 나,광야 그 끝에 가나안이 있다는 것을 믿길 바랍니다.
가나안의 길을 만드는 사명으로, 지금 여러분의 인생 광야를 감사할 수 있기를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