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도취문명(陶醉文明)을 반박(反駁)함

1.

예수의 제자(弟子)들이 성령(聖靈)이 충만(充滿)하여 능력(能力) 있게 전도(傳道)하는 것을 보고 당시인(當時人)들 중에는 “새 술에 취(醉)했다”라고 조롱(嘲弄)하는 무리가 있었다. 금일(今日) 공산주의(共産主義)를 신봉(信奉)하는 유물주의자(唯物主義者)들도 종교인(宗敎人) 중에서도 특히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을 향(向)하여 “새 술에 취한 자들”이라고 혹평(酷評)한다. “20세기(世紀)에 천당(天堂)을 말하는 것도 백주(白晝)에 나온 도깨비다.” 이와 같이 현대과학문명(現代科學文明)의 비평(批評)을 듣고만 지낼 수 없다.

현대(現代) 20세기(世紀)의 문명(文明)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문명(物質文明)이나, 종교(宗敎)는 아편(阿片)이오, 하나님은 없다. 인간(人間)이란 피, 살, 뼈와 같은 몇 가지 원소(元素)로 구성(構成)된 것으로서 기계(機械)가 낡아서 기능(機能)을 잃어버리면 와해(瓦解)되어 버리는 것이지 대체 영혼(靈魂)이라는 것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없다 한다.

호랑이 담배 먹던 문맹(文盲) 하던 시절(時節)에는 천당(天堂)을 믿을는지 모르지만, 현대인(現代人)은 속지 않는다. 천당(天堂)을 말하기 전에 배고픈 무산대중(無産大衆)에게 빵 한 조각을 다오. 이리하여 공장(工場)에 나가서 일을 하던 직공(職工) 하나 죽으면, 기계(機械) 하나가 부서지는 것보다 더 헐값(價)으로 평가(評價)하는 것이다.

평양(平壤)에서 사상(思想)이 불온(不穩)하다고 하여 소련(蘇聯)으로 이송(移送)되어 포로수용소(捕虜收容所)에서 얼마 동안 지내다가 탈주(脫走)해 온 모씨(某氏)의 기록(紀錄) 중에 이런 사실(事實)이 있었다.

그 수용소(收容所)는 넓은 들판에다가 곡마단(曲馬團) 집 모양으로 쭉 돌아가면서 다락을 매어서 5, 6층(層) 되는 데서 수천(數千) 명(名)이 우글우글한데, 밤에 잘 때는 머리 둘 곳이 없고, 돌아눕는 것은 고사하고 돌아앉을 수도 없는 형편(形便)에, 겨울이 되면 공기창(空氣窓)도 없는 집 안에다가 가운데는 생 장작불을 피어 놓으니, 아래편에 있는 이는 조금 낫다고 하나 상층(上層)에 있는 이는 눈이 다 짓물러서 죽게 되고 아래서는 추워서 죽게 되는데 매일(每日) 사람이 죽어 나가고, 병(病)이 날 것 같으면 의사(醫師)가 오기는 하지만 진찰(診察)해 보아서 이 사람을 고쳐놓으면 이 사람이 얼마나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비판(批判)해서 치료비(治療費)가 일하는 것보다도 더 들 것 같으면 아야 치료(治療)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생명(人間生命)을 이렇듯 무시(無視)하고 인권(人權)을 유린(蹂躪)하는 현대(現代) 물질문명(物質文明)에 대하여서 침묵(沈默)을 지킬 수는 없다.

예수 曰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마태 4:4) “사람이 사는 것이 그 가산(家産)이 넉넉한데 있지 않다”(누가 12:15) 하셨다. 공자(孔子) 曰 “음식(飮食)에 가까운 자는 사람이 천(賤)해서 못쓰나니라”오늘날 도덕(道德)도 없고, 윤리(倫理)도 모르고, 하나님도 없고, 천당(天堂)도 영혼(靈魂)도 불필요(不必要)하다고 눈을 딱 감고 철봉(鐵棒)을 휘두르는 자는 참된 인생(人生)이 될 수 없다.

돼지는 먹다가 죽고, 소도 먹다가 죽고, 범이 맑은 날이나, 비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을 가리지 않고 음침(陰沈)한 산골짜기를 오르내리는 것은 먹을 것을 얻으려 함이다. 인간(人間) 이 먹고, 마시고, 살다가 죽으면 그뿐이라면, 곤충(昆蟲)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도덕(道德), 윤리(倫理), 양심(良心), 영혼(靈魂), 하나님을 무시(無視)하는 자는 인생(人生)을 모르는 자다. 유물주의(唯物主義)로 돌아가서 배가 고프다고 해서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자는 참된 인생(人生)이 아니다.

본능(本能)의 충동(衝動)을 제압(制壓)하지 못하고 사는 인생(人生)들에게 역설(力說)하노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者) 인생(人生) 될 수 없고, 죄(罪)를 모르고, 윤리(倫理)와 도덕(道德)을 무시(無視)하는 자는 인생(人生)의 가치(價値)가 없는 자(者)이다.”

제주도(濟州島)를 시찰(視察)하고 돌아온 목사(牧師)의 말을 들으니 24만(万) 도민(道民) 중에 현재(現在) 20만(万) 밖에 없는데, 4만(万) 명(名)은 작년(昨年) 4월 3일 이래(以來) 공산주의(共産主義)에 감염(感染)된 폭도(暴徒)로 인(因)하여 희생(犧牲)되었다고 한다. 영남폭동사건(嶺南暴動事件) 때에는 산 사람의 껍질을 벗겨서 죽이고, 임신부(姙娠婦)의 배에다가 말뚝을 박아서 죽이고, 산 아들의 각(脚)을 떠서 죽이고, 영천(永川)에서는 전도사(傳道師)가 화물차(貨物車) 안에서 뛰어나오는 것을 도로 잡아다 넣고 불살라 버렸으며, 그 밖에도 여수(麗水). 순천(順天)의 반란사건(叛亂事件)을 위시(爲始)하여 도처(到處)에서 방화(放火), 파괴(破壞), 암살(暗殺), 도륙(屠戮)이 폭등(暴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사실(事實)을 똑똑히 보면서도 알지 못하는가? 사람을 동물(動物)이나 곤충(昆蟲)이나 다름없이 보는 자들이니까, 동물(動物)이나 곤충(昆蟲) 죽이는 것이 무슨 죄(罪)인가? 하는 것이다. 저들 안중(眼中)에는 부모(父母), 자식(子息), 인가(隣家 이웃집), 친척(親戚)도 없으며, 동족(同族)도 없고, 국가관념(國家觀念)조차 없는데 세계(世界)를 구제(救濟)한다고 하고, 농민(農民)과 노동자(勞動者)와 무산대중(無産大衆)의 구주(救主)로 자임(自任)하는 것은 그 목적(目的)이 어디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중인격(二重人格)의 소유자(所有者)임을 잘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2.

과학문명(科學文明)을 반박(反駁)함

“종교(宗敎)는 미신(迷信)의 산물(産物)이다. 그것을 과학적(科學的)으로 증명(證明)하라.” 한다. 우리가 20세기(世紀)의 과학문명(科學文明)의 모태(母胎)인 전기(電氣)나 훈기(薰氣)의 혜택(惠澤)이 불필요(不必要)하다는 것이 아니다. 과학만능(科學萬能)을 주장(主張)하면서 종교(宗敎)를 불필요(不必要)하다는 자들에게 반박(反駁)하고자 하는 것이다.

작년(昨年) 봄엔가 독일(獨逸) 모처(某處)에서 세계과학자대회(世界科學者大會)를 개최(開催)한 일이 있었다. 그 대회(大會)의 회장(會長)은 모(某) 대학교(大學校)의 총장(總長)인데 그가 개회사(開會辭)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과학자(科學者)들이 오늘날까지 많은 것을 발견(發見)했으나 모르는 것은 더욱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過去)의 태도(態度)를 시정(是正)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絶對)하신 능력(能力)을 신뢰(信賴)해야 한다. 과학(科學)은 우주신비(宇宙神祕)의 표면(表面)을 담당(擔當)하고 종교(宗敎)는 이면(裏面)을 담당(擔當)했으니, 양자(兩者)는 적(敵)이 아니오 서로 형제(兄弟)와 같이 되어야 하고 분리(分離)할 것이 아니라”라고 선언(宣言)하였다.

오늘날 특히 국민학교(國民學校) 교육(敎育) 가운데 반(反) 종교운동(宗敎運動)을 하고, 사람의 조상(祖上)은 원숭이라고 가르치는 다수(多數)의 무지(無知)한 교육(敎育)이 있고, 중학교생도(中學校生徒)들 중에는 A.

B.

C.

D를 배우니 어깨가 으쓱하겠지마는 종교(宗敎)를 반대(反對)하는 분자(分子)들이 다수(多數)라는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화(例話)-당랑거철(螳螂拒轍).

그대들의 과학적지식(科學的知識)이란 캄캄한 밤중에 조그마한 촛불 한 개(個)를 들고 나아가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한 개(個)의 촛불을 밝혀 자기주위(自己周圍)가 보인다고 해서 온 세계(世界)가 다 환하게 보인다고 할 수 있는가?

이 대우주(大宇宙)의 감추어 있는 전능(全能)하신 하나님의 심오(深奧)한 신비(神祕)를 노루꼬리에 비(比)할 수도 없는 무(無)에 가까운 그대들의 지식(知識)으로 판단(判斷)한다는 것은 당랑거철(螳螂拒轍)과 같이 자기(自己) 무지(無知)를 폭로(暴露)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일(今日)의 특(特)히 중학생(中學生)들과 교원(敎員)들은 그 태도(態度)를 시정(是正)해야 할 때가 왔다.

인간(人間)의 처음 할아버지는 원숭이니라 하던 촬스 다-윈의 진화론(進化論) 따위의 학설(學說)은 그 기반(基盤)이 흔들린지가 이미 오랜 것이다.

3.

향락주의(享樂主義)를 반박(反駁)함

육감(肉感)과 촉감(觸感)으로만 만족(滿足)의 길을 찾는 자를 반박(反駁)한다.

수십(數十) 년(年) 전(前)만 하드래도 레코드나 라디오를 그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레코드 소리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이는 물질문명(物質文明)의 혜택(惠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소위(所謂) 경음악(輕音樂)과 재즈 음악(音樂)이 거의 전부(全部)를 점령(占領)하고 있어서 인간본능(人間本能)의 특색(特色)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유감천만(遺憾千萬)이다.

Dorokin은 曰 “12세기(世紀)까지의 음악(音樂)은 전부(全部)가 암부로시안, 그레고리아 등의 종교적(宗敎的) 찬가(讚歌) 뿐이었는데, 12세기(世忌) 이후(以後)에 세속적(世俗的)인 음악(音樂)이 점차(漸次)로 늘어가서 17세기(世紀)에는 58%, 20세기(世紀)에는 95%로 늘어서 지금(只今)은 재즈 음악(音樂)이 거의 전부(全部)를 점령(占領) 지배(支配)하고 있다.” 라는 증언(證言)을 보아도 20세기(世紀)의 인간(人間)들이 얼마나 향락주의(享樂主義)로 기울어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서울 거리에 해방(解放) 후(後)에 생긴 독개미들을 보았는가? 여인(女人)의 화장(化粧), 파마, 입술, 눈썹, 눈 주위, 분(粉)칠,…… 이것이야말로 20세기(世紀)의 물질문명(物質文明)이 낳은 백주(白晝)의 독개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산 것인가? 껍데기는 화려(華麗)하다마는 속이 죽어서 썩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제지간(師弟之間)에, 형제지간(兄弟之間)에, 동족지간(同族之間)의 신의(信義)를 찾기 어려운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현대문명(現代文明)은 향락주의(享樂主義)에로 기울어져 가고 있으니, 이것이 인간(人間)의 목적지(目的地)일까? 우리는 참으로 슬퍼하는 바이다.

종교(宗敎)는 잃어버린 양심(良心)을 찾게 하고, 땅에 떨어진 신의(信義)를 세우게 하고, 영혼(靈魂)의 있음을 알게 하여준다.

세계(世界)를 하루아침에 갈아 마실 듯하던 나치스 독일(獨逸)의 수뇌자(首腦者)들의 말로(末路)를 보라! 저들은 무신론(無神論), 유물주의(唯物主義)를 부르짖고, 이⸱모일러 목사(牧師)를 비롯하여 목사(牧師) 600명을 투옥(投獄)시키던 그들이었지만, 총(銃)과 칼과 폭탄(爆彈) 앞에서 항복(降服)한 것이 아니라 사형언도(死刑言渡)를 받고 오직 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부인(否認)하였을 뿐이오, 그 나머지는 다 성경(聖經)을 안고 회개(悔改)하고 사형집행장(死刑執行場)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향락문명(享樂文明)을 반박(反駁)한다.

조선민족(朝鮮民族)은 술 취(醉)하기를 잘하는 민족(民族)이다. 똑똑한 정신(精神)으로도 할 일을 다 할 수 없거든 매사(每事)에 취(醉)해서 정미(精微)한 정신(精神)으로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겠는가?

지난 9월 23일 서울 신문(新聞) 2면 첫머리 기사(記事)를 보고 나는 놀랐다. 당국(當局)의 통계(統計)이기는 하나, 거의 정확(正確)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현재(現在) 남(南)조선(朝鮮)에서 술독에서 썩어지는 쌀만 230만(万) 석(石)이라는 놀라운 숫자(數字)이다. 밥을 먹지 못해서 정부(政府)에서는 식량정책(食糧政策)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不拘)하고 망국주(亡國酒)를 위하여 230만(万)이 술독에서 썩다니 이런 모순(矛盾)이 또 어디 있단 말이오. 쌀 한 섬에 2만5천원(円)씩 쳐서 계산(計算)한다면, 놀라지 마십시오. 575억원(億円)이라는 엄청난 거액(巨額)이다. 이것을 지난 5월 1일 현재(現在) 조사(調査)로 판명(判明)된 남(南)조선(朝鮮)인구(人口) 2,000만에게 남녀노유(男女老幼)할 것 없이 골고루 분배(分配)한다면, 매인(每人) 당(當) 2,875원씩 돌아간다고 한다. 술값으로 소비(消費)하는 돈이 750억원 대에 오르고, 담배값으로 1년에 270억 원이 공중(空中)으로 날아 올라가는데, 이 민족(民族)의 해방(解放)이 술과 담배의 해방(解放)이었던가? 이것이 전국적(全國的)인 통계(統計)가 아니고, 남한(南韓)만의 것이라는데는 그만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울지 않을 수 없다.

1937년도의 통계(統計)를 보면, 전(全) 조선(朝鮮)에 술독에 들어가는 쌀이 36만 석(石)이었고, 담배값이 9,000만 원에 불과(不過)하던 것이, 12년 지난 오늘에 술 소비량(消費量)이 6배(培) 이상(以上)이오, 담배가 3배(培)나 늘어났으니, 북한(北韓)까지 합한다면 술이 적어도 10배(培) 이상(以上), 담배가 5배(培) 이상(以上) 증가(增加)되었을 것이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 한 마디 말로 능히 그 뜻을 폐함)하고 이렇게 하고도 배가 고프고, 옷이 없고, 집이 없고, 공부시킬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가? 그 돈을 가지고 일억원(億円) 재단(財團)으로 대학(大學)을 설립(設立)한대도 매년(每年) 14,500개소(個所)나 세울 수 있고, 5천만원(千万円) 재단(財團)으로 중학교(中學校)를 세운다면 1년(年)에 3,000개소(個所)나 세울 수 있다. 이 사실(事實)을 알고도 여전(如前)히 술잔을 손에 대고, 콧구멍으로 연기(煙氣)를 뿜는다면 애국(愛國)이란 거짓말이오, 참된 인간(人間)이 아니라, 주당(酒黨)과 같은 향락주의(享樂主義)에 만취(滿醉)한 잠을 깨어 이제 후(後)로는 진리(眞理)에, 하나님께, 예수에게, 영원(永遠)한 생명(生命)에 취(醉)하여 살자. 남이 어떠한 조소(嘲笑)를 퍼붓더라도 우리는 일직선(一直線)으로 진리(眞理)에 취(醉)하여 살자.

구약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아들을 얻기 위하여 성전(聖殿)에 나아가서 기도(祈禱)하다가 취(醉)한듯 하여서 엘리 제사장(祭司長)이 나무랐으나, 술에 취(醉)한 것이 아니라 기도(祈禱)에 취(醉)하였던 것이다.(삼상 2:12)

요한 웨슬리를 중심(中心)한 옥스퍼드 신성회(Holy club)를 만들어 네 사람의 학생(學生)이 학과(學科) 공부 딴 시간(時間)에 따로 모여서 창문(窓門)을 붙들고 기도(祈禱)한데서 시작(始作)되었다.

흑노해방(黑奴解放)의 최대은인(最大恩人) 아브라함 링컨도 기도(祈禱)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記憶)할 것이다.

금일(今日) 민족적(民族的) 아니, 세계적(世界的) 아니. 우주적(宇宙的) 위기(危機)에 기도(祈禱)에 미친 자(者)는 마땅히 미쳐야 할 데 미친 것이다.

전기(電氣)의 발명가(發明家) 에디슨이 전기(電氣)를 발명(發明)하기까지는 놀라지 말라. 11만번(万番) 실험(實驗)해 보았으니, 그는 미친 자(者)다. 그는 曰 “나는 11만번(万番) 실패(失敗)하고 11만번(万番) 기도(祈禱)했다”라고. 금일(今日)의 광명(光明)한 세계(世界)를 만든 사람은 기도(祈禱)의 사람이다. 오늘 우리도 기도(祈禱)에 취(醉)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성경(聖經) 읽기에 취(醉)해야 한다.

성경(聖經)의 합동성(合同性)을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다.

전(前)에 로서아(露西亞) 황제(皇帝)가 영국(英國) 여황(女皇)에게 영국(英國)이 천년(千年) 동안이나 황금국(黃金國)으로 지나게 된 비결(秘決)을 물은즉 엘리사벧 여왕(女王)이 답왈(答曰) “우리나라는 오직 책(冊) 한 권(卷)이 있을 뿐이니 그 책(冊)은 곧 성경(聖經)이외다.” 이때부터 로국(露國) 황제(皇帝)가 희랍(希臘)정교회(正敎會)를 국교(國敎)로 받아들이어 전국민(全國民)으로 하여금 다 세례(洗禮)를 받게 하였다.

성경(聖經)의 유무(有無)는 국가(國家)의 흥망(興亡)을 좌우(左右)한다고 믿는다.

어디서 무슨 사업(事業)에 종사(從事)하든지 간(間)에 성경(聖經)을 읽는 국민(國民)이 되어야 한다. 아프리카인(人)들은 야만(野蠻)이다. 27인(人)의 선교사(宣敎師)를 잡아서 먹은 야만(野蠻)이다. 진화론(進化論)의 비조(鼻組, 시조 始祖) 촬스 다-윈이 그곳을 시찰(視察)하고 曰 “이 사람들은 사람이 나기 전(前)에 나온 사람이다” 하였다. 그러나 저들 가운데도 성경(聖經)이 들어간 후(後)에는 죄(罪)를 알게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인간(人間)으로 변(變)했다. “이 사람들은 사람이 나기 전(前)에 나온 사람이라”하던 다-윈이 그후(其後) 35년(年) 만에 아프리카를 다녀와서 曰 “아! 위대(偉大)한 그리스도교(敎)여. 사람 아닌 사람을 불과 30년(年)에 인간(人間)을 만들었단 말인가?” 라고 그리스도교(敎)를 찬양(讚揚)하고 돌아오는 길에 선교(宣敎)본부(本部)에 들어가서 있는 돈을 다 헌금(獻金)하고 돌아왔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有名)한 사실(事實)이다.

성경(聖經)이 들어가는 곳마다 이러한 변화(變化)가 일어난다. 20세기(世紀)의 도취문명(陶醉文明)을 생명(生命)을 걸고 제거(制擧)하지 아니하면 우리들의 앞날은 암흑(暗黑)할 것이다.


강신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