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밥상 앞에서
- 등록일
- 2024년 12월 9일
- 작성일
- 2024년 12월
10월 13일 오후 4시, 신암교회에서 김요섭 담임목사 취임예식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담임목사 청빙은 어렵다. 입이 열이면 의견도 열이 되기에, 하나가 되는 과정은 늘 어렵다. 이 어려운 과정을 거쳐 담임목사 취임예식을 행하였으니, 축하할만하다. 그런데 이날, 나는 깜짝 놀랐다. 잘못 들었나? 하면서 유튜브를 통해 반복해서 다시 들어보았다. 잘못 듣지 않았다. 예식을 마감하는 인사 순서였다. 유동환 장로는 교인 대표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하면서, “수시로 강단을 지켜 저희를 격려해 주신 우리 교우, 강석찬 목사님”이라 하며,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겠다”라고 했다. 묘한(?) 미소도 곁들였다.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나는 신암교회 교인인가? 공식적인 자리였다. 서울북노회 노회장이 집례했고, 북노회 목사들도 여럿 참석한 자리였다. ‘우리 교우’에서 ‘우리’ 호칭은 쉽게 던지는 칭호가 아니다. 고마운 인사 말씀이었음을 감사한다. 나는 어떤 의미였는지 답을 얻지 못하였지만, 약속했던 글을 마무리해야 했다. 참기름 50이 지난 여신도 한 분이 “우리 엄마가 밭일하여 보내온 것이어요.”
하며, 참기름 한 병을 보냈다. 80은 지나셨을 친정어머니, 할머니께서, 이른 봄부터 가을 참깨 거둘 때까지 수고하신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면서, 진짜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참기름병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과정을 되짚었다. 참깨밭에 나가, 참깨 가지 묶어 멍석 위에 털기, 흩어진 깨알들 뫃기, 맑은 물에 씻기, 햇볕에 말리기, 절구에 빻기, 깨알 으깨어 짓누르기 하여 참기름 얻으면, 천 위에서 거르기, 병에 넣기, 아들딸 것 나누기하여 보내기다. 정성이 듬뿍, 사랑이 가득한 참기름이 밥상 위에서 고소함을 자랑한다. 이렇게 손길이 많이 가는 참기름 한 병에 참깨가 몇 알 들어갈까? 일부러 한 알씩 세어봤다. 100알이 모여도, 새끼손가락 손톱에도 미치지 못했다. 100만 깨알이 넘을 것 같다. 그런데 한 알의 참깨 씨앗, 그 안에 생명이 있다. 땅에 묻으면 깨가 되는 그 생명, 100만 깨알이 참기름병 속에 담겼다고 생각하니, 한 병의 참기름이 정말 귀하고 귀하다. 참기름만이 아니다. 밥상 위 밥, 반찬이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쳐 차려진다. 된장, 간장, 고추장, 두부 한 모, 생선 한 마리, 어느 것 하나 그냥 밥상 위에 올려진 것이 아니다. 밥상은 생명 잔치상 “오이밭에 오이가 길쭉길쭉, 보기 좋게 열렸네, 잘도 열렸네. 저 혼자서 컸을까 아니 아니죠. 위에 계신 하나님이 키워주셨죠.” 50년 전, 여름성경학교 때 불렀던 노래다. 오이 대신 과일이나 채소 이름으로 부르면 다 된다. 배추밭에 배추가 불끈불끈, 무밭에 무가 울퉁불퉁, 사과밭에 사과가 똥글똥글, 포도밭에 포도 가 땡글땡글, 모두 자연 속에 두신 하나님의 은혜인 생명을 자라게 하는 햇볕, 바람, 비, 등등을 풍성하게 담는다. 우리의 어머니, 여성들은 ‘흑백 요리사’처럼, 1등 요리사이다. 밥상 위에 오르도록 무와 배추를 자르고, 소금을 적당히 뿌리고, 고춧가루 한 줌 넣고 그냥 버무렸는데, 저울에 올려놓고 몇g인지 재지 않아도 손맛으로 얼마나 맛깔스러운 김치가 되는지 놀랄 뿐이다. 밥상이 그냥 차려지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시간과 재능 가족 사랑, 곧 생명이 투자되었다. 농부와 어부의 생명도 올려져 있다. 밥상은 한 마디로 ‘생명 잔칫상’이다.
목사 한 사람, 성도 한 사람 강석찬 목사 한 사람의 인생에는 촘촘하게 채워진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지지하심, 하나님의 동행하시는 걸음, 하나님의 이끄심, 하나님의 손길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강석찬 목사 한 사람의 인생에는 하나님의 손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 아내와 자녀, 친구, 스승, 형제자매, 믿음의 가족들이 삶의 빈틈마다 사랑을 채워주고, 고통스러운 자와 자리마다 위로를 채워주었다. 자기의 생명인 시간을 나누어주고, 재물도 나누고, 마음도 주며 기도의 힘을 나누었다. 나의 나 됨은 나 홀로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많은 사람의 위로와 품음과 기도가 내 안에 가득 채워져 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이 나누어 준 생명이 내 삶의 능력이었다. 함께 예배드리는 옆 사람을 보셔요. 함께 밥상에 앉아 밥 먹는 교우를 보셔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중에 귀하지 않은 분은 한 사람도 없어요. 그들은 당신과 함께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기의 생명 조각을 나누었어요. 물론 당신도 그랬습니다. 어쩌다 보니, 오가다 만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만나 생명을 나눈, 피로 맺어진 관계가 목사와 교우, 교우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 기운을 나누어 먹이는 우리 목사님을 귀히 여길 줄 아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예배드리고, 한 밥상에 밥을 나누어 먹는 믿음의 사람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먹고 산 사람들입니다. 생명을 나누어 받아 구원받은 우리이니, 우리도 생명을 나누며 모든 것을 살리는 사람으로 제자의 도를 이루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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