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이야기 34

가을입니다

1.

뉴스에서 ‘가을장마’ 끝났다고 합니다. 어제까지 비가 내리던 하늘의 회색빛 구름이 옅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구름 틈새로 햇빛이 눈부시게 부서지고 있습니다. 지난 이틀 동안 바쁜 일들이 있어, 걷지 못한 몸이 “나가자. 걸어야지” 합니다.

몸이 하자는 대로, 늘 하던 대로, 가벼운 차림으로 나섰습니다. 집을 나서자마자 고개 들어 하늘을 보고, 사진 한 장 찍었죠.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가을 하늘

홍제천 산책길, 내부 순환 고가도로에서 홍제천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만든 파장을 한 장 찍으며, 경북대학교 물리학과 수업시간 실험실에서 파장 실험하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물방울이 만든 동심원 모양의 물결

한 방울이 만드는 파장이 넓어지며 커지고, 두 파장이 겹치면 더 커지고, 벽에 부딪혀 반사되면서 너울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실험이었는데, 작은 것이 쌓이고 쌓여, 큰 힘(energy)이 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경험한 실험이었습니다.

나는 지난 8월 31일에 “네팔을 생각하며” 시(詩)를 썼습니다. 괜히 나누고 싶어져서, 올립니다. CO₂를 네팔 홍수의 원인 중 하나라 합니다. CO₂는 ‘온난화 괴물’을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쓰레기죠. 녹아 무너지는 빙하는 자연적인 반응이지만, 힘없는 사람에게는 재앙입니다.

마음이 무너진다.
미미(微微)한 인간인데,

잘 살려고
만들어 쓰고
쓰레기로 버린 것들이
모여
온난화 괴물 되어
돌아온
덮친 진흙 홍수에 쓸려
처참한,

아,
더 이상 글로 옮길 수가 없네.

쓰레기 취급 받은
그날의 공포와 몸부림을
아,
더 이상
말할 수 없네.

9월 1일 아침에는 “가을 아침에” 시를 썼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하루하루가 새롭습니다. 어찌나 하루가 빨리 가는지, 잡을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인데, 오는 날을 소중히 아끼는 마음이 되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담은 시입니다.

계절은
다시 오기 위해
떠나는데

나의 시간은
다시 올 기약 없이
떠난다.

매일

떠나보낸 시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시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고 있는
또 다른 나의 시간과의
만남을
매일
설레임으로
기다린다.

2.

무덥고 무더웠던 여름이 가면서,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은 겨울을 준비하죠.

정말 어쩌면 그렇게 정밀하게 ‘때’를 아는지, 산책길 걸으며 놀랍니다.

옥상에서 키우던 바질 허브가 꽃을 피웠고, 까막중 열매가 맺었습니다. 천변 산책길에는 강아지풀이 씨앗 퍼뜨리기 준비했고, 갈대도 가을 준비 시작합니다.

흰 꽃을 피운 바질 검은 열매가 맺힌 까막중 씨앗을 맺은 강아지풀 가을을 준비하는 갈대 이삭

여뀌꽃, 깨풀도, 줄기에 가시가 가득한 며느리 밑씻개 꽃도 홍제천 천변에 가을 소식을 전합니다.

홍제천에 핀 여뀌꽃 길게 늘어진 여뀌꽃 붉은 꽃대가 선 깨풀 분홍색 며느리밑씻개 꽃

강아지풀을 닮은 덩치 큰 서양 수크령도 한 자리 차지하고, 망초는 꽃씨를 날릴 준비를 마쳤습니다.

강아지풀을 닮은 서양 수크령 꽃씨를 날릴 준비를 마친 망초

능소화도 꽃잎을 떨어뜨리고, 하양 무궁화도 마지막 아름다움으로 가을을 맞이하고, 이름 모를 풀의 잎은 붉은색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다리를 지나는데, 우리도 있다고, 물고기가 떼 지어 몰려옵니다. “우리에게도 한 자리 주셔요”하며 입 벌리는데, 두 자리 마련했습니다. ^^

담장 곁의 붉은 능소화 담장 곁의 주황색 능소화 활짝 핀 하얀 무궁화 붉게 물들기 시작한 풀잎 홍제천 수면에 모여든 물고기 떼 물 위로 입을 내민 물고기 떼

산책길은 늘 새롭습니다. 오늘은 자동차 길 곁을 걸으며, 매연만 아니면 걷기에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나무와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 담쟁이덩굴이 가득한 벽 옆 산책길

3.

회색 벽 앞에 놓인 추억의 벤치

옆 의자는 추억의 의자입니다. 아들 강승구 목사 박서희 부부의 세 남매, 나의 손주 병헌, 병건, 아민과 산책하면서 사진 찍었던 곳입니다. 그때가 2017년 6월 13일입니다.

벤치에서 손주들과 함께 찍은 사진 벤치에 앉아 손주들을 바라보는 모습

나이가 들면, 추억으로 산다고들 하더군요. 나도 나이 들었으니, 추억으로 살아야죠.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쑥쑥 자라, 병헌이 중2, 병건이 중1, 아민이 초5입니다.

옆 사진은 강승구 목사 가족과 나의 사촌 누님, 故 윤인자 권사의 딸, 나의 조카 백정섭과 남편 주성재 교수(경희대)가 6월 28일에 당항교회 주일예배 후에 찍은 것입니다.

당항교회 앞에 모인 강승구 목사 가족과 친척들

흰 머리칼이 주 교수입니다. 내가 아닙니다. ^^

중2 병헌이 가장 키가 큽니다. 중1 병건도 어느새 아버지 키만 합니다. 초5 아민은 활달한 막내랍니다. 몇 년 후면, 손주들은 대학생, 입시생이 되죠. 이렇게 세월은 자라는 아이들 속에 담깁니다.

물론, 나에게도 똑같습니다. 선친께서는 늘 “세월을 아끼라” 하셨습니다. 요즘은 제가 그 말을 합니다. 내가 나에게 매일 합니다.

어떤 참숯 만드는 일로 부자가 된 분이, “나는 나를 칭찬하고 싶다”라고 하는 말을 부러운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분의 나이가 77세, 내 연배(年輩)죠. 30여 년을 넘는 세월을 매일 1,000도가 넘는 불가마 앞에서 성실히 살아온 자신에 대한 칭찬이었습니다.

4.

오늘은 8,000걸음(손목 닥터가 정확히 7,951걸음이랍니다.)을 걸었습니다. 약 5km입니다. 땀범벅이 되어, 집에 도착하여 옥상에 올라 가을하늘을 다시 만났습니다.

가을 햇살 고추밭으로 들어가,
열린 고추들에서 때 되었다고 두드리니,
부끄러운 듯 빨갛게 가을옷 갈아입습니다.
가을 어느 날, 김장하는 날을 기다립니다.

옥상에 펼쳐 말리는 빨간 고추

가을바람 맑은 바람 한숨, 한숨 들이켜 정성껏 마음에 담아두어,
겨울 어느 날 숨 막히게 하는 일 생기면, 귀하게 사용하려 합니다.

가을 하늘 흰 구름 한 점씩 차곡차곡 품에 쌓아두어,
겨울날 얇아진 이불 대신 덮을까 합니다.

가을 하늘 푸르름을 주워 담아 마음 창고에 정성스레 간수하다가,
철조망 건너편 절망하는 이들 가슴에 희망으로 나누려 합니다.

알록달록 가을 단풍, 노란 은행잎, 빨간 단풍잎, 갈색 상수리 나뭇잎 두 손 가득히 모아,
‘마지막 잎새’처럼 귀하게 생명 살림에 쓰이게 하려 합니다.

가을 햇살 따사한 열, 등판에 가득 받아 두었다가,
한 겨울 냉골에서 지내는 이들 품에 온돌 되려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쓸모가 많은 가을입니다.
쓸모 있는 존재, 삶에 의욕이 생기게 하는 가을입니다.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