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이야기 32

갈대

1.

이렇게 말문을 열어봅니다.

아래 사진의 식물 이름을 아실까요?

힌트를 드리면, 물가에서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산에서 하얀 머리가 된 ‘억새’를 만나고, 물가에서는 ‘이것’을 만납니다.

홍제천 물가에 빽빽하게 자란 푸른 갈대

“갈대!” “예! 정답입니다.”

(산책길 이야기 32 제목에서 정답을 미리 알려주고는 묻는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강 목사 개그랍니다.)

고등학생 시절, 음악 시간에 이탈리아 가곡을 배웠습니다. 베르디 작곡 오페라 리골레토 중 아리아 ‘여자의 마음’이었습니다.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이라 한 노래를 배우면서, 사춘기 한때 여자의 마음에 대한 편견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면서 왜 하필 여자의 마음을 갈대에 비유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이번 장맛비에 홍제천을 걸으며 얻은 갈대 사진(왼쪽)입니다. 모두 한 방향으로 누웠습니다.

폭우 뒤 물가를 따라 한 방향으로 누운 갈대 폭우가 지난 뒤 홍제천 물가에 다시 일어선 갈대

오른쪽 사진은 폭우가 지나간 곳, 때가 되니 물결에 맡겨 넘어졌던 갈대는 일어섰습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지극히 평범한, 누구나 알고 있는 것, 자연은 스스로 치유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2.

지난 7월 28일 신문에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 “염기(鹽基) 교정(矯正)” 기사입니다.

태아의 유전 질환 예방과 염기 교정 원리를 설명하는 신문 그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특정 유전병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 될 수 있는 기사입니다. 만약 태어날 때부터 몸 안에 있는 선천성 유전 질환을 예방하는 기술이 나온다면 어떨까요?

최근 과학자들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몸속 유전자를 고쳐 질환을 교정하는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이 기술을 ‘염기(鹽基) 교정(矯正)’이라 합니다.

사람의 DNA는 약 30억 쌍, 60억 개의 염기로 구성되었답니다. 배열된 30억 쌍 가운데 단 하나의 염기만 달라져도, 특정 유전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창조된 인간의 몸입니다.

여기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 고치는 도구가 ‘유전자 가위’인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입니다. 세균은 바이러스 공격을 받으면 바이러스의 DNA를 절단해 안에 저장해 두었다가, 훗날 같은 유전 정보를 가진 바이러스가 다시 침입하면 저장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 바이러스를 정밀 타격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지킵니다.

최근 컬럼비아 대학 연구진은 ‘아데나 염기 교정기’를 통해 지금까지는 유전자 가위로, 문제가 되는 DNA 하나만 자르지 못했고 두 가닥을 모두 잘랐는데, 특정 염기 하나만 다른 염기로 바꾸는 기술로, 심장병과 빈혈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 염기를 교정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정말 놀라운 뉴스입니다. 유전자 염기 교정 기술이 인간 계량의 도구가 될지, 아니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의학 기술이 될지, 앞으로 인류가 대면할 윤리적 기준에 달려 있습니다.

3.

그런데 나는 이 기사를 접하면서, 게오르규(1916–1992)의 ‘25시’의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안소니 퀸’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억지로 웃는 영화 25시의 요한 모리츠 그림

안소니 퀸은 책 주인공 가난한 농부 요한 모리츠를 연기했습니다. 전쟁의 참상 속에서, 신조차 구원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실재하지 않는 시간 25시) 속에서 인간은 어디에서 구원을 청할 수 있을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게오르규의 자전적 소설 마지막 장면은, 고향으로 돌아온 요한 모리츠는 분명히 자신의 아이가 아닌 아이와 함께 마중 온 아내 스잔나와 기차역에서 사진사 앞에 섭니다. 사진사는 “스마일”을 강요하지만, 모리츠는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울 수도 없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웃기 위해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는 장면, 안소니 퀸의 이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25시’입니다.

유전자 칼로 염기 교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선천적 질병 예방에는 희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작된 인간의 출생도 가능하다는 뜻은 희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며, 마음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소릴,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만 멈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4.

파스칼(Pascal 1623–1662)은 3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파스칼의 유물을 정리하던 사람이, 파스칼의 낡은 외투 깃에서 ‘양피지’를 발견합니다. 안감 사이에 정성껏 간직한 양피지에는 한 단어가 기록되었습니다. ‘불(feu)’이었습니다. 그의 생애 마지막 8년 동안 간직한 것인데, 여기에 파스칼의 체험이 담겨 있습니다. 파스칼은 성서를 통해 하나님의 ‘불’ 같은 체험을 뜨겁게 했고, 이성(理性)의 칼로 세상을 베었던 그가, 이성(理性)으로는 닿을 수 없는 하나님 체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만난 ‘고백(告白)’을 양피지 조각에 ‘불(feu)’이라 기록하여 간직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나 보셨습니까?”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물음을 던지며, 파스칼의 유고집 명상록 ‘팡세(Pensées)’의 글을 몇 개 나눕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쪽에 내기를 걸라. 이긴다면 무한한 행복을 얻을 수 있지만, 진다고 하더라도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세계 지도가 달라졌을 것이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불행의 원인은 늘 자신에게 있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줄기가 연약한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

언제나 사색하도록 힘쓰라.”

모세는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던져졌으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람으로 쓰셨습니다. 그가 담겼던 갈대 상자의 ‘상자’는, 노아의 ‘방주’와 같은 어원 ‘테바(tebah)’입니다. (출 2:3, 창 6:14)

자연은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큰 산불로 벌거숭이 산이 되었지만, 사람이 손대는 것보다 빨리 스스로 회복합니다. 홍수로 난리 난 곳에도 기다리면, 비옥한 새 땅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좋구나, 좋아!”하신 창조 세계를 올바르게 보살펴야 할 인류가, 욕심으로 파괴한 후유증을 자연이 스스로 극복하도록 지켜보는 우리가 ‘욕심 버리기’만 바르게 행하면 좋겠습니다.

철학자요,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였고, 신학자이었던 파스칼의 명상록에 따라, 갈대를 주제로 사색의 나래를 펼쳐보았습니다.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