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이야기 31

길을 바꿨다

1.

긴 장맛비가 뜸해져서, 산책길을 홍제천 길에서 백련산으로 바꿨다.

준비할 것이 있다. 긴팔 옷과 긴 바지다. 숲길 걸으면 모기가 덤빌 테니, 필수다. 신발도 등산화로 바꿔 신었다. 그리고 마음가짐이다. 길이 다르다. 홍제천 길은 평지다. 그러나 백련산 길은 가파른 계단 길이다. 호흡이 다르다. 숨쉬기도 다르다. 걷기도 다르다. 가슴까지 숨차기도 빠르게 올 것이다. 모처럼 가파른 계단 길 오를 테니, 다리도 배나 힘이 들 것이다. 시간도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오늘 산책길 계획은 상, 중, 하 중에서 중간길을 걷기로 한다. 약 1시간을 걷는다. 백련산 정상까지의 코스는 내게 무리다.

길은 잘 안다. 봄에도 몇 번 걸었던 길로 익숙하다. 그러나 늦은 봄이 시작되면서 홍제천 길을 걸었기에, 어떻게 반겨줄지 궁금한 마음이다. 걸음이 어려움 없어 어떤 산이든 등산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있다. 그래서 길을 바꾼 오늘, 난 어떤 걸음을 걷게 될까? 궁금해진다.

2.

백련 논골마을 놀자숲 표지와 바위와 벚나무

“백련 논골마을 놀자숲”

지난해 겨울부터 오랫동안 공사하여 만든 ‘놀자숲’이다. 서대문구민들이 기증한 수십년 된 나무를 베어, 잔디밭을 만들고, 구청 내 어린이집 농장학습지를 없애고, 청소년용 놀이기구를 설치한 ‘놀자숲’이다. 이름이 조금 ‘거시기’하다. 나름 자연스럽게 울창(鬱蒼) 했던 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비싼 바위들로 쌓아 올린 놀이동산이다. 사진 왼쪽에 죽을 뻔했던 벚나무가, 날 보고 인사하는 듯했다.

계단 아래 원형 잔디마당과 굽은 산책로 백련 논골마을 놀자숲의 팔각정과 멀리 보이는 안산 놀자숲의 잔디밭과 산책로와 쉼터

노인을 위한 팔각정이 하나 더 세워졌다. 풍경이 좋긴 하다, 멀리 안산이 보이고 스위스그랜드호텔도 오른편에 보이고, 10시 방향으로는 나의 3층 집 그랜드파크도 보인다. 두꺼비가 서식하는 작은 웅덩이는 이전과 그대로인데, 부들, 부처꽃, 콩제비꽃 잎사귀들이 반갑다고 한다.

이제 백련산을 향하는 계단길 앞이다.

작은 웅덩이에서 자라는 부들 작은 웅덩이 곁에 핀 분홍빛 부처꽃 웅덩이 주변을 덮은 콩제비꽃 잎사귀 백련산 숲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길

잡은 지팡이에 힘을 싣고, 한 걸음씩 오르기 시작했다.

3.

예상했던 대로, 모기들이 “밥이다”하며 ‘왱왱’ 거리며 덤벼든다. 팔을 휘저으며 오르는데, 아무래도 계획했던 길을 수정해야 했다. 생각처럼 다리가 말을 잘 듣질 않는다. 오르기는 조금 더 연습해야 하겠다.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낮은 샛길로 들어섰다.

어린 밤송이가 떨어졌다. 바위 밑에 작은 일개미들이 흙을 나르고 있다. 개미들은 안다. 장마가 끝났다는 신호다. 집을 잘 열심히 보수해야 더운 여름을 견딜 수 있음을 안다. 고사리가 건강하게 자랐다.

낙엽 위에 떨어진 어린 밤송이 바위 밑에서 흙을 나르는 작은 일개미들의 집 백련산 숲에서 건강하게 자란 고사리 가느다란 줄기에 작은 꽃과 열매가 달린 파리풀

‘파리풀 꽃’을 만났다. 사진을 잘 찍지 못했지만, 백련산에서 처음 찍었다. 열매 끝이 갈고리 모양이어서 등산할 때 옷에 잘 붙는 식물이다. 뿌리를 갈아 진액을 종이에 묻혀, 파리 잡이로 사용해서 ‘파리 풀’이라 불린다.

내려오는 길에 ‘놀자숲’에서 ‘때죽나무’ 열매를 만났다. 가을이 여물어 간다.

놀자숲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때죽나무 열매 원뿔 모양으로 피어난 연둣빛 나무수국

요즘 조경하는 나무로 많이 사용되는 ‘나무수국’이 있다. 일본과 중국이 원산이다. 수국은 꽃송이가 둥근 공 형태인데, 나무수국은 원뿔형이다. 수국은 장마철에 피는데, 나무수국은 장미가 진 다음 무더위에 꽃피운다. 병충해 없고 어디서나 잘 자라서, 요즘 조경에 많이 사용되어 놀자숲에도 많다.

4.

나는 땀범벅이 되어 뒤뚱거리며 50분 만에 집에 도착했다. 샛길로 빠지는 코스로 바꿨지만, 힘은 홍제천의 4km 걷기의 두 배 이상 들었다. T-map 걸음 수를 보니, 3,600걸음이다. 5,000걸음에 1,400걸음이나 부족하다. 샤워하고 몸을 추스른 후, 책상 앞에 서서, 오늘의 목표 5,000걸음을 위해 1,500걸음을 걸어 채웠다.

하늘은 짙은 회색으로 바뀌었다. 저녁에는 비가 내린단다. 옥상에서 말리던 고추를 가져와

옥상에서 수확해 쟁반 가득 말리는 붉은 고추

한 장 사진으로 남긴다. 가을에 요긴하게 쓸 수 있어 감사하다는 아내의 음성이 피곤해진 몸에 안식이 된다.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