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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이야기 30
- 등록일
- 2026년 7월 20일
- 작성일
- 2026년 7월 20일
장마 틈새,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삐져나온 오후에 5,000걸음 채우려 집을 나섰습니다.
‘5,000걸음 채우기’는 자동차 보험료와 연관이 있습니다.7월 15일이 자동차보험 만기일이어서, 갱신해야 하는데, 보험료가 무진장 올랐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나이가 많아지면서 올라간 보험료입니다. 뭐, 어쩔 수 없죠. 세월이 올린 것이니 감내해야죠. 둘째는 주행거리입니다. 1년에 15,000km 이하이면 받을 수 있는 것을, ‘깜빡’했지요. 아들 목사의 목회지가 남해 당항교회인데, 한 번 다녀오면 왕복 1,000km입니다. 그만 보상받을 수 있는 거리를 넘어섰습니다. 1,656km 초과였죠. 이 역시 어쩔 수 없죠. “내년에는 신경 써야지”하며, 자동차 계기판 사진을 올립니다. 셋째는 접촉 사고가 있었습니다. 여성분이 자동차 뒤편을 박았습니다. 두 개 차선을 가로질러 오면서 일방적으로 부딪친 사고였는데, 이때 나는 차선을 바꾸려고 왼쪽방향 등을 켜고 2차선으로 옮기고 있었고, 앞바퀴가 주행선에 물려 있었습니다. 보험사는 쌍방 과실이 있다고 판단하여 60:40으로 보험 처리했습니다. 그래서 보험료가 오른 것이죠. 나는 100:0이라 주장했으나 보험법은 달랐습니다. 생각해 보니, 운전은 조심한다고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아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의 운전 경력은 오래지만, 보험 경력이 짧습니다. 목회하는 동안 교회에서 보험금을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초동교회를 사임하고부터 내 이름으로 보험 가입했기에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이 핸드폰에 T-map을 깔아주며, 모범 운전하면 보험료 보조받고, 한 달 동안 17회를 5,000걸음 이상 걸으면 보험료 보조받는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하하하, 아시겠죠? 정말 점수 잘 받으려고 운전을 규정대로(!) 합니다. 후후후, 돈이 무섭더군요. 그러나 옳은 일이고, 건강에도 좋으니, 산책길 나서며 즐거워합니다. 특별히 다른 수입원이 없는 나는, “오늘도 5,000걸음 이상 걸어, 보험료 보조금을 받아야지” 하면서 말입니다.
2.
내가 어렸을 때 장마철에는 곰팡냄새를 많이 맡았습니다. 습한 공기를 집에서 몰아내기가 쉽지 않았었습니다. 벽 구석이나 천장 구석에 습기와 함께 곰팡이들이 자리 잡곤 했습니다. 어떤 때 어머니는 장마철에 온돌방에 군불을 때, 습기를 없애기도 했죠. 눅눅하던 이불이 뽀송뽀송해져 기분 좋던 추억이 있습니다.
오늘 장맛비가 내리는데, 갑자기 나의 오래된 책장에서부터 가느다랗게 풍기는 묘한 냄새가 콧속을 자극했습니다. 잊었던 어린 시절의 곰팡냄새와 비슷했죠. 곰팡냄새가 아닌 것은 분명한, 텁텁 하긴 하지만, 싫지 않은 친숙한 냄새였습니다. 만년필 잉크를 보충하려고 잉크병 뚜껑을 열 때 맡던, 그 친숙함과 같은 책 냄새였습니다.
오래된 책 냄새는 꽤 복잡한 화학적 구조를 가진다고 합니다. 종이의 원료인 펄프 속 리그 닌 성분은 시간이 지나며 분해되는데, 이 과정에서 바닐란이 생성된답니다. 오래된 도서관이나 고서점에서 은은한 바닐라 향이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아몬드 향을 내는 벤즈알데하이드, 스모키한 향의 과이어콜 등 수십 종의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더해져 특유의 책 냄새가 완성된답니다.
나는 책 냄새가 좋고, 잉크 냄새도 좋습니다.
옆 사진은, 애용하는 만년필과 잉크랍니다.
장마철이라고 더 짙어진 책향(冊香)을 콧속에 넣고,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3.
5,000걸음 이상을 걸으려면, 손목에 하루 몇 걸음 걸었는지 계수하는 시계를 차면 됩니다. 나는 나라에서 마련한 이정표를 쓰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350m를 걸으면, 홍제천입니다. 친절한 이정표는 한강까지 4.50km라 합니다. 여기를 5,000걸음 출발점으로 정했습니다. 지팡이 짚고, 뚜벅뚜벅 길 따라 걸으면 됩니다. 출발점은 한강까지 5.5km, 반환점은 한강까지 4.0km입니다. 1.5km를 왕복하면 3.0km, 출발점에서 집까지 왕복 700m를 더하여, 3.7km 걸으면 7,200걸음이 됩니다.
자동차보험 보조금 받으면서(!), 걷기로 다리근육 만들고, 땀 흘려 노폐물 배출하여 피부도 좋아지며 건강해지니, 게을러지지 않으려 합니다. 물론 뱃살도 조금은 빠지겠지요? 하하하4.
늘 걷는 길인데도 매일 다른 이야깃거리를 줍니다. 장맛비가 잠시 멈춘 홍제천에서 운동하는 사람, 반려견 데리고 나
온 사람, 아이 데리고 산책 나온 젊은 부부 등 많았습니다.
수량이 늘어난 홍제천에서 오리 떼를 만났습니다. 보셔요, 나와
눈을 맞추는 오리를 보셔요, 먹이 달라는 눈 맞춤이죠, 잠시 자연
을 잃어가는 세계의 일부분을 엿본 느낌이었습니다. 비 온 뒤 장미꽃이지만, 역시 아름답습니다.
사실은 상태 좋은 것을 골라 찍었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날 봐요, 나는 안 예뻐요?” 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원추리꽃이 긴 목을 쭈욱 내밀며 속삭입니다. “그래, 너도 예쁘구나” 카메라에 담는데, 홍제 폭포 소리에 묻혀 듣기 어려운 칸나도 “나는 어때요?” 묻습니다. 칸나잎에 매달려 쉬던 고추 잠자리(빨강 고추잠자리였으면 더 좋았을)가 “얘, 엄청 편안해요.” 칭찬합니다.
자연은 이렇게 공생(共生)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장맛비가 잠시 쉬는 틈새에 산책길 찾는 사람들의 모습도 모두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이제는 반환점을 돌아 홍제 폭포도 지나고, 출발점이 가까워졌습니다. 새끼를 돌보는 어마 오리를 만났
습니다. 흰색 오리가 엄마 오리입
니다. 새끼가 독립할 때까지 책임
을 다하는 어미는 최선을 다합니
다. 자연은 늘 이렇게 균형을 이
룹니다.
욕심부리지 않습니다. 때 되면, 가혹할 정도
로 어미 곁을 떠나보냅니다.
자연의 일부인 ‘사람’이 깨달아야 합니다.
쇠백로 한 마리가 넓적 바위 위에서 깃털을 정성껏 긴 부리로 다듬더니, 주변을 살펴보곤 편안하게 쉬기 시작했습니다. 5.
집을 나설 때 ‘바람 냄새’와 홍제천 산책길 ‘바람 냄새’는 다릅니다.
홍제천 위 ‘내부순환도로’는 많은 자동차가 밤낮 없이 운행 중입니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홍제천 바람 냄새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북한산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마주 부딪치는 곳이지만, 약간은 비릿한 한강 변의 냄새가 더 강해, 맑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변 동네에서 내보내는 배수 배출구도 곳곳에 설치되어, 배출구 근처를 지날 때는 더 강한 비릿한 냄새를 맡게 됩니다.
물론 과거 안양천에서 맡던 악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천변(川邊) 산책길의 한계라 여기며, 집 앞에 도달합니다.
짧은 골목길 왼쪽은 대한불교조계종 ‘홍법사’입니다. 오른쪽이 ‘하늘이 내려주신 집’ 주소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41가 길 21, 그랜드파크 305호’ 나의 집입니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백련산으로부터 불어오는 맑은 ‘바람 냄새’를 맡습니다. 풀냄새가 곁들인 바람입니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이런 바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집이 얼마나 될까요?
나는 외출했다가 귀가할 때마다, ‘바람 냄새’로 평안과 행복을 누립니다. 혹시 어떤 부정적인 일로 마음이 어둡고 힘이 들 때에도, 집으로 올라가
는 골목길의 약간 가파른 길 위에서 큰 숨 쉬며 씻어내곤 했습니다.
오늘도 3층에 올라,
책향(册香) 가득한 서재에 앉아,
상큼한 냄새로 정신을 맑게 하는 만년필을 사용하여,
글을 쓰고,
설교문을 작성하고,
때론 시심(詩心)을 노트 위에 옮기고,
경우에 따라선
누구에겐가 정성껏 만년필 글씨로
편지를 쓸 것입니다.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