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이야기 26

북한산 산행

(북한산 북쪽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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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에서 홍은동으로 이사 후 끊겼던, 산책길 이야기를 6년 만에 잇습니다.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가 끝나고, “이런 선거가 있을 수 있나?” 혼란스러운 마음이 되어, 복잡해진 마음을 추스르려, 책상머리를 떠나 산책길 나섰습니다.

나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마쳐야 할 꼭짓점에 이를 때까지 끙끙 앓다가 시작하는 버릇입니다.

아버지께서 별세하신 해가 1997년입니다. 내년이면 30주년입니다.

그동안 아버지께서 남겨 놓으신 많은 설교문 중에서 일생을 뒤따르며 아버지 목회지에 따른 자료를 구분해서, 선별해 놓았습니다.

가족과 친구와 후배 목사님들, 그리고 가깝게 지냈던 성도들의 글, 작곡하신 동요, 유품, 사진, 등등을 분류해 놓았습니다.

어느 정도 편집 방향도 정하며, 편집자로 설명해야 할 글도 메모하여 놓았습니다.

이제, 책상머리에 앉아 비록 독수리 타법이지만,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쓰기 시작하면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상한 버릇이 작동된 것입니다.

첫 문장을 쓰지 못하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정말 오랜만에 북한산 등산길을 나섰습니다.

구기동에서 승가사까지의 짧은 거리를 걷기로 했습니다.

옛날이면, 천천히 걸어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히, 사진 찍으며 왕복하던 코스입니다.

2.

천천히, 지팡이를 의지하며, 속도를 높이지 않고, 몸의 균형을 잃지 않으며 조심하면서 한 걸음씩 옮겼습니다.

정말 많이 올랐던 길입니다. 계절 따라 길을 걸으며 찍었던 나무, 꽃, 개울, 바위, 다리, 계단, 숲의 그늘, 띄엄띄엄 보이는 계곡물 위로 펼쳐진 북한산 화강암 능선, 모두 그대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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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걸음만, 호흡만, 속도만, 달라졌습니다. 바위틈에 제비꽃잎이 건강한 모습으로 반겨줍니다.

왼쪽은 보라색으로 봄 길을 장식했을 제비꽃잎이고, 오른쪽은 노랑제비꽃잎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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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틈에 충분한 흙이 있지 않았을 텐데, 매년 이른 봄이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 땀 흘리며 오르느라 눈길 주지 않지만, 길손을 반겨줍니다. 길옆에 이렇게 큰 나무가 계곡 쪽으로 누워 있습니다. 어쩐 연유로 밑동이 잘렸는지, 모릅니다. 나이테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50년은 넘어 보입니다. 오랫동안 북한산 기슭을 지켰을 나무의 세월을 상상하며 80 고개가 가까이 온 나의 지난 세월을 떠올립니다. 아버지는 참 열심히, 성실히, 많은 열매를 나누며 사셨는데, 나는? 밑동이 잘린 나무의 계곡에 걸린 모습을 보면서, 남은 시간 낭비하지 말아야지, 다짐합니다.

3.

계곡 바위틈에서 ‘돌단풍’을 만났습니다.

계곡 바위 사이를 하얀 포말(泡沫) 만들며 흐르는 계곡물 위에서 사진 찍으려면 바람에 흔들려 어렵고 어려운 ‘꿩의 다리’도 만났습니다.

늘 그곳에서 봄이 되면, 누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개의치 않으며 꽃 피우며 제 몫을 하던 들꽃들입니다.

북한산의 봄, 여름, 가을은, 이름 알아주지 않아도 제 몫 다하는 들꽃들로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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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힘이 들지만, 벗들을 만나는 기쁨이 힘듦을 잊게 합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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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사 입구, 목적지에 도착하니, 문지기 어린 고양이가 “야옹” 하며 다가옵니다. 먹을 것 달라는데, 모르는 체했습니다. 사람 손을 이미 많이 탔지만. 혼자 생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한참 우리를 향해 야옹거리다가 반응하지 않으니, 시선을 돌립니다. 그런대로 학습된 셈입니다. 일단 고생스럽게 “헉헉” 거리며 오르긴 했지만,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하산해야 합니다.

원래 하산길 걸음을 더 조심해야 하죠. 젊을 때는 뛰어 내려갔지만, 지금은 몸의 균형 잃지 않으려 온 힘을 기울여, 울퉁불퉁 화강암 부서진 바닥 천천히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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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숲속의 남은 꽃들이 “몇 년 만이오?” 하며 말을 건넵니다. 현호색, 싸리나무꽃, 범의귀꽃들이 인사하더군요. 하하하 반가웠죠.

마침 발 담글 수 있는 곳을 만났습니다.

아내는 멀리 떨어져 발을 담그고, 발바닥이 힘들었는데 물에 피곤한 발을 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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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보이나요? 찾아보셔요, 발 담근 물속에 올챙이들이 개구리 될 때를 기다리며 고몰고몰 거립니다. 그런데 뭔가 다른 모양이 보였습니다. 물고기인 줄 알았는데, 도롱뇽입니다. 숲속 생태가 건강하다는 징표이죠. 북한산은 여전한데, 내 몸이 옛날 같지 않습니다.

늘 산책길 나설 때는, 매일 걸어야지 하다가도,책상머리에 앉으면, 의자에 껌딱지 되는 나입니다.

5.

이제, 구기동 출발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피로가 풀린 발을 양말과 등산화 속에 담고,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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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 때 만났던 ‘옛날 그 자리’를 잘 지킨, 내 사진 모델들에게 “다시 만나자”라 인사했습니다. 마침, 뒤따라온 젊은이에게 기념 촬영을 부탁했더니, 행복한 노부부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약 5시간이 걸린 산책길이었습니다.

만났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휴식처에서 친구와 통화하면서, 1,000만 원을 주식에 투자하여 7,000만 원이 되었다고 큰 소리 통화를, 억지로 들으면서 나의 통장 예금잔고를 씁쓸해지는 마음으로 세어봤습니다.

하산길에 오르는 중년 남자들이. 나를 보고 “나이 드신 분이, 대단하십니다” 하며 인사하고 지나쳤는데, “그렇지, 나는 아닌데, 남들 보기엔 노인이 산행하다니!” 할 때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가족 산행 나왔는데, 다른 길로 들어서 헤어지게 된, 길을 묻는 젊은이에게, 안내판 지도를 짚어가며 만날 곳을 안내했습니다. 오래 걸렸지만, 한결 가벼워진 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아버지 책을 위해 집중할 수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강석찬 목사 (‘산책길 이야기 26’은 6월 5일 초안을 작성했고, 이야기를 끝냈을 때는 6월 15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