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얻는 믿음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니라. 예수의 제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고,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세마포로 쌌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에, 예수를 거기 두니라.”

— 요한복음 19:32-34, 38-41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 요한복음 20:19-20

“도마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대답하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 요한복음 20:28-29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가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요한복음 20:30

1.

요한복음 20장은 예수께서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 죽임을 당하시고, 제삼일 새벽에 부활하셨음을 생생하게 기록했습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주를 보았다는 다른 제자들에게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라고 했으나,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평강을 기원하셨고,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미 요한복음 3:16-17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 약속의 성취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2.

빈 무덤의 새벽, 십자가에서 죽은 주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이란 어떤 것일까요?

21세기에서 우리가 부활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주님은 나의 그리스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라 고백하는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이 질문을 던지게 하는 21세기 문명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죽임’의 권세에 대하여, ‘살림’을 선포한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모든 나라가 죽임의 도구인 군비확장에 엄청난 비용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뒷자리에서 어마어마한 검은돈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첫 말씀으로 주신 ‘평강’은 저 멀리, 눈앞에 얻는 이득 계산으로, 억울한 죽음의 탄식과 울부짖음을 외면하는 생명 경시 세상입니다. 생명을 살상하는 전쟁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무리가 내어 거는 구호는, 놀랍게도 부활하신 주님의 첫 말씀과 같은 ‘평화’입니다. ‘거짓 평화’입니다. 무자비한 폭력에 저항하는 힘없는 생명을 죽임으로 돈을 버는 악하고 악한 불의입니다. 이런 풍조가 가득해진 오늘에, 부활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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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은 서대문구 백련산 자락에 위치합니다. 서재 창문으로, 옥상에서 누리는 백련산 정원을 품은 집입니다. 가까운 분이 ‘하늘에서 내린 집’이라 한 집입니다. 그다지 넓지는 않지만, 매년 늙어가는 우리 부부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충분한 환경입니다. 사진을 보실까요? 사진 설명합니다. 옥상에서 찍은 사진들인데, 2025년 4월 11, 15일 벚꽃입니다. 두 번째 벚꽃 사진을 기억해 주셔요. 세 번째 사진은 2024년 11월 28일에 폭설이 내렸을 때, 두 번째 사진 벚나무에 쌓인 눈 사진이고, 옥상에서 행복한 오인경, 강석찬입니다. 옥상에서 다육식물을 키웠고, 햇볕에 빨래를 말리는 즐거움, 그리고 오이, 고추, 상추, 깻잎, 가지 등을 심어 밥상이 풍성했습니다. 2024년 벚나무에 내리는 폭설의 양을 느껴보시죠. 그런데 2025년 9월부터 ‘나의 정원’(?) 인 백련산 자락에 높은 담이 설치되더니, 2026년 4월까지 공원 조성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담장 안 소식은 깜깜이였습니다. 멀쩡하던 공원을 새롭게 단장해야 한다고, 유치원생 텃밭을 갈아엎고, 서대문구 구민들이 기증하여 수십 년 된 나무들을 전기톱으로 잘랐습니다. 나무판으로 만든 길이 부자연스럽게 구불텅 만들어졌습니다. 구청이 발주하여 공사하는 소장을 만났지만, 서울시가 허락하여 시작된 공사라는 말만 들었을 뿐입니다.

지난겨울, 트랙터로 공사하는 소음을 참고, 먼지가 날아와도 인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높게 설치된 담 안은 주민들에게는 치외법권인 듯했습니다. 민원이 있어 전등 수를 줄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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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봄꽃이 피어나고, 나무줄기가 새잎을 세상에 내놓으려 애쓰는 때, 옥상에서 텃밭을 정리하는데, “전기톱 가져와 잘라 버려!” 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옥상에서 내려보니, 수십 년 된 벚나무 굵은 뿌리가 드러나 있었습니다. 이미 망치질로 상처를 입은 뿌리였습니다. 두 개의 평상이 흉측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진을 황급히 찍고 소리쳤습니다.

“왜, 멀쩡한 나무를 죽이려 합니까?” 공사하던 인부가 쳐다보더니, “죽지 않습니다.” 답합니다.

“나무뿌리를 잘라내는데, 나무가 산답니까? 죽으면, 책임질 수 있습니까?” 되물었더니, ‘책임질 수 있겠느냐?’ 라는 말이 걸렸는지, 슬쩍 물러서는 기색이었습니다.

달려갔습니다.

공사 소장을 찾았습니다. 자초지종을 말하며 뿌리를 자르면 나무는 살지 못한다고 하자 “원래 계획은 벚나무를 옮기는 것이었는데, 나무가 너무 커서 그대로 두고, 길 내는데 방해되는 부분만 자르기로 했습니다. 나무는 죽지 않을 겁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소장님, 소장님의 두 다리 중 하나를 사고로 잃으면, 살긴 하겠죠? 그러나 살았으니 산 것일까요? 나무의 생명도 사람과 같습니다. 관점을 달리 볼 수 없을까요? 안산 둘레길에는 나무 한 그루를 살리기 위해 나무길 주위를 둥글게 구멍을 내어 나무를 살린 곳이 있습니다. 반드시 나무뿌리를 자르고 길을 내야 할까요? 나무뿌리가 드러난 채 길을 만들어도 사람들은 불편해하지 않을 겁니다.” 다음 날, 같이 달려왔던 오인경은,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우리가? 나무 살리기 민원을 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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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 담당 직원이 나오고, 결국 담당 과장도 현장 조사를 한 후, 소장과 무언가를 조정했습니다. 물론 민원 제기자 오인경의 의견도 들었습니다. 다음 사진은 민원 처리 후, 결과 사진입니다. 소장은 벚나무 안, 평상을 옮겼고, 나무뿌리는 흙으로 덮었습니다. 고압선 전선주는 한전에서 옮긴다고 했습니다.

사순절 주님의 고난주간에 죽을 뻔했던 벚나무가, 부활절에 활짝 핀 벚꽃으로 “고맙다” 인사하며, 백련산 자락을 한밤중에도 아름답게 했습니다.

6.

부활절 새벽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부활 신앙이 어떤 것일까? 부활 신앙이 ‘생명을 얻는 믿음’이라 했는데, 이것이 어떤 삶을 말하는 것일까? 물으면서, 답을 얻었습니다.

온갖 죽임의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문명이 조성한 편리함에 젖어 죽음의 길을 걷는 것인 줄조차 깨닫지 못한 우매함에서 깨어나, 낭비, 소비에 물들어 행하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죽어가는 작은 생명들의 신음을 듣는 귀를 여는 것, 이것이 부활 신앙을 갖추는 것입니다.

전쟁을 일으켜 무고한 국민을 살상하는 정권의 권력자를, 하나님께서 징치(懲治)하여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누신 평안, 평화를 이 땅에 이루도록 힘쓰며 사는 것입니다. 생명의 몸을 게으름으로 방치하여 고장 나게 하는 잘못에서 돌이켜, 몸에 생기(生氣)가 활기(活氣)차게 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날 아침이 ‘생명을 얻는 믿음’이 새롭게 살아나는 아침이 되길 기원합니다.


강석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