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노회 장로고시자 교육

1.

성서의 증언 장로교는 모든 모임에 ‘성서공부’를 하는 것이 여러 가지 특징 중 하나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교단, 노회, 교회의 모임에서 ‘성서공부’가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다. 오랫동안 지켜왔던 ‘전통’을 왜 생략하는지, 그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굳이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성서의 증언’을 통해서, ‘성서에서는 교회를, 직분을 무엇이라 하는지’ 살펴봄으로, 잊히고 있는 ‘전통’을 지키려 한다.

(1) 내 교회에 대하여 마태복음 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하셨다. ‘내 교회’ 그리스어 성경은 ‘μου τήν έκκλησίαν’(my assembly)라 했다.

공동번역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으로새번역은 ‘내 교회를 세우겠다’로개역개정판은 ‘내 교회를 세우리니’로The Good News는 ‘I will build my church’로 번역했다.

‘취리히 성서해석’은 “여기서는 베드로라는 인물이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친히 사람들을 불러내셔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 것이 핵심이다. 그리스어로 ‘불러내다’를 뜻하는 동사 ‘엑-칼레오(έκ-κληο)’에서 ‘교회’를 뜻하는 명사 ‘엑-클레시아(έκ-κλησία)’가 나왔다. 죽음의 권세는 결코 교회를 이길 수 없다.”

라 했다. (2) 교회에 대하여 공관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시편 118:22를 인용하면서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하셨다. (막 12:10, 마 21:42, 눅 20,17) 베드로가 공회 앞에서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행 3:6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다. (행 4:10-12) 사도 바울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하였고, “교회는 그의 몸”(엡 1:23)이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골 1:18),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하였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성서의 증언은 “교회는 주님께서 주인이다. 교회의 모퉁잇돌, 머리와 몸은 주님이다.”

를 선언한다. 주님 위에 세워진 교회라는 뜻이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 주님의 뜻, 주님의 가르침, 주님의 기도, 주님의 십자가, 복음(福音) 등이 오늘의 모든 교회에 살아있어야 한다. 교회, 교회를 세우기 위해 부름을 받은 우리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당연히! 주님이다. (3) 직분에 대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한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제자(弟子)’로 인식한다. ‘그리스도인’(행 11:26)이라 한다. ‘성도(聖徒)’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며 ‘거룩할 성(聖)’ 자를 사용한다. 그리고 세상은 ‘교회(敎會) 다니는 교인(敎人)’이라 부른다. 제자(弟子)의 시작은 “나를 따라오라. 사람 낚는 어부 되게 하리라”(마 4:19)의 부름이다.

이 걸음을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하셨다. 이 길을 예수께서 본 보이시며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로다.”

(마 20:28)라 하시고, 그 길, 섬김의 길을 걸어가셨다. 예수님의 걸음은 어떤 것인가? 바리새인 니고데모와의 대화 중에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라 하신 후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하였다. 여기에서 예수를 따라가야 할 제자의 길과 걸음은 분명해졌다. 또한 그리스도인, 성도, 교인이라 불리는 신도(信徒), 직분자(職分者)가 드러내야 할 삶이 어떤 것인지도 확실해진다. 사도 바울은 “그가(주 예수 그리스도)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1-12) 하였고,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1-22) 사도 바울이 직분 맡은 자에게 한 말씀을 더 들어보면,“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지 말라.”

(엡 6:6-7)“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엡 5:10)“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9:31) 하였다. 사도 바울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라고 믿은 것처럼, 우리도 믿는다.

바울은 구원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가르쳤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 14:8)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4) 성서적 교회, 성서적 직분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5장에서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거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 15:1-2)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늠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5, 4)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8)“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니라.”

(요 15:13)“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으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 15:14-15) 제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며, 열매를 맺어야 한다. 교회가 그래야 하며, 제자는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아 열매 맺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제자는 반드시 그래야 제자이다. 제자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 10:44) 했다. 이 같은 제자의 길은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생각할 때 실천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섬김의 사람, 교회가 되는 길로 버림, 나눔, 비움, 포기, 베풂 등은 십자가 지고 가기로, 주님의 걸음 걷기이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요 모이신 주님께서 이미 걸으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는 길이니, 순종하는 것이 열매 맺는 유일한 길로 피할 수 없다. 2. 한국기독교장로회 헌법 (2006년 9월 15일 개정판 목차에 따름) Ⅰ. 신조 Ⅱ. 신앙고백서 Ⅲ. 신앙요리문답 Ⅳ. 정치 제4장 제19조 목사의 직무 제22조 목사의 청빙 제5장 장로 제29조 장로의 직무 제8장 치리회 제9장 당회 제44조 당회의 조직 제45조 당회의 직무 제46조 당회의 성수 제47조 당회장 제48조 당회의 회집 제49조 당회록 제50조 당회 각종 문부 제12장 공동의회 제13장 제직회 제14장 재정 Ⅴ. 권징조례3. 몇 가지 질문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서울노회 소속 교회 장로가 되려는 여러분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다. 내게 주어진 강의는 “당회의 역할과 교회 행정”이다. 노회 고시부가 첨가해서 부탁한 것은 당회 운영의 실무적인 것으로, 원만한 당회 운영으로 담임목사의 목회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의 판단은, 이 주문은 총회 ‘헌법’에 세밀하게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헌법’을 충실히 읽고 이해하고 ‘법대로’ 운영되도록 노력하면 잘 되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장로교의 뿌리에서부터 올바른 이해를 갖추고, 장로교가 시작되면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500여 년 동안 지켜왔던 것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장로교회의 장로’로서의 정체성을 갖추는 것, 곧 ‘나의 나 됨’을 생각해 보는 것이 ‘먼저’라고 여겼다. “교회를 아는가?” “장로교를 아는가?” “한국기독교 장로회를 아는가?” 장로교회의 장로라면 꼭 알아야 할 질문이다. 한국교회에 장로교단은 정확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많은 장로 교단 중에서, 한국기독교 장로회는 뿌리가 어디인지를 아는 것은 자신이 속한 교회의 장로로서의 정체성을 갖추는 소중한 일이라 생각한다. (1) 교회를 아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성서의 증언’이다. 이 물음으로 오늘의 교회 현상을 몇 가지 간단히 생각해 본다. Ⓐ 담임목사가 주인 행세하는 교회 Ⓑ 교회 개척자 또는 장로가 주인 행세하는 교회 Ⓒ 어떤 이념을 교회의 이름으로 주장하는 교회 Ⓓ 교회를 정치무대로 이용하는 교회 등 복음적인 교회의 정체성이 사라진 교회를, 주님의 교회라 할 수 있는지 판단해 보아야 한다. (2)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란? 의외로 많은 사람이 장로교회를 시작한 종교 개혁자를 장 칼뱅(Jehan Cauvin, 1509-1564)으로 알고 있다. 칼뱅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성경의 최고권위, 오직 믿음으로만의 칭의론, 성령의 내적 증거 등을 강조한 개혁교회(Reformed church)를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했다. 장로교회는 영국에서 유럽으로 망명했던 존 낙스(John Knox, 1513-1572)가 칼뱅의 종교개혁 신학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개혁교회와는 다른, 부패한 로마 가톨릭교회에 맞선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를 스코틀랜드(Scotland)에서 1552년에 세웠다. 칼뱅은 교회 안에 직분을 성서에 기록된 목사, 교사, 장로, 집사의 네 직분만 두었다. 교사는 교회학교 교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로 신학 교수나 박사였고, 장로는 항존직이 아니라 1년의 임시직이었다. 매년 신임받아야 할 집사는 제네바 시의 복지시설에서 봉사해야 했다. 칼뱅은 세상을 말씀으로 개혁하는 교회를 주장했다. 대의정치의 일환으로 장로협의체를 운영하며, 교황의 일인 독재에 맞섰다. 교회는 죄인(사람)의 모임이기에,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교회로부터 받는 직분의 서열화, 계급화, 권력화가 될 수 없는 구조를 추구했다. 죤 낙스는 스코틀랜드 메리(Mary Stuart, 1542-1587) 여왕의 핍박을 피해 스위스로 망명했다가, 칼뱅의 조력자가 되었고, 칼뱅의 신학에 영향을 받았으나, 낙스는 귀국하여 새로운 교회를 세웠다. 칼뱅의 개혁교회 직분인 교사를 없애고, 신약시대의 직분에 따라 말씀을 전하는 장로인 목사, 교회를 치리하고 권징하는 장로, 집사의 직분을 둔 장로(presbyter)교회였다. 장로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은 장로(presbyter)이다. 그래서 장로는 ‘장로교의 정치원리’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장로교 목사나 장로가 장로교 정치원리를 모른다는 것은, 대의정치를 실현하는 국회의원이 헌법을 모르고 정치하는 것과 같다. 장로교 초기 문서인 스코틀랜드교회 ‘제2치리서’는 목사와 교사(오늘의 신학교수)의 직무를 구분했다. “교사는 신앙의 신비를 열어주는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았다면, 목사는 상황에 맞게 양떼의 사람의 태도를 권고함으로써 말씀을 적용하는 지혜의 은사를 받은 자”라 했다. 장로교의 목회는 ‘헌법’이 정하고 있다. 목회는 ‘헌법’안에서 해야 한다. 장로교에서 ‘헌법’은 공동체의 약속이고, 공교회가 추구하는 원리들의 집합이다. 대의정치를 시작한 장로교 정치에서 최고 권위는 어디에 있을까?

첫째, 신학적으로 ‘성서’이다. 둘째, 장로교 정치원리에 따르면 ‘헌법’에 있다. 셋째, 의사결정의 최고권위는 ‘그 회의’에 있다. 이것은 최고의 권위를 사람에게 두는 교황정치, 감독 정치와 다르며, 다수의 사람에게 권위를 주는 회중 교회와 다르다. 영국의 개혁교회들은 완전한 개혁을 위해 영국교회와 스코틀랜드 교회 대표들이 총회를 회집하였다. 1646년부터 6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요리문답서’ 초신자와 어린이 위한 ‘소요리문답서’ 등등을 도출했다. 웨스트민스터 문서들은 세계 모든 장로교의 표준 문서로 적용되고 있는데, 특별히 소요리문답 1번은 장로교 신앙의 핵심 원리를 담고 있다.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Q: What is the chief end of man? A: Man’s chief end is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 기장 신앙문답(2003년판) 제1문: 성서의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답: 하나님은 한 분으로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나신 분입니다. 그는 영원히 존재하시고 지혜와 힘이 무한하시고 거룩하시고 진실하십니다. 기장 신앙문답(2009년판) 제1문 : 사람의 첫째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삶 전체를 바쳐 그분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기장교회의 초기 소요리문답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그러다 2003년 개정판에서는 칼뱅의 신학을 반영해서 “성서의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라고 하나님 지식을 소요리문답 1번으로 하고, 본시 1번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를 질문 18번에 배치했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있음을 뒤늦게 발견하고, 2009년 헌법 개정에서 칼뱅의 신지식과 함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번을 반영하게 된 것입니다. 소요리문답 1번은 개혁주의 신앙의 핵심 원리를 담은 것입니다. 이 문답의 핵심은 순종적인 삶이 관조적인 삶보다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지에 순종적으로 살아감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부산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때문에 장로교인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에만 몰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왜 구원받는가? 장로교 신앙고백에 의하면, 섬기기 위해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일함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일함으로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개혁주의가 말하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장로교신조] 잭 로저스, 한국장로교출판사, 1995)

부연

우리 교단의 헌법은 장로교정신을 담은 소요리문답을 가지고 있음에도 현장의 목회자들 가운데 교단의 소요리문답으로 세례문답이나 신앙교육을 하는 경우가 드물고, 주로 개교회 목회자들이 임으로 제작한 ‘교회생활 지침서’와 같은 경박한 내용으로 신앙교육을 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만큼 기장교회 목회자들이 신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입니다. 승리주의는 개혁교회 신앙과 불일치합니다. 개혁교회는 인간의 승리를 악으로 규정합니다. 인간의 승리는 항상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승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해야 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승리를 찬양해야 합니다. -끝- (하태영 목사(서울노회, 삼일교회 은퇴)의 글 ‘개혁교회와 장로교 목회’에서 인용)(3) 한국기독교 장로회를 아는가? 성서는 기억의 책이다. 구약은 하나님을 잊지 말라. 출애굽 해방과 구원의 하나님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이스라엘의 조상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고 했다. 이 구원의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신앙의 본분이라 하였다. 신약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함을 요구한다. 그래서 구원의 공동체인 교회는 성만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기억하며 기념한다. 이렇게 보면, 교회는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공동체이다. 이 은혜를 망각하는 교회, 노회, 총회가 있다면, 그곳은 주님의 교회라 할 수 없다. ‘한국기독교 장로회를 아는가?’ 우리는 우리 교단의 역사를 알고, ‘그 역사’와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있도록 한 역사 속에 담긴 사건들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묻는다. 교단에 대한 자랑은 많이 들었다. 그러나 부끄러운 것은 감추게 된다. 이 강의에서는 부끄러운 일들을 말한다. 감추려는 것도 역사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것이지만 드러냄은, 잘못을 통해 배움과 자람이 더 크기 때문이다. ① 1953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8회 총회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는 분열되어 ‘대한기독교장로회’가 시작되었다. 1961년에 ‘한국기독교장로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약칭으로 ‘기장’이라고 불리고 있다. ‘새역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기장의 역사를 반토막 내는 호칭이다. 한국의 장로교는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32명의 선교사와 36명의 한국인 장로를 회원으로 해서 독노회(총노회)를 조직함으로 시작되고, 1912년 9월 1일 총회를 창립, 한국 장로교회가 출범한 역사가 기장의 온전한 역사이다. 공식적으로는 총회도 2024년 총회를 제108회라고는 한다. 1953년 제38회 호헌총회 이전의 총회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라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1953년 이전의 역사’는 ‘새역사 기장’ 속에 묻혀, 기억되지 않고 있다. 우리의 자의식 속에 ‘새역사 기장’만 각인되어 있음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② 1958년 5월 25일에 ‘대한기독교장로회’ 총회는 서울 동부교회에서 ‘가나다 연합교회 한국선교 60주년 기념 예배’를 드렸다. 1958년이면, 1953년 제38회 총회를 ‘호헌총회’라 하며 ‘기장의 새역사’를 시작한 지 5년이 되는 해이다. 왜 총회는 ‘가나다 교회 한국선교 60주년 기념 예배’를 드렸을까? 곱씹어 보아야 할 일이다. 자료를 나눈다.

1958년 5월 25일 캐나다 연합교회 한국선교 60주년 기념 예배“밀알 하나”-캐나다 선교회의 역사를 더듬어(1898–1958)- “밀알 하나”, 이는 캐나다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와서 만 2년이 못 가서 한국 땅에 그 몸을 묻어버린 짧은 선교사 맥캔지 목사(Rev. William Mackenzie)의 일생을 기록한 전기의 책 이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맥캔지 목사의 약혼한 처녀요, 후에 애인이 묻힌 이 땅에 찾아와 원산에 마르다 여자신학교를 세우고 그의 여생을 바쳐 일한 Miss Louise MeCully(이 리이스 선교사)이다. 이 동생을 찾아서 수년 후에 그의 언니 Miss Elizabeth MeCully(이 리자베쓰 선교사)도 한국에 와서 역시 원산에 진성 여학교를 세우고 일생을 바쳐 이 나라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은 초대 선교사상의 숨은 일화라 할 것이다. 그러나 맥캔지 목사는 캐나다 동쪽 Nova Scotia주 어느 동리에서 자라 외지 선교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Halifax시에 있는 Pine Hill신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다. 그가 어느 여름 북극지방에서 전도하고 있었던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왜 그곳(한국)에 가지 않느냐? 할 일이 많은 그곳에 바울처럼 일어나 가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이 젊은 총각 목사는 한국에 오기를 결심하고 교회에 청원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캐나다 교회는 한국이란 땅에 선교사업을 시작해 보고자 하는 꿈도 꾸지 못할 때였다. 가일 목사(Dr. James S. Gale) 펜윜 선교사(Mr. Fer Wick), 홀 목사(Rev. R. A. Hordie, M. D.), 에비슨 박사(Dr. O. R. Avison) 등 캐나다 사람으로 한국선교 사업에 뜻하여 맥캔지 목사 보다 먼저 온 사람도 많지만 본국 교회가 관심이 없고 따라서 재정적인 원조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미국서 온 선교회로 이명을 하여 미국교회 선교사로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1893년 맥캔지 목사가 한국으로 선교사로 간다는 것을 교회는 냉대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친구와 교회 신도, 대학교수, 선배 등에게 호소하여 얻은 자비로서 선교 사업을 착수하기로 하여 1893년 12월 12일 인천에 도착하여 곧 황해도 땅 “소라지”에 갔다. 이는 펜윜이란 캐나다 사람이 이곳에서 얼마 동안 전도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캐나다 사람과 인연이 있다는 이곳을 택한 것이다. 그곳에서 사는 동안 주민들한테서 신임을 얻고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한국인 옷을 입고 한국인 집에서 한국인의 음식을 먹고 살았다. 그리고 교회를 한국인 손으로 세우게 하고, 학교를 세웠으며, 백 리, 2백 리를 가도 영어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여 근방에서 ‘맥캔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의 큰 공로 가운데 하나는 한국인 손으로 지은 교회로는 이 소사리 교회가 첫 번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깝게도 그는 뜨거운 여름에도 쉬지 않고 순회 전도하는 가운데, 과로와 영양부족으로 말미암아 원인 모르는 심한 열병에 걸려 마침내 이 병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이 땅에 그 귀한 생명을 바치고 말았다. 그의 무덤은 그 교회 뒤에다 세워졌다. 이제 그는 죽었지만, 그러나 그의 남은 일은 계속되었다. 그가 죽을 때 남긴 유언은 그의 저금통장에 있는 돈 $2,285.00을 본국으로 보내어 한국에 선교사업을 시작하는 데 사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뜻은 미국 목사, 특히 Underwood 박사의 간곡한 편지와 함께 본국 교회에 전달되었다. 이런 비보를 받게 된 캐나다 교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다음 해 1896년 총회에 이 맥캔지 목사의 거룩한 희생 사실이 보고되었고, 총회는 마침내 1898년 6월 10일 Montereal Knox 교회에서 모인 회의에서 한국에다 선교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이 결정은 전국 신앙 청년들의 가슴을 감동케 했으며 마침내 세 사람의 청년 선교사 즉 부두일 박사 부부(Dr. & Mrs. W. M. Foote) 막크례 목사(Rev, D. M. MeRae), 구례선 목사 부부(Rev. & Mrs. Reber Grierson, M. D.)는 캐나다 교회가 정식으로 보낸 선교사로 이 땅을 밟게 되었으니, 그때가 바로 지금부터 60년 전, 1898년 9월 어느 날이었다.

서울노회 장로고시자 교육 원문에 실린 그림 또는 사진 1

“한 알의 밀알”이 5년이 못 가서 세 사람의 선교사를 이 땅에 불러오게 했고, 그 후 계속하여 그 한 알은 다음과 같은 수로 늘어 갔다. 1910년에 17명, 1911년에 21명, 1914년에 29명, 1917년에 43명, 1920년에 48명, 1922년에 50명이 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과거 60년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수난기였다. 캐나다 교회의 선교사업은 이 민족 수난의 역사 속에서 자라났다. 진실로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라는 옛 이스라엘 시인의 노래가 한국인의 심정에도 통하지 않는가 한다. 때 : 1958년 5월 25일 오후 8:30 곳 : 서울 동부교회 주최 : 대한 기독교 장로회 총회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캐나다 연합교회, 거슬러 올라가 스코틀랜드 장로교와 긴밀한 선교의 역사를 2025년에는 어떻게 기억하는지 부끄러움으로 묻는다. ※ 한국의 장로교회는 주로 미국북장로교, 미국남장로교, 호주장로교와 유대관계에 있으나 기장만큼은 유일하게 장로교회의 원류인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와 맥을 잇고 있다. 이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캐나다 온타리오주로 이민한 이들의 교회가 캐나다 장로교회이고, 1925년 캐나다 장로교회가 캐나다 감리교회, 캐나다 회중교회가 연합교회가 된다. 그로 인해 함경도와 북간도에서 활동하던 캐나다 장로교회는 캐나다연합교회가 된다. 그리고 일제 말과 한국전쟁을 계기로 남하한 캐나다연합교회는 1953년 신학 논쟁으로 장로교에서 축출된 소수자인 기독교장로회와 합류함으로서 기장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고, 한국선교를 완성하고, 자신들이 소유한 모든 부동산을 기장에 조건 없이 기증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연세대학교에 매각한 3,000평, 신우관 건물과 부지 300평 그리고 지금의 교육원 건물과 부지 1,000평, 이서 농촌개발원 등이다. 기장이 일찍이 세계교회와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은 캐나다 연합교회에서 기장 인사들을 파트너로서 세계교회에 동행케 함으로써 가능했던 일이다. 그후 우리 기장은 그 소중한 역사를 모두 망각하고 ‘새 역사’를 전개한다며 재산만 빼먹고 있다. ③ 장로교 정치 원리가 사라지고 있다. Ⓐ 2025년 6월 21일에 기장 총무가 NCC 총무 선출에 대하여, 총회 게시판에 올린 기장 민중선교회와 농목이 연명하여 낸 성명서에 대한 답변의 글을 그대로 인용한다. 『 8) “… 우리 교단은 NCC 총무 후보를 어떻게 선정한다는 방법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총무 중심제인 기장 정치에서 일반인들은 감지하기 어려운 교계 정치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하라고 총무에게 일임한 것입니다.” 11) “더 민주적이어야 하는 내용, 더 투명하게 하는 방법이 있으면 농목과 민중선교회가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총회도 하나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목회하는 교회도 모든 것을 공개하지는 않습니다. 사안에 따라서 소수의 당회원만 알아야 하는 것도 있고, 제직회가 다룰 문제도 있고, 공동의회가 결의할 것도 있습니다. 총회도 법으로 규정해 놓지 않은 것은 사안의 성격에 따라서 보안과 소리 나지 않는 실행이 필요합니다. 총회 총무라 해도 자치단체인 농목이나 민중선교회의 예민한 사항까지 보고하라거나 공개하라고 무리하게 요구해선 안 되는 것처럼, NCC 총무 후보 선임 문제에 대해 임의단체인 농목이나 민중선교회가 총회 총무에게 이렇게 공개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인지는 별도로 잘 헤아려 봐야 할 문제입니다.』 (굵은 글씨체는 강의자가 임의로) 총회 총무의 의식을 드러낸 문서라 할 수 있다. 장로교의 정치 원리가 ‘총무 중심제’인가? 총회가 총무에게 일임하였다? 총회는 사무처를 두어, 총회가 위임한 사안을 처리하도록 한다. 그래서 정치 원리로 대의정치를 추구하는 장로교에서 총무는 사무처를 총괄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철저히 총회가 처리하도록 결의한 사안에 한하는 제한을 갖는다. 감독정치는 제반 업무를 처리하는 기관으로 ‘본부’를 두지만, 대의정치는 ‘사무처’를 둔다. 언제부터인지 ‘총회 본부’가 된 것은, 대의정치인 장로교가 감독정치를 흉내 낸 것으로 ‘헌법’에 배치됨에도, 문제의식이 없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 교회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수많은 교인의 믿음의 삶이 차곡차곡 쌓여 역사를 만들고, 교회를 이룬다. 장로, 권사, 집사, 세례교인, 교사, 성가대원 등의 교인들의 봉사와 헌신, 헌금으로 교회는 주님의 교회로 성장하고, 담임목사를 비롯한 교역자들의 목회가 교회 역사의 중심에 자리한다. 그런데 요즘 교회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있다. 교역자가 바뀔 때마다, 전임 교역자의 역사나 흔적을 지우고 없애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현상이다. 교회의 역사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사실대로 기억되어야 한다. 교회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은, 당회의 책임이며, 당회원의 역할이다. Ⓒ 제107회 총회에서 ‘헌법 정치, 제11장 총회, 제60조 총회의 조직’ ‘총회 규칙 제2장 제5조 정회원’을 개정한 일은, 장로교 정치 원리인 ‘헌법’을 훼손한 중요한 사건이다. 제107 총회 헌법위원회는 “신도회 대표 정회원권 결의에 관해서는 정회원권이 장로교회 원리에 맞지 않으나, 제106회 총회 결의를 이행하기 위한 법적 보완을 포함하여 연구하도록 함에 따라 ‘헌법’과 ‘총회 규칙’을 개정한다”라고 했다. 제107회 총회의 결정을 기독교신문이 기사화한 것을 그대로 옮긴다. 『기장 헌법위원회는 ‘신도회 대표와 청년 대표에게 총회 정회원 자격을 부여’하는 개정안을 헌의했고 총대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는 지난 2021년 106회 총회에서 허락하고 헌법위에 연구를 맡긴 사안이다. 헌법위는 “평신도의 정회원권은 장로교의 원리에는 맞지 않지만, 106회 총회 결의를 이행하기 위해 총회 규칙을 개정하고자 한다”라고 부연했다. 이번 결정을 통해 기장총회에는 각 노회가 파송한 목사, 장로 총대뿐 아니라 국제협력선교동역자, 남신도회, 여신도회, 청년회 대표 각 2인이 정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장로교회 원리에 맞지 않으면, 헌의를 법대로 기각하면 될 것을, 맞지 않지만 제106회 총회에서 결의했으니, 이행한다는 법적 절차에도 오류를 범했다. 제106회 총회의 결의가 법적으로 잘못되었음을 한 회기 동안 연구한 것을 선포하면 되었다. 총회가 스스로 장로교 정치 원리를 파훼(破毁)하였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을 노회도, 목사, 장로도 문제 삼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현실이 무엇을 알려주는 것일까? 장로교에 대한 무지(無知)를 의미한다.

  1. 당회의 역할과 교회 행정, 당회 운영의 실무적인 것, 원만한 당회 운영에 대하여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시작하면서 규정한 목사와 장로, ‘말씀을 전하는 장로인 목사, 교회를 치리하고 권징하는 장로’에 따라 지난 500여 년 지켜졌던 장로교의 전통과, 한국기독교장로회 헌법 제29조 장로의 직무 “장로는 교회의 택함을 받은 교인의 대표로서 목사와 함께 치리회원이 되어 교회의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며 교회의 영적 사항을 살핀다. 교인 중 고난 당하는 자를 방문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교리를 오해하거나 도덕적 부패에 빠지는 교인이 없도록 권면하고 선도에 힘쓴다”라고 규정했다. 헌법이 정해 놓은 장로의 직무를 잘 행하는 장로가 된다면, 원만한 당회 운영은 저절로 된다. 제30조 장로의 자격 “상당한 식견과 통솔 능력을 가진 남녀로서 디모데전서 3:1-7에 해당하고 무흠입교인으로 5년을 경과한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헌법에 따라, 헌법이 정해 놓은 장로의 자격 앞에 늘 자신을 세우며 부족한 것을 채우려 한다면, 교회는 주님의 교회를 이루어가면서 화평하게 된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장로로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할 것인지 묻고 답을 찾아본다. (1) 장로는 목사를 알아야 한다. ‘목사와 함께 치리회원’인 장로가 목사를 모르면, 원만한 당회 운영은 쉽지 않다. 교회에 담임목사가 공석일 때, 담임목사 청빙에 장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때, 당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담임목사의 조건이 무엇인가? 여기에서 장로의 신앙관, 삶의 가치관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장로가 이루고자 하는 교회에 대한 인식이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목사의 가치관을 물으면서, 동시에 장로의 가치관은 어떤 것인가? 복음적인가? 성서적인가?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어떤가? (2) 목사에 대한 장로의 태도에 따라, 당회 운영은 달라진다. 당신은 노회가 귀 교회에 파송한 목사(담임목사, 부목사)를 어떤 분으로 생각하는가? 종교개혁 직후, 초창기 기독교 교회당에는 펜스로 구별된 곳이 있었다.

교회당 앞자리에 펜스와 출입문이 있고, 설교단이 펜스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설교 시간이 되면, 장로는 펜스의 출입문을 열고 설교할 목사를 영접하고 인사한다.

목사는 설교단에서 설교한 후 내려오면, 역시 장로는 출입문을 열어 설교한 목사가 회중석에 앉도록 하였다. 이것은 초창기 개혁교회가 가톨릭과 많은 전쟁을 치르던 때에 남은 습관이다. 가톨릭이 개혁교회의 적(敵)이었던 때다. 마을의 교회당을 지키던 펜스가 교회당 안으로 들어왔고, 목사를 신앙의 수호자로 여기던 신도들이 목사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야만, 신앙도 지킬 수 있었던 때의 유산이다.

여기에서 장로의 목사에 대한 역할이 중요하다. ‘목사 지킴이’가 장로의 직임 중 가장 중요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직자를, 생명을 걸고 보호하려는 전통 안에 담긴 것을, 소중히 여기는 장로가 되면 좋겠다.

여기에서 장로는 목회(牧會)를 잘 이해해야 한다.

목회는 목양(牧羊)이다.

교회라는 주식회사 운영이 아니다.

한국교회에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경향 중 하나는, 목사를 회사 운영의 CEO로 이해하려는 것인데, 크게 잘못된 것이다.

투루나이젠은 ‘목회학 원론’에서 목회의 본질을 ‘한 영혼의 돌봄’이라 하였다.

한 영혼을 돌보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쏟아붓는 사람이 목사이다.

그런데 당회원만 되면, 교회 성장의 책임을 목사에게 묻고 돌리면서, “교회가 부흥해야 하지 않는가? 헌금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교인 수가 줄지 않습니까?” 하면서 목사를 채근하는 장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태도는 잘못이며, 이런 당회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누가 감독자가 되는 셈인가? 장로가 감독 역할이 된다면, 교회의 질서가 바뀐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본질에 위배된다.

장로는 목회의 협력자로써, 양이 잘 먹고 뛰어놀도록 울타리 안을 잘 가꾸는 자이어야 한다. 담임목사가 목양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하는 장로이면 좋겠다. 장로는 목사가 목양(牧羊)을 잘하도록 지원하면서, 목양을 잘할 수 있도록 목장을 잘 가꾸고 풀이 건강하도록 살피는 역할을 맡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청지기이다.

담임목사가 신학적으로 이단적이거나, 윤리적으로 잘못하거나, 교회의 재정을 사용(私用)하거나, 목자로서 특별히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장로로써 목회를 지원하는 데 모자람이 없어야 한다. (3) 장로교회를 알아야 ‘목사와 함께 치리’를 할 수 있다. 지금의 교회에서는 거의 사라진 당회의 직무 중 하나는 ‘권징(勸懲)’이다. 권징(勸懲)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준말이다. 요즘은 어떤 교회에서도 당회가 연말에 교인들에게 권면(勸勉)하고, 징계(懲戒)의 직무를 행하지 않는다. 오래된 교회의 옛 당회록을 보면, 연말 당회에서 교인에 대한 권면과 징계를 기록한 것을 발견한다. 왜 사라졌을까? 권징을 실행하지 않으면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당회가 권징을 하려면, 교인을 알아야 한다.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심방은 장로 몫이다. 헌법이 규정한 장로의 직무 중 하나다. 교인의 영적 상태를 ‘치리’할 때 바른 교회로 세워진다는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4) 청년회, 남녀 신도회 대표가 당회 참석을 요구하며 교회 제반 행사에 언권이나, 결의권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5) 교회가 세운 교회 예산결산이 105%가 달성되었다면, 남은 5%를 어떻게 해야 할까?

교회 예산결산이 95%가 되어, 5%가 모자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교회 초창기의 살림은 늘 가난했었다. 목회자 사례비도 제때 드리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농사한 것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 놓고 가던 시절이다. ‘성미(誠米)’가 목사 생활비 일부였고, 가난한 교인을 위한 사랑의 나눔이었었다. 이때 한국교회에는 좋은 전통이 있었다. 연말이 되면, 당회가 모여 교인들 한 사람씩의 신앙생활을 점검하며 권징을 논의하여, 적절한 권면과 책벌을 하여 교회의 질서를 세우는 일과 함께, 그해의 예결산서를 살피면서 부족한 결산을 장로들이 십시일반으로 채워, 교회 앞에는 100% 달성된 것으로 보고하게 했다. 주님의 사업에 모자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신앙이었다.

5% 남는 것은 어떻게? 왜 더 주셨을까? 물어야 한다. 저축하라고? 아니다.

교회가 일 년 전에 아무리 세심하게 계획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교회가 돌아보지 못한 일들이 있다. 그곳에 써야 한다. 5% 넘게 달성되어도, 남기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 주님의 교회 헌금 사용법이다. (6) 한국교회 예배가 ‘열린 예배’의 유행으로 여러 교단의 예배가 혼합되며 장로교 전통이 사라졌다. ‘장로교’인데, 예배는 다른 교단의 것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7) 장로교의 강단은 예배당 중앙에 십자가를 두고, 설교단과 성서봉독대를 좌우에 둔다. 만인사제설에 따른 것으로, 사람이 십자가 앞을 가리지 않는 구조이다. 신학과 신앙이 담긴 전통이다. (8) 목사가 교회를 매각하여 장소를 옮기자고 하면, 교회는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까? (9) 야고보서 5:13-14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하였다. 만약 교인 중에 장로에게 안수기도를 청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로가 되면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에 들어가게 된다. 당회(堂會)다. 그래서 ‘당회원이 된다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당회원은 치리자(治理者)이다.

장로교 정치에는 세 치리 기구가 있다. 당회(堂會), 노회(老會), 총회(總會)이다.

당회의 중요한 역할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장로교 교회 정치는 권징(勸懲), 치리(治理)를 강조하였다. 당회원이 되면 권징으로 교인을 돌보아야 한다. 교회의 권징의 목적은, ‘주님의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이며, 교인들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올바르게 살기’를 지도하여 복음 전파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 ‘신앙생활을 복음에 맞게 하도록 하여 세상에서 실족하지 않게 하여, 심판의 때에 구원받게 함’에 있다. 그러므로 권징의 결정자로써, 치리자인 장로가 자신을 돌아보면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며 흠이 없어야 한다. 또한 교회의 신조와 교리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교회에서 치리자가 되려니 장로는, 법을 잘 지키고, 신앙생활의 본이 되고, 교리와 성서에 많은 공부와 지식을 가졌고, 세상에서도 존경받는 사람이어야 했다. 세상 친구들이 “아무개가 교회 다니는 건 알았는데, 그 친구가 장로가 되었다고?!”

라고 놀라고, “그 친구가, 예수를 믿어 변했다니! 나도 그 예수 믿어봐야겠다.”

라고, 변화된 삶을 보이는 장로가 되면 좋겠다. 제발, 집에 가서 교회 욕, 교인 욕, 목사 욕하지 않아야 한다. 욕은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잘하는 것, 칭찬하기에도 부족한 우리이다. (***)(서울노회 원로목사 강석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