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새벽기도회 이야기
- 등록일
- 2025년 8월 19일
- 작성일
- 2025년 8월 19일
한국교회에만 있는 특별한 교회 생활에 ‘새벽기도회’가 있다.
요즘은 사라진 교회들도 많지만, 목사의 하루는 새벽기도로 시작된다.
나는, 새벽기도회가 설교 준비의 寶庫(보고)였다. 전날 아무리 바쁜 일정으로 늦어졌어도, 반드시 책상머리에 앉아, 다음날 새벽기도회 말씀 준비를 마쳐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이때의 말씀은 요약 준비였다. 그런데 새벽 시간에 전한 말씀이, 때로는 스스로 놀라는 傳言(전언)이어서, 기도회를 마치고 그 말씀을 정리하며 설교 주제를 얻곤 하였다. 송암교회 부목사 시절, 1년 만에 과로로 疑似(의사) 장티푸스와 폐렴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하였다. 회복 후, 한의사에게 진맥하여 보약을 지어 먹었는데, 내가 목사인 줄 안 한의사는 “기장 교회에서 목회하라”고 권했다. 이유를 물으니 “기장 교회는 새벽기도회를 안 해도 된다고 하더라.” 였다. 나의 체질이 잠을 많이 자야 한다고 했다. 그때 송암교회 담임목사는 기원형 목사님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한 번도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은 목사님이다. 한의사의 권고를 지킬 수 없었다. 나의 목회에서 새벽기도회와 일과 시작의 가운데 시간은, 설교 준비에 중요한 때였기에, 담임목사로 목회하는 동안 새벽기도 시간은 내 삶의 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새벽기도회와 연관된 후회하는 일이 있다. 나는 모든 설교를 기록했다. 그러나 새벽기도회 말씀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짧은 요약으로 정리한 것으로는 전한 말씀을 온전히 복원할 수 없다. 이 사실이 날 부끄럽게 했고, 아쉬운 마음이 되었다. 이유가 있다. 나는 최근에 할아버지 책 ‘백남 강병주 목사의 행적을 찾아서’를 출판하고, 나의 신문 기고 글 모음 책 ‘세상에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를 출판했다. 그리고 오랜 숙제인 아버지, 만산 강신정 목사님의 책을 집필하고 있다. 기록적인 무더위가 계속되는 때, 나는 의자에 껌딱지가 되듯, 의자를 뜨겁게 했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의 새벽기도회 원고를 만났다. 갱지 23장 분량의 원고를, 매일 남기셨다. 내가 정리하려고 한 원고 뭉치는 1975년 5월 경의 새벽에 전한 ‘요한복음 강해’였다. 수요일은 78장의 분량이었다. 용산제일교회를 목회할 때이다. 1975년이면 62세 때이다. 아버지는 목회하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창세기부터 계속하신 것으로 추측한다. (아직 정리되지 못한 원고 뭉치가 여러 상자이다) 아버지의 갱지에 쓴 원고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누렇게 변색 되고,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말씀이 주관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너무 귀하다. 갱지가 바스러지면서 말씀을 소멸시키는 것은 너무나 큰 손실이라고 느꼈다. 시간이 많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는, 한 장씩 아버지의 漢文 草書(초서)를 읽는 至難(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언제인가 전체 새벽기도회 원고가 책이 되는 날을 꿈꾼다. 요한복음 12:44-50 ‘불가피한 심판’을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