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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가 암시하는 교훈

8⸱15! 해방! 자유! 독립! 등등은 36년간 왜구(倭寇)들에게 수탈을 당하고 허기진 우리 민족에게는 기름진 진수성찬이었다. 그때 이후 반세기를 눈앞에 두고 그날의 감격을 되씹어볼 때 그 소중한 하늘의 선물을 감당하기에는 우리 민족의 위장이 너무나 무력했었다는 점을 미처 몰랐던 것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깡조밥에 된장과 채식에 오래 길들어진 창자에 갑자기 기름진 육류로 포식했을 경우 아무리 힘센 장골이라도 배탈이 나는 것은 상식이다.

사람에 따라 견해차는 있겠지마는, 8⸱15를 기해서 우리가 모두 좀 더 겸허한 자세로, 개인적인 야망 따위를 초월해서 민족정신과 애국심으로 정신 무장을 한층 강화했더라면, 분단의 비극이 반백 년까지 연장되지는 않았으리란 생각이 내 가슴을 친다.

이제 해방 49주년을 맞으면서 그날 태극기를 끌어안고 용솟음치는 감격의 눈물로 옷깃을 적시던 그 순간순간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면서 ‘8⸱15가 우리에게 암시하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더듬어 보고자 한다.

첫째로, 8⸱15는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암시해 주었다.

성경 잠언 16:33에서 “제비를 뽑는 일은 사람이 하지만 그 일을 결정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였다. 이는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때로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라는 속어(俗語)처럼 완력과 폭력과 무력이 역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근시안적이요 일시적일 뿐, 긴 안목으로 볼 때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오늘도 살아계셔서 선악과 승패를 결정지어 주시는 분이었다.

한때 일본 가미카제(神風)의 기세로 보아 삽시간에 천하를 먹어 치울 듯했지만,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우세한 UN군을 동원하여 하늘을 찌를듯한 일본군의 기세를 꺾으셨던 것이 아니었던가! 일본의 야망은 끝이 없었다. 한반도와 만주를 삼키고도 배가 덜 차서 중원과 동남아를 거쳐, 대양주까지 짓밟았으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미국 군대의 심장부인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여 불바다를 만들었던 엄청난 만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본의 소수 무단정치꾼이 평범한 인간 히로히토(裕仁)를 알아힘도가미(現人神)라는 인조신(人造神)을 만들어, 그를 등에 업고 망둥이처럼 함부로 날뛰다가 역사의 주인이시오, 현존(現存)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패망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때 일본은 우리나라 재산의 80% 이상을 수탈해 갔으며, 국보급 보물의 정수를 다 빼돌렸고, 영주(永住)할 기반을 착실히 구축해 갔으며, 대륙 진출을 위한 징검다리로 이용할 만한 거점을 마련했다고 자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8⸱15를 한계점으로 정하셨기에. 그동안 겁 없이 꿀꺽꿀꺽 삼켰던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토해 놓도록 간섭하셨던 것이다. 목에다 총칼을 겨누고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게 했으며,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우리 말을 대신해서 일어를 상용토록 했고, 황국신민(皇國臣民) 서사를 선서시켰으며, 동방요배(東方遙拜)와 신사참배(神祠參拜)를 강요함으로 우상숭배까지 강제하면서 명실공히 일본화의 성공을 자축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고 컴컴해서 답답하기만 했던 터널이 8⸱15를 기해서 한순간 밝아 오고야 만 것이다. 이는 역사의 주인은 무력을 신봉하는 강자들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인 하나님이심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패전국 일본은 회개는 고사하고 반성도 제대로 하기 전에, 한국과 월남이 전란으로 중병을 치르는 동안, 미국을 등에 업고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경제 대국, 군사 대국, 세계시장 점유율이 선두를 달리는 미국까지 따돌리고 앞지를 가능성마저 보인다. 하지만 8⸱15가 암시하는 생생한 산 교훈을 모르는 체하고 다시 망둥이처럼 날뛰는 날에는, 역사의 주인인 하나님이 옛날 소돔과 고모라의 재판을 만드실는지 몰라서 두렵기조차 하다.

8⸱15는 인류의 역사가 헝클어진 실꾸리처럼 갈피를 잡기 어려운 것 같아도 결국은 역사의 주인이요 현존하신 하나님이 설계해 두신 그대로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서, 선을 이루고야 만다는 산 교훈을 암시해 주었다고 믿는다.

둘째로, 8⸱15는 고통의 절정은 새날의 여명(黎明)임을 암시해 주었다.

성경 출애굽기 2:2-3 이하에서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이 죽었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고역으로 신음하며 부르짖었다. 그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자, 하나님은 그들의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 약속하신 언약을 기억하셔서 …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셨다”라고 하였다.

요셉으로 말하면 애굽의 총리 시절에 찬란한 애굽 문명을, 7년 흉년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었던 위기에서 지켜 준 구국의 공신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애굽의 상하가 위대한 구국 공신의 공적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의 동족을 학대하고 우마처럼 혹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궁하면 통한다’라는 속담도 있지만, ‘사람이 앞문을 잠그면 하나님은 창문을 열어주신다’라는 어느 영화의 대사가 생각난다. 종살이 3백여 년이오, 학대와 혹사가 그 극에 이르렀을 때, 역사의 주인인 하나님은 그들의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해방의 새 아침을 불러일으키셨다. 일(日) 주야(晝夜)의 특징을 말하자면, 여명(黎明)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점이리라.

우리 겨레가 일제하에서 36년간 치욕의 나날을 보냈지마는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때가 바로 8⸱15 직전이었음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미 몇 가지 지적한 바 있지만, 그 외에도 징용, 징병, 집집마다 가미다가(天照大神位牌천조대신위패, 神位신위)를 모시라, 쇠붙이와 처녀 공출, 그것도 부족해서 8⸱18에는 요인 대량 학살을 하기로 계획하고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는 야만적인 계획이 들통이 났으니, 일제의 죄악이 하늘에 닿아 있었으며, 우리 겨레의 고통이 그 극에 달했을 때가 분명한즉, 바로 그 무렵이 8⸱15해방을 알리는 여명(黎明)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8⸱15 이후 북한의 정황은 너무 빠른 속도로 공산주의를 빙자한 일인 독재 체제로 변신하는 바람에, 바로왕 때나, 수용소군도가 무색할 정도로 무고한 국민이 혹사를 당했던 것이다.

그것을 최근 죽음을 각오하고 북한을 탈출하다가 대부분이 총살당하는 사실을 보면서도, 자유의 품에 안기려고 계속 탈출을 시도하는 개인 또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북한 동포의 고통이 한계점에 이르렀음을 말해 주는 동시에, 북한을 반세기 동안 떡 주무르듯 하던, 그 오만방자한 우상의 몰락이 임박했음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이리라.

아웅산 폭파 사건, 판문점 도끼 사건, KAL기 폭파와 납북 사건 등은 물론 그간 휴전협정 위반 사건만 해도 자그마치 42만여 건이라고 하며, 근간에 핵(核)을 볼모로 UN이 지향하고 있는 평화 질서를 휘저어 놓고 미소를 짓지 않았던가? 그야말로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감 으로 불안이 엄습해 오고 있을 때, 한순간 6⸱25의 원흉이 죽었으니, 역사의 주인인 그분의 간섭으로 새날의 여명(黎明)이 동터옴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8⸱15가 그것을 우리에게 암시해 준 것이다.

셋째로, 8⸱15는 3⸱1정신이 통일의 전제 조건임을 암시해 주었다.

그때 우리 민족이 3⸱1정신으로 철석같이 계속 뭉쳤더라면 반세기 동안 분단과 이산가족의 쓴 잔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란 말이다. 그때 우리는 계급과 사상과 신앙과 지역 등 모든 것을 초월해서 나라와 겨레를 사랑했기에 자주독립을 위한 한 목표를 향하여 목숨을 내놓았으며, 동시에 숨 쉬는 폭탄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 우리는 비폭력 무저항적 저항을 했으나 폭력이나 무력이나 혈전(血戰)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저력을 세계만방에 떨쳤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기 위하여 각자 자신을 몽땅 민족의 제단에 산 제물로 바쳤기 때문이었다.

비록 기미년 후 27년이란 세월이 걸리기는 했지만, 3⸱1정신만은 죽지 않고, 더욱더 강화되어서 마침내 8⸱15의 해방이란 엄청난 선물을 역사의 주인으로부터 받았던 것이 아니었던가!

이제 우리는 분단 반세기를 눈앞에 두고, 8⸱15 이래 우리들 마음들이 하나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사분오열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 온 사실을 누가 감히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3⸱1정신이 왜구(倭寇)를 몰아내는 최대의 무기였음을 알면서도, 북한을 삼키고 남한마저 노려보며 침을 흘리고 있는 붉은 용을 물리치는 데 계속 활용하는 지혜가 모자라서, 반세기 동안의 피눈물 흘리는 비극을 낳았던 것이라고 여겨진다. 대영제국도 예수의 사랑에 의한 무저항적 민족운동을 몸으로 실천하던 민족운동가 간디 한 사람을 당해내지 못해서, 1947년 인도는 독립하지 않았던가!

사실 3⸱1정신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요, 기독교 경전인 성경 중에서도 예수님의 산상수훈(山上垂訓)에 그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통일정책이 평화적인 통일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은 최선이라고 믿는다. 이에 호응해서 온 국민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다른 모든 것에 앞서서 3⸱1정신으로 똘똘 뭉쳐서 숨 쉬는 폭탄이 되는 결단일 뿐이다.

28년 전 런던 타임스 동경 특파원이 그 당시 한국의 실상을 쓰면서 “… 지금 한국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끝내지 않은 전쟁의 부담이 아니라 … 민정, 군정 할 것 없이 계속되고 있는 당파 싸움이다.” 한 말은 오늘의 현실에도 꼭 맞는 지적이요, 우리 민족의 진정한 벗, 스코필드 박사가 독립 기념탑 제막식 석상에서 “… 오늘날 우리는 내부의 적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 이 적(敵)은 반세가 전에 외부로부터 침입한 일본제국주의와 꼭 같을 정도로 현실적이오, 위험천만한 적이다.” 한 경고도 경청해야 할 말이다. 웅대한 통일 국가 건설이란 민족적 지상 과제를 목전에 두고, 마땅히 3⸱1정신으로 똘똘 뭉쳐 명실공히 ‘하나’가 되는 것이 하늘의 명령이거늘 오늘 우리나라 상하가 민주화를 역행하는 오만가지 비리가 만연되어 신앙 양심은 고사하고 민족 양심과 3⸱1정신을 제멋대로 깔아뭉개고 있으니 어찌 개탄하지 않으리오!

이제 북한의 기름진 땅을 생지옥으로 만든 장본인이 의문의 죽음으로 갔고, 미구의 어떤 변혁이 일어나 통일의 기미가 내다보이는 오늘, 우리는 총체적으로 민족 양심을 찾고 3⸱1정신으로 재무장함으로써 명실공히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가 되어 반세기 동안 기다렸던 통일 전선으로 총진군해야 한다.

이것이 8⸱15가 오늘 우리 민족에게 암시해 주고 있는, 하늘의 지상명령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 강신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