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설교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은?

2020년에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은 누구인지 묻는 손글씨
뒤엉킨 어둠을 가르며 파란 빛이 비추는 그림
악한 세상에서 방주를 만드는 사람을 표현한 산과 방주 그림
푸른 풀숲에서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낸 그림
바벨탑과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은 아브라함을 표현한 그림
십자가가 있는 언덕으로 이어지는 좁고 험한 길을 걷는 사람
가슴에 사랑을 품고 작은 자에게 사랑을 나누는 사람을 표현한 그림
세상에 소망의 꽃 한 송이 피우는 사람이라는 손글씨와 보라색 꽃

1. 어린이들을 위한 설교

“2020년에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은?”

2020년 새해 첫날이어요.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면 좋을까요?

‘혼돈의 세상에서 빛이 되는 사람’

‘혼돈’이라는 단어가 어렵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끝없는 어둠의 세계였지요. 이것을 ‘카오스’라고 하는데, ‘혼돈’이랍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무질서하게 엉켜 있는 상태랍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셨지요.

빛이 카오스 세계를 비추었어요.

첫 번째 창조입니다.

질서가 있는 빛의 세상, 함께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시면서, 이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어둡고, 혼자만 살려고 하는 세상이 될 때, 빛으로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는다는 뜻이랍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지요.

그 후의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어떤 세상이 되었을까요?

“사람들의 악이 땅에 가득하여, 끝 날이 이르렀다.”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모두 없애야겠다.” 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너는 방주를 만들어라” 하셨어요.

악한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려고 했는데,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어요. 커다란 배를 만들어 홍수를 대비하게 했는데, 높은 산에 배를 만들었어요. 노아는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했지요.

‘노아의 방주’는 사람을 구원하는 배가 되었죠.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찾았던 노아처럼, 악한 세상에서 방주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랍니다.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가족들과 모든 동물은 새로운 인류공동체가 되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은 어떤 기대를 하셨을까요?

사람들이 함께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게 되리라 생각하셨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서 한 일은

바벨탑을 쌓았어요.

“세상에 우리 이름을 내자.” 했어요.

하나님의 뜻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었지요.

하나님께서 크게 실망하시게 되었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발견한 사람이 있었어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람들이 들에 바벨탑을 쌓아 올릴 때, 벧엘 동쪽 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제단을 쌓고(창 12:8), 헤브론으로 이사를 해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답니다. (창 13:18)

하나님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불러, 자신의 사람으로 삼았어요.

세상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높일 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이지요.

많은 세월이 흘렀어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후손들이면 세상에 평화를 이룰 수 있을 줄로 믿었어요.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되지를 않았어요.

아브라함의 후손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했지만,

율법, 전통, 관습에 빠져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잊었어요.

2,000년 전에 한 사람이 태어났어요.

어떤 사람일까요?

양의 무리에서 한 마리가 길을 잃었어요.

이 사람은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며,

결국, 길 잃은 양을 찾아내어 품에 안고 돌아와

기쁨으로 잔치를 여는 선한 목자이었지요. (눅 15:4-5)

‘예수님’이야.

하나님은 “내 사랑하는 아들, 내가 기뻐하는 자”(마 3:17)라고 하셨어요.

하나님께서 찾으시던 사람이지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봐요.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내가 걷는 길은 좁은 길이고, 험해.

이 길을 찾는 사람도 적지.

그렇지만 내가 걷는 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란다.”(마 7:14)

“내가 찾는 사람은 나의 길을 걷는 사람이야.”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서,

가시가 많은 험한 길이지만

이 길을 걷는 사람,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이란다.

노아 같은 사람,

아브라함 같은 사람,

예수님 따르는 사람,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사는 사람일까요?

이 사람에게는 가슴에 ‘사랑’이 있어요.

하나님은 ‘사랑’이 있는 사람을 찾은 것이죠.

이 세상을 위하여 뽑아 둔 사람들은 모두 가슴에 ‘사랑’이 있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가진 ‘사랑’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셨지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사랑을 나누는 사람.”(마 25:40)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 예수님께서 찾는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세상에

소망의

한 송이

피우는

사람”

입니다.

2020년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2.

2019년이 우리에게 넘겨준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둘로 나뉜 나라, 국민이라고 생각되어요. 우리의 현실이죠.

한 사건을 놓고, 사실인데, 이렇게 다르게 본 역사가 있었나요?

모두 한 국민인데 현실이 너무 아픕니다.

마치 보수와 진보의 전쟁터 같은 나라 현실은, 카오스(chaos, 混沌), 창조 전의 상태와 같습니다.

이 상황에서 창세기 1:2-3을 다시 보면, 카오스에 빛을 만든 하나님을 고백한 것이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이란 ‘혼돈의 세상에서 빛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선포한 것으로 읽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카오스를 몰아내고 질서의 세계, 상생(相生)의 창조 세계를 이룬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에게 이 세계로 가꾸기 가기를 원한 것이기도 합니다.

3.

‘버킷 리스트’(bucket list)라는 말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뜻합니다. 목록을 작성하여 실행하면 보람 있는 생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list입니다.

2007년 잭 니컬슨, 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제목입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올해 이루기를 바라는 일들의 목록을 작성합니다.

비록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될지는 몰라도, 올해에는 반드시 이루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하죠. 뭐, 지난해의 후회스러웠던 일들에 대한 반성과 반작용이기도 한 셈이죠.

2020년의 자신이 이루고 싶은 일의 목록 5가지 이상을 구체적으로 작성하셔요.

『……』

자,

작성된 목록에서 ‘자신을 위한 것’을 제외합니다.

제외 목록에 ‘자기 가족들을 위한 것’도 포함 시킵니다.

이제 어떤 것이 남아 있나요?

신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몇 개가 되나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합니다.

문제는 우리는 정작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예수님을 따른다는 신앙인으로서 신앙적인 판단을 내리는 일이 없거나 미흡하다는 점입니다.

예수님 잘 믿는다고는 하는데, 결정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세속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제 연세대학 앞 건널목을 건너자마자 광고지를 주려는 여성이 있었어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려 거부의 몸짓을 하고는, 곧바로 후회했어요.

한 장, 한 장 나눈 것에 따라 일당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를 위하는 마음이라면 보지 않더라도 받았어야 했는데 하는 미안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뒤따라오는 어떤 여인의 소리를 들었어요.

“작은 것이지만, 받으면서 덕을 쌓아야 해.”

마음속에 부끄러움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을 사소하게 생각되는 일에서부터 생각해 봐야 합니다.

2020년을 살면서 이루고 싶은 것의 list가 부끄러운 것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닌가요?

요한계시록 21:5에 하나님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십니다.

재림예수님을 맞이한 구원받은 백성들의 새 하늘 새 땅에서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새 하늘 새 땅의 백성은, ‘새롭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품습니다.

‘새롭다’는 것은, 지난 것과 ‘다름’을 전제(前提)합니다.

곧 예수 믿기 전과 후의 다름을 뜻하죠.

이것이 어떤 것일까요?

오늘 이것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이란 시각으로 신앙적인 삶을 풀어봅니다.

4.

하나님께서 카오스에 빛을 만들어 흑암을 물러나게 하고 질서의 세상을 만드신 후, 혼돈의 세상에서 빛의 사람 되길 기대하면서 사람, 곧 아담과 하와를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기대한 대로 되었나요?

성공? 실패?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고 봅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간과(看過)한 것이 있었다고 봅니다.

인간의 욕심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을 불태우고, 동산 한가운데 두어 모든 생물이 공유해야 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 열매를 욕심부려 독점하려는 인간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이것마저 하나님이 알고 통제한다면, 선악과를 따 먹는 사건도 하나님의 계획 혹은 섭리(攝理)로, 사람은 자유의지가 소용없는 존재가 되죠.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음으로, 에덴동산, 곧 낙원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는 깨어졌습니다.

흠집이 생긴 것이죠.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창조의 세계가 질서의 세상, 상생(相生)의 세계,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했던 하나님의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면서, 생명 문제, 영원한 생명만은 하나님의 손에 두려고 하였고, 깨어진 창조 세상을 회복시키려는 일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 찾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성경을 통해 알려주십니다.

5.

노아의 홍수 사건을 살핍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보십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사람 만든 것을 한탄하고 근심하시더니(창 6:6, 표준새번역은 ‘후회하심’으로, 공동번역은 ‘마음이 아프셨다. 공연히 만들었다고 탄식하셨다’로), 홍수 심판으로 땅 위의 모든 생물을 멸절하기로 마음 정합니다.

이때, 한 사람, 의로운 노아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어라.”(창 6:14)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은 심판받을 정도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 곧 구원의 ‘방주를 만드는 사람’을 찾습니다.

이 노아로 말미암아 첫 사람 아담으로 시작된 인류의 역사는 끝나고, 새로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기대대로 되었을까요?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인류는 들판에 모여 바벨탑을 쌓으며,

“우리 이름을 내자”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높이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노아 이후의 새로운 인류에게 기대한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인류 역시 아담의 잘못을 반복한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지? 또 멸망시켜야 하나? 다른 방법은 없을까? 내 뜻을 이룰 사람은 없나?

길을 찾는데, 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벧엘 동쪽 산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으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창 12:8), 요단 들판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여 떠난 조카 롯과 헤어지고, 헤브론 산지에 거주하며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는 사람(창 13:18)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벨탑 쌓기가 대세였던 시대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두가 들의 물질 풍요, 도시의 향락과 쾌락을 추구하며, 우상숭배에 빠질 때,

여호와께서 계시는 산을 바라본 사람이었습니다.

세류에 휩쓸리지 않고 여호와를 향한 사람, 여호와를 바라보며 믿음을 지킨 사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6.

세월이 흘렀습니다.

요단강에서 한 사람이 세례를 받습니다.

예수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뭍으로 올라오자,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마 3:17)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보고 기뻐하셨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품은 분이죠. (요 3:16)

세상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몸에 간직한 예수님입니다.

양 한 마리를 잃으면, 찾을 때까지 찾고 다니며, 결국 찾아 기쁨의 잔치를 여는 분입니다. (눅 15:4-5)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보면, 하나님의 뜻을 먼저 이루시려 한 분이죠.

그러니 하나님께서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신 것이죠.

확인해주는 성경 본문이 있어요.

요한복음 6:38-40에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그분의 뜻은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살게 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이 일 하려고 세상에 오셨으니,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7.

이 예수께서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제자 될 사람들을 부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하시고는, 자신을 따르는 길은 좁고 험한 길(마 7:14)이라 하셨습니다. 가시밭길입니다. 고난의 십자가 길입니다.

이 길 걸으려는 사람을 예수님은 찾으십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예수께서 관심 기울이시며, 자신의 사랑을 나누어 주시던 사람들, 마태복음 25:40 말씀대로 “작은 자 하나”에게 사랑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1962년과 1966년에 고국 오스트리아를 떠나 소록도에 와서 40년을 넘는 세월 동안 한센병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던, 마리안 스퇴거(85)와 마가릿 피사렛(84), ‘파란 눈의 천사’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추천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소록도에 묻히고 싶다던 그들은 2005년 돌연히 편지 한 통만 남기고 40여 년 전에 들고 왔던 가방 하나씩만 들고 떠났습니다. “나이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면 도리어 짐이 되는 것 같아 떠납니다.”

그분들이 40년 넘는 세월을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를! 작은 자를 위하여 헌신하며 사는 하루를! 이 하루를 쌓아 1년이 되고, 1년을 쌓고 쌓아 40년을 넘기었다고 봅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한다고 하면서 거창하게 소문내어 크게 해야 한다고 여긴다면, 착각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작은 자 하나에게 하는 일, 작고 작은 일 하나를 쌓으라 하신 것입니다.

행화정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저금통 나누기도, 작은 일이지만 모이고 쌓여서 큰일이 됩니다.

이런 자세로 사는 사람을 주님은 찾으신다고 믿습니다.

나는,

가슴에 사랑을 품고

작은 자 하나에게 사랑을 나누는 사람,

이 사람은

혼돈의 세상에

소망의 꽃 한 송이

피우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이라고

믿어요.

자,

다시 새해의 소망 list를 작성해 봅니다.

우리는 2020년에,

갈등, 대립, 대결, 분열, 분노, 어둠의 세력들이 지배하여 악이 흥한 세상에

빛, 사랑, 작은 자에게 나눔으로

하나님께서 찾는 그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강석찬 목사